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여렸을적 부터 나는 성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 '여자답게' 자라왔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얌전)하고, 말을 잘 듣고, 양보할 줄 알고, 다소 어른스러우면서 내성적이고 소심했다.
나는 여자가 갖추어야 할 소위 '미덕'을 모범적으로 실행하였고, 그 덕에 초등(소)학교 때 남자애들의 짓궂은 괴롭힘마저 수용해버렸다. 왜냐하면 내가 체득했전 여자로서의 '교양'에는 유일하게 자기방어기제 또는 정당한 자기변호를 통해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교육이 결핍 되었기 때문이다.
<白兔, 你怎么了?>
소파에 앉은 여성은 나의 동생이다.
이 날 나는 동생의 머리를 잘라 주었다.
동생은 맘에 들지 않았는지 불만이 가득한 채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그림에 옮겼다.
이 쯤에서 현대 심리학, 정신분석학, 인류학을 공부를 해오신 분들은 아마도 나의 이러한 성장 경험에 대해 결코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여성만의 문제 또는 조선족 여성 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여성, 아시아 여성, 세계 여성들이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남성이 항상 사회적으로 자기방어와 자기변호를 잘 해낸다는 것은 아니다. 남녀 불문하고 '자기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너무나도 많다. 다만 남자들은 '남성'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자기주장을 펼치는 데에 조금 더 수월한 사회적 환경에 놓여 있는 것 처럼 보일 뿐인 것이다.
<행복>
이것은 나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태몽에서 집붕위에 온순한 청색 뱀을 보았다고 말해주셨다.
그것이 이 그림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그려내보았다.
이 그림들을 그렸을 때 나는 시문 드 보부아르의 <제2성>과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열독하던 참이였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해 무척이나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제서야 자기 주장과 반항, 싫은 것에 대해한 거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열변, 나의 생각을 교묘하게 치환하려고 드는 남자 친구들에 대한 통열한 비판을 쏟아 부을 수 있었다.
<홍>
꿈인지 백일몽인지 이러한 이미지가 나의 눈 앞에 나타났다.
검정색 틀 속에서 터진 붉은 색.
나는 곧 바로 이 이미지를 화폭에 옮겼다.
현재까지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가부장적인 통념은 남녀, 민족, 국가를 불문하고 어디에서든 찾아 볼 수 있다. 내가 여기서 가리키는 '가부장적인 것'은 남자/여자의 구분으로서의 가부장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성별 구분으로서의 '여자'를 위해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오히려 나는 가부장적인 사회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소위 '여자'로 자칭하는 사람들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다.(여기에 당연히 나 자신도 포함한다.)
이 그림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림이라 이름도 없다.
실제로 여자는 가부장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름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특히 '어머니'와 '시어머니'라는 명분은 가부장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공로가 매우 크다. 그것이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페미니즘이 물거품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왜냐하면 동아시아권에서 가부장제를 동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면책'의 특권을 향유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여자의 신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숙고로 나는 여자와 남자를 개념적으로 구분하는 보편적인 인식에 대해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美人鱼>
이 그림은 내가 2012년 처음으로 창작이라는 것을 시도 했던 작업이다.
모든 속박에서 벗어 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렸던 것 같다.
학부 졸업 창작 시기에 이 작품의 이름을 짓는 것이 어려워 지도 교수님 한테 도움을 청했더니
"就叫美人鱼吧!" 라고 말해주셨다.
그렇게 이 그림의 제목은 <인어공주>가 되었다.
나는 가부장적인 모든 것이 너무 싫었지만 그것과 똑같이 싫었던 것이 바로 가부장적인 것의 피해자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이를 동조하는 자세들이였다.
자기 반성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0세기 서구에서 일궈냈던 페미니즘 운동 또한 여러 극단적인 함정을 면치 못하고 남성중심적 사회와 마찬가지의 오류들을 번복해왔다. 나는 페미니즘(女权主义)를 무턱대고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인간의 평등을 갈망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평등의 명의'가 아닌 '평등을 진정으로 이루기 위해' 우리가 더욱 더 깊은 숙고에서 출발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再别康桥>
작품과 제목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실연의 고통속에서 그렸던 그림?? ㅎㅎㅎ
화폭은 아주 크다.
두 그림이 합치면 가로 3m 세로 2m 가 된다.
남, 녀라는 이분법적인 틀 속에서 페미니즘을 사유하거나, 남녀 대립을 강조하거나, 역사로부터 여성이 받은 불평과 상처를 호소하는 것은 아무리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자칫 잘못하면 문제 해결에 앞서 남녀 사이의 간극만 깊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에는 평등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 아닌 남자와 여자의 우열을 경쟁하는 싸움으로 번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서 시작된 페미니즘 운동이 가져온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여성 권리의 회복에 관한 폭넓은 성과들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조금 슬펐다. 자신의 권리를 결정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방식이 결국 투쟁의 길 밖에 없다는 현실을 보며.
<행복>
요것도 나의 자화상이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땅 속 깊은 곳에서 안전감을 만끽하는 나의 모습이랄까?
이 그림도 높이가 한 2.5m 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생각한다. 왜 서구에서 80년대에 이미 흥행한 남녀 평등 관념이 아시아권에서는 이토록 어렵게 전개되는지? 처음에는 아시아 남자들의 완고한 가부장적인 관념에 그 이유를 귀결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시아 남자들에게 '남성성'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남자들 자신 뿐만 아니라 여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속 바램(남자는 남자 답게, 여자는 여자 답게)과 현실을 대조 해 볼 때, 여성도 남성 못지 않은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어느 남편의 아내' 또는 '어느 아들의 어머니'는 간혹 남자들 보다 가부장제를 더욱 옹호하거나 지켜내고자 한다.
결국 평등을 파괴하는 것은 성별이 아니라 서열인 것이다.
이 그림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앞에 '서열'에 관해 다루고 있는데,
나는 서열의 꼭대기에 자리잡고자 하는 여자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던 것 같다.
대학교에서 나는 나의 정체성에 관해 사유하는 과정에서 " '여성스러움'은 나에게 입혀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생 사진을 참고해서 그린 그림이다.
색과 형태에만 집중해서 딱히 숨겨진 의미는 없다.
만약에 그렇다면 나를 '여자'로 정의하고 있는 것은 신체적인 차이 말고 또 무엇이 더 있을까?
이 그림도 마찬가지로 동생 뒷모습을 그리다가 결국 회화 형식에 더욱 집중하게 되어 나 자신도 무엇을 그렸는지 모르는 그림이다.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여자로부터 제거한다면 '여자 신분'에 입혀진 부가적인 요구들도 함께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요 그림은 위의 붉은 색 배경 그림과 같은 사진을 참고해서 그린 그림이다.
이처럼 같은 사진을 참고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그림이 나올 수 있다.
나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한때 머리를 잛게 깎고 의도적으로 남성스럽게 행동해보았다. 남자애들의 반응이 참으로 궁금했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대다수 남자애들은 '변장'한 나를 여자가 아닌 그냥 한 인간으로 대하고 있었다. 더욱 신기했던 것은 이러한 '변장'은 여자들한테도 묘하게 인기가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여자들만의 특수한 신경전에서 배제된 듯 하였다.
요건 더 오래전 그림이다.
그 당시 소수민족 '요족' 마을을 배경으로 그렸던 것 같다.
유치하지만 나의 잛은 머리 시절을 증명하려고 이 그림을 올렸다.
이 글은 어쩌면 여성, 남성 모두에게 불편한 글이 될 수가 있다.
혹은… 이 글은 남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될 수도 있겠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남성이 여성보다 생존하기에 훨씬 쉬운 환경인것 같습니다. 특히 학교를 벗어나서 경쟁을 해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죠. 취직을 할 때 도 남성이 훨씬 유리하고, 승진을 할때도 남성이 훨씬 유리하죠. 그리고 가정을 단위로 묶어서 싸워야할때 여성은 어쩔 수 없이 내조를 선택해야할때. 한나 아렌트 책중에 에서 피해를 당한 유대인들에게도 죄가 있다고 주장했었는데,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여성이 그것을 동조하고 있다면, 마땅히 책임이 있죠.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아직은 어렵게 전개 되고 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사람들이 아직 그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 못해서 이지 않을까요.
네 제가 너무 널뛰게 작성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짚어 볼 부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현재 사회에서 여성들이 점차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곳에서 여성의 대우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기존의 페미니즘 담론의 입지가 가사 노동, 경제적 이익 창출 등과 같은 실제적인 차원에서 보다 많은 성과를 이루기도 했지만 제가 초점을 둔 부분은 xh 님께서 짐작하신 한 바와 같이 “아직 그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 못한”것이 아닐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더욱 궁금했던 것은 왜 사람들(특히 아시아 여성들)은 그 필요성에 대해 잘 느끼지 못했을까? 그러한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기존의 사회적 구조가 여성들에게 큰 불편을 주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하게끔 교육 받은 것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전자(불편함을 느끼지 못함)에 대해서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 것이고, 후자(불편함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조성된 사회적 구조)에 대해서는 여자, 남자 모두의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여성이 피해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불평에 대해 호소할 때, 대다수 ‘남성’은 이러한 상황을 혜아려 주기 보다 기피하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에 대해 관찰한 결과로는 ‘여성’이 피해자의 위치에 자처하는 동시에 가해자는 자동으로 ‘남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가해자가 ‘누구’인지는 더욱더 심사 숙고해서 풀어나아 가야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저는 이러한 접근법으로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렇다면 여자로서의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나를 둘러싼 불편한 환경에서 더 나은 해결 방법을 고안해 낼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수도 없이 하는 과정에서 다시 자기자신을 돌아볼 수 밖에 없더라구요…
저는 아내(남편)로서 내조, 남편(아내)으로서의 책임이 한 가정에서 조화롭게 이루어진다면 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다만 이 조화가 무너지면서 다시 균형을 잡지 못하고 남, 녀가 대립되어 서로 증오하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와 문제의 본질에 대해 더욱 더 묻고 싶었습니다.
헐…. 댓글로 또하나의 글을 썼네요. 이렇게 긴 댓글은 또 처음이라 ㅋㅋ 댓글까지 잘 읽었습니다. 서구 사회에서 예전부터 남녀평등 운동이 일어나고 했지만 지금도 서방사회 여기저기서 가끔씩 누군가가 외치고 있는걸 보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코멘트는 여기까지.. 워낙 깊고 깊은 문제라서…. ㅋㅋ
근데 글에 있는 이미지들은 글과 연관이 있는것들인가요 아니면? 너무 좋아서 그럼다. 따로 하나씩 꺼내어 작품 설명과 의도를 짤막하게 소개하여도 완전 좋을거 같아서. 저같은 문외한도 그림감상을 할수 있게, 공부할수 있는 계기도 되고 ㅋㅋ
실은 이 글 전체가 작품 설명임다. 글의 흐름 따라서 작품을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슴다. 이 작품들은 딱히 어떤 거창한 의미를 염두해 두고 그렸다기 보다 순간 순간 즉흥적으로 그렸던 것이기 때문에 저도 소개할 이야기가 거이 없어서 그냥 그 당시에 어떤 사유를 했고 이런 사유로 인해 이런 그림이 나왔다는 방식으로 작성했슴다 ㅎㅎ 뭐 작품의미가 아니라 재밌는 한줄 소개는 추가해드리겠슴다.
잘 읽고 잘 보았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
다음편도 기대되지만, 너무 반성만 하다보면 언젠가 풀이죽고 기죽지 않을까, 한쪽으로 걱정되기도 함다. 아티스트들은 원래 자신만의 정신세계가 있다고 하지만. (다행히 글들에 긍정적이 부분들이 더 많아서 좋슴다.) ㅋㅋ 마지막엔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더 강해지기 위한 반성이길, ㅋㅋㅋㅋ 응원합니다.
걱정 마세요ㅋㅋㅋ 독일 사람들이 반성을 엄청나게 하지만 풀이죽거나 기죽는 경우가 거이 없지요. 오히려 참된 반성으로 더욱 더 강인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거죠 ㅎㅎ 여기서 자기자신에 대한 반성은 내가 죄인이요, 모든 죄를 내가 뒤집어 쓴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문제에 대해 거리를 두고 성찰하는 태도에 더욱 가까운 것으로 봐주시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