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심근경색이 올거 같으니까. 

아이가 울먹거렸다.

성적이 중간 이하로 떨어졌다고 하길래 애 아빠랑 얘기 나누면서 고중 못가면 만두가게를 차려주자고 했더니 그걸 듣고 애가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하늘처럼 믿던 엄마마저 나를 이렇게 보는구나, 하는 절망감이였을가. 

내가 정말 고중에 진학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무력감이였을가. 

어떡하나, 엄마는 너의 고통을 헤아릴 여력이 없었는지 그만 이렇게 말해버렸네.

– 여직 네가 고중에 못갈거라는 생각을 안했어. 헌데 지금은 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 네가 고중에 갈지, 어느 고중에 갈지에 따라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살지 달라지니까, 미리 준비해둬야지 않겠어?

***

물론 좋은 학교에 갔으면 좋겠어. 그렇게 바라면서도 닥치는 현실은 받아들여야 하니 미리 준비라도 하자. 퇴로 없이 직진만 하기엔 그리 젊은 나이가 아니다.  

헌데 아이는 고중에 못붙을거라는 말도 하지 말고, 그런 내색도 내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고민에 빠졌다. 

‘네가 꼭 고중에 붙을거라 믿어의심치 않아!’라는 태도를 보이기엔 신심이 부족하고 ‘난 네가 고중을 가든 안가든 똑같이 사랑해’라고 하기엔 내공이 부족한데, 아이한테 스트레스를 덜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에 이런 글이 나온다.

“파이팅”이라고 상대방에게 외치는 사람은 마음이 홀가분할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상대방의 고통과 무거움은 더 가중될 것이다. “파이팅”이라는 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상대방의 고통과 무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어쩌면 당사자보다 더 고통스럽고 더 무거울 것이다. 바로 여기서 사랑의 놀라운 기적이 탄생한다. 아빠가 딸보다 더 속상해하면 그런 아빠 덕분에 딸은 가벼움을 얻는다. 아내보다 더 아파하는 남편 덕분에 아내는 편안함을 얻는다. 남편보다 더 힘들어하는 아내가 있기에 남편은 활기를 얻는다. 

생각해보라. 상대방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껴 우리가 무거워지면, 내가 무거워지는 모습에 상대방의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가. 

아빠가 테이블을 무겁게 드니 딸이 가벼워진 것이고, 남편이 테이블을 더 무겁게 드니 아내가 가벼워진 것이고, 아내가 테이블을 더 무겁게 드니 남편이 가벼워진 것이다. 이것은 묘한 피드백을 형성한다. 딸은 아빠의 고통이 보이고, 아내는 남편의 고통이 보이고, 남편은 아내의 고통이 보인다. 바로 아빠의, 아내의 고통을 잠시라도 완화하기 위해 딸이, 아내가, 그리고 남편이 외치는 것이다. “내가 더 힘낼게”

사랑하는 상대방의 고통을 완화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에서 고개 돌리지 않고, 말로 희석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확신을 갖고 버티자. 내가 휘청거릴 정도로 힘들다면, 상대방이 나에게 편히 기대고 있다고 믿자. 내가 엄청나게 힘들면, 상대방의 고통은 그만큼 완화되고 상대방의 무거움은 그만큼 가벼워진다고.

***

아이의 고중입시는 우리 가족이 함께 마주하고 견뎌야 할 일이였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는 도망치려 하고 있다. 입시에 떨어지는 경우를 대비해서 퇴로를 만들고 있다. 벌써, 그리고 시험의 압력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떠넘긴채. 

물론 공부가 아이의 몫임은 두말할 것 없다. 하지만 100% 아이의 몫이라면 입도 뻥긋 말아야지, 왜 애 신경을 건드리는 야유스런 말을 할가. 내게도 책임이 있음을 직감하니까, 그 책임을 털어버리려 애쓰는건 아닌지. 

그리고는 교활하게도 ‘어떤 태도를 보이는 것이 좋을지’로 문제를 바꾸어 고민하는 척 한다. 아이의 고통이 어른의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른이 보고도 못본척 하는데, 어른이 자신의 고통을 덜기에만 급급한데, 어떤 태도를 보이면 뭐해. 아이의 고통만 커질뿐.  

사랑은 상대방의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아끼는 것이라 했거늘, 가장 힘들어할게 분명한 당사자에게 그것도 어린애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퍼부어야 할 두 어른이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

아이를 키우는건 지뢰밭을 걷는것 같다고 했다. 언제 어디서 어느 지뢰가 터질지 모른다고. 부모경력 십여년이지만 사춘기는 또 처음인지라, 지뢰는 터질때마다 낯설고 수습하는 법은 번마다 새롭게 배워야 하는듯하다. 

어쨌든 아이를 지뢰밭에 두고서 풍선을 달아매고 살살 날면서 ‘지뢰 밟지 않도록 조심해’라고 입을 놀리려는 망상을 좀 해봤다. 

미안해. 고통에서 고개 돌리지 않고 말로 희석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낼거야. 공부가 네 몫이라고 해서 거기에 따르는 고통도 온전히 네 몫인건 아니니까. 너의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너를 아낄게. 내가 더 힘낼게. 

***

그러니 ‘고중에 꼭 붙을거야’ 라는 근거 없는 신심보다는 ‘같이 애써보자’, ‘고중에 못가면 만두가게 차리자’라는 김빠진 말로 자극하기보다는 정말 못가게 되면 그때 같이 슬퍼하는걸로.  

어쨌든, 당연하지만, 어른인 내가 더 힘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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