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10월은 유난히 빨리 지나갔다. 4주에서 3주는 독일과 태국에 있었는데 아쉽게도 다 회사 일 때문에 간 거라 짧은 주말 빼고는 내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닌 셈이다. 

뭔가 한것 없이 기가 빨린 느낌이 들던 11월, 홀로 조용한 곳에 휴가를 가고 싶다 생각할 때 마침 본사(독일) 같은 팀 사람들이 말했다.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2주 쯤 아무도 일을 안할 꺼니까 모든 업무를 12월 중순까지 마무리하자고.  

오, 그렇다면 몸은 상해에 있지만 리포팅 라인이 독일 쪽인 나도?! 

얼싸 좋다 하면서 맵을 켜고 어디가 조용하게 힐링하기 좋은 곳인지 급하게 스캔하기 시작했다. 동남아 쪽은 너무 덥고 사람이 많겠군, 일본은 비자도 없고, 러시아는 너무 춥고… 응? 러시아 서쪽에 관심을 별로 안 가졌던 곳이 있네? 

맵에서 LATVIA, ESTONIA 라는 나라를 찾아보세요.

중학교 때 지리를 배우면서 인상이 깊었던 "발찍해" 라는 이름. 정보를 검색하려면 한국식 "발트해" 혹은 영어 Baltic으로 찾는게 편하다. 요즘은 안타까운 러시아-우크라이나 형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우연히라도 눈에 익혔을 수도 있겠다 싶다. 

발트3국이라고 불리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이 세 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복속되었다가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될 때 독립했다. 2004년에 EU에 가입했으며, 현재 사용하는 화폐 역시 EUR이다. 

즉, 세 나라 다 자기만의 민족 문화/언어가 있지만 역사적으로 거의 항상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던, 그리고 최근 100여년에는 소련과 EU의 영향이 제대로 섞여진 신비한 여행지. 게다가 따로 비자를 만들거나 환전을 할 필요가 없다는 편리함까지. 

조용함을 찾으면서도 별 여행준비는 하고싶지 않고, 그렇다고 전혀 신비하지 않은 곳에는 가고 싶지 않던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출발 전 내가 한 일은 3가지: 

  1. 비행기/버스티켓 구매하기
    (나중에 안 일이지만 버스는 미리 구매할 필요가 없었다)
  2. 내가 있을 두 도시의 호텔 예약하기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호텔 수요가 엄청날수도 있으니까) 
  3. 대충이라도 안녕, 고마워요 등 그 나라 인사말 익히기
    (여행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까맣게 잊어버렸다)

28.12.2019 상해-모스크바-리가 / 04.01.2020 리가-모스크바-상해
휴가는 중국 팀 쪽에 내야 하는지라 어느 정도 눈치가 보이기에 그냥 일주일만 쓰기로 했다 (12월 28일부터 1월 4일까지). 결국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Liga,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Tallinn 이 두 곳만 들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티켓을 샀다. 

30.12.2019 리가-탈린 / 01.01.2020 탈린-리가

정리해 보면 12월 28일 저녁에 리가 Liga 공항 도착, 12월 30일 아침에 탈린 Tallinn으로 출발, 1월 1일 점심에 다시 리가 Liga로 출발, 그리고 1월 4일 새벽 비행기 탑승으로 여행 끝. 

발트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볼까?

1/3: 리가(Liga) 28/12/2019 – 29/12/2019 (현재 글)
2/3: 탈린(Tallinn) 30/12/2019 – 01/01/2020 (다음 글)
3/3: 리가(Liga) 01/01/2020 – 04/01/2020 (다다음 글)

1/3 리가(Liga) 28/12/2019 – 29/12/2019 

리가의 첫인상

한 도시의 첫인상 하면, 보통 착륙 후 비행기에서 나오면서부터 호텔까지 도착하는 그 길에서 받는 느낌인 것 같다. 

이코노미 석 제일 앞자리 + 짐이라고는 손에 들고 다니는 20인치 캐리어/백팩 뿐이라 비행기가 착륙하고 거의 제일 먼저 빠져나온 내가 본 풍경은: 

응? 이 공항의 크기와 조용함은… 연길공항?

긴 비행에 많이 피곤했었는지 사진은 남기지 않았지만 공항 크기가 상당히 작고 조용했던 것 같다. 이제 겨우 저녁 8시인데. 그래도 택시는 절대 안타겠다는 배짱으로 구글맵으로 버스노선을 찾았다. 

그때를 회상하며 다시 검색, 결과가 기억과 조금 다르다
오, 한시간도 안 되는 거리면 쉽네? 하고 버스역을 찾아 기다렸다. 내 기억에 내가 그때 탓던 버스는 대략 253 이런 세자리 숫자였는데 지금은 찾아지지 않는다. 

대충 결과만 말하자면, 난 버스를 한번 바꿔타고 조금 걸어서 정확히 호텔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약간 충격적이었다. 그 "대략 253"이었던 버스 때문에. 

잠깐 설명을 보탠다면, "라트비아 리가 버스 Latvia Liga Bus"라고 검색하면 이렇게 뜬다. 흔한 유럽의 버스? 정확하다. 나도 이렇게 예상을 했었고. 

하지만 "리가 미니버스 Riga Mikroautobuss"를 검색하면 이렇게 이상한 사진들이 뜬다, 크기가 작고 다양하고, 꽉 막힌데다 심지어 티켓 파는 사람이 있는 자리마저 없어보인다. 연길 90년대 버스보다 더 오래된 느낌.

그렇다, 나는 처음 와본 이국 타향 공항 구석의 어둠 속에서 첫 사진과 같은 버스를 기대했지만, 내 앞에는 두번째 사진의 버스보다 더 작고 낡은 이상한 “맴보차(面包车)”가 종이로 씌어진 번호판을 붙인 채로 나타났다. 그때 당황함을 무릅쓰고 사진이라도 찍었어야 했는데. 

쭈볏쭈볏 거리며 캐리어를 들고 올라탔다 (문은 앞쪽에 있어서 다행히 운전기사님과 대화가 가능했다). 동양인을, 그것도 이 늦은 저녁에 처음 보는지 다들 내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폰을 보여주면서 최대한 간단한 영어로 물었다: "저는 이 호텔로 가려고 합니다. 구글에서 이 버스를 타고 환승해라고 했는데 타도 되나요?" 

운전기사님과 근처 승객 한명이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리고 서로 대화한다. 그러더니 하는 얘기에서 내가 대략 들은 정보는: "이 버스는 그 환승역까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늦어서 다른 방법이 없을수도 있으니 xxx라는 다른 환승역에 가서 xxx버스를 타면 비슷할 거다." 

구글 맵이 동유럽에서 비즈니스가 잘 안되는 건가, 정보도 이렇게 틀리게 주고… 라고 생각하며 자리를 찾았다. 한 20분정도 불빛조차 별로 없는 밖을 쳐다보며 내가 지금 왜 이런 곳에 와서 80년대 체험하지?라고 생각하다가, 환승역에 도착했다. 

20분의 "80년대 체험"을 한 구역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버스다운 버스를 탔다. 큰 강에 가까워지면서 슬슬 도시스러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내일 낮에 돌아다닐만한 곳이 다 여기에 몰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맵 속에 빼곡히 들어있는 표기들은 내가 리가를 거닐면서 찍어둔 곳이다.) 

도착, 짐을 풀고 푹 자면 아침이겠군. 중국보다 7시간 늦은 겨울시차라 올빼미형 인간인 내가 자연스럽게 아침형인간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걱정하면서 잡은 호텔인데 의외로 깔끔하고 괜찮은 편이다.

두 발로 도시 한 바퀴

아마 아침 7시쯤까지 단잠을 잤던 것 같다 (중국시간으로는 오후 2시). 시차적응 따위는 전혀 필요없는 유럽행이라 기분 좋게 깬 뒤 꽃단장 하나 없이 문을 나섰다. 어차피 가지고 온 옷도 별로 없고 혼자 하는 여행이기에 내 사진을 남기지도 못할 것이니. 

호텔이 볼거리가 몰려있는 도시 중심과 2km 정도 떨어져 있기에 가는 길에 맛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TripAdvisor 평점으로 찾은 이 곳은… 정말 지극히 평범한 베이글 집이구나. 현지 물가로 푸짐한 햄버거세트를 먹을수 있는 가격으로 베이글에 라떼 하나 원샷하고 결심했다. 이번 여행에 다시 TripAdvisor를 여는 일은 없을 거라고. 

흔한 베이글을 굳이 동유럽에서 8유로나 주고 먹어야 하나…

계속 걷다 보니 희한한 풍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일단 10시도 안 된 시간이라 텅텅 빈 놀이공원이 인상이 깊었다. 

그런데 놀이공원에 동물들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동영상을 찍는데에만 30분 이상 집중했던 것 같다. 그 사이 사람들도 슬슬 많아지고. 

걷다 보니 National History Museum이라는 역사박물관에 도착했다. 왔던 바에 라트비아 역사공부를 할겸 돌아봤는데 그나마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는 내용은 역시 근대사 부분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도시 중심구역을 거닐면서 보내게 되었다. 

슬슬 건축물들이 근사해지는 걸 보아하니 도시 중심구역 맞다.
12월 유럽에서 무조건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 아직 낮이라 분위기가 미미하다.

열심히 걷기만 하다가 간판이 뭔가 분위기가 있어보여서 들어간 카페 / 칵테일 바는 조금 애매했다. 뭔가 아침의 실수를 반복한 느낌, 하지만 나 빼고는 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열성적으로 내가 모르는 언어로 토론을 하는 걸 보아해선 그래도 현지인들의 환영을 받는 곳인 것 같다. 쵸콜렛도 맛있다고 추천하기에 메뉴를 보다가 내 별자리를 골랐더니, 저런 평범한 쵸콜렛 볼이 나왔다, 1.5유로? 그래도 수제 쵸콜릿이라 맛있게 잘 먹었다. 

우연히 극장을 발견하고 연극스케줄을 보다가, 1월 3일의 호두까기 인형을 발견했다. 내일은 탈린에 갈거지만 1월 1일에 다시 여기로 올 것이니 이건 무조건 봐야지. 

그리고 사진에는 안 찍혔지만 "특급정보"도 알아냈다, "라트비아 신년음악회 New Year's Eve Concert" 가 오늘 저녁에도 있다는 사실. 좌석 티켓은 다 팔렸지만 서서 보는 티켓은 있으니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가서 사면 된단다. 

라트비아에도 신년음악회가 있다 

북유럽과 가까운 라트비아의 겨울은 해가 아주 짧다. 

오후 4시가 되면 해가 저물기에 겨우 5시가 넘어서 찍은 사진부터는 이런 느낌이 난다. 

그리고 오후에 얻은 정보 덕분에 신년음악회를 보러 온 여기는 Latvian National Opera. 

"신년음악회"라는 단어를 들으면 난 2가지 생각을 한다. 

하나는 여러가지 장르가 섞인 프로그램을 온 가족이 TV에 모여앉아 즐기는 분위기 (연변TV에서 보던 설 문예야회, 중국 춘절만회(春节晚会), 직접 본 적은 없는 한국 새해 음악회 등). 

다른 하나는 클래식 연주, 샹송 등 프로그램을 극장에 가서 감상하는 분위기 (티켓 사기가 거의 불가능한 오스트리아 새해 콘서트 등). 

클래식함이 뿜겨나오는 이 오페라장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마 두번째 시나리오일 것 같다. 

온종일 라트비아를 거닐면서 많은 사람들이 옷을 캐주얼하게 입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티켓을 사고 들어가니까 역시나 다들 정장을 깔끔하게 입고 커피를 즐기면서 여유롭게 대기중이었다. 나도 이런 곳에서 small talk를 해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결정된 스케줄이라 꼴이 좀 꾀죄죄하다. 

콘서트 홀에 들어가 보니 인테리어가 놀랍다. 크기는 예상보다 많이 작았지만 오히려 덕분에 제일 뒷줄에 서서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생판 모르는 언어라 대체 뭐라고 하는 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무대가 너무 화려하고 음악회 임팩트가 강해서 눈과 귀가 즐거웠다.  

이렇게 화려한 2시간 짜리 신년음악회가 단돈 10유로!
음악회가 끝나고 보슬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하여 20분쯤 걸었다. 24시간 전에 겪은 리가 첫인상: "80년대 경험"은 온데간데 없고, 딱 알맞춤하게 현대적이면서도 문화적 기운이 넘치는 분위기만 느껴졌다. 내일 도착할 에스토니아 탈린도 이런 분위기일지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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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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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스트리아 친구가 예약이 2-3년 걸리는듯한 뉘앙스로 말해서 저는 아예 시도도 안했답니다 ㅋㅋㅋ 그나저나 제가 예전에 빈이랑 잘츠부르그 들렸을때 왜 음악회를 가볼 생각을 못했던지… 뒤늦게 아쉽네요 ㅠㅠ

  1. 사진으로 보는 여행기, 거기다가 친절한게 구글맵 pin까지. 도착하고 나서 어떻게 뻐스를 환승하면서 호켈까지 갔는지, 베이글은 어떻게 먹었는지, 도시구경은 어떻게 하였는지, 신년음악회를 보는 광경은 어떠했는지, 올려주신 대량의 사진들때문에 진짜 身临其境하는듯한 느낌이 있네요. 굿굿. 그래서 함께 간 누군가와 small talk는 했나요? 아니면 나홀로 여행인가요? 다 지나간거지만 혼자 하기엔 처음으로 도착한 곳에서 안전하게 보냈는지… 안전상황이 어떠했는지 근심도 되면서 궁금하네요. ㅋㅋ

    1. 감사합니다! 애플폰을 쓰다보니 사진 정보에 위치가 저장되어있어서 정말 편하게 찾아볼수도 공유할수도 있더라고요 😀 제 사진 한장조차 남기지 못한 나홀로 여행 맞습니다ㅋㅋㅋ 그리고 안전문제는 제가 아마 담이 좀 컸던 것 같습니다, 유럽 쪽은 대부분 혼자 다녔기에 그때엔 위험하다고 생각을 안 했던것 같아요 하하.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점차 “와 얘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하는 생각이 들만한 에피소드들이 보일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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