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따로 놀던 여러 '앎'이 어느 순간 갑자기 한 줄의 구슬로 꿰어질 때 지적인 만족감을 느낀다. 다들 그렇지 않은가. 오늘 우연히 그런 구슬들을 발견하여 여기에 끄적인다.  

다른 일로 자료를 찾다가 한나라의 양웅(揚雄)이 지은 『방언(方言)』이란 책을 지도로 정리한 연구를 접하게 되었다. 내용을 훑어 넘기다가 그중의 한 페이지에 시선이 끌렸으니 바로 다음 지도이다. ''(작다)라는 낱말에 대한 중국의 여러 지역의 방언을 기록한 중에, 지금의 동북 지역에서는 '策'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揚雄《方言》逐条地図集』

링크: https://kurs10026.sakura.ne.jp/matsue/Fangyan01-03.pdf (28쪽)

양웅으로 놓고 말할라 치면, 대단한 문장가로서 화려한 글귀와 난해한 전거(典據)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데서 자존감을 찾았다고, 한 마디로 퉁칠 수 있는 그런 이였다. 책도 많이 썼고 이름을 날렸으나, 꺽꺽대며 말을 먹는 '떼떼'였다고 전해지며 그래서 심보가 더 비틀어졌을 지도 모른다. 왕망이 신나라를 세울 때 관직을 받았고 정권을 찬양하여 후세의 문인들의 비판을 받았다. 반란군이 쳐들어 오자 급히 황실 도서관인 천록각(天禄閣) 층집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죽을뻔 한 일이 후일 도성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기도 하였다. 

포티는 그만하고, 왜 이 '策'이란 기록에 관심이 쏠렸는고 하니, '연나라 북쪽 편벽한 지역부터 조선의 렬수/열수 사이'(燕之北鄙 朝鮮洌水之間)의 말은 '작다'는 뜻으로 '策'을 썼는데, 이 지역은 한나라 시기에 알타이계의 여러 민족 언어들이 쓰였다고 볼 수 있고 그 중에는 고조선을 거쳐 고구려까지 이어지는 우리 선인들의 모태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策'은 현대의 우리말 '작다'의 어간 '작-'과 소리가 비슷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雙鑑樓藏 송나라 때 깎은 목판본

물론 현대 중국어에서는 ce4(처)로 발음되고 한국 한자음은 '책'이지만,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소리는 다르다. 역사적으로 한나라 시기에 가까운 한자음은 상고음(上古音, 시경과 같은 문헌으로 재구성함)을 참고할 수 있는데,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연구들의 결과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策의 상고음]
– 鄭張尚芳                    擬音 shreeɡ(스렉)
– 高本漢(Karlgren)   擬音 ts'ĕk(쳭)
Baxter&Schuessler   擬音 [tsʰ](ˤ)rek(츠렉)

Web韻圖 링크 참조: https://suzukish.sakura.ne.jp/search/inkyo/yunzi/%E7%AD%96

한나라와 그 이전, 위에서 말한 연나라의 북쪽과 조선 열수 사이의 지역(열수가 구체적으로 어느 강이였는 지를 제쳐놓고라도)은 이른바 漢人들의 거주 지역이라기보다 선비, 오환 등 다른 민족이 살고 있는 터전이었다. 이들은 자체로 문자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언어학적으로는 알타이 어족의 만-퉁구스계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크게 보면 우리말과 비슷하며 만-퉁구스계의 언어들은 우리말의 역사비교언어학에서 이미 오랫동안 주목해 온 사실이다. 

한편 우리말은 한글이 창제되어 기록된 중세어에서 '작다'는 '쟉다'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가장 초기의 한글문헌에서부터 문증된다. 

'우리말샘' 역사정보

이상을 종합하자면, 한나라 양웅의 『방언』에 등장하는 '연나라 이북, 조선 열수 사이 지역'의 말이었던 '策'의 의미는 '小'인데 이는 우리말의 '작다'와 뿌리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양웅의 『방언』에는 '策' 이외에도 '연나라 이북 조선 열수 사이'의 말로 기술되는 항목들이 꽤 있지만 현대의 우리말 화자가 봤을 때 우리말과 비슷하다고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다른 예들은 많지 않다. 

다만 최근 우연히 접한 학술회의 소식인데,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최로 열리는 '국어사 연구 방법의 다각화'라는 회의에서 동국대학교의 정재남 씨로부터, 양웅의 『방언』을 국어사 자료로 검토하고자 하는 발표가 있었다(아래 포스터 참조). 온라인에서는 공개를 하지 않아 들을 수가 없는 점이 아쉬웠다. 반드시 '策'의 이야기가 나왔을 것 같은데. 학계의 인정은 받았는지. 

한중연 회의 포스터

덧붙여 나무위키의 '방언(양웅)'의 문서 항목을 보자면, 그 참고문헌에 정재남 씨의 논문들만 쪼로록 나란히 올라와 있다. 본인이 해당 문서를 집필한 건 아닌지 하하. 하여튼 언젠가는 이 책이 우리말 역사에 대해 갖는 의미를 질문할 기회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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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는 사마귀

사마귀 하면 뭐부터 떠오르시는지? 1번, 벌레 '사마귀(螳螂)'. 2번, 살갗에 돋는 '사마귀(痣, 黶)'. 어느 쪽인가? 

우리말에서 위의 두 낱말은 형태와 발음(악센트 포함)이 같다. 우리말에는 사마귀 외에도 '눈(目)'과 '눈(雪)'처럼 소리는 같지만 뜻은 전혀 다른 말들이 적지 않다. 하여 사마귀 역시 그러한 말 중의 하나라고 여직껏 생각해 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 일본어의 '사마귀'(곤충, カマキリ[카마키리])라는 낱말은 방언형이 엄청 다양한데, 과거 일본어의 방언조사에 따르면 그 어형이 600~700종에 달하였다고 한다. 모든 언어에서 관찰되는 현상이지만 일본어에서도 방언 소실이 급속도로 진행중이라 최근 조사에서는 '사마귀'의 방언 형태가 200종 가량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말샘'에는 곤충 사마귀의 우리말 방언형이 44종 올라와 있다)

재미있는 얘기는 그 다음이다. 일본어의 곤충 '사마귀'의 표준어 'カマキリ'는 '鎌切' 즉 '낫으로 베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이 벌레의 앞다리 생김새 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이름이다. 다만 방언형의 형태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イボムシ' 등과 같이 'イボ-'(이보)와 연관되는 일련의 이름들이다. 일본어에서 '이보'는 피부에 돋는 사마귀나 티눈이나 물집 같은 것들을 일컫는 말들의 어간에 자주 쓰인다. 학자들은 이러한 방언형들은 곤충 '사마귀'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골머리를 앓게 된다. 하여 일본어의 독특한 작명 발상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피부에 돋는 '사마귀'가 곤충 '사마귀'와 소리가 같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직 남았다. 일본어와 우리말 뿐만 아니라 중국어도 보게 된다. 현대 중국어의 방언조사 중에서 '사마귀'(螳螂)를 조사 어휘 리스트에 넣은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는 수 없다. 

대신 고문헌에 의외로 흥미로운 예가 나온다. 전국시대 기원전 3세기에 엮은 책인 『여씨춘추(呂氏春秋)』이다. 진(秦)나라 재상이었던, 야사로는 진시황 영정의 친아버지라는, 여불위(呂不韋) 그 문하의 식객들을 조직하여 엮은 책으로서, 제자백가의 사상을 널리 수용하여 26권 160편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이 완성되고 나서 누구든 그 내용에 한 글자라도 더하고거 뺄 수 있는 자에게는 천냥의 상금을 주겠다고 내걸 만큼 자부심이 강한 책이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여씨춘추』 十二紀의 제5권, 여름을 말하는 夏紀 '五月紀' 부분에 '小暑'에 대한 내용이 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小暑至,螳蜋生。

중국의 고문헌들은 대부분 후세에 보편적으로 인정 받은 해석을 덧붙여 읽는게 관습이다. 『여씨춘추』의 경우는 동한의 기원 3세기 경에 형성된 고유(高誘)의 주석을 동반하여 읽는게 전통적이였다. 고유注는 위의 구절에 나오는 '螳蜋生'(즉 螳螂)이라는 표현에 대해 다음과 해석한다. 

螳蜋,一曰天馬,一曰齕疣。兖州謂之拒斧也。

번역해 보자면, '당량'(사마귀)은 일설에 따르면 '천마'(하늘의 말)라고 하고 또 다른 일설에는 '흘우'(살갗에 돋은 사마귀를 깨무는 자)라고도 한다; 연주 지방에서는 '거부'(도끼를 막는 자)라고 한다, 와 같은 뜻이다. 

涵芬樓藏 명나라 때 깎은 목판본

이중에 놀라운 부분이 바로 '齕疣(흘우)'라는 이름이다. 쉽게 말하서 '살갗의 사마귀를 삼킨다'는 뜻으로 곤충 사마귀를 명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어 독자적인 발상인 줄 알았던 것이 우리말에도 있고 심지어 700여 년 전의 중국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 이렇게 구슬은 한 오리의 실로 꿰어진다. 

어떤가. 우리말의 두 가지 '사마귀', 이제 새롭게 보이지는 않는가. 작은 일이지만 또 결코 작지 않은 나의 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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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돌다가 고전과 씨름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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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뫼 (산) 의 옛날 발음이 “모이” 라는걸 알았을때, 아, 그래서 어른들이 아바이 묘지 (산) 을 아바이 “모이” 라 했구나 하구 새삼스레 깨달았구 설레였던 생각이 납니다. 어릴땐 어른들이 “묘”를 “모이”라 발음한다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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