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다시 계획을 말하기 시작한다. 무엇을 더 할지, 어디까지 가야 할지, 얼마나 바빠져야 하는지를 정리한다. 하지만 그 계획을 세우는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2026년을 맞이하면서는 더 많은 일을 하겠다는 생각보다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예전에는 목표가 많을수록 성실해 보인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지킬 수 없는 계획이 나를 얼마나 쉽게 지치게 만드는지도 알게 되었다.

계획이란 결국 미래를 그리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고 있는 것보다 자주 미루는 일, 끝까지 가져가지 못하는 습관, 반복해서 무너지는 지점을 인정하는 게 먼저였다. 그래서 목표를 많이 적지 않기로 했다. 건강과 일, 관계와 나 자신, 이 네 가지 안에서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웠다. 계획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지킬 수 있을 만큼만 있어야 한다는 쪽에 더 가까워졌다.

예전에는 한 번 마음먹으면 몰아서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지치는 순간이 왔고,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이제는 안다. 성장은 강도의 문제가 아니라 리듬의 문제라는 걸. 매일 잠깐이라도 멈춰 있는 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는 시간, 그날의 감정을 한 줄로 적어보는 습관 같은 것들이 생각보다 오래 나를 붙잡아 준다는 사실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시기도 있었다. 요즘은 감정을 통제하기보다 빨리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화가 나면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화가 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불안할 때도 원인을 분석하기 전에 불안하다고 적는다.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 있고, 그냥 지나가게 두어도 되는 날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관계에서도 더 잘하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기분에 따라 태도가 크게 바뀌지 않고, 말과 행동이 크게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다. 관계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걸, 오래 가져가야 할 관계일수록 더 분명하게 느끼게 된다.

배움에 대해서도 생각이 바뀌었다. 모든 배움을 성과로 바꾸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매일 조금씩 책을 읽고, 필요할 때 필요한 공부를 하되 그것이 언제 쓰일지는 미리 정하지 않기로 했다. 쓸모없어 보였던 것들이 나중에 나를 버티게 해준 순간들을 몇 번 겪고 나서야 이런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결국 2026년에 세운 계획은 하나뿐이다. 언젠가 되고 싶다고 말해왔던 그 사람에 오늘의 태도로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더 바빠지지 않아도 괜찮고, 더 대단해지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덜 흔들리고, 조금 더 솔직하고, 조금 더 책임지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계획이 삶을 끌고 가는 해가 아니라, 삶의 리듬이 계획을 이끄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2026년은 그렇게 조용히 단단해지는 해였으면 한다.

이 글을 공유하기:

글쓰는 범이

UX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경험을 글로 적습니다. 때로는 주제를 벗어나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9
좋아요
오~ 오~
0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