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구내에 들어서면서 오른쪽 첫방이 경비실이다. 

수리반에서 휴식할 때 들어와 있었고 날씨가 추웠으므로 모든 회의는 다 이 방에서 했는데 회사의 회의는 아주 적게 열었고 주로는 당원회의와 직맹회의 그리고 사로청원들의 동맹회의였고 그 외 운전수와 차장 공동회의가 가끔씩 있었다. 

네 명이 겨우 비집고 잘 수 있는 온돌 방과 출입문 쪽의 현관으로 된 경비실에 많을 때 40명이 모여서 회의를 할 때도 있었고 회사 방문을 온 사람들이 잠깐 들리기도 하고 전화하는 사람들이 들낙거렸는데 로따와 비서가 제일 많이 사용하고 종업원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회사 옆의 주민인 보위부 가족들이 자주 이용했었다.  

온돌 방의 북쪽 벽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고 동쪽 벽에는 김부자가 사업 토의하는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조선의 기업소들마다 사무실에서 늘 볼수 있는 광경이다. 이불장 하나가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불 두채가 때가 새까만 채로 그 안에 들어있고 그 것은 밤 경비가 잘 때 쓰는 거였으며 온돌위에는 항상 꽁초가 수북한 나무 재떨이 한개가 놓여 있다. 

온돌방과 현관은 벽을 사이두고 있고 현관 서쪽 벽에 수리공들의 작업복이 걸려 있고 동쪽벽 아래 쪽의 굴뚝으로 통하는 좁은 온돌(의자 맞잡이로 사용되었다.)과 출입문 사이에 전화기를 올려놓은 삐거덕거리는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다. 

이 경비실은 일년 사철 사무실, 휴식실, 회의실 공용으로 사용되고 있는터이다. 또한 차영감의 이야기 프로가 진행되는 곳이기도 했다.  

요즘은 회사에 다니는 방문객이 많아져 낮 경비를 두고 있었는데 차장하던 허은희 아지미가 낮 경비를 보고 있다. 차장을 잘 했었고 경비서는 데도 심히 엄격하여 다들 마음놓을 수 있게 하는 아지미였는데 고운 얼굴에 애 두명과 남동생이 딸려 있는 과부였다. 

대기실을 짓는 범위안에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살던 집이 있었는데 다 싹은 철기와에다 흙벽으로 지은지 오래되는 20㎡정도의 온돌 집이었지만 회사에서는 내화 5만원으로 사들였으며 은희 아지미는 그 돈으로 남동생을 장가보낸다면서 장마당(시장)에 뻔질나게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조선에서도 홀아비와 과부 문전에 시비가 많은 것 같았다. 사람사는 동네 어디나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일이었다. 

운전수 중에서 박동혁이 홀아비고 이혼한 후 딸과 함께 남의 집옆에 붙여 지은 곁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떤 군관의 아내와 애매한 관계가 있다고 쉬쉬한 소문이 났으므로 어느 한번 조용한 기회에 나하고 어리둥절한 말을 해온 적이 있다.  

“이 사람들 왜 씹기를 이렇게 좋아할까?”  

그 말을 나는 자기 나름대로 사는 데 왜서 없는 일도 보태가면서 얼굴도 쳐들고 다니지 못하게 악담으로까지 소문내느냐로 이해했었다.  

허은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죽은 남편과는 재미없이 살았는데 은희 쪽이 성질이 너무 강하여 자존심이 강한 남편을 절망에 빠지게 만들었고 처음에 칼로 배를 가르는 자살을 제지시켰음에도 두번 째의 자살에 성공하여 끝내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한다. 

두번째에는 다시 한번 배를 가르고 부엌에서 불 때는 은희에게 잘라낸 밸 토막을 뿌려줬다고 한다. 의료 시설이 형편없는 병원에서 저 세상으로 맹렬히 달려가는 사람을 붙잡을 수 없었고 정신 이상형으로까지 발전한 사람의 결심을 막지 못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지미는 남들이 뭐라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아무런 일도 없는듯이 열심히 출근하고 열심히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차영감이 이들 두 사람을 성사시켜 주려고 무척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종업원들의 생활을 관심하는 입장에서 하는 노릇이어서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먼저 은희의 의견을 들어 보니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동의해 왔고 다음은 동혁의 생각을 물어 봤는데 그 자리에서 퇴박놓더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직접적인 만남을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채 차영감이 계획했던 대로 안되고 시시하게 끝나고 말았었다. 

그런데 차영감보다 더 적극적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나의 숙모였다. 부기실에는 부기장으로 숙모외에 출납원인 남연숙과 차춘화가 있다. 

남연숙은 매일이다시피 현금 입금과 출금때문에 은행에 다녔고 오누이를 두고 상부한지 2년 되었는데 혼자 벌어서 세식구가 어렵게 살고 있었고 차춘화는 차영감의 막내 딸로 키가 작은 것이 흠이지만 남연숙과 같이 버스 수익금을 매일마다 정리했고 무역은행(일명《황금의 삼각주 은행》이라고 부른다. 조선중앙은행 나진지점과 같이 이 두 은행이 나진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고 그때 당시는 이 은행만이 외화 업무를 보았으나 1년 후에는 두 은행이 함께 외화를 관리하기 시작했다.)에 외화 업무로 다녔으며 회사의 청소와 낙지 밸 따기, 우리 식구의 두부 심부름에다 침실의 부엌 불을 때는 것까지 도맡아하는 맘씨 곱고 일 잘하는 처녀로써 숙모가 며느리로 삼지 못해 안달아 할 지경으로 고와했었다. 화교와의 결혼은 승인해 주었으나 외국인들과의 결혼은 정책상 불가능했으므로 그냥 말로만 칭찬해주고 고와해 주는 데만 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박동혁이 은희와의 결합을 천부당 만부당이라고 생각하고 퇴박놓은 지 얼마되지 않아 남연숙이와 연애할 수 있게 숙모와 차영감이 함께 나섰다. 숙모와 연숙이 아지미는 한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정이 깊어졌으므로 서로 허물하지 않고 집일에 대해서도 서로 견해를 나누고 있는듯했다. 

그해 겨울에 시작된 연애는 둘 사이에 서로 생활상에서 많이 도와주는 사이로, 마음을 위안해 주는 사이로까지는 된듯 싶었으나 누구나 선뜻이 결혼 말을 꺼내지 않았으므로 내가 나진을 떠날 때까지도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종업원들의 여러가지 생활상의 일로 조선 사회도 중국에서 겪었었던 그 어느 시기와 비슷한데가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고 인정 세태와 도덕 기준이 사회에 영향주는 그 무엇을 느낄 수도 있는듯 했다.  

장마당에 다니는 것은 경비를 잘서는 전제하에서 있을수 있는 일이다. 은희는 전화 심부름을 잘 해주었고 방문객을 신분에 관계없이 사무실의 지시가 있기 전에는 절대 들여놓지 않았다. 남자들의 음담패설을 잘 들어주었고 농담도 잘 받아주었다.

그 작은 경비실에서 내가 인생에 대해 뭔가 좀 알게 되였다고 하면 아마 독자들은 믿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인생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로서의 감수가 그만큼 깊었기때문이다.  

우선 경비실은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냄새가 가장 심한 곳이었다. 여기에 수리공들이 드나들었기에 퀴퀴한 오일 냄새와 연유 냄새까지 났고 그래서 나진 사람들의 생활을 냄새로부터 분석해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생활, 사회의 세포인 가정마다 벽돌 한장 유리 한쪼각, 전구 한알, 전기선 한토막 때문에 추위와 어둠에 시달렸고 종이가 없어 학생들이 노트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식사하는 데 식기가 부족하고 조미료 대부분은 일본산 아니면 중국산이었는데 음식 중에 된장이나 일부 야채, 쌀외의 거의 모든 것은 수입에 의뢰한다. 

의류와 신발류는 전부 중국 산으로 수입하고 수입 세제를 사는 돈이 아까워서 옷도 말끔히 빨지 못한채 입고 다닌다. 

화장품과 시계류, 악세사리도 수입한다. 전기 공급이 안 좋아서 배터리로 전기문제를 해결하는 가정이 더러 있었으나 비싼 배터리도 대개 고급 가전급에 속하는 물건이어서 아무 집에서나 다 갖추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칼라 TV, 카세트 녹음기와 선풍기, 비디오도 수입하는데 대부분이 중국 상품이고 TV나 비디오, 자전거, 냉장고, 세탁기는 중고품으로 일본에서 들여왔으므로 사실상 일본의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이나 중국의 중고 승용차와 중고 트럭이 많이 수입되었으므로 폐차장과 다를바 없다.  

배급제가 지대 안에서만은 취소된 상태어서 생활비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데 물가에 비해 생활비가 상대적으로 적었으므로 한푼도 쪼개 쓰는 생활이다. 나진의 인당 평균 수입이 2천정도라니 400원짜리 목욕을 어떻게 마음놓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공짜를 많이 기대했으며 도둑질이 창궐해 질수밖에 없다.  

어떤 집에는 생활비 타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배급제 덕을 보던 놀고 먹기를 좋아하던 족속들이 인제 아무런 준비없다가 갑자기 경쟁사회에 들어서고보니 아무도 관심 해주는 자가 없다. 친척들 사이 혹은 형제 사이에 어쩌다 쌀 한 자루라도 생기면(중국 친척들이 갖다주어야 이런 행운이 있게 된다.) 서로 다투어 가졌고 자기 생존 때문에 체면이나 사양이라는 것을 전혀 볼 수 없고 낯가죽이 두터울 대로 두터워졌을 뿐만아니라 생존의 유일한 방법으로 도둑질을 하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제쪽에서 오히려 당당하게 나온다.  

한마디로 돈이 문제다. 돈이 있으면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경쟁사회로 하루 밤새에 진입한 사람들 중 기능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낙오자로 될 수밖에 없다. 돈이 나올 데가 없고 배급도 없다. 부모 형제나 친척 그리고 친구들한테서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살 것이냐?
어떻게 해야만 살 수 있는가!? 

결국 선택한 것이 도둑질이다. 

지대밖은 도둑질하려 해도 도둑질 할만한 물건이 거의 없고 경비가 잘 지켜주어 도저히 도둑질해 내지 못한다고 들었었다. 지대안은 물건이 풍부했다. 게다가 물건임자는 거의 다가 외국인이다.  

입동하기 전에 침실에서 손목 시계, 전기 밥솥과 치약, 비누, 구두 약, 구두 솔 따위를 도둑 맞혔고 회사 구내에서 배터리, 부품, 공구, 마른 낙지 지어는 빨래도 잃어버린 적이 있었던 우리는 나진에 좀도둑만 많은 줄을 알았었다. 

좀 심한 도둑이라 해도 차에서 연유를 빼가고 타이어, 발전기, 디스트리 뷰터, 헤드라이트, 오디오 따위를 채가고 쌀을 마대 채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랬기에 언제 한번 발편잠을 자지 못하고 향상 긴장한 상태로 살았으니 그 피곤함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이렇게 경비실은 나진의 생활을 말해줄수 있는 곳으로서 별의별 사람들이 다 오갔으며 이상한 전화도 자주 걸려오군 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하루였다. 은희가 총경리 선생을 찾았는데 청진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여보시오. 어디십니까?”  

“여보시오. 수고하오. 거기 휘발유가 나왔소? 중국 아덜이 있소?”  

아덜이란 함북 사투리로 《아이들》의 줄인 말이고 남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다. 청진에서도 나진에 와서 가끔 휘발유를 사갈 때가 있었다. 경유 공급은 거의 딸리지 않고 휘발유는 나라적으로 공급이 시원치 못한 형편인지 가끔 지대 밖에서 나진에 와서 사간다.  

“아덜이란게 뭐요? 전화를 그렇게 건방지게 하는걸 어디서 배웠소?”  

로따도 말투를 고쳐가고 있다.  

“여기 청진 보위부요. 휘발유를 좀 사려고 그러오.”

“당신 누군데 계속 건방지게 노는 거요? 보위부고 뭐고 있어도 안 팔겠소!”  

“아, 이 동무가 말이 아니구만. 거 중국 아덜을 바꿔 주오.”  

“나 외국인이오. 동무하고 볼 일이 없으니 다시 전화하지도 마시오.”  

“여보시오 예. 중국 분입니까? 청진 보위부 자재 지도원입니다. 전번에 가서 사지 못했는데 휘발유가 있는지 알아보느라고 전화했습니다.”  

“보위부고 지도원이고 당신 네가 오면 무조건 안 팔겠소.”  

-어디서 하던 버릇을 나한테 들이대는 거야?

그렇게 혼자 말하는 로따는 이미 전화를 끊고 있었다.  

자동이 아닌 전화가 청진에서 걸려온 것도 아주 힘들었겠는데 그쪽에서는 아마 전화로 해결되려니 생각했으리라. 

그 이유는 교환에 교환을 거쳐 성공적으로 전화가 걸렸고, 보위부라는 안목으로 얼마든지 남들이 구하지 못하는 것을 구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터이고, 게다가 그런 부문의 권력 뒷심으로 아무에게나 건방진 말투로 명령식으로면 해결받지 못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렷다. 

권력부문에서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방식이 우리한테서 통할리가 만무하다.  나진의 사투리로 존경어가 아닌 건방진 말투에 아직까지도 습관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청계싸움을 한 내가 아니었던가? 나진에 오래 다닌 로따도 참기 힘들었던가 본다.

아무리 권력부문이라지만 어찌 전화상에서 그렇게 건방지게 놀 수 있단 말인가?  중국 아덜이 어떻소, 일본 아덜이 어떻소, 미국 놈들이 어떻소 하는 식의 말투는 이미 습관이 되어 우리 앞에서도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는데 이번 전화의 주인공은 상대의 신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건방지게 전화했고 전혀 미안한 말투도 아니더라고 로따는 재수없다는듯이 말하고는 이 전화가 다시 오면 휘발유가 없다하고 그냥 끊어 버리라고 한 뒤 나갔었다. 전화 한통으로 청진 보위부와의 거래는 끊어졌고 그 전화는 다시 걸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경비실 바로 뒤에 보위부 가족사택이 있었다. 

전화는 기관, 기업소에 있는 외에 장자 붙은 간부나 지배인들의 집에만 있는듯 했고 일반 주민의 집에는 전화가 거의 없는 형편인 것 같았는데 우리 경비실 전화를 동네에서 쓰고 있었고 아주 제집 물건 다루듯 했다. 그렇게도 떳떳하고 아무런 주저심도 없이, 보위부 가족인데 네가 감히 나를 어쩌겠느냐는 배짱도 있는듯 했다. 게다가 전화 한 통에 보통 20분이다. 

경비들은 감히 막지 못했으나 업무때문에 우리는 막지 않을 수 없다. 전화비를 내지않는 것만도 기막힌 일인데 회사의 정상적인 업무에 지장주는데 대해서도 그들은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아주 기고만장인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해야 할 전화는 다 했다, 내 볼 일은 다 봤으니 내 좋으면 그만인 것, 당신들의 업무는 나와 하등의 관계가 없지 않느냐, 업무가 망태기 되면 너희들 중국 꽃제비들이나 망하겠지, 콱 망하기나 해라! 속시원하게! 그런 표정이다.  

기업소의 전화를 아무 부담없이 써오던 그들이고 외국인 기업이 진출해서 돈 좀 벌고 회사가 잘 되어가면 배가 아파서 견디지 못하는 그들이 모든 외국인들을 적대시하는데는 친선적이고 호혜적인 국제 관례를 몰라서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느정도 이해되기도 했다. 

한편 한창 통화 중인 전화를 끊어 놓아 말시비를 캔 일이며, 경비를 보고 전화 한통에 백원 받으라고 한 일이며, 직접 정문에서 회사안에 들어오는 동네 사람들을 들여놓지 않는 등 나는 구내에서 전화때문에 많이 신경 쓰기도 했다.

그중 한 토막을 적기로 한다.  

보위부 간부로 이철이라 부르는 동네 사람이 있었다. 유난히 바람 피우기를 좋아했는데 어느 한번 덜미를 잡혀 옷을 벗게 되었다. 말하자면 군복을 벗고 강제제대된 것이다. 

일반인이 남녀관계가 난잡하면 단련대에 보내고 거기서 혁명화시킨다고 했다. 다시 사람이 되게 교육받는 일이라고 이해된다. 그런데 이철이는 그냥 옷만 벗고 단련대 신세를 면했다. 그 정도로 영활하게 줄타기(어떤 일을 자기한테 유리하고 잘되는 쪽으로 해결받기 위해 빽이 있는 사람을 찾는 일)도 잘하는 사람이다. 

무슨 장사를 하는지는 몰라도 늘 전화 옆에 붙어 있었고 통화내용도 장사에 관계되는 것이었다. 장마당 부근에서 천을 필채로 메고 오다가 우리 버스를 만나면 실어 왔고 회사의 공구를 마음대로 쓰고 있었다. 

그라인더에 자기 집 도끼를 갈아 내느라고 다 못쓰게 만든 일도 있었다. 그 그라인더는 내가 사온 것이고 바가지를 쓰고 나서 큰 싸움(제1차 전쟁)을 한 적도 있는지라 곱지 않게 보고 있는터였다. 장사 일로도 언녕 단련대에 가 있어야 할 사람이 경비실에서 하루에도 여러 번씩 전화를 해대고 있다.  

“우리 총경리 선생이 대외 사람들을 들여놓지 말라고 했음다.”  

어느 날 정문으로 들어오는 이철이를 내가 막았다.   

“전화 좀 하기오.”  

“들오지도 못하는데 무슨 전화요?”  

내가 나진에 있으면서 딱 한가지 못해낸 일이 있는데 바로 이 이철이란 사람을 손찌검하지 못한 것이다. 한번 크게 싸워 이 사람을 철저히 무너지게 만들어야 했었다. 인민위원회와 시당에까지도 문제가 제기되어 그 사람을 납작하게 만들었어야 했었는데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잘난 전활 가지고 별낳게(이상하게) 논다, 씨.”  

“옳습니다, 그 전화는 사장동지가 쓰는 전화가 아임다.”  

청계싸움 끝에 나진 사람들의 건방진 언행에 더러 습관됐고 많이 침착해졌다. 그러나 이미 내 손이 그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내 손을 뿌리치기가 힘들다는 걸 알아챘다는듯이 마구 밀치면서 들어오던 걸음을 멈추더니 한참 쏘아보다가 되돌아 나갔다.  

“에씨, 재수 대가리 없다.”  

그렇게 씨벌여대는 뒤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이 어쩌다 무참히 꺾이는 자존심을 어찌하려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는 피씩 웃고 말았다. 

죽어도 꺾이지 않는 고집과 자존심을 나는 여러번 꺾어놓은 적 있다. 경험도 적고 세상 물정이라면 이 나라 안밖에 모르는 사람들의 괜한 고집과 쓸데 없는 자존심 때문에 논쟁을 많이 해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리 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었고 그네들은 한번만 꺾이면 인츰 곰상곰상해 졌다. 

우린 이미 여러 가지 대수리를 하면서 생동한 공부 시간을 많이 주었기 때문에 종업원들의 인정을 받은 터이고 이철이도 얻어들은 것이 있어 우리 습관을 좀은 알았던 것 같다. 수리반의 업무를 능율적으로 하려 했던 우리의 최초의 생각은 이제 본의 아니게 종업원들뿐만 아니라 회사 외의 사람들한테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이철이가 하도 종업원 아닌 종업원 구실을 많이 해왔고 그 때문에 나와의 싸움도 일어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철이는 자기 절로 뭐나 다 망했다는 《탕진》으로 사장이라 자처하는 모양이었다. 경비실에 나타나면 자연 옛날 거드름에다 사장 틀도 제법 차리기까지 해서 종업원들은 탕진회사 《사장동지》라고 친절하게 불러주고 있었다. 그 탕진회사 사장동지의 일로부터 군대와 일반인의 천지차이를 실감있게 터득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경비실은 부품 사러 온 사람들끼리 서로 부족한 것을 뺏느라고 시비하는 싸움터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우리가 말참견해서 구슬려 보내기도 했지만 많이는 차영감이 풀어주었다. 

추운 날씨여서 모든 것이 실외 작업이나 다름없는 우리들이 경비실에 모여들거나 조금 한가할 때면 경비실은 또한 차영감의 이야기로 웃음 한마당이 되기도 했었다. 그랬기에 경비실은 차영감이 이야기로 주인 행세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제 차영감의 이야기중 몇개만 소개하기로 한다.  

알고 보니 차영감은 원래 옛날 깡패 조직의 둘째 오야였다. 회사의 운전수로 지금 단련대에 가있는 전은선이 그때 셋째였는데 구내에서 습관적으로  

“셋째야, 셋째야!”  

하고 부르는 아바이를 경비실에서 알게 되었던것이다.  

늘 다니는 식당에 한 처녀가 있었다. 갈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이 처녀만은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았고 언제나 엇먹이군 해서 언제 한번 단단히 골려 주기로 했다.  

낮잠을 자고있는 처녀의 인중에 나무 막대기로 인분을 묻혀 놓았다. 잠을 깬 처녀는 똥 냄새가 나는지라 당황하기 시작했다.  우선 잠자리부터 훑어보았고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변소로 달려갔다. 지퍼를 내리고 팬티안에까지 자세히 확인을 했지만 똥 묻은 데를 찾지 못했다. 

모든 것을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훔쳐 보았고 안달아하는 처녀를 깨고소하게 생각했다. 바로 자기 얼굴 코 밑에 묻혀져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처녀가 하루 종일 불안에 떠는 모습을 기껏 구경하고서야 아바이네들은 떠나갔다. 이튿날부터 그 처녀를 다시 보지 못했다고 한다.  

자꾸 먹기만 하고 외상놀이가 그치지 않는다. 빚 재촉이 성화같고 어느 하루는 일행이 전부 가서 차려놓고 먹고 있었다. 먹고나서 외상값을 물겠다는 배포다. 

거의 다 먹었을 때 게임이 시작되었다. 비여 있는 접시를 앉은 자리에서 뿌려서 전구를 마스는 것이었다. 하나도 빗나간 데 없이 식당 안의 전구가 하나하나 깨여지니 도망치는 사람들로 이미 수라장이 된 식당 안에 갑자기 어둠마저 들이닥쳤다. 

식당 사람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일행은 뿔뿔이 도망치고 말았으며 그 뒤 그 식당에 다시 가지 않았다 한다. 오야는 후일 살인죄로 처형됐으며 다들 헤어지고 아바이와 전은선이 나진에 남게 되었다. 깡패사회의 이야기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그 정도밖에 못 들었다.  

이미 해고된 김춘복이 차 사업소에 있을 때 어느 한번 버스의 점화코일을 잃어 버렸다고 했다. 아바이가 기사장을 하고 있을 때였고 새 코일을 어렵게나마 구해서 주었다고 한다. 

아바이는 그때 이미 수작업으로 점화 코일을 만들어 내는 보기 드문 기능공이었다고 한다. 점화 코일은 기계 작업으로 만들려 해도 엄청 힘든 것인데 에나멜을 감는 횟수만 해도 2만여회이다. 

휘발유를 점화시키는데 필요한 고압 전기를 발생하는 변압기의 일종으로써 개솔린 엔진에 없어서는 안될 관건적인 부품이고 아주 정밀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부품을 아바이가 수작업으로 만들어 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은 전자식으로 된 차들이 많기에 그 부품이 보이지 않는 차들도 있지만 개솔린 엔진이 점화 코일이 없을 때 시동거는 일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독자들도 쉽게 생각해낼 수 있다. 

김춘복에게 감아주지는 않고 구해서 주긴 했지만 어쩐지 거짓말처럼 생각되어 마음에 항상 께름직했다고 한다. 전날 저녁에 경비는 도둑이 든 기척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김춘복이 일찍 들어 왔으면서도 남들과 같이 퇴근했다는 일이 더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약 1년 후 아바이가 알고 있는 다른 운전수와의 한담 중에 김춘복이에게서 코일을 사 가졌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차가 바로 옆에 있어서 확인을 했는데 틀림없이 원래 김춘복의 차에 썼던 코일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원래 부품이 적어 모양에다가 모델까지도 환히 기억할 수 있었을 뿐만아니라 상세한 기록을 해놓기까지 해서 아바이가 특별히 기록을 뒤져보아서 그 코일만은 머리에 인상깊게 남겨두고 있는 터였다.  

김춘복에게 한바탕 욕사발을 퍼부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나라의 재산을 함부로 움직이는 사람이 외국인 기업이라 하지만 이미 나라의 재산이나 다름없는 우리회사 구내에서 어떻게 일을 잘해낼 수 있겠는가? 

면허증 박탈로 해고된 것도 어찌 보면 잘된 일이라고 보아진다. 첫 출국때 함부로 외국인 침실에서 술을 마시던 그를 보았고 규정도 함부로 무시하고 음주운행을 하는 그런 사람은 아무리 기능이 높다 해도 둬두고 쓰지 못하는 것이 우리 실정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나 함부로 하기에 습관된 사람들은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지 못했고 경비실에서 자기 짐을 챙겨 가지고 떠나갔으니 경비실은 또한 그네들이 떠나면서 아쉬움을 남기는 곳이기도 했다.  

생활비가 많이 나오는 외국인 기업을 동경하여 입사하면서 첫 코스로 경비실에 들어섰던 그네들이 자기 자신을 미워해야 할지, 회사를 미워해야 할지, 그리고 그 누구에게라도 콱 저주를 퍼부어야 할지 모르는 착잡한 심정으로 떠나는 마음은 도대체 어떠했을까?  

백여년전부터 중국 조선족의 1세는 정든 고향을 떠나 두만강 저쪽 북간도로 정처없이 떠나 갔었다. 경북 영천의 시골에서 살던 우리 증조 할아버지네들은 훈춘 곁의 왕청이라는 곳에 정착했고 나진에서 살던 외가집은 지금의 경신으로 이사했었다. 일제의 발아래 짐승같은 생활을 했지만 그래도 가정의 오붓함을 느낄수 가 있었다. 

동족 상잔의 뼈 아픈 역사 후에 조선족의 2세는 아버지가 없는 암담한 생활을 겪었는데 여기 조선도 마찬가지로 남자를 구경하기 힘든 생활이었고, 중국에서는 개방 후로 많은 젊은 여자들이 외국으로 진출했는데 돌아오지 않는 외에 큰 도시에도 많이 몰려갔으므로 조선족이 살고있는 시골 동네에서는 여자를 볼 수 없다. 젊은 여자가 나가면 결국 애까지 데리고 가는 것과 같기 때문에 조선족의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노총각의 시대를 겪고 있다. 우리 조선족의 미래가 도대체 어떤것인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조선은 어떤가? 

젊은 남자 대부분이 군대에 가므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여자뿐이다. 남자가 없던 옛날 세월이 지나가고 또다시 남자가 없는 시기를 겪고 있는 조선이다. 여자들이 고된 일을 하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조선의 미래도 어떤 것인지 안타깝기도 하다. 

어서 빨리 그 콘크리트 장벽이 무너져야 한다. 이산된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사는 그런 시대가 와야 한다. 우리 민족의 모든 문제가 풀리는 그런 시대를 당겨와야 한다. 

내 조상의 나라가 하나로 강성해지면 우리 조선족도 그 덕을 입게 되겠고 다시는 남에게 조롱당하고 멸시당하는 그런 생활을 하지 않게 되리라.  

그 작디 작은 경비실을 떠나가는 사람들의 뒤 모습에서 나는 조상의 모습을 보는듯 했고 민족의 미래까지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나 개인의 생활과 가족의 생활이 엉망이고 뒤죽박죽된 것이 역사적이고 지역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백의겨레라는 우리 민족이라는데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되었고 이제까지 지내 온 내 인생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 때가 바로 그때-나진의 초겨울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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