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여객 수송에서 단맛을 보면서 부업도 엄청 많이 했다. 

점차 부품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건축 자재도 많이 실어다가 쓰고 나머지를 팔기도 했다. 삼복철까지 선풍기가 잘 팔렸고 자금 때문에 TV와 카세트 녹음기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과 손잡고 하면서 수수료만 받았는데 그 수입도 짭짤했다. 택시업은 승객이 없어 창주의 차가 서고 말았는데 그 대신 종수가 88호로 드문드문 하는 정도였고 그 것도 종수의 개인 수입이었기에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장사 중에서 그래도 중고차 장사가 최고였다. 중국에서 중고차를 구해서 수리를 잘 해 갖고 내가면 대 당 순 이윤이 처음에는 2만원(중국 인민폐)이상 나왔으며 그 수입으로 회사는 초창기 당 해에 투자를 다 뽑고도 남음이 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돈을 버는 것이 자기 일처럼 기뻤다. 죽을둥 살둥 모르고 일했고 피곤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다.   

7월 초에 차 두 대에 슬레이트를 싣고 떠났다. 오후 시간이었는데 도로 공사 때문에 길을 에돌아야 했고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임시 도로가 말이 아니어서 차가 밀리였다. 앞차에 이모부와 용철, 영철이가 타고 떠난 후 나와 류위가가 슬레이트를 좀 적게 실은 중고차로 뒤를 따랐다. 

앞차는 대반령을 넘어 갔으련만 우리 차는 그때까지 산기슭에도 닿지 못했다. 차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오버 히트 하고 오일량도 줄면서 연유 공급도 딸렸는데 연유 펌프가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끝내 대반령 올리막 첫 커브에서 시동이 꺼지고 말았다. 

다행히 공구를 갖고 떠났고 후래시도 있었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연유 펌프를 분해해서 임시 조치로 고치고 나서 출발 했는데 1키로미터 좀 더 가서 이번엔 오일이 부족해서 엔진이 절어 붙고 말았다. 연유 펌프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오일 보충하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그렇게 정신 없을 때도 가끔 있었다. 이젠 구원을 청하는 길밖에 남지 않았다.   

나진에서는 되돌아오는 차를 타고 쟈쟈(류위가《刘伟家》를 그렇게 불렀다. 이모부 절친의 아들인데 중국에서의 애명을 발음 그대로 부르고 있었다.)는 훈춘에 돌아갔고 나는 혼자 대반령에서 차를 지키게 되였다. 구원 받을 때까지는 아무 노릇도 못하고 그렇게 있어야 했다.   

가까이에 샘터가 있다. 샘물을 마시고 나서 저도 모르게 부모님께서 들려주시던 옛 이야기를 떠올렸다.   

내가 태어나기 전해까지만 해도 대반령 너머로 차가 통하지 않았다. 고개 너머에 있는 외갓집까지 어머니는 계속 걸어 다니셨다고 한다. 단과 대학을 졸업하고나서 고개 너머 바로 산기슭의 소학교에 중국어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고 거기서 외갓집까지는 한시간 넘게 걸어가는 거리였다. 

그 동네가 소반령이다. 내가 태어난 후 소반령의 어느 할머니한테 맡겨 두었는데 지금도 이 동네에 가서 나이든 분들과 물어보면 어머니와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해 나의 돌 생일 전날 새벽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차가 통하지 않았으므로 아버지는 훈춘에서 나의 돌 생일 잔치를 치러줄 계획으로 아침 일찍 나를 데리러 길을 떠났다. 점심때가 거의 되어 이 샘터까지 왔는데 눈은 이미 반미터 정도 내려서 이제 더는 걷지 못할 상황이 돼버렸다. 기진맥진했고 눈길을 더 걷다가 사람이 잘못될 수도 있었다. 갖고 있던 주먹밥을 먹고 눈을 파헤치고 샘물을 찾아 마시고 나니 힘이 났지만 끝내 되돌아오기로 결정했다. 

아버지는 그때 중쏘 변경 지역의 깊은 산 속에서 병역중이였는데 눈길에 익숙했으며 그 경험이 있었기에 모험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날에 소반령 마을까지 갈 수도 있었으나 훈춘에 계셨던 할머니가 걱정하실 테고 군부대의 철 같은 기율(국경선 부근에서 병사가 단독으로 다니지 못함)도 무시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돌아섰다고 한다. 

전화도 없던 세월이었다. 날이 썩 어두워서야 아버지는 집에 돌아왔고 그 시각에 어머니는 소반령 할머니네 집에서 나의 돌생일 잔치를 치러주려고 의논을 하고 있었다.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거미줄밖에 걸리지 않는 가난한 살림으로 혈육도 아닌 애의 생일잔치를 치러주겠다는 그 인정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후더운 인정이리라!

요즘 세월에는 그런 인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할머니가 집집마다 (그 동네에 20세대정도 살았다.) 문을 두드려 가며 상차림을 준비하고 있을 때 큰 외삼촌이 눈사람이 되어 가지고 할머니 집에 들어섰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고 아무래도 훈춘으로 간 것 같지 않다고 생각되어 떠난 길이다. 

주인집 할머니가 극구 만류했지만 외삼촌은 나를 둘쳐 업었고 어머니와 함께 함박눈이 내리는 밤길을 다시 떠났다. 여덜시간의 강행군으로 마침내 외갓집에 도착하고 보니 눈은 이미 1미터나 내려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대반령이 눈에 막혀버린 덕분으로 이튿날 외갓집에서 돌 생일상을 받게 된 나다. 

하여튼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이 대반령은 나와 무슨 천고의 원한이라도 있는 듯이 언제나 내 앞길을 막아 주었고 그러다가도 기분이 좋으면 길을 열어 주어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게도 해주었다. 마침내 한달 후에 어머니가 훈춘 시가지에 있는 학교에 전근하게 되어 더는 어려운 걸음을 걷지 않게 되였으나 해마다 강냉이 철에 외갓집에 다녀오는 것을 지금까지 견지해온 터다. 

나진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며칠에 한번씩 들리었고 오늘같이 늦은 시간에는 어차피 두만강을 건너지 못함으로 외갓집에 들어갈 참이었는데 지금 이 꼴로는 그게 다 사치한 생각으로 되고만 것 같았다.   배도 고팠지만 구원차는 나타나 주지 않았고 먼저 간 이모부네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므로 답답하기만 하다. 

먹을 것을 들고 용철이가 나타난 것은 한밤중이었다. 외갓집 마을에 도착한 후 뒤차를 기다리다 못해 용철이를 보낸 거 였다. 혹시 우리가 훈춘으로 돌아갔다면 언녕 이모부가 늘 쉬여 가는 여관에 전화를 해서 상황을 알릴 수 있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반드시 도중에서 차가 섰다고 판단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이모부는 우리 외할머니 집에는 별로 들어가지 않았고 (이모부한테는 처고모였다.) 나진에 다니던 몇 년 동안 그 동네의 여관을 이용하였었다. 주인과 더없이 친근한 사이로 되었고 그 집 밥을 많이 팔아 주었다. 오늘처럼 훈춘으로 돌아가는 도로가 좋지 않고 다음날 아침에 나진으로 나가는 경우라면 그 여관에서 잠을 잤고 외갓집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그 동안 다니면서 많은 면목 모르는 사람들을 끌고 들어가기도 난감한 일일 수밖에 없어서 여관에 한 두 번 들리다본 것이 이젠 습관이 돼버린 모양이었다. 여관에서 자는 사람들은 편안한 밤이 됐겠지만 용철이와 나는 운전석에 앉아서 새벽까지 잤다. 

여름철이었지만 산 속의 밤은 추울 수밖에 없다. 대반령 산신 할아버지한테 제를 지내 본 적은 없었고 그렇다고 떨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도로 옆에 마른 나무를 모아놓고 불을 지폈다. 

아침에 영철이도 지나가는 차를 타고 되돌아 왔고 이모부가 전화로 훈춘의 차를 한대 불러 왔기에 그 차를 타고 온 종수와 쟈쟈 그리고 기사까지 여섯 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300장의 슬레이트를 옮겨 실었다. 무척 힘든 일이었다. 구원차를 불러오는 아버지를 기다리게 쟈쟈를 남겨두고 점심때가 다 되여서야 출발했다. 

새로 부른 차는 10톤 정도 실을 수 있는 트럭이었는데 훈춘에서 400장을 실은 후 출발했기에 아홉시 넘어서야 대반령의 샘터까지 왔고 옮겨 싣는데 거의 두 시간이나 걸렸던 것이다.  

회사에서 짐을 실어 나르는 트럭을 사기전까지 운임을 천 원씩 주면서 그런 차를 이용했었고 자기 차가 있은 다음에도 최고로 한꺼번에 다섯 대 필요한 때도 있었으므로 우리 회사 일감으로 많은 기사들이 돈을 벌 수 있었다. 그 날 전기사를 처음 면목 익혔고 후일 그의 180호 차를 거의 도맡다시피 해서 전기사는 톡톡한 수입이 나올 수 있었다.   

대반령, 여기에 일제가 30년대에 닦아 놓은 오불꼬불한 영길이 있다. 그 산길을 30여 년을 다니던 중 나는  하루 밤을 자고 난 그 날에 생각지도 않은 인생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이 대반령이 서서히 동북 아시아에서도 가장 빛을 뿌리는 영마루로 솟아나리라. 그 때가 되면 영마루에서 두만강의 새로운 모습도 보게 되고 두만강 양안의 아름다운 변모도 굽어 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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