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높은 건물이 있는, 밤이 되면 그 건물에서 산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에 주위가 밝아지는 그런 도시를 좋아한다.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상해에 가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은 상해가 외국의 그 어떤 도시보다도 깨끗하고 좋다고 했다. 거기에 가면 외국 부럽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상해에 가기로 한 건 아니었다. 탑을 보기 위해 가기로 했다. 나는 탑을 좋아했지만, 북경에서는 그렇다 할 탑을 볼 수 없었다. 나의 꿈은 에펠탑을 내 눈에 담고, 내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청도에서 시작됐다.

청도는 바다를 보기 위해 갔다. 시내에 잡은 숙소 덕에 바다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밤에는 밤바다를 보고 낮에는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와인 박물관에 갔다. 맥주박물관과는 판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지나치게 어둡고 습했다. 관람 코스를 다 돌고 나서 주는 공짜 와인 두 잔을 마셨다. 맥주 박물관 코스 끝에 주는 맥주를 너무 맛있게 마셨던 기억이 있는지라 기대했는데, 레드 와인은 잘 마시지 않는 터라 큰 감흥은 없었다.

청도의 여름은 덥다. 더위를 피하고자 쇼핑몰로 갔다. 누구나 여행을 가면 빼먹지 않고 하는 루틴이 있을 것이다. 나는 야경을 보고, 그 도시에 있는 좋은 백화점을 둘러보고, 박물관에 가고,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는 것을 꼭 해야 한다. 내 여행루틴에 언제부터 백화점 가기가 포함되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으나, 새로운 도시에 가게 되면 그 도시의 백화점을 꼭 들러본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도시마다 백화점 분위기도 다르다. 서울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다가 북경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백화점 내부가 어두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청도 시내 중심에는 큰 백화점이 있었다. 그 백화점에 있는 배스킨 라빈스에서 인생 첫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치약 맛이었다. 지금이야 민트초코가 유행이라 어디에 가나 민트초코를 베이스로 한 음료들이 많이 있지만, 그때는 너무나 생소한 맛이었다. 지금도 생소한 맛이긴 하다. 여름날의 백화점은 시원하다. 깔끔하고, 사람 구경도 마음껏 할 수 있다. 그 백화점에는 이쁘게 잘 꾸며놓은 서점까지 있었다. 북경에서는 잘하지 못했던 서점 구경을 하고 밥까지 먹고 백화점에서 나왔다. 해가 져 있었다.

택시를 잡아, 밤바다 구경을 갔다. 낮에 바다는 본 적이 있어도 밤바다는 처음이었다. 주변이 어두워 건물에서 산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빌어야 어슴푸레하게 바다의 물결이 보였다. 밤바다는 검은색이다. 파도가 밀려왔고, 파도 소리는 컸다. 걸음걸음이 저항 없이 깊숙이 들어가는 모래사장 탓에 걷기가 힘들었다. 걷다가 서서 파도 소리를 듣고, 다시 걷고, 걷다가 주변의 건물을 보고, 카메라에 담고, 다시 걷고, 그러다 숙소에 도착했다.

청도에서 상해까지 고속철도로 6시간정도 걸렸다.

8월의 상해는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그래도 햇빛이 살에 닿는 느낌이 싫어 긴 팔 긴 바지를 입고 다녔다. 쪄 죽지는 않았다. 우리가 잡은 숙소는 습했다. 복층으로 된 자그마한 주택이었는데, 2층에 침대가 있었다. 습도가 높아 밤이면 2층 침대에서 자다 코가 막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자다 깨면 1층으로 내려와 소파에서 잤다. 그래도 좋았다. 집은 잘 꾸며져 있었고 1층에 있는 빔프로젝터로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일정을 끝내고 저녁에 돌아오면 <응답하라 1997>을 봤다. 그 숙소에서 5일을 머물렀다. 모르고 잡았는데 위치도 좋았다. 근처에 유명 관광지가 있었고 큰 쇼핑몰도 있었다. 여행 내내 끼니의 대부분을 그 쇼핑몰에서 해결했다. 

북경에서 2년 동안 지냈는데, 또 다른 대도시인 상해의 모든 것이 새로웠고 신기했다. 편의점이 세븐일레븐이 아니라 패밀리마트만 많은 것도 신기했다. 어릴 때 가 본 서울에는 편의점이 거의 세븐일레븐과 패밀리 마트였다. 시간이 지나 패밀리 마트는 CU로 바뀌었고, 지금은 서울의 어디를 가도 패밀리 마트는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상해에 있는 패밀리 마트가 신기했다. 가끔 배고프면 거기서 包子를 사 먹었다. 

나는 빡빡하게 하는 여행을 선호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눈이 떠지면 일어나 준비하고 나가는 여유로운 여행을 추구하는 편이다. 낯선 곳에서 내 생각대로 되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여행은 흘러가는 대로 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이런 여행의 단점이라 하면 생각보다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도 이것대로 좋다.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까. 설마 살면서 상해에 한 번만 오겠냐는 마인드로 여행하면 편하다. 

근처 쇼핑몰 안에 있는 초밥집에서 초밥을 먹고 동방명주 쪽으로 향했다. 그날의 계획은 높은 곳에 올라가 상해의 야경을 보는 것이었다. 동방명주에 올라가서 야경을 보면 동방명주는 볼 수 없기에 다른 건물의 전망대에 올라가 야경을 봤다. 학생증으로 할인받고, 줄을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쾌적했다. 귀가 꽤 먹먹해질 때쯤 엘리베이터는 전망대가 있는 층에 도착했다. 밤이었고 높았다. 동방명주가 선명히 보였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건물만 선명히 보인다. 밤이면 건물에 불이 켜져 더욱 선명히 보인다. 건물에서 산발적으로 나오는 빛에 주위가 밝아 보였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건물만 보였다. 밖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잠식해 버릴 듯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건물이, 그 빛에서 나오는 형언 못 할 화려함에, 내가 도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야경을 보고 나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평소에는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낯선 곳에서 하는 산책은 재미있다. 내가 살던 곳하고는 다른 풍경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길에 다니는 택시, 걸어 다니는 사람, 하물며 그냥 있는 나무마저 달라 보였다. 걸어 다니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다음 날, 퍼센트 아라비카 커피를 마시러 갔다. 일본에서 시작된 커피 브랜드인데, 상해에도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아이스라떼와 스패니쉬 라떼를 주문했다. 스패니쉬 라떼에는 단맛이 있었다. 아이스 라떼는 밍밍했다. 밍밍한 라떼에서는 물맛이 났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그다지 훌륭한 맛도 아니었다. 여행 내내 가고 싶었던 카페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의외로 숙소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별생각 없이 마셨던 카페모카가 제일 맛있었다. 기대가 없어서 그런가, 어쩌면 맛은 정말 기대와 반비례하는지도 모른다.

퍼센트 아라비카가 와이탄 근처에 있는지 몰랐는데, 정류장에서 카페로 걸어가는 길에 동방명주가 보였다. 낮의 동방명주는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눈앞에 보이니 행복했다. 계획된 스케줄 사이사이에 불현듯 찾아오는 의외의 순간이 여행에 재미를 더한다.

상해에 나흘 동안 머물렀고, 서술한 것외에도 더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2018년 상해, 2019년 방콕을 끝으로 3년 동안 여행을 가지 않았다. 코로나 탓도 있었지만, 코로나 탓만은 아니었다. 시간의 여유가 없었고, 시간이 널널하면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다. 시간도 있고, 돈도 있을 때는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다 얄팍하고 변덕스러운 내 마음탓이었다. 그럼에도 굳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4년 전 여행을 글로 써본 것은 무뎌진 어떠한 감각을 찾기 위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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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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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행글 잘 읽었습니다 🙂 북경 살다가 겨우 3년 전에 상해로 이사 온 입장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엄청 많네요, 북경에 그렇게 흔하던 세븐일레븐 대신 패밀리마트만 보이는 게 신기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패밀리마트 열성회원이 되어버렸습니다. 편하게 잘 읽혀지는 여행글이라 다음 글도 기대되는데 혹시 방콕 여행글도 준비 중인가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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