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일을 하면서도 힘든 줄은 몰랐지만 아내와의 만남을 자꾸 생각하다보니 마음은 많이 지쳐 있었다. 

자고 나면 힘이 났고 그 힘으로 엄청 많은 작업량의 일을 할 수 있게 체력은 회복되었지만 상처 입은 마음은 아물어지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사람은 몸도 잘 따라주지 않는다. 가끔 실수할 때도 있었다. 

부탁한 물건을 잊고 사지 못했다던가, 오늘 중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룬다든가, 걸핏하면 성을 낸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까닭 없이 남을 욕한다던가 등등의 실수를 본의 아니게 저지르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7월 중순에 이모부 친구들이 나진으로 가게 되었는데 전부가 중국 한족 사람이었고 내가 안내하게 되었다. 타지방 사람들이였으므로 출국 수속도 힘들게 다 했고 출발 전날 같이 식사하자면서 나를 이끌었다. 마지못해 따라갔는데 성의껏 권하는 술을 거절해서 노여움을 샀고 분쟁이 벌어 졌었다.   

“당신네 총경리면 우리 큰형과 마찬가진데 오늘 그가 없으니 면목을 봐서라도 당신이 술 마시는 게 일리에 맞는 일일세.”  

했고  

“술 마시지 못하는 사람에게 권하는 것은 일리에 맞는 일 아닙니다. 남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일리에 맞는 것이지요.”  

이렇게 시작해서 옥신각신하다보니 기분 안 좋게 헤어졌던 것이다.  

술자리에서 중국 사람들은 성의껏 권하는 걸 반갑게 받아 마시고 그런 순배가 돌아가는 것을 제일 큰 예의로 여기고 있었는데 내가 그 전통에 도전을 하니까 아주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을 테고 나는 나대로 나의 견해를 고집해오는 터였다. 며칠 후 나진에 간 다음 병 때문에 술 못 마시는 이모부가 해석해서야 오해를 풀 수 있었으나 그들이 나진에 머무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항상 께름직한 것은 도저히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나진 술상에서 이모부를 로따로 부른 것을 계기로 하여 그때로부터 우리 식구들은 이모부를 로따(큰 형, 혹은 보스의 뜻)로, 둘째 이모부를 로얼(두 번째 보스)이라고 다 편한 호칭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로따, 로얼이라고 호칭을 바꾸기로 하겠다.  

그들이 귀국하기 전날인 7월 21일 저녁이 왔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내가 찦차로 퇴근하는 사람들을 실어다 주게 되었다. 이때 숙모가 물통을 들고 차에 타면서 맛좋은 차영감네 물을 떠오자고 했다.  

요즘 나와 숙모 사이에 자그마한 충돌이 있다. 저녁마다 용철이와 함께 차 타고 나가 술을 많이 마시고 돌아 오군 해서 내가 불만을 토했던 것이다.   

“아주머닌 왜 아까운 휘발유를 태우면서 저녁마다 다니는 거요? 남은 절약하느라 아득바득 하는데 조금씩이라도 오래되면 그 수량이 많지 않소?”  

여자가 술 마시고 게다가 나의 숙모라는데서 나는 아주 못마땅해 했고 훈춘에서 돈을 아끼느라고 택시도 타지 않고 뛰어다니는 나에게 있어서 술 때문에 낭비하는 휘발유가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제일 가까운 술집이나 식당에 걸어서도 얼마든지 갈 수 있었고 용철이가 매일 흠뻑 취해서 차를 몰고 돌아오기 전까지 다들 숨이 한줌만 해져 있었으며 어떤 날에는 다른 차가 고장나서 급히 수요되는 차가 나가 있었으므로 로따와 로얼이 곱게 보는 눈치가 아니었는데도 그 술놀이가 그칠 줄 모르고 있었다.   

식사 중에 그런 말을 많은 사람들이 듣는 데서 했기 때문에 숙모는 참으로 난감하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어서 요즘은 서로 눈치 보면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오늘 한밤중에 또 무슨 망발을 하려는지 진짜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미 조선 시간으로 밤 11시가 되어 있었고 그 시간에 조선 사람 집에 가는 것만 해도 규정을 어긴 정도가 보통이 아닌데 자는 사람을 깨워서 물까지 받아 온다니 머리가 돌아도 단단히 돌았다. 

이런 표현으로 숙모를 평가하는 것은 내가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시도 때도 아니게 함부로 자기 생각대로 겁도 없이 헤매는 것이 숙모의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했다. 로따는 사돈이어서 내놓고 말하기 거북한 입장이므로 내가 말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나의 잘못은 조용한 곳에서 말해야 할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그날 로따는 없었다.) 했으므로 숙모의 체면과 내 체면을 함께 사정없이 깎은 것이었다.  

혼내 준다는 것이 오히려 내가 마음에 멍에를 지게 되었다. 그래서 속이 부글부글해 있는데 오늘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을 눅잦히기는 다 틀렸다. 

차영감이 탔고 차장 두 명을 태우고 출발했는데 차영감이 신흥동에 있는 당신 집 앞까지 도착했을 때 먼저 두 차장을 청계동의 집까지 실어다 주고 뒤돌아 오자고 하는 바람에 그 쪽으로 신경질적으로 몰아가게 되었다.   

청계동은 1년 치고 전기를 공급하는 날이 며칠 되지 않아서 《까막동》이라는 별명이 붙은 나진의 제일 구석진 곳이다. 그 날도 달도 없이 새까만 청계동으로 헤드라이트 빛을 빌어 겨우 도착했고 차를 180도로 돌려 세우는 순간이었다. 

“저 운전수 새끼가 개새끼 같은 게 사람으 죽이자 한다.”  

조수석 쪽 도어의 유리가 내려져 있었으므로 그쪽에서 욕해대는 웬 사람의 말소리가 똑똑히 들렸고 헤드라이트의 어렴풋한 옆 광선으로 얼굴도 조금 보이였다. 차라고는 내 차밖에 없다. 분명히 나를 욕하는 소리였다. 

(웬 놈이 함부로 나를 욕하고 있다. 잘 만났다!)  

그때까지도 나진의 상욕에 습관이 채 안됐고 속 시원히 몸을 놀리고 싶어 졌다.   

“뭐가 개새끼야!”  

“너 이 새끼 차를 몬다는 게 사람을 왜 안 보니? 왜 내 쪽으로 몰아! 개새끼 날 죽이자고 그랬지?  응?”  

차 머리를 돌릴 때 분명히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이건 집탈이고 함부로 걸고 드는 무지막지한 놈이다.  

“뭐가 어찌고 어째! 이 개새끼!”  

순식간에 도어가 열렸고 내 몸은 어느새 차 앞을 돌아 조수석 도어 쪽에 가 있었다. 그때 그놈을 알아본 두 차장이 둘 사이를 막으면서 싸움을 말리려고 했다.  

“야~아! 춘그이 아저씨, 좀 이러지 마쇼!”  

“뭐가 어쨌다는 게야!”  

내가 더 다가들었다. 

이 놈은 나보다도 손이 더 빨랐다. 얼굴 쪽으로 날아오는 손을 아차 하는 순간 피하긴 했으나 손톱이 긁어내는 통증을 조금 느꼈다.  

“이 새끼 미친놈이구나!”  

차에 앉았던 네 사람이 말리고 있는 판에도 주먹과 발길이 오갔고 상대의 얼굴이 피범벅이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속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그 정도면 전쟁을 끝낼 때가 되었다.  

“빨리 가지 못해? 이 새끼야!”  

때에 맞추어 차영감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 놈이 손 힘이 센 아바이 손에 잡혀 있었으므로 나는 이제 차로 탈출하면 되었다. 멋 적은 판이 되기 전에 줄행랑이 상책이렷다.  한참 달리고 나서  

(아차!)  

숙모의 존재를 의식했다. 

다시 청계동 쪽으로 돌아 갈 수는 없고 그런 대로 길옆에서 한참 기다리고 있느라니 차영감과 숙모가 왔다.  

“에-씨, 내가 재수 없다. 온 몸에 피가 묻었다. 시계도 잃어 졌다.”  

영감이 푸념비슷한 말을 했고 숙모는 조용히 있었다. 영감이 집 부근에서 내린 후 물 떠오는 일을 집어치우고 그대로 안화동 쪽을 향해 운전했다. 장마당 부근부터 줄 욕이 터져 나왔다.   

“이 밤중에 이게 뭐요? 늦은 시간에 무슨 지랄이 나서 물을 긷겠다는 거요? 낮에도 올 수 있는걸 가지고 아주머니는 자기도 자지 않으면서 나까지 자지 못하게 이게 뭐요? 밤에 자지 않는 습관을 고쳐야겠소!”  

숙모는 저녁 늦게까지 자지 않거나 새벽에 자지 않는 괴상한 습관이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밸이 채 내려가지 않아 앞에서 뱀인지 구렁이인지 마구 튀어 나간다. 

숙모는 잠자코 있었다. 회사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야 밸이 풀렸다.  

“아주머니, 내가 버릇 없이 욕했는데 많이 용서해 주오. 그러나 앞으로는 아주머니와 다시는 같이 안 나가겠소.”  

숙모는 기분이 엉망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소리 없이 자기 방으로 갔다. 

찢어진 셔츠에 그 무지막지한 놈의 피가 얼룩져 있었다. 냇가에 앉아 목욕하면서 오늘 일을 생각하다가 피식 웃음이 나갔다.  

오늘 싸움은 표면상에서 청계라는 그 지점에서 그 놈과의 주먹치기였지만 결과적으로 나와 숙모의 대결이었고 나 자신과의 대결이었다. 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만 해도 좋은 일이었다. 내 자신을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스트레스를 어떤 방식으로 풀든지 자신을 사랑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남의 기분이 어떻게 되는지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나진을 떠나게 되는 그 때에 가서야 남의 기분도 좋게 해줄 수 있으면서도 나 자신도 사랑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을 터득하게 되었다. 후에 영감한테 시계를 사다 주었고 숙모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내 본의가 아니게 일을 치고 일을 친 후에는 후회가 들기도 했으나 후에는 어떤 결과가 될지 궁금하고 호기심이 동해 일부러 일을 치는 것으로 나의 괴퍅한 성미를 고치는 데 많은 경험을 얻을 때도 있었다.   

잠을 자고 있는데 경비가 침실 문을 두드려 댔다. 일부 영감이다. 새벽 두시였다.   

“순찰대에서 찾아 왔음다. 영도 선생 만나 보잡니다.”  

올 것이 드디어 왔다. 그 새벽에 로따와 로얼, 숙모와 같이 순찰대를 따라 장마당 파출소에까지 갔다. 

차영감과 그 놈이 이미 와 있었다. 알고 보니 차사업소의 성춘근이라는 버스 운전수여서 차영감이 잘 아는 사이였다. 

일이 이상하게 되었다. 목격자가 증언을 해야 했으므로 로얼과 영감이 두 차장을 데리러 청계로 갔고 나와 성춘근이는 사실의 경과를 말하게 되었다.  

사실 싸움이 끝나는 그 순간에 이자가 술 처먹고 걸고든 싸움이라는 걸 알고 싸움을 그만뒀던 거였다. 싸움을 해도 주정뱅이거나 술을 조금 먹은 사람과도 피하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나는 말짱한 정신에 한 일을 사실 그대로 말했고 성춘근은 자꾸 엉뚱한 쪽으로 말을 해댔다.  

“저 새끼가 나를 끼워 죽이자고 드니까 내가 따지고 들려 했는데 먼저 손을 쓰는 게 아니고 뭡니까?”  

두 눈 사이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왼쪽 눈이 부어서 눈알이 보이지 않은 것은 괜찮았는데 아래 위 입술이 다 터져서 돼지 주둥이 같은 입을 그렇게 놀리고 있었다.  

“그 주둥이를 그렇게 함부로 놀려도 되는 게야?”  

“이 새끼가 정말 보자보자 하니…”  

“그거 보시오. 내가 쌍말을 하니 아저씨도 기분이 안 좋지요? 우리 이젠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쌍말을 하지 맙시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 그제야  

“여, 동무 그때 말이요…”

하고 말투를 바꾸었고 나는 엉뚱하게 말하는 그를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구술이 끝나고 두 차장도 증언을 했다. 나중에 순찰대의 안전원이 하는 말.

“성춘근 아저씨는 술을 마시고 외국인인 김영도 선생과 싸움했는데 얼굴에 상처를 입었지만 일하는데 지장은 없을 것 같기에 이번 일은 두 기업소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십시오.”  

두 차장이 증언할 때는 아무래도 입장이 난처한 모양인 것 같았다.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있단 말인가?  

순찰대에서 외국인과의 싸움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몰라서 어떻게 증언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했고 회사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했다. 거의 사실에 가깝게 증언했지만 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에 대해서는 둘 다 기억에 안 남았다고 애매한 대답으로 얼버무리는 것이었다. 

혹시 정확히 못 보았을 수도 있다. 어둠속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싸움이니깐.  외국인과의 관련된 일에 있어서 언제나 이상한 마음 상태를 보여 주는 조선 사람들이었다. 지어는 불측하게도 적대심을 품고 상대하는데 대해서 뭔가 좀 알 것 같기도 했다. 항상 외국인을 간첩 상대하듯이 하는 그네들의 불손과 예의스럽지 못한 환경속에 점차 습관 되어 가고 있었다.   

성춘근이가 찢어진 바지를 배상하라고 했을 때 나의 피묻은 셔츠를 보여 주면서 거절했고 우리처럼 피곤해 보이는 순찰대 안전원들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말을 뒤에 남기고 다섯시 반에야 풀려 나왔다.   

“야~아, 영도가 그렇게 주먹과 입이 다 셀 줄은 몰랐다. 사람은 그래도 머리에 잉크가 많이 들어 있어야 해.”  

돌아오는 길에 차영감이 일행에게 말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 용철이가 전봇대에 부딪혀서 앞이 엉망진창이 된 나진의 UNDP 사무용 차를 수리해낸 후에 기능이 높다고 시적으로 소문을 놓았고 마침내 차영감의 긍정적인 승인을 받았는데 나는 오늘 주먹으로 최후의 승인을 받고있는 것이다. 

이미 나의 전기수리도 아바이의 인정을 받은 상태였다. 그 후부터 영감은 용철이와 나하고 호흡이 잘 맞았으며 수리반의 일은 영감의 격려와 지지로 더욱 능율적으로 할 수 있었으며 내가 없을 때 차영감이 나의 전기 수리를 대신해 주어서 마음놓고 인수원으로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종업원들은 처음에 영감의 말에 많이 좇았으나 그 후부터는 용철이와 나의 뜻을 잘 따라 주었다. 중국에서의 제1차 전쟁 뒤끝이 비참했던 거였다면 청계동 전쟁은 생각지도 않게 종업원들 중에서 내가 위상을 수립할 수 있는 계기로 되었다. 

물론 차영감의 관을 넘었기 때문에 종업원들도 따라서 인정하는 일종 선배-후배사이의 의식이라 할가, 그보다도 간부와 종업원 사이의 층차 의식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 사건으로서 조선 사람들의 의식 형태를 진정 알게 되었으며 후일 수리 작업할 때와 그 외의 모든 면에서 교묘하고도 능란하게 일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로따의 의견대로 아침밥을 먹은 후 그의 친구들 속에 끼워 비파도 관광 끝에 훈춘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르고야 말았다. 

며칠 후 출입국 사업처에서 벌금 천 달러를 받아 내겠다고 강경히 나왔으며 매일 나를 찾아다니면서 소란스럽게 굴었고 성춘근이도 나를 만나겠다고 쌍불을 켜고 다녔다는데 그 여운이 즘즘해져서 한달 후에야 다시 나진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 당시 삼복 철의 바다에서 놀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유감으로 남아있다.   

상식과 관념이 엄청 차이를 보이는 두 나라 사람들, 비록 같은 민족이지만 너무나도 다른 생활 습관과 불과 100키로미터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하늘땅 차이를 보이는 문화적 일면, 특히 정신적으로 항상 긴장하면서도 불안하게 보이는 조선 사람들이 음주로 마음과 몸을 마비시키면서 잠깐 느긋해지고 상스럽고 야한 말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듯한 모습이 안스럽기만 하다. 

그 보다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다니는 모습이 천하 제일 못볼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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