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의 시작
몇 년 전, 할아버지께서 한국에 다녀오시며 우리 집 족보를 가져오셨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족보를 펼쳐 보이시며 그 안에 이미 내 이름이 기록되여 있다고 짚어 주셨다. 나는 가문의 제30대 후손이며, 내 이름 가운데 한 글자는 족보에서 정해진 돌림자를 따라 지은 것이라고 하셨다. 그제야 나는 성씨와 본(本)의 존재에 대해 처음 알게 되였고 자연스럽게 그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였다.
족보 속에서 내 이름부터 시작해 한 세대, 또 한 세대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조상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였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가족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 시작되였다.
2. 사라질 뻔한 이야기들
이후 방학 때마다 할머니 댁에 들릴 때면 나는 할머니께 옛이야기들을 들려달라고 조르곤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고 기록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남기려고 했다. 몇십 년, 심지어 근 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들이 누구였고,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떤 시대를 지나왔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막상 깊이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두만강을 여러 번 건너다니며 어느 강가에 터를 잡아야 할지 망설였다는 이야기,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마을을 습격했을 때 증조할머니가 갓난아기였던 할머니를 업고 옥수수밭에 숨어 며칠을 버텼다는 이야기, 문화대혁명 시기 영벽마을 학교의 교장이였던 증조할아버지가 타도되여 왕청에서 장춘으로 도망쳐 몇 년 동안 실종되였다가 살아 돌아왔다는 이야기들까지. 이 이야기들은 때로는 흥미로웠고, 때로는 가슴 저렸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의 과거이자 력사였고 조상들의 삶 그 자체였다.
한 번은 할머니의 옛 고향이였던 왕청 영벽을 찾아간 적이 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거의 모두 떠나버렸고 남아 있는 주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멀지 않아 완전히 사라질 것 같은 마을이였다. 할머니는 그곳이 기억 속의 모습과는 달리 너무도 쇠락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씀하셨다. 옛 집터도, 학교도, 거리도 모두 사라지고 황량함만이 남아 있었다.
P1. 길림성 왕청현 계관향 영벽촌 마을학교 옛터
영벽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고향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 역시 시간이 흐르며 점점 빛을 잃고 흐릿해지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과거에 대한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이야기들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것을 글로 남겨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민족은 이민의 력사를 가진 민족으로, 조상님들은 조선반도뿐만 아니라 중국, 로씨야, 일본 등 여러 나라에 발자취를 남기며 살아왔다. 일제 강점기의 압박과 착취, 그리고 이국 땅에서 겪은 서먹함과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온 조상들의 삶에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다사다난이 쌓여 갔을 것이다. 또한 ‘보따리 민족’이라 불릴 만큼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각자의 독특한 이야기를 남긴 사람들도 많다. 어느 한 가족의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면 한 권의 책으로 엮어도 될 만큼 수많은 에피소드가 존재하고 그 속에는 시대를 증언하는 력사적 의미와 기억해야 할 기념적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3. 기억이 사라질때
그러나 집안의 로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그들이 품고 있던 이야기들 또한 점차 사라져 간다. 아주 간단한 질문부터 떠올려 보아도 그렇다. 우리는 과연 자신의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 외가와 친가를 모두 합치면 여덟 명이나 되는 그들의 이름과 삶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때 나는 가족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알아낼 수 있는 조상들까지 그들의 이름과 생애를 정리해 본 적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께 ‘노크아매(증조할머니)’의 아버지, 즉 외할머니의 외할아버지 이름이 무엇인지 여쭤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이미 잊어버렸다고 하셨다. 외할머니보다 한 살 위인 그의 이모에게도 다시 물어보았지만 그분 역시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분의 친아버지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기억하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한 사람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기억 속에서 말끔히 지워져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몹시 안타깝게 느껴졌다.
비록 이러한 기억들이 일상 속에서 눈에 띄는 실질적 가치를 지니지는 않을지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누구인지 아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곧 나의 가족과 뿌리를 아는 데 있다. 비록 돌아가신 분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살아 있는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러나 그 기억 속에서마저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때야말로 그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완전히 소실되여 버리는 것이 아닐까.
P2. From the movie ‘Coco’
4. 망각보다 더 두려운 것
디즈니 영화 ‘코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Death is not the end of life, forgetting is the end of life.”
이 영화는 멕시코의 전통 명절인 ‘망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을 배경으로, 기억과 가족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영화 속에서 망자는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모두 사라질 때 비로소 ‘완전한 소멸’을 맞이한다. 이 설정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망각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영화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하려 애써 온 리유도 어쩌면 이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이름이 잊히고 이야기가 끊기는 순간, 한 사람의 삶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기억은 애도가 아니라, 존재를 붙잡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코코의 이야기는 결코 먼 나라의 문화나 허구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살아오며 무심코 지나쳐 온 나 자신의 모습과도 겹쳐 보였다. 나는 기억이 사라질 때 한 사람의 존재가 희미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내 삶에서는 그 기억을 뒤로 미뤄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5. 잠시 미뤄두었던 기억
현재 세계화 시대 속에서 우리는 곳곳에 흩어져 살며 선조들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간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거의 한어를 입에 올려본 적이 없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어느새 한어가 조선어보다 더 자연스럽게 입에 붙게 되고 지금은 홍콩에서 류학하며 또 다른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새로운 환경에 어울리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주류 사회에 스며드는 데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뿌리를 가진 사람인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지나쳐 온 시간도 많았다.
P3. 홍콩 빅토리아 항
다른 사람이 묻지 않는 이상, 나는 내 민족이나 가족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았다. “你个东北人为啥没有东北口音呀?”라는 질문을 들을 때에도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겼다. 스스로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굳이 규정하지 않아도 되는 모호한 존재로 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나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전에 기록해 온 가족 이야기들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되였다. 내가 외면하고 있던 것은 낡은 과거가 아니라,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든 이야기들이었다는 것을. 조상들의 이름과 삶, 그들이 지나온 시간들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시간과 공간의 거리 속에서 희미해질 줄 알았던 가족의 존재는 오히려 글 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기록은 과거를 붙잡아 두는 일이 아니라, 사라질 것 같던 존재를 다시 현재로 불러오는 일이였다.
6. 기억 속에 살아있는 이들
그 무렵 친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분명 리별을 겪었음에도, 마지막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나는 이상하게도 그 사실을 완전히 실감하지 못했다. 기록 속에서, 기억 속에서 할머니는 여전히 나한테 말을 건네고 계신다. 설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친할머니 댁에 가서 쇠야지”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것은 아마도 나의 마음과 기억 속에서 할머니가 여전히 살아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을 통해 기억을 남기고, 심지어 세대를 넘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만약 내가 옛 이야기들을 적어두지 않았다면, 할머니의 말씀, 증조할머니의 용기, 그리고 그분들이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은 아마도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글로 남겨진 이야기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 민족이 살아온 력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타향에서 살아가는 지금, 나는 이 기록들을 통해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끊임없이 되새긴다.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조상과 가족들도 글 속에서는 여전히 숨 쉬며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기억들을 읽고 쓰는 순간마다, 나는 내가 누구이며 어떤 뿌리를 가진 사람인지 더욱 또렷이 느낀다.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은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존재의 의미를 알려주고, 앞으로 살아갈 세대에게 이어질 뿌리를 보여주는 일이다. 이름 없는 조상들의 삶도, 잊힐 뻔한 이야기들도, 글로 남겨진 순간 다시 살아나 우리의 마음속에 머문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순간, 그는 다시 살아난다.
우리는 이런 기억들을 통해 가족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기록하고, 이야기하고, 기억하는 한, 사라진 이들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잘 읽었음다. 연변에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떠나면 꼭 누구나 하게 되는 질문인거 같슴다.
🌹🌹🌹
소중한 이야기와 기록 잘 읽었습니다. “Death is not the end of life, forgetting is the end of life.” 많은 공감가는 문구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