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아주 어렸을 때 성탄절이면 선물을 받고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나를 다 아시네.”하며기뻐서 퐁퐁 뛰기까지 했다. 그리고 조금 더 크고나서 성탄절선물을 받으면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정말 있기는 있는 거야?”하며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의심스러워했다. 그리고 더커가면서 애는 미리 나에게 무엇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엄마, 산타할아버지는 내가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아주겠지?”라고 했다. 참으로 영악스럽게 커가는 애 앞에서 산타할아버지를 극구 고집하던 내가 되려 바보가 되여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하학하여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애가 치킨집에 가자고 졸라댔다. 나는 아주 장황하게 달콤한 유혹에 따르는 무시무시한 해로운 점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는 나를 흘기며 애가 한마디 던져왔다.
“세상은왜이런거야?”
그말에 깜짝 놀랐다. 언제 애가 이렇게 컸지? 애는 어느사이에 내 키를 훌쩍 넘어버렸고 이 세상을 향해서 원래의 백센치메터정도의 높이가 아닌 다른 높이에서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물음에 아까처럼 정확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왜서 세상이 이 모양이냐는데는 대답이 묘연했다. 아무튼 우리 어른들이 누구나가 자기 몫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이 세상을 만들어가련만 꼭 누구의 역할 때문에 이렇게 잘못된 세상이라고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모든 어른들의 잘못일지도.. 파괴하는 어른도 방관하는 어른도 아무런 도움도 없는 어른도.
그렇게 세상을 향해 갸우뚱하기 시작하면서 애는 차츰 몸을 도사리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반항적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꾸중에 되려 자기가 화를 내며 교실문을 빠져나가기도 했고 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이어폰을 귀에걸고 거리를 누비기도 했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신경질을 부리며 방문을 걸어잠그기도 했고 선생님이 싫다며 락제점수를 맞아오기도했고… 애는 그렇게 내가 여태 가르쳐온 례의범절 따위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내가 길들여온질서 따위를 벗어버리기 시작했다.
그시간동안 나는 인도한다는 명목하에 애랑 무던히도 싸웠다. 화를 내기도 했고 매를 들기도 했고 랭전상태를유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사이를 더욱 크게 벌어지게 만들고 애더러 더욱 거칠어지게 했을뿐이다. 그래서 어느 날은 서점을 돌아 교육에 관한 서적을 한아름 사들고 와서 밤을 새워 읽으며 교육방법을 배우고 계획을세워가며 맞춤교육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어떤 교육이든지를 막론하고 나는 실패만 련속했을 뿐이다. 나는 그래서 이 모든 난해한 리론들은 결국 아이들을 떠난 어른들의 사유방식의 라렬에 불과할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였다.
그러다가 어느날부터인가 나는 차라리 지켜보아주기로 했다. 애의 모습에서 나의 먼 옛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참답고 얌전한 애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된 나의 의식 저변에는 늘 어떤 반란이 넘실거리고 있었던 것일가? 나는 그때쯤 공부를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싫다고 훌쩍 짐을 싸들고 친척집에 숨어버리기도 했고 괜히 선생님을 화나게 하고는 그 성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불량아처럼 키들거리기도 했고 어떤 날은 수업시간이 싫다고 높다란 담벽을 뛰여넘어 거리로 나가 지칠 때까지 거닐기도 했고 어느 날 밤에는 밤자습을 하는 교실을 도망쳐나와 후미진 뒤골목 상점에서 흰술을 퍼마시고 밤늦게야 학교의 철대문을 뛰여넘어 숙소로 기여들기도 했고 내가 선택한 학교가 아니라는 리유로 락제점수를 부모님 앞에 내밀며 쾌감같은 걸 느끼기도 했고… 만약 그런 내모습을 애가 보았다면 어떤 눈길이였을가? 어떤 말을 해왔을가?
그때쯤 내 예민한 감성은 괜히 이 세상과 불화를 이루었고 어쩌면 그렇게 잡도리를 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때문에 참으로 고통스러웠던 것같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내게 가르쳐줄 수가 없다고 여긴 이 세상과 그속의 자신을 향해 나 스스로 깨닫기 위해 모지름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비록 위태롭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시간이였었다. 아무런 계산도 치밀한 계획도 없어서 너무나 순진무구한 시간들이였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지나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거나를 막론하고 어쨌거나 진보한 모습일 것이다. 내가 믿기로는.
그러나 어른인 나를 지금 돌아보아도 부끄럽게도 여전히 실수투성이다. 언제나 갈팡질팡하고 어리벙벙하고 우물쭈물하고… 언제나 비겁하고 비굴하고 비참하고… 언제나 굴복하고 타협하고 합리화하고… 이런 한심한 모양으로 살고 있으면서 아이에게 제대로 살라고 가르친단 말인가? 잘 사는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조차 알지 못하는데 무엇을 가르친단 말인가? 이 세상을 다 살아내지 못해서 아직은 세상을 모른다고 어이없이 당당한 내가 과연 얼마나 옳바른 희망을 가르쳐줄 수가 있단 말인가?
하다면 나는 애의 모습을 지켜보아줄 수밖에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무리 내가 어떻게 인도하든 나의 교육과 무관하게 애는 자신만의 방황을 할 것이고 자신만의 반항을 할 것이다. 애는 지금 나름대로는 최대한 심각하게 세상과 자신에 대해 새롭게 느끼며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정처없지만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이다. 막으려하는 내가 어쩌면 어리석은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은 왜 이런거야?
아이의 말이 다시 내 가슴을 찌른다. 애는 이 세상으로부터 과연 어떤 충격을 받은 것일가? 이 위선적이고 리기적이고 차겁고 어두운 세상을 어느만큼으로 리해한 것일가? 그래서 애는 어쩌면 환상과 현실의 갈등에 시달리는 것이 아닐가? 눈부신 희망과 반짝이는 사랑과 맑은 감동이 죄다 사라져버리는 것같은 느낌으로 견딜 수 없이 외롭고 슬퍼진 것이 아닐가? 그래서 마음의 문을 닫고 스스로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아물리지도 못한채 그 아픔을 또 다른 방식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 아닐가? 그래서 애는 초조하고 불안해진 것이 아닐가? 이런 세상 속에자신이 똑똑하게 살지 못할가봐 자신이 행복하게 살지 못할가봐 자신이 멋지게 살지 못할가봐… 회오리바람처럼불어닥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같은 심정이면서도 들키지 않으려고강함을 가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가? 아직은 여린 속살로 이 세상과 맞서기 위해.
세상앞에 “내가 누군데.”하고 감히 맞받아나갈 수 있는 나이, 비록 무모하고 위험하지만 너무나 싱싱하고 너무나 아름답지 않은가? 애는 좀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그리고 세상 속에 어떻게든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남기 위해 지금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간이 아닌가? 애가 좀더 성숙하기 위해 기어이 경과해야하는 통과의례같은 것이 아닐가? 괴롭고 힘든 날을 견뎌내며 애는 성장할 것이다. 나는 애틋한 눈길로조심스럽게 바라보며 응원해줄 수밖에.
이제 애는 그 찬란한 탈피의 몸짓을 지나 보다 밝고 평화로운 자신을 만나리라. 자신의 꿈을 더 소중하게 껴안으며 자기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리라. 이제 마음을 활짝 열고 이 세상 속을 온몸으로 뜨겁게 살아가리라. 그래서 지금 혼란스럽게 흘려보낸 시간이 덜 아깝고 덜 부끄러워지리라.
지금은 다만 거침없이 아름다운 시간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