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가량 집에 같이 있어보니 아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듯하다.

잠을 늦게 자기는 하나, 며칠에 한번씩 매우 일찍 자거나 낮에 오래 졸면서 부족했던 수면을 보충한다. 매일 규칙적으로 일찍 자면 좋겠지만 아이의 몸은 하루가 아니라 여러날을 주기로 잠을 보장하는 것 같다.  

숙제의 량을 대충 짐작하고 더 미루면 안될 시점부터 숙제를 시작한다. 그 전에는 주로 게임을 하거나 채팅을 하거나 동영상을 본다. 짐작이 어긋나 매우 늦게까지 숙제를 할때도 있고, 마침 잠을 보충해야 하는 날이면 숙제를 하다가 잠들어버리기도 한다. 가끔 숙제를 늦게 시작했으나 잽싸게 해치우기도 하는데 이럴땐 으시대면서 실컷 놀았기때문에 공부가 잘되는거라 한다. 

가끔, 잠을 일찍 자자, 공부를 좀 하자는 식의 결심을 하는 것 같다. 일찍 자라는 잔소리에, 밤을 새면 졸사한다더라면서 자겠다고 한적도 있다. 조선말과 일본어를 배울 조건이 이리 좋은데 아깝지 않냐고 하니 좀 도리가 있는것 같다고 한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별똥별처럼 스쳐가고만다. 

정보를 아예 차단하거나 격하게 반응한다. 어른이 위챗으로 전달하는 문장이나 동영상은 열어보지 않는다. '일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식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비판은 자기랑 상관이 없다고 본다.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불만이나 비꼼이나 실망에는 필요 이상으로 흥분한다. 아마 호르몬의 작용인 듯하다.

***

20세기 초중반의 세대들은 전쟁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동란을 겪느라 먹고 살기 위해 애쓰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한 어른들 아래서 자란 70, 80후는 사랑이나 인정이 결핍하여 이를 동력 삼아 '열심히' 하려 하고 '열심히' 산다.

애도 열심히 키우는 70, 80후 아래서 자란 95후와 00후에게는 이제 결핍이 없다. 먹고 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고 사랑과 인정에 목마르지도 않다. 

80후 부모로서 늘 납득이 되지 않았다. 우리 애는 왜 욕심이 없어, 우리 애는 왜 열심히 안해, 우리 애는 왜 대수로바하지 않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대가 다르니까. 세대가 다르니까. 

어둠속에서 빛 한줄기만 보이면 그쪽을 향해 가야겠지만, 어둠이 사라졌다면 그냥 가고 싶은데로 가면 된다. 가고 싶은데가 어디인지를 알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거나 제대로 탐색하지 못한 과제일지도 모른다. 

애쓰지 않는듯 보이지만 아이는 탐색 중에 있다.

***

눈길을 내게 돌려 나 자신에게 중얼거린다:

이미 결핍은 사라졌으나 결핍'감'을 여전히 필요로 하지 않는지,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결핍을 찾아내려고 애쓰지는 않는지, 찾아내면 '그것 봐라, 우리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면서 결핍감을 더 든든히 다지고 패턴을 반복하지는 않는지. 

나는 인정 받으려고 뭐든 열심히 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어. 열심히 하지 않으면 불안해. 열심히 하지 않는건 틀렸다고 지적하고 싶어해. 

어쩌면 인정을 받으면서도 이를 거부하고 있을거야. 인정을 받지 못해야 열심히 하려는 동력이 생기고, 열심히 해야 인정 받을 가능성이 있단말이지.

애쓰지 않는 아이 모습에서 불안을 느끼지. 또한 노력하지 않는 아이 모습을 찾아헤매기도 해. 내 패턴이 이런 먹이를 먹어야 살거든.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수 있는가'. 강신주 철학자의 글이 떠오르네. 

상상의 절벽에서 손을 떼고 그 손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해. 결핍감을 놓아버려. 

열심히 하지 않아 사랑 받지 못하면 어떡해? 그거야 쉽지, 두려운 그 일이 생기도록 내버려둬. 별거 아닐거야. 

이제 탐색할거야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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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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