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글을 쓰지 못하는 자, 옛날글만 퍼나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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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언니가 선물해준 패션 관련 책이 한권 있었습니다. 포토그래퍼가 옷 잘입는 여자들의 옷장을 찍고 인터뷰를 하고 그녀들이 자신들의 시그니쳐 스타일 또는 아끼는 옷장속 아이템을 소개하면서 옷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젝트입니다. 

거기서 얻은 아이디어로 [작은 나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달아  “소장도서를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나름 시작해본적이 있습니다. 읽은 책, 읽고 있는 책, 읽을 책을 포함해서요. 결론은 저 포함 모두 4번의 원고밖에 포스팅하지 못하였지만 저로서는 애착을 가지고 시작했던 일입니다.  

 1  읽은 책

1. 万水千山走遍 / 三毛

잊을만하면 사람들이 한번씩 추억하는 대만작가 三毛, 나는 그녀를 어찌하여 알게 되었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기는 본격적으로 “어른책”을 당당하게 사들이고 읽기 시작한 중학교 즈음으로 추정한다. 아마 바깥세상을 향한 나의 열망을 그녀가 어느정도 해소해주고 또한 부추기기도 했던것 같다. 

三毛의 이야기는 주로 자전적기행문이 많다. 스페인 영의 사하라지역부터 유럽 그리고 중남미에 이르기까지 그녀 특유의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친화력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유별난 사춘기와 극적인 경험들, 아름답고 슬픈 사랑. 그녀는 비관주의자 같았다가도 아이처럼 낙천적이고, 그녀를 밝게 보기 시작하면 또 글의 어느구석에 어깃장을 놓았다. 물론 사람마다 보는 三毛는 다르다.

그녀의 책을 한권 읽고나면 마침표는 없다. 용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해적판인줄도 모르고 손바닥보다 조금 큰 책을 몇권 샀다가 신화서점에 이 아름다운 시리즈가 나온것을 보았다. 한권씩 사들였고 사들이는 족족 읽었다. 내가 이 책을 모으는걸 아는 친구는 생일에 두권을 사주기도 했고 아직도 나의 책장에 꽂혀있다. 아쉽지만 그때 채 못모았다.  20년 사이에 많은 책을 처분했지만 이 책들만은 늘 처분모면 1위였다. 

여러권 있는 시리즈 중에 이 책을 고른 것은 책 제목 때문이다. 万水千山走遍-여행을 빼면 그녀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그 남자네 집 / 박완서

내가 읽은 첫 박완서 선생님 소설일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다닐때,한국에서 우리 회사에 파견근무 온 어떤 기술자분이 출장 때 읽으려고 들고 왔다가 나에게 주고 가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완서 작가의 책은 읽은게 없었고 이름만 들어봤을 뿐이었다. 

이 책은 작가가 노년에 쓴 첫사랑에 대한 자전적 소설이다. 결혼을 한 주인공은 무료한 일상속에서 첫사랑과의 일탈을 꿈꾼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뒤 그녀를 허탈하게 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가 꿈꾼 사랑은 그저 환각에 불과했던것일까. 그 모든 것이 벌레때문이었단 말인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던 당시에 나는 “아마도 허구일꺼야”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주인공의 고백은 솔직했고, 그 시대에 이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들게 할만큼 당돌했다. 

세상을 몰랐던 스물다섯의 내가 이 책을 어디까지 이해했었던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뒤에 읽은 박완서 작가의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에서 나는 “그 남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발견했고, 그 두사람은 꽤 닮아있었다. 그리고 후에 든 생각이지만, “그 남자네 집”에 나온 작가의 고백은 상상속에서는 진심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산이”에서 작가는, 늘 정신없고 정열적이고 늘 재미있는 뭔가를 해야할 것만 같은 그 남자와의 연애에 어느 순간 지쳤고, 조용하지만 한결같은 다른 남자인 남편과의 결혼을 택했다고 말한다. 

스물다섯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박완서 작가는 대표적인 6.25작가다. 중국에 문화혁명작가가 있다면, 한국에는 6.25작가들이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도 얼마 다니지도 못하고, 난리통에 가족을 잃고, 이념이 손바닥 뒤집히듯 바뀌던 그 어이없는 시대에 살았던 피우지 못한 청춘에 대한 아픔은, 작가라는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 후에도 봉합이 되지 않아 늘 달래야 하는 기억이었고 그 시대를 목격한 작가에게는 기록해야 하는 숙제였다. 감히 박완서 작가에 대해 안다고 말하기 두렵지만, 이야기를 잘 하는 그분의 스토리텔링이 나는 참 좋다.

박완서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 분에게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추천한다. 북에서 태어난 작가의 유년기와 교육열이 남다른 어머니덕분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소년기와 일제강점기 당시 갈등하던 보통의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생생하여 들면 여간해선 놓기가 어렵다.

3. 여행의 기술 / 알랭 드 보통

알랭드보통은 “우리는 사랑일까” 등 “사랑”관련한 책으로 잘 알려졌지만, 나는 그 책들은 읽지 못했고 이 책을 구입하던 당시에도 이 작가가 유명한 줄은 몰랐다. 그저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원래 표지가 이렇게 생기지는 않았다. 그저 덧붙인 겉장이 거치장스러워서 떼어내는 나의 몹쓸 버릇때문에, 지금 이렇게 책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겉장에 아무것도 없는 심심한 상황이 연출된 나머지, 할수 없이 측면샷을 선택했다. 

이 책은 여행에 관한 센티멘탈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날카롭고 풍자적인 책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작가는 책에서 여행을 굳이 가지 않아도 여행을 즐길수 있다는 뉘앙스로 말을 하였다. 10년이 지나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으니, 나는 이 책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저 좋은 책이었다라는 기억밖에는.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확실한것밖에는.                                                               

4.빨간 머리 앤 / 루시 모드 몽고메리

오래전에 친구가 인터넷구매로 선물해준 책이다. 겉표지 아래에 써진 대로 출판 백주년 기념본이다. 즉 100년전에 거의 이런 모습으로 출판되었다는 말이다. 

어릴적에 “빨간 머리 앤”을 읽었던지 들었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내가 자란 어릴적 환경에는 이런 책이 없었다. 중한수교가 이루어진 후, 소년궁 도서관에 한국에서 기증한 어린이 도서가 많았지만, 그때도 이 책을 읽은 기억은 없다. 

그러나 읽었다 해도 안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빨간 머리 앤”은 어린이 책으로 담아내기엔 너무 할말이 긴 책이니까. 그녀의 원래 이름은 “빨간머리앤”이 아니라 “초록집의 앤”이니까. 앤은 많은 책을 읽고 많은 말을 하고 엉뚱한 생각으로 가득찬 아이이다. 한권짜리 단행본이 아니라 8권짜리 시리즈속에서 앤은 숙녀로 성장하고 교제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기를 닮은 아이들을 낳는다. 아직 나는 앤이 결혼하기전까지만 읽었다. 아까워서 두고 두고 읽는거라고 핑계를 대는 중이다. 

5. 설득 / 제인 오스틴

영화로 먼저 보고, 책으로 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다 그러하듯이, 이 책 역시 청년남녀의 결혼문제라는 흔한 소재를 다룬 소설이다. 흔한 소재도 오스틴의 글로 읽으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남들과 다르지 않다. 영화 “오만과 편견”을 보고나서였다. 그 뒤에 이 영화 “설득”을 보게 되었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남주인공의 편지에 정신이 반쯤 나갔고, 나의 선생님의 서가에서 책에 써진 편지를 읽고난 뒤, 언젠가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구입해버렸다. 

페이지당 모르는 단어와 아는 단어가 5대5였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관없다”라는 최면을 걸며 읽어내려간 소설, 그래서 훈장처럼 여태껏 소장하고 있다. 

6. 나의 한국현대사 / 유시민

정치인에서 작가로 돌아온 유시민은 요즘 너무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치 않으리라 생각한다. 3년전에 구입한 이 책은, 펼치는데까지는 시간이 걸렸으나, 펼치고나서 다 읽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살아있는 역사를 다룬 이유도 있겠지만, 유시민은 그만큼 글을 독자우호적으로 쉽게 쓴다. 덕분에 세월호전까지의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쉽게 읽어내려갈수 있었다.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까지 낼 정도로, 그의 글은 간결하고 번뜩인다. 

7. 길은 여기에 / 미우라 아야꼬

부끄럽지만, 이 책은 하마트면 버릴 뻔했다. “미니멀라이프”를 열심히 실천하던 시기에, 여태 안 읽은 이 책을 내놓으려 하다가 웬일에서였던지 그냥 뒀다. 

그러다가 재작년 초 겨울 방학부터 읽기 시작했다. 책은 패전후의 일본에 사는 어느 여자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쟁을 일으킨 국가에서 초등학교 선생을 하던 주인공은 패전후 극심한 허탈함을 느끼고, 자신이 가르쳤던 것들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여러 청년과 교제하며 인생을 소비하던 아야꼬는 극심한 폐결핵을 앓게 되고 십수년의 청년의 시기를 병상에서 지내게 된다. 이 과정에 그녀는 한 청년을 알게 되고 그의 헌신적인 도움을 통해 기독교신앙을 알아가게 되고 기독교인이 된다. 

책속에는 단가(短歌)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며 아야꼬와 그 청년은 이 형식으로 서로에게 시 같은 것을 곧잘 써준다. 두 사람은 담담한 언어와 표정으로 마음을 나누며 교제를 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퍽 신선하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슬프게도 뜻밖의 변으로 인해 두 사람은 이어지지 않지만, 청년은 다른 방식으로 아야꼬에게 평생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남게 된다.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가지는 못했다. 반쯤 읽다가 책갈피를 꽂아두었다가, 두달후에 마저 읽게 되었다. 버릴 뻔한 이 책이, 내가 힘들 때에 위로가 되었다. 슬플때에는 슬픈 구절을 읽는것이 위로가 된다. 슬픔속에 힘을 주는 글이 위로가 된다. 

 2  읽고 있는 책

8. 围城 / 钱钟书

유명하다는 이 책을 읽은적이 없었는데, 장춘 기차역 서점에서 책 한권 사서 기차에서 읽으려고 둘러보다가, 읽을만한게 이것 뿐이라서 산 책이다. 근데 아무리 봐도 내가 盗版을 산 것 같다. 요즘도 해적판이 있을줄이야. 

2년전부터 읽고 있는데 가운데 다른거 읽고, 또 아예 책을 안 읽을때도 있고 하다보니 띄엄띄엄 읽는 중이다. 내용은 다들 알테니 생략하겠다. 나는 아직 읽는 중이며, 아직 주인공인 方鸿渐이 围城안에 들어가기 전이다. 

2020년에 덧붙이기: 2년이 지나 이 책은 이미 읽은 책이 되었다. 재밌게 읽긴 했으나, 가독성이 그닥 높은 책은 아닌것 같다. 대가의 책을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풍자수법이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프고 거부감이 생길 정도였다. 작중 주인공인 당대의 지식인에 대한 풍자를 빌어 작가 스스로가 자신을 풍자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한거라는 평도 있었다. 역시 내가 뭘 잘 몰라서 그런것 같다. 

3 읽을 책

9. 역사란 무엇인가 / E. H. 카

이 책을 처음 들은 것은 영화 “변호인”에서였다. 

영화속에서 부림사건의 재판정에서, 학생들은 소위 “불온서적”을 읽었다는 죄명으로 국가보안법을 어긴 것으로 취급된다. 그 “불온서적”중의 한권이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배우 송강호가 작가의 이름인 “카”를 발음할때 몹시 정열적으로 느껴졌다. 

그 후 읽은 다른 책에서도 종종 언급이 되는 걸 보면서, 나의 책장에 소장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올해 읽을 것이다. 

2020년에 덧붙이기:  아직도 못읽었다.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읽어야 쉽게 읽힐 것 같다. 영어 원서 읽듯이 개념 찾아가면서 읽다 말다 했다. 

10. 대지  /펄 벅

어릴적부터 선교사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생활을 한, 중국이 제2의 조국인 펄 벅은 이 책 “대지”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책은 해방전 중국의 가난한 농민 왕룽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아직 못읽었기에 주어 들은 풍월로 대체할수밖에.)

이 책을 산 것은 순전히 연예인 홍진경씨 때문이다. 10년 전에 싸이월드가 한창 성행할때, 홍진경도 싸이하는 연예인이었고 그녀의 글솜씨에 반한 나는 자주 홍진경씨의 싸이월드를 들락거렸다. 그녀의 백문백답중에 가장 추천하는 책으로 꼽힌 것이 바로 노벨상을 탄 펄벅의 “대지”였다. 

노벨상이 아니라 홍진경이 추천해서 샀다. 노벨상 탄 책을 몇년전에 읽다가 충격이 너무 심해 쓰레기통에 버려버린 트라우마가 있어서, 나의 깜냥에 맞지 않는 책은 아예 손을 대지 않는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홍진경이 좋다기에, 중국 이야기라기에.

결국 지적 허영심으로 산 책이다. 마치 두꺼운 외국어 단어장처럼, 10년 째 첫 몇페지만 읽고 있다. 왕룽 집의 허름한 세간을 배경으로 가난한 형편에 대한 서러움을 억누르며 결혼 당일 아침 뜨거운 물로 몸을 애써 깨끗하게 하려고 하는 왕룽의 들뜬 모습만 해마다 읽는중이다. 나의 허영심의 업이니 마치긴 해야겠는데 올해 안에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언젠가는. 

  4  

이상 나의 책장의 10권의 책을 소개하였다. 어릴때는 책을 소장하는 욕심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일단 배우자님께서 잘 버리지 못하고 나보다 더 많은 전공서적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고민끝에 나의 책들을 많이 처분했다. 처분하는 책을 받아주는 곳이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하다. 이제 책은 연이 닿으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빌려보는 것도 나는 괜찮다. 

지나고보니 책 속의 내용은 시간과 함께 많이 흘러가 버렸으나, 살면서 기쁠때나 슬플 때에 어느 한 구절이 복병처럼 나타나 나를 흔들고 마치 약을 찾아먹듯이 책장을 뒤져 몇페지에 몇번째 줄에 숨어 있는 글귀를 찾아내게 만든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가진 많은 능력은 참으로 감사한 것이며 그 중에서도 사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수 없다. 만약 내가 사물을 볼 뿐만 아니라, 활자를 읽을 수 있는 정도의 교육을 받았다면, 그것은 두배의 축복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키는 민족이 아니었던가. 그 교육열의 원시적 욕망이 무엇이었든 간에, 우리 세대는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니 감사하게 생각된다. 

몇년 전에 타지에서 살 때 알게 된 할머니가 한분 계셨다. 눈이 어두워서 글이 보이지 않는 그분을 위해 몇번 익숙치 않은 언어로 책을 읽어드린적 있다. 그분이 언젠가 나에게 하셨던 말씀이 있다. 

“나이가 들면 읽고 싶어도 못 읽으니, 젊고 기운이 있을때 많이 읽으세요.” 

명심하려고 한다. 

[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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