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나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갈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교환학생 시절 이리저리 많이 놀러 다녔다고 하지만, 나는 이 기회를 평생 단 한 번의 해외 유학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그 때 나는 대학원 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공부 할 수 있는 기회의 소중함을 더욱 더 절실하게 느꼈던 것 같았다.   

교환학생 시기에 나는 오전 8시 부터 3시간 가량 한국어 수업을 받았다. 이 수업은 모든 교환학생의 필수 과목이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전공 수업을 받았고, 저녁 7시 부터 11시넘어까지 학교 화실에서 작업을 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신체가 무너지지 않게 유지 할 수 있도록 기숙사 지하에 있는 공용 헬스장 에서 런닝, 스트레칭을 하러간다. 다 하고나면 이미 두 세시, 그 땐 "아! 오늘도 가위에 눌리겠구나…"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뒤척이다가 겨우 잠에 든다.

그땐 무슨 정신력으로 공부 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놀랍다. 욕심은 많아서 서양화 전공, 조소 전공, 이론 전공의 수업들을 하나씩 다 신청하였다. 

중국 대학원에서 나는 중국화 전공이었다. 하지만 학부 때 나는 미술교육 전공이기 때문에 중국화와 서양화 위주로 배웠고 그 외에도 조각, 서예, 판화, 도예 등 다양한 수업을 접해왔다. 미술에 대한 애정과 배움에 대한 갈증은 교환학생 기간 동안 나에게 정말 만족스러운 수확을 가져다 주었다. 교환 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이제 다시는 한국에서 공부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지만 그 만큼 나에게 학업은 어려웠고 버겁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년 후, 역설적으로 나는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유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더 웃긴 것은 여기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식겁 했던 한국 유학을 다시 하게 된 이유는…(또 그 흔한) '운명'에 귀결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한국 친구들은 종종 왜 내가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에 유학 했는지 물어본다. 그때 나는 영어를 잘 못해서 한국에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졸업 시기에 나한테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나  보고 졸업 후 연변에 돌아와서 박사 공부를 하라는 제안을 했고 나는 그 당시 딱히 거절 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7년동안 타지에서 대학을 다닌 나에게 연길은 이미 너무 멀고 생소한 곳이였다. 한 때 연길에 돌아가도 괜찮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오히려 나의 후배와 동생이 나보다 강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지키고자 했던 것을 나로부터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빠의 제안을 듣고 나는 조심스럽게 교환학생 때 수강해주신 한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내가 만약에 박사과정을 신청한다면 제자로 받아주실 의향이 있는 것인지. 교수님은 응원해주셨고, 나는 아빠의 동의를 얻으려고 이리저리 장학금 소식을 알아보며 아무도 모르게 자료를 열심히 준비했다. 정말 운명이 길을 내주 듯이 나는 유학생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왜 한국에 왔는지?"라는 질문에 이 기나긴 스토리를 매번 구구절절 설명할 수 없어서 나는 영어를 못해서 한국에 왔다는 아주 합리적인 이유로 답하곤 한다. 이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항상 거리낌없이 내가 장학금을 받고 왔다는 사실을 밝힌다. 나의 주면 사람들이 이미 듣기 싫어할 만큼 나는 떠들고 다녔던 것 같았다. 가끔 나는 이런 방식으로 나 자신을 비꼰다. 왜냐하면 난 여태까지 미술을 잘해왔지만 공부를 잘 해왔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공부에서 인정을 못받은 사람들이 뜻 밖에 성적이 좋거나 상을 받게 되면 그렇게 기뻐하던데…내가 딱 그 경우다. 나는 그림만 죽어라 그렸지만 그 경력으로 유학을 갈 수 있다는 이 사실이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 나의 초, 중, 고 친구들은 내가 한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할 것이다. 내가 공부를 잘 하게 된 계기는 대학교에서 미술전공을 택하고나서부터 였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내 인생에서 일어난 놀라운 기적들을 ‘운명’의 공으로 돌린다.

최근 나는 도리어 “내가 왜 한국에 오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술 한 바와 같은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정해준 이 길이 나에 대한 초시간적 의미에 대해 묻고자 하는 것이다. 숙명론 처럼 들리겠지만, 북경에서 대학을 다닐 때 해결하지 못했던 “정체성”에 관한 고뇌와 물음은 한국에 오면서 부터 서서히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은 듯 하다. 

그럼 다음편에서는 나의 한국 생활에 앞서 북경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기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생각들을 해 왔는지, 그 생각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의 삶에 영향을 주고 나의 작품에 반영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기나긴 대학(원) 시절이 곧 끝나갈 무렵 조금씩 기록해 놓아도 별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2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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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ean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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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술을 하는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는게 아니라, 학교에서 배우는 글 공부에 관심이 없는거죠. 하지만 예체능 학생들이 대부분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라고 평가를 받기는 하죠. 저는 공감합니다.ㅋㅋㅋㅋ

  2. 지금까지 글의 표지로 올리는 이미지들만 보아도 미술을 잘하시는 분같습니다. 내공이 보입니다. 심플하면서도 먼가 내포하고 있는 윤곽(?)과 추상적인것들, 본인만의 특색이 있네요. 작품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글도 올리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디자인 배경이랑. ㅋㅋ 아, 그리고 글도 참 조리있게, 읽기 쉽게 잘 쓰네요.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ㅋㅋ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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