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날이다. 

이날 김영옥 대신 김은숙이 원정 차장이 되었다. 중국 돈을 액면과 진위를 구별하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고나서 나의 차장 일은 사명을 완수했다. 오늘부터는 자동차 전기 수리공으로의 역할을 해야 한다. 회사 구내에서 좀 떨어져있는 곳에 《라선ㅡ합ㅡ283》 번호를 단 버스가 서있은 지 반년 이상이 된다고 한다.  

-저 차를 살려라!  

이모부의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나진에서의 수리 작업은 약수터 버스 뒤를 이어서 두번 째로 시작되는 거였다.  

내가 원정 차장노릇 하는 동안에 중국에서 필요한 부품을 모두 내와서 용철이가 엔진을 다시 조립해 놓은 것을 어제 인력으로 들어올렸다. 공간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먼저 블록만 올리고 엔진 헤드는 버스 안에서 개스킷과 함께 조립한다고 한다. 이 작업이 오늘 오전내로 끝나면 오후부터는 내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운전수인 최광수가 버스에 붙어 있던 전기선을 죄다 훑어 내었는데 전기 작업을 아주 철저히, 깨끗이 할 잡도리였다.   

나는 온 오전 책만 보았다. 전기 작업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끝내야겠는지 궁리가 서지 않았고 선을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 지도 깜깜 부지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먼저 배터리부터 하나하나 해 나가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책에 있는 전기 원리도의 배터리로부터 찾았다.

 《-》 단자는 차체에 어스시키고 케이블로 《+》단자와 스타트 모터를 연결하고 굵은 전기선을 뽑아내 전류계에 간 다음 스위치에로 향한다. 스위치 1단에서 미터쪽으로, 코일 쪽으로, 발전기 릴레이쪽으로 각각 한 선씩 이어놓고, 2단에서 빼낸 선은 스타트 모터 마그네트 쪽에 연결한다.   

이것만 해결되면 다른건 무난하다. 스위치에 반대 방향으로의 3단이 있었는데 그 것은 오디오와 시가 라이터의 연결 부위였으나 중고 버스에는 이 두가지가 없으므로 무시해도 되었다. 

똥차라도 이런 똥차가 어디 있다드냐? 세상에! 가장 기본적인 것만 갖추고 있는 가장 원시적인 차, 나는 썩 후에 일본의 승용차도 많이 보아 왔지만 그보다도 2년동안 이런 똥차를 기본으로 만지고 다루었던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공부하는 데는 더 좋은 조건이었는 지도 모른다.  

오후에 광수와 같이 작업에 달라붙었다. 10일날 오후까지 작업을 끝내고 시동을 걸고 나서 모든 것이 정상이어서 흥분하고 있을 때였다. 스위치를 꺼버린 상태에서 시동이 꺼지지 않았다. 여러 번 반복했으나 고장은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가?  

오늘 저녁엔 차아바이가 전례를 타파하고 우리와 식사를 같이 했다. 조선에서는 중국 사람과의 동석 식사가 엄금되어 있었지만 같이 사업을 하다보면 어쩔수 없이 식사도 같이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정화가 주방장을 잠시 하고있는 데 같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고 원정 택시운전수 이창주는 요즘 점심, 저녁을 빼놓지 않고 같이 먹는다. 

운전수들은 일반적으로 차장이 집에서 점심밥 2인분을 도시락으로 싸 갖고 다니게 습관시키고 그게 버릇이 되어버렸는데 우리 집 밥과 요리를 먹어 본 사람은 자기 집의 밥이 맛이 없다면서 은근히 우리와의 식사를 기대하는 눈치였었다. 그러나 규정때문에 그리고 체면도 체면이라서 감히 큰 이모부의 위엄어린 얼굴을 마주 보면서 식사 할 위인이 몇 명 안되었다. 이모부의 메뉴에는 끼니마다 돼지고기 아니면 소고기가 있었는데 이 두가지가 없으면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뒤숭숭해한다.   

사장이 식성이 좋은 사람이라서 우리도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지만 이런 식사는 조선 사람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향수라고 할 수 있었다. 법적으로 소 도살이 금지되어 있는 나라, 게다가 소와 돼지는 수량이 너무 적었고 적은 월급으로 1년에 몇번이나 고기 붙이를 입에 대는 지는 손꼽을 수 있도록 희소하다고 한다. 

우리는 중국 시장에서 야채와 고기를 사다가 먹어댈 수도 있었다. 우리의 씀씀이에 조선 사람들이 눈이 데꾼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먹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게 이모부의 원칙이라고나 할까. 오늘 둘째 이모부가 나오면서 소 대가리를 하나 갖고 와서 그 것을 먹을 참이었다.   

식사가 한창 무르익는 중에 내가 끝내 참던 말을 끄집어 냈다.   

“발동이 안 꺼지는데 어느 선을 잘못 이었을까요?”  

물론 차영감에게 묻는 말이다.   

“영도동무, 식사 다 끝내고 얘기합시다.”  

시무룩히 웃어주는 차영감, 식사가 끝나 집에 간다면서 일어설 때까지도 수리 얘기를 더 하지 않는 차영감이었다.   

도대체 어느 선을 잘못 이었을까?  

시동이 꺼지지 않는다는 건 전기가 계속 공급이 되고 있다는 소리다. 스위치를 끄면 배터리는 차단 되는데 그렇다면 발전기의 전기가 공급되면서 발동이 꺼지지 않는 것일까? 

이 판단은 아주 적중하였다. 다시 전기 원리도를 펼쳐 놓고 그 선을 찾았다.   

( 이거로구나! )

원래는 작업할 때 불필요한 선을 하나 더 추가하여 발전기와 점화 코일을 연결시켜 놓았던 것이다. 그러니 시동이 꺼질 리 만무했다. 

인위적인 고장은 이로서 찾았고 작업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이었지만 이모부한테서 된욕을 한아름이나 얻어 먹게 되었다.   

“너 왜 영감한테 물어보니, 오? 그 영감은 이제부터 너를 업시(업수이)볼 거란 말이야! 내가 뭐라던? 몰라도 물어보지 말라고. 조선에서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위신이 납작하게 된단 말이야! 모른단 말 절대 하지 말아야 해! 니 이제 까딱하면 그 영감 밑에서 일하기 다 글러먹었다! ”  

(조선에서는 허심하면 안되는구나. )

그나저나 첫 차가 살아났다는(다 수리해내서 달릴 수 있게 되었다는 표현) 흥분감이 욕 먹은 뒤의 불쾌감을 덮어 버렸기때문에 이모부의 욕은 별로 개의치 않았고 배우기 위한 욕은 오히려 유익한 것이라는 생각마저 가지게 되었다. 

그후 이틀간의 도장 작업은 운전수와 차장이 수리반의 도움 밑에 순조롭게 끝냈고(분무기는 사온지 며칠 안됐는데 처음 작업이라서 용철이가 시범으로 했고 그후엔 전부 수리반의 기능공인 이창현이 맡아했다.) 운행전 마지막 작업으로 납빈과 다른 자질구레한 수리는 운전수가 맡고 청소와 시트 재봉작업은 차장이 했으며 차 감독소의 검사만 끝나면 운행할 수 있게 된다. 

차 감독소 쪽은 차영감이 서류를 다 해서 넣었다고 했다. 차영감과 둘째 이모부는 공동으로 여객 수송쪽에서 업무를 보아왔고 이제 해동이 다 되면 차영감은 지난해 채 끝내지 못한 건설 쪽으로 일을 본다고 했다.  

한차례 생동한 실습을 거친후 나는 5월 말까지 연이어 282, 252, 284, 285호 등 버스들을 육속 살려냈으며 엄청 많은 작업량의 일도 하루 새에 다 해낼 수 있는 기능공으로의 전환을 불과 2개월 만에 마칠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풍성한 수확으로 가득한 이 봄을 보내고 기쁜 심정으로 다가오는 여름을 맞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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