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변말모이, 말을 번지다 (→올림말 페이지)

선생님. 민들레가 왜 민들레인지 아십니까?
문 주변에 흐드러지게 많이 피는 꽃이라 해서 문들레… 그래서 민들레가 되었답니다.
저희 아버지가 알려주신 겁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큰 걸음이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셨거든요.
그러면 민들레 홀씨처럼 그 걸음걸음이 퍼져나가 세상을 바꾸고…
… …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는 곳에 그 뜻이 모이고,
그 뜻이 모이는 곳에 비로소 길이 있지 않겠느냐고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영화 <말모이>(2019)에 나오는 대사의 일부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듣고 자란 '나'의 말이 민들레처럼 널리 퍼지고 흐드러지게 많이 피어나기를 바랐던 그 마음. 그런 민들레. 그래서 그가 아이디를 '들레'로 하지 않았을까 하고 꽤 전부터 어림짐작만 하고 글을 적는 지금 이 시간까지도 직접 물어 확인한 적은 없다. 아마 그럴거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한 연변말 화자인 그 '들레'가, 2021년 7월 네이버의 '오프사전PRO'라는 플랫폼에 <연변말모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사전을 개설한다. 홀로 띠엄띠엄 작업을 하던 중, 2022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말 모으기와 사전 편찬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2022년 4월에 뭐가 있었을까? 왜 갑자기 가속도가 붙은걸까? 코로나 팬데믹 시작? 뭐 그런 것과 전혀 관계가 없진 않을 수도 있으나, 직접적으로는 우리나무라는 작은 온라인 공동체의 활성화가 있었다. <우리나무> 사이트가 2019년 3월에 정식운영을 시작해서 일년 즈음 되던 시점에, 일정하게 모인 사이트 나무작가들이 온라인에서 더 소통할 수 있는 그런 기획을 추진한 게 2020년 3월이었다. 여러 가지 소통들이 기대 이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던 중, '연변말모이'라는 세미인 듯  세미 아닌 프로젝트가 공유되고 참여자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2. 연변말모이, 말을 얻어보다 (→사전 뜻풀이)

그렇게 불이 붙은 열정은,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일제의 눈을 피해 자각적으로 말을 모으고 지켰던 조선 팔도의 수많은 이름 모를 이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았다. 각색이 섞인 영화의 대목들이 실제 연변말을 모으는 과정 중에서 참된 경험으로 체득이 되었다고 할까, 영화 캐릭터들과 합일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신나고 즐겁고 설레었다. 

설에 친척들이 모여 화토를 치고 부커를 치듯, 자신있게 패를 내밀 듯, 말이 말을 부르고 당기고 끄집어 내고 풍요로와졌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머리 속 깊은 곳에 잠자던 기억들도 소환되었다. 모두가 시도 때도 없이 연변말을 꺼내다가, 그걸로는 모자라 아예 매주 시간을 정해 놓고 말모으기 경연을 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한 주 동안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고, 부모님께 친척들에게 말을 묻고 확인하고 말의 넝쿨을 따라 캐고 또 캤다. 말모으기 경연 시간이 임박할 즈음에는 '오늘은 비축한 탄알이 많다'며 너스레로 신경전을 하기도 하고, 빨리 시작하자며 조르기도 하는 마음. 그런 마음으로 연변말모이를 엮어왔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실제로 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연변말 자체에 대해 얘기하고 토론하고 여럿의 생각을 듣는 것 또한 익숙함을 낯설게, 낯설음을 더 깊은 깨달음으로 이어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끔은 낱말 하나, 뜻풀이 한 구절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기도' 한다. 

올림말 '매꼬내'를 둘러싸고

올림말 '범돌'를 둘러싸고

3. 연변말모이, 인간 온천하게 맹글다

들레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입에서 입으로 바람 탄 솜털 씨앗처럼 널리 퍼져갔다. 전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로부터 이메일로, 혹은 SNS 친구들을 통해 여러 다리 거쳐 메시지를 보내 와서 적게는 한 둘에서 많게는 백 개 이상의 낱말들을 제보해 왔다. 온라인 사전이라 낱말 별로 공유 링크가 생성되는데, 사전 화면 캡쳐와 함께 링크로 공유되기도 하고 댓글과 대댓글로 너도나도 자신의 연변말 기억을 꺼냈다. 

네이버 오늘의 베스트 사전과 인기 단어

그렇게 집중적으로 연변말 제보와 수집과 온라인 사전 기술이 진행된 지 10개월 정도. 네이버 오픈사전 프로 <연변말모이>는 600개의 낱말 기술을 마친, 그리고 수집만 하고 아직 플랫폼에 올리지 않은 말까지 하면 1,300개 이상을 넘어서게 되었다. 

<연변말모이> 사전 구체적 올림말 페이지 캡쳐
(아시아사전학회 2023 학술 발표 포스터 중)

단순히 낱말만 모은게 아니었다. 조선족 커뮤니티 사이트, SNS 게시물, 스마트폰 단톡방 채팅 기록들을 통하여 실제로 쓰이는, 살아 숨쉬는 예문들도 수집할 수가 있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림말과 그 예문의 육성 녹음 오디오도 올릴 수 있었고, 사진과 동영상도 추가할 수 있어 사전의 내용이 엄청나게 다양하고 생동해졌다. 

내가 올리고 내가 기술하고 내가 웃고 재미있어 하는 그런 사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4. 연변말모이, 아슴챊게 아시아사전학회를 가다

연변말 사전을 만들다 보니 재미와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다. 이런 더블 '미'가 넘치는 일을 학문적으로도 공개할 필요가 있을 뿐더러, 사전 편찬 작업의 단계적인 결과물을 내는 것이 작업팀 내부적으로 으쌰으쌰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멤버들 중에 학술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이들도 있고 해서, 2년에 한 번 열리는 아시아사전학회(ASIALEX)가, 마침 올해 2023년 여름에는 서울에서 열리게 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학회발표 얘기가 나온 게 2022년 11월 하순. 다만 학회 자체가 2023년 여름이긴 하나 초록(발표 개요) 제출 마감시간은 열흘 정도 남았던 시점이었다. 

각자 본업이 있고, 시간과 정력은 제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주일마다 논문작성 회의를 하고 진도를 체크하고 초록, 초고, 수정, 최종원고 제출, 영어 번역 작업, 그 뒤에 또 발표 포스터 제작… 거의 반년을 그렇게 조금씩 개미 금탑 쌓듯이 꾸준히 견지해 왔다. 그 결과물(포스터)을 아래에 공개한다. 

 전체 포스터

세부에 대해 조금씩 해설하면서 보도록 하자. 일단은 아시아사전학회이고 여러 언어권 연구자들이 모이는 자리이니, 먼저 '연변'이 어디고 '연변말'은 무슨 언어인지부터 소개가 필요하다. 중국 동북 지역의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쓰이는 조선어/한국어(Korean language)의 한 가지임을 설명한다. 

다음은 연변말이 현재 직면한 사회적 상황, 즉 연속적인 이동(예: 고향 > 관내 도시1 > 도시 2 > 해외국가1 > 해외국가 2 등)이 대거 이루어지고 있는 연변 조선족 개인들과 그로 인한 연변 조선족 공동체 형태의 변화를 소개함으로써, 연변말이 가지는 특징과 마주한 도전을 보였다. 

연변말은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시기의 서로 다른 지역과 언어와의 접촉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언어로서, 언어학적으로도 흔치 않은 사례이다. 연변말에는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혼종어 등 여러 유형의 낱말이 있음은 물론이고, 외래 차용어에도 러시아어, 일본어, 영어, 현대한어 등 여러 언어로부터의 유입이 있었다(뒤에 나오는 '범돌'을 둘러싼 대화 등을 참조). 

위에 보여준 새로운 변화를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게 연변말을 기록하고 보존할 새로운 방법과 실천을 제시하였다. 그 구체적인 사례가 바로 온라인 네트워크를 이용한 <연변말모이>의 사용자 참여형(user participation) 사전 편찬이다. 그리고 사용자 참여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a. 적극 참여형 사용자(active participatory user, 7명) 

 말을 모으고 가르고 말모이 사전의 올림말을 하나 하나 작성하고 비정기 회의를 통하여 사전의 편찬 방향을 결정함. 단톡방을 통한 연변말 제보를 독려하고, SNS를 통하여 사전을 홍보함. 

b. 일반 참여형 사용자(general participatory user, 82명)

말을 모으고 제보하고 말모으기 캠페인에 참여함. SNS를 통하여 사전 내용을 공유하고 홍보하고 다른 이들의 연변말 제보를 독려함. 

사용자 참여 유형 제시도

이러한 사전 참여형 사용자들 중, 적극 참여형 사용자가 7명, 일반 참여형 사용자가 82명이며, 실제 거주지역은 중국(연변 전역 8개 도시와 관내 여러 도시 포함)은 물론 아시아, 유럽, 북미, 아프리카 등 4대주, 9개 국가에 분포되어 있었다. 물론 이 숫자는 계속하여 늘어날 것이다. 

고마운 마음을 약소하게나마 표하고자 한분 한분의 성함 혹은 닉네임을 한자 한자 씩 입력을 해보았다. (여러 경로로 제보를 해주셔서 통계 중에 혹시 누락한 분이 계실수도 있다면 진심으로 되는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일부를 확대

오로지 온라인 환경에서만, 그리고 사전 사용자의 자발적 참여에만 의거한 사전으로서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은 괄목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학회 발표의 가치를 느낀 갓이기도 하고. 말은 모은 결과물의 일부를 간략하게 벙리하려 제시해 보았다. 품사별로 통계했을 경우, 명사, 의존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감탄사, 조사, 접사, 어미 등 모든 품사(관형사만 제외) 유형의 연변말을 모을 수 있었다. 

1,346개의 올림말을 모았는데(그중 구[句]가 272개) 기존의 한국어 사전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특히 제일 큰 한국어 사전인 <우리말샘>의 올림말과 비교할 경우 81.9%가 기존 사전에는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말이라는 결과는 참으로 사전 편찬작업의 가치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연변말모이>와 <우리말샘>의 낱말 유형 비교

이러한 작업과 성과가 가능하게 한 데에는 조선족 글쓰기 사이트 <우리나무>와 이를 통해 이어진 우리나무 작가들의 우리나무 그룹 채팅방의 역할을 빼놓을 수가 없다. 포스터 끝머리 '감사의 말'에 기록을 남김으로써 그 마음을 대신하였다. 이번 발표가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들의 경험과 생각을 기록하고 유용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또한 우리의 문화와 소중한 가치를 좀 더 널리 알려지게 하'려는 우리나무 사이트의 미션과 취지를 조금이나마 구현하는 실천이었다면 좋겠다. 

포스터 맨 밑의 Acknowledgments

아시아사전학회 2023에서 포스터 발표된 논문 리스트는 공식 사이트의 'Poster presentation'에서, <연변말모이> 관련 논문의 전문은 'ASIALEX2023-Proceedings'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다(317-323쪽). 

5. 연변말모이, 긴 말 말구 주변 분들 연변말 제보하라구 다 일굽소. 

검색창에, 혹은 바코드 스캔으로.

제보 이메일: mindeulle@naver.com
제보 격식(포맷): "낱말. 뜻 혹은 예문. (고향 몇십년대생 실명 혹은 별명)"
예시 1: "모두다. 뜻: 모이다. 예문: 모도들 말 모다봅소. (왕청 출신 80년대생 민들레)"
예시 2: "열정객. 예문: 사전 맹그는데 열정객이 마이 필요합꾸마. (룡정 출신 60년대생 민영익)"

*예문도 있으면 말의 뜻을 이해하고 확정하는데 훨씬 도움이 됩니다. 실명 공개 안 하시고 별명(닉네임)도 됩니다!!!

*출신 지역과 출생 년도(50후, 80후, 00후 등 대략적인 년대라도 OK)는 연변말의 사용 상황을 분석하고 연구하는데 소중한 정보를 제공하니 꼭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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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돌다가 고전과 씨름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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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래서 “들레”인지 확인하고 싶어지네요. ㅋㅋ
    그동안 준비하고 함께 작업해온 스토리들을 디테일하게 정리하느라 꽤 시간이 들었을텐데, 잘 정리해주어서 이렇게 그 과정을 알수 있게 되어서 좋습니다. 말모이 일꾼들과 제보자들이 더 늘어나서, 연변 말모이가 더 많은 우리의 단어들을 품은 그런 사전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전에 올라온 600개중에서 검색할수 없는 제가 알고 있는 사투리들이 있는데, 아직 올리지 않은 700개 말들이 더 있으니 거기에 포함되어 있을수도. 하루빨리 1300개가 다 올라온 사전을 볼수 있기를. 일꾼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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