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시절, 나는 매주 <마녀사냥>을 챙겨보곤 했다. 어딘가 예민하고 냉소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래서 프로그램에 재미를 더하는, 나에게 허지웅은 그런 사람이었다. 작가의 이미지보단 까칠한 방송인의 이미지가 강했다. 매서운 눈꼬리와 목 뒤의 타투, 차가워보이는 미소와 자신의 할말을 꿋꿋이 하는 자신감 있는 사람.
허지웅이 토크하러 나온다는 예능은 가급적 다 챙겨보려고 했다. 주제가 연애, 정치, 예술, 문화 모든 장르에 예의가 바르면서 단호한 말투와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의견들이 나의 성향과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TV에서 당당히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괜히 간지나보였다.
작가님의 책은 <버티는 삶에 관하여> 이후 첨이다. 책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 나는데 글을 꽤, 아니 많이 잘 쓴다는 인상은 남아있다. 이 책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문체가 특별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글은 힘이 있고, 사실적이며 구체적이다. 묘사와 서술을 잘해서 흐름이 좋으니 책이 술술 읽힌다.

제목부터가 살고 싶다는 농담이다. 어찌 이리 잔혹한 농담이 있을 수 있을까. 죽고싶다도 아닌, 살고싶다고 농담하는 사람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악성 림프종 판정을 받고 고통의 절정을 맛본 저자는 생각을 바꾼다. 날 선 비판보다는 본인처럼 힘든 젊은 시절을 보내지 않도록 청년들을 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항암을 이겨내며 쓴 책이지만 고통에 대해서는 크게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그 사건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초반부에 머물 뿐 영화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반 이상을 차지한다.
(중후반 부분 내가 알지 못하는 영화에 대한 평론들은 지루하게 느껴졌다. 이건 내 문제일수도…)
페이지를 넘기면서 '아, 좋다' '너무 좋은데?'라는 말만 뇌까리다가 어느 챕터에서 오래 머물렀는데, 그것은 최은희라는 이름이 쓰인 챕터였고, 다 읽고 나서는 먹먹함에 한참 그 페이지를 만지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그 챕터에 쓰인 '보통사람 말이다'라는 말이 이렇게 슬픈 거였구나 싶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니까. 같은 병을 가졌던 작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며 헤아려보려 했지만 내가 헤아릴 수 있는 깊이가 아니었다.
그는 오랜시간 피해의식 때문에 괴로웠음을 고백하면서, 피해의식이 사람의 영혼을 파괴한다고 말했다.세상이 나에게 가혹하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부당하게 대했기 때문에, 애인이 나를 배신했기 때문에, 나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이해받아 마땅하다는 말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는 것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케네디에 대한 피해의식이 그를 얼마나 망가뜨렸는가를 보면 가관이다. 자수성가한 리처드 닉슨은 금수저에 잘생기고 언변 좋은 케네디에게 피해의식을 느끼며 스스로 갉아먹는다. 본인을 피해자라고 까지 규정한 그의 말로는 탄핵 직전 자진 사임으로 끝난다. 사실 열등감과 피해의식은 누구나 잠식 시킬 수 있다. 미국 대통령도 꼼짝 못하지 않았는가? 건강한 정신을 가진다는 건 정말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며 존경받을만 하다.
프롤로그 마지막에 '어머니 사랑합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이유는 예능프로 미우새에서 봤던 단아하신 그의 어머니가 생각났기 떄문이다.
(이제는 남의 엄마를 생각하면서 울기까지…;;;)
그 상황을 이겨 낸 그에게 참 애썼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작가님의 글을 오래오래 보고 싶은 독자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인상 깊었던 문장들
1.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절한 거리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열보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반보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하거나 덜하면 두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는 붕괴된다. 인간관계란 그 거리감을 셈하는 일이다.
2.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멋지고 뺴어난 것들 덕분이 아니라 언제 했는지도 기억나지 못하는 오래된 선행들 덕분에 구원 받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3.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_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
4.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작가 허지웅의 글은 저도 좋아합니다. 전에 나왔던 을 읽을때도 많이 공감된느 내용들이 많았었는데, 이 책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녀사냥 보던 그 시절 기억들이 급소환됩니다
요즘 시즌2 합디당 🫣🫣
헐 진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