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딸에게 쓰는 편지(7)

딸에게 들려주는 우리집 가족사


7. 수북(水北)과 할머니의 흉터

   오늘은 너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지금 길림성 연변 왕청현 백초구진에 위치한 '왕청만태성 수력발전소 (汪清满台城水电站)'와 '만천성유람지구(满天星风景区)'라 불리는 곳이 바로 할머니가 태어나신 곳이다. 현재는 저수지로 개조되어 물을 가둔 큰 저수지로 변했지만, 저수지가 되기 전에는 한족, 만족, 조선족 등 80여 가구(정확하지 않음)가 모여 사는 작은 촌마을이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마을에 대한 기록 百度 같은 인터넷에 남아있지 않아 주변 사람들도 잘 모른다. 당시 살던 주민들은 전부 이주하였고, 현재 생존해 계신 분들도 많지 않을것 같다.

   이 마을의 이름은 '수북(水北)' 혹은 '노지고'라고도 불렸는데, 정확한 한자 표기는 모르겠다. 百度에서 검색 해 봐도 아쉽게도 관련 사진이나 문서를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잠겨버린 수북(水北) 위치]

   수북(水北)은 내가 다섯 살 무렵 어머니 등에 업혀 처음 방문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왕청에서 백초구 면전(棉田)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10여 킬로를 걸어가야 하는데 중간에 나무배(木船)를 한 번 갈아타야 했다. 하지만 겨울에는 얼음 위로 걸어갈 수 있어 오히려 겨울에 가는 게 좋았다. 가끔 꿈에도 나타나는 이곳은 나의 외갓집이었고, 손맛 좋은 외할머니가 찾아오는 외손자 외손녀들을 위해 옥수수 엿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는 따뜻한 곳이었다. 겨울에 외할머니 집에 놀러가면 외할머니는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큰 세수대야만큼 둥글넙적한 엿을 꺼내와 망치로 툭툭 깨서 나눠주면 한입 가득 물고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외갓집은 일제 강점기 조선 함경도 쪽에서 수북(水北)으로 이주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외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외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듣지 못했다. 다만, 용모가 단정하고 미남이셨으며 일본 순사로 채용었다고 한다. 그 직업 때문에 해방 후 투쟁을 받았거나 끌려다녔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인터넷 사진, 이야기랑 무관]

   일제 강점기에는 일반인들에게 배급을 줬는데 일본인에게는 입쌀, 조선인에게는 좁쌀, 한족에게는 옥수수쌀을 주는 등 차별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왜 그 직업을 선택했는지 자세한 이유는 할머니나 이모들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시절 순사라는 직업이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을수 있어 그 길을 택했을 거라고 짐작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할머니는 넷째 딸로 태어났고 위로는 언니 3명, 아래로는 여동생 1명과 남동생 2명이 있었는데 외 할어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할머니가 과부로 홀로 7남매를 키웠단다. 셋째 딸까지는 영자, 금자, 학자라고 이름 끝에 '子'(아들 자)를 붙이다가 넷째 딸인 할머니부터는 괴담 때문에 '억금'이라고 지었다고 하는데 딸은 이제 그만 낳고 아들 낳아서 집안을 억만금처럼 부자로 만들자는 뜻이였다고한다. 다섯째도 또 딸로 태어나서 이름을 '만금'이라고 지었고, 결국엔 여섯째랑 일곱째 아들 둘을 낳았다고한다. 

   외갓집은 그 당시 자녀가 많아서 차츰 위로 부터 밖에 나가기 시작 하였는데 … 큰 이모는 공부 잘 해서 일찍 딸 한명만 있는 왕청에 있는 큰 아버지 댁에 가서 살았고,  둘째, 셋째 할머니까지 중학교 까지 다니는둥 마느는둥 하다가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농사일을 했다고 한다. 

[83년 7남매 사진]

   '수북(水北)'은  사방이 산과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어 경치가 무척 빼어났지만, 교통이 불편하고 평지가 적어 농사를 짓기에는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더군다나 수전(水田)이 없어 한전(旱田)에만 의지해야 했었단다. 언니들은 농사일이 너무 힘들어 아래 동생들이 빨리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 도와주기를 바랐다고 하던데, 작은 이모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언니가 공부를 잘하고 있던 본인에게 예쁜 옷을 사주겠다며 학업을 그만두고 나와서 도와달라고 꼬드겨 결국 언니가 사준 고리둥 저고리를 받아 입고 밭일을 나갔다고 한다. 

   딸, 네가 할머니 왼쪽 가슴에 푹 파여 들어간 흉터를 본적이 있을꺼야, 그 할머니 왼쪽 가슴의 흉터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단다. 18살 즈음에 심한 젖앓이를 앓으셨던 할머니는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치료를 받지 못였고 어느 날, 동네에서 유명한 민간중의(民间中医) 할아버지의 치료처방을 받았단다.  그 할아버지는 검은 가루와 꿀을 섞어 만든 약을 처방해 주셨고, 할머니는 그 약을 한 달 동안 꾸준히 바르셨는데 놀랍게도 한 달 후, 할머니의 왼쪽 젖가슴 아래쪽에서 고름이 터져 나왔고, 이후 상처가 아물면서 지금의 흉터가 남게 된 거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검은 가루는 죽은 사람의 두개골 뼈를 태워 만든 것이라는 섬뜩한 처방이였단다.

[인터넷 사진, 이야기랑 무관]

    자녀 일곱을 홀로 키운 외할머니는 자녀교육에 엄격했다고 한다. 그시절 연애중인 셋째이모가 사귀는 남자가 손풍금 연주하는 "딴따라"라고 셋째이모 머리채 잡아 끌어서 집까지 데려 왔다는 외할머니의 이야기랑 있긴 한데, 어깨 넘어로 들은 이야기라서 오늘  '수북(水北)'과 할머니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

「 1.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
   2. 1부2처(一夫二妻)
   3. 중국해방 그리고 …
   4. 악운(噩运)
   5. 홍진(天然痘) 바이러스
   6. 문화대혁명

つづ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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