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좀더 들어 내게도 언젠가는 문단유사 같은 것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모동필의 얘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 기회가 앞당겨져서 몹시 기쁘다.

   어쩌다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들을 되짚어 보다가 둘이 서로 감개무량해한 적이 있다. 저그만치 16년… 그 16년 동안 우리는 질려하지도 않으며 문학을 담론하고 민족공동체를 운운했다. 아니다, 가운데 나는 여러번 질린 적도 있었다. 생활에 대한 권태라고 해두자. 하지만 매번 그처럼 권태로운 기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이 있으니 그 중의 한 사람이 모동필이였다. 그가 자신의 글에서도 말 한 것처럼 ‘너무 뜨거워 다가서기조차 조심스러운’ 모동필의 뜨거운 민족애가 자주, 내 마음 속에서 사그러들었던 문학열정의 불씨를 살려주었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아, 괜히 진지해진다. 그러니깐 다시 말한다면 모동필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얘가 이토록 뜨거운 사람인 줄은 몰랐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첫만남에 대해 딱히 기억나는건 없다. 대학동기였으니 군사훈련 때였나? 고만고만한 조문학부 03급 남학생들 가운데서도 모동필은 여전히 평범한 인상이였다. 이후에 신입생야회 오디션에서 자기 머리 사이즈보다 한참 작아보이는 벙거지 모자를 눌러 쓰고 ‘머리 위로 컴온!’ 하면서 힙합보이의 흉내를 내지만 않았다면(물론 보기좋게 탈락을 맞았지!), 단연코 나는 이후 16년 동안을 쭉 모동필에게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또 더 후에 찰랑거리지도 않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니면서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아우라를 뿜고 다니지 않았다면 나는 자칫 모동필의 뜨거움을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대학 4년 동안 우리의 대화의 키워드는 줄곧 문학, 민족, 축구 같은 것들이였다. 맞다, 술도 있었다. 그러니깐 그 시절 우리는 도무지 주체가 되지 않는 열정으로 민족공동체의 운명을 걱정하고 문학을 담론했으며 연변축구를 목 터지게 응원하고나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썩 보잘 것 없는 글들을 써내고나서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했다. 

   그렇게 누가 잘 알아주지도 않는 열정과 치기로 가득한 시간들을 흘러보내고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아직 무엇이 더 남아있는가. 

   《하얀 넋, 붉은 얼》을 보면서 나는 모동필은 여전히 16년 전, 내가 알던 그 소년의 열정과 치기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뜨겁고 여전히 막무가내인 소년 말이다.

   아직도 처음 동필이와 함께 습작으로 써본 수필 한편을 들고 석화선생님을 찾아갔던 날을 기억한다. 지금의 시정부 맞은켠 오래된 건물 3층에 있던 《연변문학》 편집부, 계단을 올라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나타나는 첫번째 사무실에서 석화선생님은 코등으로 흘러내리는 검은 뿔테안경을 춰올리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날 동필이는 시를 들고 갖고 나는 수필을 들고 갔다.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진 않으나 동필이는 칭찬을 받았고 나는 기본적인 맞춤법도 지키 않았다며 핀잔을 들었다. 칭찬을 받는 동필이가 못내 부럽기도 하고 살짝 질투가 나기도 했다. 어쨌든 그 날을 시작으로 우리는 둘도 없는(?) 문우가 되여 함께 글을 쓰고 문단행사를 기웃거렸다. 

   외모가 나보다 좀더 성숙한 동필이는 문단행사에서 선배님들에게 대접(?)을 받을 수 있었고 덕분에 나도 아주 애송이취급을 받지 않았다. 동필이가 아주 든든하게 느껴지던 시간들이였다. 

   우리가 대학 3학년이 될 쯤부터는 동필이도 나도 제법 문학동아리에서 선배노릇을 할 수 있었다. 동필이는 늘 그랬던 것처럼 끓는 열정으로 후배들을 문단의 각종 행사로 이끌었으며 후배들에게 글을 쓰라고 독려했고 그 글을 잡지사 편집선생님들께 보여주고 평을 받아오면서 지면에 발표될 수 있도록 애를 써주었다. 

   모동필은 지금도 뜨겁다! 그는 부지런히 차세대 작가들의 소통의 장을 만들어가고 그들을 지면잡지에로 안내한다. 

   그런 그를 두고 개인업적을 쌓기 위해서라고 말하거나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고 저리 열성인게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뭐 어쨋거나 본인이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줄 알기에 나는 단 한번도 네가 이렇게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쩌면 묻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동필이를 지켜보는 일이 요즘에는 좀 괴롭다. 모동필의 생활에 민족이, 문학이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래봤자 우직스러운 모동필에게는 말해도 쓸모없는 줄 알기에 그냥 입을 다물어버린다. 

   대학동기들 중에 대부분 애들은 외지에 정착하고 있다. 고향에 남은 애들이 몇 되긴 하지만 또 그중에서도 문학관련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동필이와 나 뿐이다. 그래서 동필이는 우리 둘이 ‘선산을 지키는 못난 나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서라! 난 못나지 않았도다!!! 

   언제라도 불씨를 만나면 활활 타오를 것만 같은 ‘못난’ 나무 한그루, 그 나무가 제발 자연 연소를 하지 말고 이 땅에 더 넓게, 깊게 뿌리를 뻗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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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마토

글을 만지고... 세상과 만나며... 아이와 함께 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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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분 모두 멋지십니다. 동기도 그렇고 실제로 해오신 일들도 그렇고. 조금만 더 견지하고 계속 밀고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생각했던 방식대로 하나씩 실행되면서 바뀔것입니다. 다만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것이고 시간이 걸릴뿐. “마흔이 되기 전에”란 책에서 작가 팀 페리스가 햇던 말이 생각납니다. 《‘이 일을 하기에 당신은 아직 너무 젊어요.’ 이런 어이없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만들어왔다. 다만 나이가 좀 더 든 뒤에 그 공로를 인정받은 것뿐이다. 뭔가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일을 직접 해보는 것이다. 물론 안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지는 말자. 젊은 시절엔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따르자. 당신의 호기심이 결국 세상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끈다면 아주 후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을 모두 하라. 단, 고뇌와 고통과 감정 소모가 적은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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