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으로부터 “조선말 소사전”을 생일 선물로 받은 벅찬 기억이 있다. 자녀가 여럿인 집에서 자라다 보니 나만을 위한 공간도, 장난감도 따로 없었는데, 바쁘신 부모님께서 연길 신화서점에 특별히 들르셔서 나를 위한 선물을 사셨다는 것은, 당시 사춘기였던 내게는 막연하기만 했던 부모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큰 사건이었다. , 자주 들여다볼 일은 없어도 뭔가 남다른, 두꺼운 책 한 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뿌듯함까지 더해져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선물이 되었다.

 그 생일 선물이 ‘씨’가 되었던 것일까. 그 뒤로 십수 년이 지나서 나는 한 한국어 사전 편찬팀에서 연구원으로 몇 년을 일했고, 현재의 직장에 취직이 된 뒤에도 외부 전문연구원으로 2년여를 더 일할 기회를 얻었다. 외부 전문연구원으로 일할 때는 사전 회의를 위해 지방에서 서울에 정기적으로 올라가곤 했는데, 이를 알고 있던 어떤 친구는 매번 내게 그 사전은 대체 언제 끝나냐고 묻곤 했다. 답하기가 참 곤란한 질문이었다. 나도 답을 몰랐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엮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은데, 책으로서 사전의 편찬은 특히 수많은 언어학적, 문화적 역량이 동원되어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의 시간을 협동하여 작업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최근에는 컴퓨터의 도입으로 많은 중간 과정이 자동화되었다. 사전 편찬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도 종이 자료에서 데이터를 거쳐 빅데이터의 규모가 되었다. 그래서 사전 편찬 과정이 수월해졌을까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컴퓨터 덕분에 아날로그 시대에 종이 한 장씩 넘겨가며 예문을 찾던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게 많은 언어 자료를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검토하는 일이 가능해졌고, 따라서 사전의 품질은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에 사전 편찬학자들이 보다 나은 사전을 만들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목표와 과제를 설정하여 일일이 해결하면서 사전의 완성도를 높이다 보니, 소요되는 인력과 시간은 결코 줄지를 않은 것 같다

아날로그 시대의 사전편찬실(영화 말모이에서)과 디지털 시대의 사전편찬실(pixabay에서)

 그런 노력으로 만들어진 사전(여기서는 하나의 언어로 된 단일어 사전)은 한 언어공동체의 언어 문화를 집대성하게 된다. 공시적으로는 해당 언어공동체에서 사용되는 말의 발음, , 문법 정보, 언어 사용의 맥락 등을 담고 있고, 통시적으로는 전에 사용되었던 말과, 말의 변천을 아우르므로, 말에 대한 기록의 기능도 담당한다. 그래서 사전은 언어 문화의 거울‘, ‘언어학의 꽃‘, ‘언어의 보고(寶庫)’와 같은 다양한 별명으로도 불린다

 그렇다면 우리 조선족 사회에서 펴낸 사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 글은 바로 그런 궁금함에서 시작하여 중국 조선족 사회의 우리말 사전을 펴내기 위한 노력과 결실을 갈무리하고자 했다

 중국에서 나온 조선어 사전에는 조선에서 편찬한 사전을 재출간한 경우도 있는데, 여기서는 중국 내 조선어 학계에서 펴낸 사전만으로 범위를 한정한다. , 침구(針灸) 사전 등의 특수 분야의 조선어 전문어 사전도 적지 않게 나와 있는데, 그런 사전은 제외하고 오롯이 언어를 중심으로 다룬 언어 사전만 살펴보기로 한다

 한편, 중국의 조선어 관련 사전은 표제어와 뜻풀이 모두 조선어로 된 단일어 사전과 중국의 공용어인 한어(漢語)와의 조한(朝漢)/한조 이개어(二個語, 双語) 사전으로 나눌 수 있는 데, 조선어 단일어 사전에 관해서는 김기종(1992)에서 17종의 사전 목록이 소개된 바가 있다. 그 이후로 최근까지 나온 조선어 사전을 인터넷 중고 서점을 뒤지고 논문을 조사하는 방법으로 모아 놓고 보니 총 31종에 34권이다. 이 사전들이 조선과 한국의 기성 사진들을 많이 참고했다고 하더라도, 사용 인구 200만이 채 안 되는 조선족 사회에서 펴낸 언어 사전의 가짓수 치고는 매우 놀랄 만한 규모이다. 

 사전은 누구를 위해 어떤 말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하는 사전의 성격이나 거시 구조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뉜다. 중국 조선어 사전도 규범사전, 학습용 사전, 어휘 관계 사전, 특수 어휘 부류 사전, 어원사전, 고어(古語)사전, 발음 사전, 방언사전, 언어학 사전 등으로 꽤 다양하다

 (1) 규범 사전

 규범은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에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가치 판단의 기준”(‘우리말샘사전)이며, 규범 사전은 바로 언어 생활의 준거가 되는 규범적인 정보를 제시한 사전이다. (이 규범 사전에 대해서는 다음에 좀 더 자세히 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 . 연변역사언어연구소(1980), “조선말 소사전”, 민족출판사.
  • . 연변언어연구소(1991), “조선말 새말 사전”, 료녕민족출판사
  • . 연변언어연구소(1992~1995), “조선말 사전”(1, 2, 3), 연변인민출판사
  • . 연변조선족자치주역사언어연구소(1998), “조선말 소사전”, 민족출판사
  • . 연변사회과학원 언어연구소(2002), “조선말 사전”(, ), 연변인민출판사.
  • . 연변사회과학원 언어연구소(2005), “조선말 소사전”(수정보증판),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 . 연변사회과학원 언어연구소(2009), “조선말 소사전”(3차 개정판),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 . 류은종, 문창덕(2009), “최신 우리말 사전”, 연변교육출판사
  • . 연변조선어규범위원회(2010), “조선말표준어사전”, 연변교육출판사
  • . 중국조선어학회(2017), “조선말사전”, 료녕민족출판사.

(2) 학습용 사전

 학습용 사전은 말 그대로 사전 사용자가 언어 학습을 위해 사용하는 사전으로서, 소학생 사전처럼 특정 학습 단계의 학생을 위한 사전이 있는가 하면, 일반 성인까지를 모두 독자로 상정한 사전도 있다

  • . 문창덕·박상일·류은종(1985), “조선말 맞춤법 사전”, 료녕인민출판사
  • . 연변교육출판사 조선어문조(1987), “소학생 조선말 사전”, 연변교육출판사
  • . 전춘록·문호·차영호(1991), “조선어 어휘 실용 사전”, 연변인민출판사

(3) 어휘 관계 사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간 관계를 맺듯 낱말과 낱말도 서로 의미, 문법, 기능적으로 얼기설기 얽혀 있는 네트워크를 이룬다. 그런 관계를 나타내 주는 사전이 바로 어휘 관계 사전이다. 조선어 어휘 관계 사전은 다양한 어휘 관계에서 주로 의미 관계인 반의 관계, 동의/유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밖에 발음이 같은 관계에 있는 동음어를 포괄하는 사전도 있었다

  • . 연변언어연구소(1984), 조선말 반의어 사전”, 연변인민출판사
  • . 허동진·박태형·이국순·최명식(1987), 조선말 동의어 사전, 연변인민출판사.
  • . 류은종·문창덕(1988), 동의어·반대어·동음어, 료녕민족출판사
  • . 류환(2009), 학생용 동의어 반의어 동음어 린접단어 사전, 연변인민출판사.
  • . 박영철·김순옥(2010), 최신 동의어 반의어 동음어 사전, 료녕민족 출판사.

중국 인터넷 중고 서점에서 캡처한 우리말 사전(오른쪽은 속담 사전)

(4) 특수 어휘 부류 사전

 낱말의 총집합을 어휘(語彙)라고 하는데, 어휘는 구성 형식이나 요소, 담고 있는 의미 등 기준에 따라 다양한 어휘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조선어 사전에는 구나 문장 형태로 되어 옛 선조의 지혜를 담고 있다는(사실 어떤 속담은 현대 사회의 잣대로는 더는 지혜는 고사하고, 사용해서는 안 되는 내용들도 담고 있음.) 속담 부류, 어원적으로 보면 한어에서 온 성구가 있는가 하면, 또 소리와 모양을 흉내낸 어휘 부류인 의성의태어 등에 관한 사전들도 있다

  •  . 김기종 주편(1981), 조선말 속담 사전”, 연변인민출판사.
  • . 김기종·송기순(1981), 조선말 한자어 성구 소사전, 료녕인민출판사
  • . 연변언어연구소(1982), 조선말 의성 의태어 분류 사전, 연변인민출판사
  • . 김영환(1987), 조선말 속담 분류집, 연변인민출판사
  • . 송천식·최경남(1991), 조선말 성구 사전, 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 . 조선말 성구 소사전 편찬 위원회(1991), 조선말 성구 소사전, 연변대학출판사.

(5) 어원(語源) 사전

 낱말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의미와 쓰임새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데 어원 사전은 바로 한 낱말이 어디에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기록한 사전이다

  • . 안옥규(1989), 어원 사전, 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6) 신어·발음법·방언·언어학 등 사전

 언어의 변화는 더 이상 쓰지 않는 말인 사어(死語)’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새로운 말인 신어(新語)’(또는 새말’)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요즘도 쓰고 있는 ‘뉴스’, ‘스포츠’, ‘컴퓨터’나 80년대에 많이 쓰다가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 ‘전문호’ 등 말도 모두 언젠가는 새말이었다. 

 또, 한 낱말의 발음도 매우 중요하여 잘못 발음하면 의미가 잘못 전달되기도 하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발음만 다루는 사전도 있다. 한편, 지역에 따라서 다른 변이 형태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말만 전문으로 다루는 방언 사전이 있는가 하면, 독자가 일반 사용자보다는 언어학을 공부하는 언어학 사전도 있다

  • . 연변언어연구소(1991), 조선말 새말 사전”, 료녕민족출판사
  • . 최경남(2011), 조선어 발음법 사전(학생용)”,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 . 장성일 편(2019), 조선어 방언 사전”, 연변인민출판사.
  • . 최윤갑·이세룡(1984), 조선어학 사전”, 연변인민출판사.

 이상으로, 중국 조선족 사회가 연변역사언어연구소(1980)의 조선말 소사전”을 시작으로, 지난 40년간 우리 민족 학자들이 조선어 사전 편찬 성과를 간략히 살펴보았다. 특히 종이사전이 웹사전으로 매체가 바뀌는 흐름 속에 2011년에는 “조선말사전”(1992ᐨ1995)의 PC용 전자사전의 베타 버전이 개발되었고, 이 글의 조사를 할 당시인 2020년 말에는 스마트폰에서 사용 가능한 안드로이드용 사전 어플리케이션이 개발 중에 있으며 곧 출시를 앞두고 있다는 기쁜 소식도 전해 들었다. 

 세계 언어를 조사, 연구 대상으로 하는 Ethnologue에 따르면 세상에는 7천여 가지의 언어가 있다. 그런데 이처럼 수많은 언어 중에 사전을 보유한 언어는 불과 몇십 가지에 그친다. 우선, 사전을 엮으려면 문자가 있어야 하는데 모든 언어가 자신의 문자를 갖고 있지는 않다. 세상에는 오히려 문자가 없는 언어가 더 많다. 문자가 있은 뒤에는 수천수만년간 발전하고 전승해 온 그 공동체의 뿌리 깊은 문화를 정리하고 담아낸 문헌 기록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언어 연구 자료 또한 일정 규모 이상 축적되어야 한다. 거기에 더해 돈도 안 되는 사전 편찬에 뜻을 두고 능력까지 갖춘 연구 인력 또한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힘으로 펴낸 우리말 사전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문헌 기록이 충분히 풍부하다는 것, 우리가 충분한 연구 자원과 인력을 갖추었다는 징표 이상으로, 우리의 언어 문화가 크게 발전해 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으며, 우리 모두 어깨가 으쓱할 정도로 자랑스러워해도 될 일이다. 

 그러나 자랑스러워하는 데 머물지 말자. 바로 그 사전을 풍요롭게 할 원천인 우리의 언어를 기회가 될 때마다 말하고 써서 우리말에 생명력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은 소멸된다는 것을, 그때가 되면 사전은 더 이상 보물 창고가 아닌 먼지가 오른 박물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2부에 계속)

* 우리 조선말 사전의 목록을 정리하느라 바이두를 샅샅이 뒤지고 관련 논문을 일일이 읽긴 했으나, 실물을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아서 소개한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리며, 양해를 구합니다. 오류나 누락된 사전을 지적해 주시면 바로잡도록 하겠습니다. , 사전을 구해 달라, 사전 몇 페이지만 사진 찍어서 보내 달라… 여러 사람을 참 많이 귀찮게 했는데,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특히 후학으로서 우리말 사전을 펴내신 많은 사전 편찬자 선생님과 선배님들께 감사와 존경을 담은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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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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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전 온라인화도 적극 추진했으면 좋겠습니다. 구매하기도 어렵고 어떤게 있는지도 모르는 사전들이 적지 않는것 같네요. 남쪽의 온라인 사전을 물론이고, 북에서도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에서 조선말대사전을 공개하고 있는 현실인데.
    2부도 기대합니다!!

    1. 네, 인터넷 사용과 스마트 기기의 보급으로 인해, 이제 종이 사전은 설 자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어도, 조선어도 우리말이고, 한국의 지방 방언도 대부분 서울말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중국의 지역 방언들이 특색을 잃고 푸퉁화와 닮아가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2. 와~ 깔끔한 정리 감사합니다. 제가 소학교를 다닐때 사용했었던 사전들도 리스트에 나와 있어서 그때의 기억들도 생각나고 감회가 새롭네요. “소학생 조선말 사전”, “동의어 반의어 사전”, “성구속담 사전”…. 학교에서 단체로 산것도 있지만, 대부분 가정의 책꽂이에서도 흔히 찾아 볼수 있었던거 같습니다. 또한 흑판에 꽉 차게 씌여진 동의어, 반의어들을 소리내며 외우던 기억… (지금 생각해보면 뭔 동의어 반의어가 그렇게 많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ㅋㅋ)
    그리고 정리하신 리스트 보니 대부분 사전들이 주로 80, 90년대에 많이 만들어 졌네요. 그때가 또 연변의 조선족 인구가 제일 많을때 이기도 한거 같고.
    추억을 떠나서 이런 기록과 정리가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좋은 기록 감사합니다.

    1.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논문으로 발표한 글을, 일반에도 기록되어 알려질 필요가 있을 법한 부분만 발췌해서 평이하게 고쳐서 쓰는 중입니다…
      글쓰는 범이님은 흔치 않게 어린 시절부터 사전과 매우 가까이 지냈네요. 그런 좋은 교육 환경이 지금처럼 우리 글을 계속해서 잘 쓰시는 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최근에 조선어 사용자도 줄고 있지만, 연구 환경도 예전 같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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