차 운전을 한 지 반 년이 넘는다. "어찌구 말 것 같지 않던" 운전 기술도 새끼손톱 만큼씩 날에 날마다 늘고 있는 추세이다. 사고를 제일 많이 저지른 한해였을 것이고 깨달음이 가장 많은 한해이기도 했을 것이다. 요즘은 운전과 인생이 참 닮았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 혼자 벽에다 긁기, 남 차 긁어놓기를 각각 한두 번 저지르고 나니 이제 좀 내 차와 다른 물체 사이 간격이 조금 짐작이 된다. 지나가도 되는 거리인지, 강행하면 긁고야 말 너비일지 얼추 짐작을 해 볼 수가 있다.
사회에 갓 나온 햇내기가 사회생활을 하며 겪는 골치 아픈 인간관계 처리와 닮은 것이다. 사회에 갓 나와서는 무작장 뜨거운 마음으로 사람에게 다가갔다가 데일 때도 있고 또 한발 더 다가갔어도 되는 사람인데 공연히 경외하다 관계가 서먹해질 때도 있다. 그 적당한 거리를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알 수는 없다. 그것은 오로지 온몸으로 부딪치고 치이며 스스로 터득해가야 할 기술이다.
긁고 긁히며 이제 조금 그 간격에 대한 느낌을 체화해 간다.
의외의 상황은 기분이 최고조에 달해 아무 위기의식이 없을 때 생긴다는 것이다. 살면서 뒤통수를 당할 때가 많다. 그것은 뒤통수를 치기로 작정한 누군가 때문이 아니라 너무 방심한 본인 탓일 때가 더 많다.
처음으로 사고를 냈을 때는 아마 두 번째로 혼자 길에 나섰을 때였을 것이다. 그 전 한번의 경험에 나는 너무 자아도취를 심하게 한 상태였다. 운전, 어렵지 않아~ 브레이크와 엑셀을 적절히 잘 밟아주기만 하면 돼.
그렇게 신심 가득히 나는 길에 나섰던 것이다. 음악을 켜고 볼륨도 높이고 차창도 열어놓았다. 내가 생각하는 멋있어 보이는 운전자의 모습을 다 갖추고 들뜬 마음으로 그렇게 회사로 가는 길에 올랐다.
그러나 회사로 가는 길이 그리 험난할지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고봉기를 갓 비껴갔다고는 하나 경장고속도로는 정체가 심했고 고속도로에서 3환도로로 빠지는 길은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채소주머니를 든 할머니, 유툐에 콩젖을 든 할아버지가 여유작작히 차 사이를 빠져 나가시고 초짜인 나는 어쩔 바를 몰라 진땀을 흘리며 쩔쩔 맸다. 그렇게 허둥대다 나는 쇼핑수레를 끌고 유유히 지나가는 할아버지를 피하다 그만 앞차 뒤꽁무니를 쳐놓고야 말았다.
앞차에서 내린 남자 운전자는 화를 내지 않았다. 뒷목을 부여잡고 내려와 이제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물었다. 황황한 가운데 보험회사에 연락하고 사진을 찍어두고 수습을 했다.
착해 보이는 그 남자가 덤덤하게 나에게 말했다.
"빌린 차로 손님을 태워가는 중이였다. 차 수리 기간이 나흘이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나는 원래 벌어야 할 수입을 놓치게 된다. 네가 그 보상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와장창 부서진 멘탈을 겨우 부여잡고 뿌연 눈으로 먼데를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머리를 끄덕였다.
위챗을 추가하고 보니 아이디가 "生活很无味"이다. 그남자의 무미한 생할에 짜증 한바가지를 내가 더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달라는 대로 주고 사고가 난 자리에서 다시 차를 몰아 보험회사로 가면서 나름의 분석을 했다. 내가 조금만 덜 들떴더라도, 들떴지만서도 위험부담이 큰 차를 운전하고 길에 나섰으면 그에 걸맞는 위기의식을 가졌어야 했는데… 내가 조금 더 침착했더라면…
일은 벌어졌고 모든 것은 행차뒤 나발이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보지 않아도 감으로 아는 사람이 있고 찍어먹어 봐야 아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였다. 내 몸으로 부딪치고 나서야 비로소 신중 신중 또 신중해야 함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인생에 그렇게 정신줄 마구 풀어놓고 즐겨도 될 만한 순간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내 스스로에게 칭찬할 만 한 것은 나는 사고가 난 지점에서 두려움 없이 다시 일어섰다는 것이다. 사실은 두려웠다. 그러나 내가 저지른 일은 내가 처리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두려움을 크게 생각할 새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다시 운전대를 잡는 일 밖에 없었다. 그렇게 사고가 난 지점에서 30킬로를 달려 보험회사로 간 나를 대견하게 여기려 한다.
그번 사고가 있고나서 나는 한동안 너무 신중하다 못해 운전대만 잡으면 온몸이 경직되고는 했다. 속도를 내지 못해 뒤 차에서 터져나오는 욕도 먹어 보았고 차들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려 유턴을 하려다 몇 분이나 길에서 헤맨 적도 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팔이 저려날 지경이었다. 눈도 너무 부릅떠서 그런지 운전을 한 날 저녁이면 눈이 퀭해지고는 했다.
어느 한번은 빨간 신호등이 유난히 오라길래 그 새 핸드크림이나 발라야지 하고 핸드크림을 꾹 짜서 손등에 찍어놓았는데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뀔 줄이야. 당황한 나는 어찌할지를 몰라 허둥대다가 운전대를 꽉 잡고 엑셀을 밟았다. 운전도중에 운전대를 놓을 수 없어 핸드크림을 손등에 바른 채로 목적지까지 가야 했던 웃픈 일화도 있다. 두바퀴 자전거처럼 핸들을 놓으면 바로 차가 넘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운전이 조심스럽다는 내 얘기에 지인이 충고하기를 차에 자동주차 기능이 있을 테니 너무 무서워말고 용왕매진하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또 너무 깊숙이 받아들여, 노란색, 주황색, 빨간 색의 다급한 경계 신호가 뜨는 것도 무시하고 엑셀을 밟았다가 더 처참하게 차를 긁은 적도 있다.
묵계가 형성되지 않은 사이의 조언이라는 게 무서울 때도 있는 것이다.
길 옆에 세워두었던 차를 몰고 나가려고 배운 대로 왼쪽 깜박이를 켜고 나가려다 뒤에서 달려오는 차와 부딪친 적이 있다. 다행히 내 차는 멀쩡했고 뒤에서 오던 벤쯔가 아주 미세한 흔적이 생겨버렸다.
배운 대로 한 나는 억울하기만 했다. 깜박이를 내가 켰잖아.
벤쯔에서 한 중년 남자가 내렸다. 나도 차에서 내렸다.
내가 깜박이 켰는데 못보았나? 했더니 그 남자가 켰더라도 뒤를 한번 더 봤어야 했다고 하는 것이였다. 갈 길이 급해서 둘은 전화번호만 교환하고 갈라졌다. 여러 사람과 물어봤더니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깜박이를 켜는 것은 경고일 뿐 그래도 뒤에서 차가 오나 안 오나를 한번 더 봤어야 했다는 것이다. 깜박이만 켜면 능사가 아니었다.
다행히 그 중년남자는 차 수리는 없던 일로 하자며, 담부턴 조심하라고 따뜻한 말로 일깨워주었다.
그 뒤로 옆과 뒤를 두번 더 살피는 조심성이 생겼다.
효율적인 소통을 하려면 확실한 주장 제기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더 들어보고 상대의 표정을 살펴야 했던 것이다.
밤운전을 하기 전에는 못내 두려워나기도 했다. 어두운 데서 내가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오후에 떠난 길인데 집에 거의 도착할 때즘엔 땅거미가 지다보니 본의 아니게 밤운전을 해보게 되었다. 우려했던 만큼의 어려움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운전을 배울 때는 높은 입체교 위를 올라가는 차들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나는 저걸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느날 내비가 이끄는 대로 가다보니 나도 그 아찔해 보이는 입체교를 지나 오불꼬불한 커브를 돌고 있었다.
인생이 그렇지 않던가, 실행해 보기 전에는 모든 것이 두려워난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단 하나, 그저 손을 대서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해나가다 어느 날 돌이켜보면 아, 내가 저런 것도 이겨왔구나 하는 뿌듯함이 생기는 것이다.
도로 위에는 많은 약속들이 있다. 차선을 함부로 넘으면 안 되는 것, 좌회전 및 우회전을 하는 차는 직진하는 차에게 먼저 길을 양보해야 한다는 것, 끼여들기를 할 때는 깜박이를 켜야 한다는 것… 소부분의 경우를 제외하고 많은 약속들은 거의 지켜지는 편이다.
길에 나서면 우리는 다른 차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정해진 약속 대로 그 차가 행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촌보도 내디딜 수가 없다.
차선 저편에서 오는 차가 내 앞으로 역주행은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깜박이를 켜고 끼여들기를 시도하는 내 차를 뒤차가 과속으로 질러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있어서 도로 위는 그나마 질서가 지켜지는 것이다.
차라리 개를 믿지 인간을 믿냐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사회에서 타인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다.
내가 보낸 택배가 예정된 시간내에 상대방에게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내 진료를 맡은 의사가 성심성의껏 내 몸을 진료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
내가 꼬박꼬박 내고 있는 사회보험이 몇십 년 후에 내 통장으로 들어올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들이 있어서 수많은 인구가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차 운전을 하는 내가, 폭풍후진으로(내 혼자의 생각임) 주차를 하는 내가 너무 멋있는데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너무나 안타깝다고…
지인이 그랬다.
–길에서 운전하는 여자들의 모습 어떻습디까?
–운전대를 거의 가슴에 안을 듯이 하는 여자에, 막 황황해 하며 운전하는 여자에 별의별 여자 다 있습데다.
–본인 모습이 그렇지 않겠슴까?
라는 돌직구를 당하고서도 나는 속도 없이 꺄르르르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밖에서 보기에 내 운전하는 모습이 꼭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원래 자기 만족 아니던가?! 나 스스로가 내가 너무 멋있어서, 대견해서 죽을 지경이라면 남이 보는 나는 중요치 않다.
아무튼 나는 점점 더 멋져질 것이다. 운전에서든, 인생에서든…
초보의 쩌는 패기 보소. 사진은 하몽 제공
읽기만 해도 아찔합니다. 저는 면허 딴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정작 도심 한복판에서 운전해본 적은 한 번도 없기에 운전할 줄 안다고 얘기를 할 수가 없네요 ㅎㅎ 그래도 몽실님은 이미 출퇴근 운전을 결정했고 이것저것 겪으며 배워가는 모습을 보니 조만간 능숙한 운전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화이팅!!
스마트하고 도회적인 수현님을 내심 우러러봤는데 저 수현님보다 잘하는 거 하나 있네요. ㅎㅎ 씐나 씐나
핸드 크림을 손등에 바른채 목적지까지 가다니 하하핫 하지만 사진에는 엄청 여유로운 포스가 느껴 집니다.
해빛이 쨍쨍 비쳐 눈이 새물거리는데 선글라스를 끼지 못해 그런 채로 목적지까지 달린 적이 있다니요. 그저 운전대 꽉 잡고 전방만 주시하며 달리짐요
이미 길에 올라 운전하고 계신 몽실님께 두 손 엄지 척 해드립니다~
전 2010년에 딴 운전면허가 서랍에 모셔둔지 올해로 12년이 넘었습니다.
초반에는 학교 다니느라,,,
그 후에는 아주 작은 차사고로 생긴 두려움에…
일을 시작한 후 띠띠가 활성화 되다보니,,,
요즘은 온라인 소통에 외출이 더 적어지다 보니,,,
위는 전부다 핑계일 뿐,,,
전 저의 운전 실력에 대한 확신과 운전에 대한 오만가지 두려움을 극복해 보겠다는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ㅋㅋㅋㅋㅋ 그러다보니 운전을 통해 인생 공부 하시는 몽실님을 저는 개인적으로 우러러 본답니다~~~
막 으쓱으쓱해도 되는 부분인가요? ㅋㅋㅋ 더이상 퇴로가 없어서 시작한 운전이었어요. 구카님도 운전하세요. 어렵쥐 않아여~ 크. 이런 말 하는 날이 다 오다니 ㅋㅋ
북경에서 매일 운전한다는 자체가 이미 고수임다. 엄지척. 파란 니트 잘 어울림다.
이 코로나를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요새 길에 차가 없어서 운전이 참 신나는구만요
글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 직접 부딪치며 시행착오가 있어야 안정적이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에 공감합니다. 북경에서 능숙한 운전을 하시는 몽실님 멋집니다~!
아이코야 고맙습니다. 능숙하진 못해요 아직 ㅎㅎㅎ
하하하하, 웃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웃으면서 끝까지 잘 읽었습니다. 특히 生活很无味한 분한테 더 무의미를 준건 아닌지 미안해진다에서…. 참지 못하고 펀햇는데… 제가 많이 미안함다. 남이 스트레스 받고 힘들수도 있겠는데.
웃으셨다니 다행임다 .. 아흑.. 내 돈.. 또르륵…
저도 주차하면서 남의 차를 살짝 박아놓았고, 신호등이 마사진 길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직진하는 뒷차랑 부딪힌적 있어요. 그리고 손을 놓으면 차가 넘어질가봐 해가 쨍쨍 쪼이는데도 조수석에 놓여있는 태양모자를 못쓰고 그대로 목적지까지 갔구요.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운전에 서툰 저를 보는것 같아 웃음이 나네요. ㅎㅎㅎ
역시 멋있는 글입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보지 않아도 감으로 아는 사람” 등 적절하게 잘 넣어서 엮으셨네요. 거기에 초보운전으로 부터 차츰 먼가 함께 터득하였다는 교묘함도 멋지게 잘 표현 했네요 …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