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든 나그네

세월이 차려준 

둥그런 생일상

이마살에 둘러쓴

녹쓸엇던 나이테

케익을 품에 안고

넙죽 엎드렷다

한숨으로 꺼버린 촛불

단꺼번에 꺼진 청춘

나이살 말아먹은

한사발의 미역국

소금을 푼히 둔 모양

간은 짭조름하네

 

어느날 불현듯 

타향살이 나그네

개떡같은 불혹

게걸스레 뜯어먹고

아니나 다르랴 과연 

속이 언치고야 말앗으니

마음의 병을 보러

시퍼런 대낮부터

발길을 조심스레

술집으로 옮긴다

병 진단은 이미 

메뉴판에 내려졋다

급성 정신결벽 종합증

어휴~ 청천벽력! 

이런 생뚱같은 제길할

생전 처음듣는 병명.. 

이건 도대체 

무순 뚱딴지같은 병이요? 

그러니깐 그게… 

외로움? 그리움? 서러움? 

그런게 아니라

비관적이랄가 

피동적이랄가

부정적이랄가

좌관 그러루한 울컥한 감정이 

뒤죽박죽 묘하게 엉켜…

이러쿵 저러쿵… 

대표증상이라면

불면증을 동반한 무기력함

사춘기후유증? 

갱년기증후군? 

때되여 더럽게 찾아오는 불청객

미국이름하여 스럼프

얄미운 암세포 한마리

오장륙부를 간지럽힌다

헛소리 그만하고 제발 입 잠구오

불치병이 아니면 일없소

불치의 병이라뇨? 

당연히 아닙니다

그럼 다행이오

특효약같은건 없소? 

백신은…

아직 안나왓고요 

특효약은… 

목전 없습니다

오로지 기다림… 

기다려줘야 합니다 

시간으로 때워야 하는 병입니다

인생은 어차피

타이밍이 아니고 뭠니까

혼자 똑똑한척 그만 좀 하이소

술맛 다 떨어지오

타이밍이고 나발이고 간에 

안주없는 깡술이 

나는 최고요

이름모를 병이라고 하니

차라리 병들고 

주둥이로 병나발이나 불겟소

병나발 힘드시지 않나요? 

단모금에 그 독한 술을… 

술은 이렇게 먹어줘야

직성이 쭉 풀린다니까

그나저나 역시

낮술이 피는구만

병살바닥에 남은 술

빈잔에 싹다 털어붓소

막잔을 털고 

슬슬 일어나야겟소

술을 할 기분이 

오늘은 영 아이요

박수를 칠때 

떠나셔야죠

박수 타이밍이 

아직 아닙니다

그러고보니

인생도 타이밍이구만

결국 시간상 문제로구만… 

시간이 곧 답이죠

세월이 곧 약입니다

갈라터진 상처가 서서히

몸속에 슴배어 들어갈때

아픔도 병도 아마

씻은듯 가셔질겁니다

병속의 술을 다 털어줘야

빈병이 치워지지 않고 뭡니까 

그건 옳은 소리인데

그게 어디 맨정신으로 쉬운 일이오? 

피에 젖은 상처가 

딱딱하게 말라붙으면

뜨거운 용암이 바위로 굳듯

울퉁불퉁한 침묵의 산이 

방패마냥 생길겁니다

두꺼비처럼 보기흉한

무뚝뚝한 뚜껑들

곧 보호막이니 

그만큼한 부적이 없습니다

방토라 생각하시고

다만 딱지를 뜯어선 

큰일이 납니다

불끈 치솟으면 

분노의 산이 되는 법

움푹 패어들면 

슬픔의 바다가 되는 법

저기저 푸르른 초원 

상서로운 벌판

사실 그게 바램이엿고 

그야말로 소원이엿소

암튼… 

한동안 껍데기를 떼면 아니되니

설령 간지럽더라도 꾹 참아주세요

워낙 간지러운걸 못견디는 

팩한 성미요

천상 밸이 직통이라서… 

보호막을 뜨끔하게 뜯어내면

눈에 거슬리는 분노의 산은 

비록 잠깐 낮아지겟지요

하지만…

흉터가 패인 곳에선 또다시

슬픔의 바다가 흘러 고일겁니다

선생은 나중에 아마 

그걸 또 후회하실겁니다

댓소.. 

자네 잘난척을 고마하오

술맛이 언녕 떨어젯소

어이~복무원이~

빈병들 얼른 치워주오

결산이나 데꺽 합시다 

아참! 맞다! 

어려운 부탁하나 잇는데

들어줄수 잇겟소? 

네 고객님… 

말씀해 주세요~

영수증은 혹시

약방의 것으로 떼여줄수는 잇겟소? 

그게 만약 가능하다면

영수증의 타이틀엔

《시간》이라 대충 적어주고

그 내역에다는

《약주》라고 명백히 적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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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朴文寿)

고향의 봄이 그리운 타향살이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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