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진에서 우리만 사업하는 게 아니다. 

나진이 개방된 후로 중국만이 아닌 일본, 태국, 캐나다,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 나라와 지역에서 투자가 들어왔고 장사에서 우리의 경쟁 상대는 주로는 중국의 다른 투자자들이었다. 

로따가 몇 년간 나진에 다녔고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거래한 기업소도 많았지만 새로운 경쟁 상대가 자꾸 늘어나는 마당에 거래할 수 있는 상대를 최대한도로 끌어당겨 오는 것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거래할 수 있는 상대가 많아진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회사의 이익도 많아지는 것이었기때문에 로따는 이제부터 새 시장을 개발하는 일에 나서게 된 것이다. 

건설 일이 많던 올 여름철에는 우리 회사의 무역 거래가 적었으므로 겨울에 뭔가를 해야만 손실을 최소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잡은것이 선봉 화력발전소의 파이프건이었다.  

선봉 탄광판매소에서 주문한 새차가 훈춘에 도착했는데 이제 세관 수속을 하고 나진에 내가면 되었다. 대기실 건설에 필요한 시멘트를 5t 싣고 일부 구간이 완공된 포장 도로를 달려 보았다. 2t급차에 5t 실었으나 포장도로에서는 100키로의 시속으로 달린다. 그동안 중고차를 거의 20대를 나진에 몰고 나갔으며 차 고장으로 무던히도 고생했었다. 

새차를 처음 운전해보니 정말 기분이 좋다. 이런 차만 계속 운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아무런 이상도 없이 나진까지 몰고 갔다.그때 새로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봉 화력발전소에서 주문한 파이프를 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기실 벽체가 다 올라가기 전까지 샤시 기능공 두명을 불러 내가야 하고 영철이의 일을 도와서 일할 수 있는 사람도 데려가야 한다. 샤시 업종(나진에서는 늄창 제조업이라고 했다.)을 새롭게 신청했고 거의 비준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주문을 받아 놓은 것도 있고 일단 대기실부터 먼저 완성해야 했다. 

영철이의 일이 많아져서 혼자 창고와 연유 지급을 다 볼 수 없었기에 전문 연유를 공급하고 윤활유(주로는 오일)를 관리하는 사람이 급히 필요했고 매점에도 한명이 더 필요했다. 식구가 바야흐로 더 늘게 될 정도로 업무가 많아졌기에 부기실에 경비실과 브로치가 된 전화를 하나 더 놓게 되었다.  

눈도 어지간히 내렸다. 내 생일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면서 일에 부대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생일이 자난지도 며칠 되었다는것을 생각해낸 나였다. 

돌 생일상을 세 집에서 갖추어 주더니 이제는 생일도 변변히 쇠지 못하는 부평초같은 신세가 되어가는구나 하고 생각을 하니 어느덧 김삿갓을 떠올리게 되었고 집에 돌아간 후 사우나에 한번 들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싸움을 여러번 하는동안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지만 얼굴 모르는 여자와 잠깐 동안이나마 사랑을 나누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훈춘에 도착하면 목욕하고 밥도 먹은 후 집에 간다고 전화를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나진-원정 구간의 비포장 도로에서 먼지를 푹 뒤집어 썼고 교두쪽 두만강의 강바람과 채 완공되지 않은 중국 도로에서도 흙바람을 안고 들어와야 했으므로 도착 후면 언제나 목욕부터 했고 여자가 있는 욕탕으로 향하는 것이다. 

여름철에는 일반 욕탕에서 값싼 여자들을 만났지만 겨울철엔 비싸지만 난방 시설이 좋은 사우나에 출입하는 것이다.  여자들은 같이 목욕하면서 때도 벗겨주었고 오래동안 갇혀져 있던 내 욕정도 풀어주었다. 잠깐 동안이나마 세파에 부대끼는 내 몸을 위안할 수 있었고 모든 잡념이 없어지는 한 순간을 겪고 나면 거뜬해질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버리면 몰려오는 피곤으로 한잠 푹 자둘 수 있었고 이튿날엔 날듯한 기분으로 일하러 나간다.  

그 다음날.  

먼저 로따 친구의 소개로 임(林)씨 형제를 만났다. 훈춘에서 몇년 동안 샤시 작업을 해오던 기능공들인데 형 장송이는 나와 동갑이고 동생 장걸이는 세살 아래였다. 이제 며칠후 임씨 형제를 나진에 데리고 가야 한다. 재료도 주문하고 작업에 필요한 공구들도 준비해 놓아야 한다. 여름에 샀던 여섯대 차들 중 마지막 한대인 덤프 트럭도 다 수리되었는데 그 차가 나갈 때는 임씨 형제를 데리고 재료와 공구들을 싣고 갈 참이었다. 통행증수속을 오전에 다 해놓았고 이제 초청장만 있으면 두만강을 건널 수 있다.   

주문한 파이프가 도착했다는 것을 전화로 알아냈다. 문제는 차, 30t 을 실을 수 있는 트럭을 구해야 한다. 쟈쟈가 모는 차는 정비중이고 뛸수 있다해도 적재함이 짧아 8.4미터의 철 파이프를 실을 수 없었다. 로따는 한꺼번에 30t 을 다 실어내가라 했기에 나진에 늘 다니는 5톤급(10t 이상 실을 수 있다.) 석대 혹은 좀 큰 차로 두 대를 구해 실어도 되었다.  

오후 네시에 날이 어둑어둑 해져서야 겨우 찾아냈다. 9t급 두대었는데 많으면 대당 20t도 문제없다고 한다. 일단 운임을 흥정했고 다음에 싣기 시작했다. 저녁에 실어놓고 이튿날 아침 일찍 나진에 나갈 예정이다. 크레인 차를 세내어 한시간 작업해서 다 실어놓았다.  

이미 수출 수속은 다 되어있다. 나진의 우리 회사에서 수입 신고서를 낸 것이 아니고 발전소에서 직접 신고서를 내었기에 원정에서 수속할 때 그것만 주의하면 되였다. 이제 내일 갖고 갈 다른 물품들을 준비해 뒀다가 출발하기 전에 실으면 된다.  

나진항 통검(통행검사소)에 중국산 차가 한대 있었다. 원정을 거쳐 나진으로 다니는 트럭 중에서 규정에 어긋나게 밀수품을 실은 차를 몰수한 것인데 연유 펌프가 시원치 않고 실린더도 교환해야겠다면서 우리 수리반에 맡겼었다.  

처음에 실린더를 교체할 때 운전수 김용철(우리 수리반장과 똑같은 이름 이었다.)이 다 아는 것처럼 실린더만 바꾸겠다고 했고 우리 수리반장은 블록이 파손되었기에 함께 교환해야 한다고 진단했었다. 그런데 기사가 실린더만 교체하려고 한 것은 사실상 통검에 블록을 교체할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유 펌프는 얼마전에 내가 훈춘에 갖고 와서 수리해갔고 그들의 요구대로 해주었더니 며칠 안가서 되돌아왔다. 기사는 펌프문제 같다면서 원래처럼 힘이 딸린다는 것이었다. 디젤 엔진의 고압 연유 펌프는 시험대 위에서 엄격한 시험을 거쳐 수리한 것이므로 이상이 있을 리가 없으며 역시 블록때문이라며 우리 반장이 얘기했다. 

일단 분해한 후 다시 결정한다며 의견을 모았고 분해하고 보니 역시 블록이 문제였다. 그런데 블록 사는데 필요한 돈을 통검에서는 오래동안 질질 끌면서 끝내 가져오지 않았다. 큰 차가 마당을 차지하고 있으니 우리 버스를 세워둘 자리가 시원찮았고 기사는 매일 경비실에서 음담 패설로 세월 타령을 하고 있었다. 며칠전 통검에서 돈을 주겠다는 다짐을 받고나서 로따가 나보고 구해 놓으라고 시켜서 내가 주문을 해놓았고 오늘 도착했으므로 그 것도 실어가기로 했다. 

후일 이 차는 잘 수리되어 이상없이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설전에 돈 대신 주기로 했던 게는 수량이 엄청 모자라게 가져왔고 12월에 중고 승용차 한대를 가져오고도 인민폐 2천정도 모자랐는데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를 내가 확인할 바는 아니다. 어쨌든 그 승용차는 《라선-외-225》의 번호를 받았고 그 뒤 로따가 빚 대신 다른 사람에게 줘버렸다.  

원정 세관에 김일성 종합대학 준박사 졸업생으로 태일이 검사가 있었다. 우리한테 필요한 물건을 많이 부탁해서 얻었고(물론 비싼 것은 돈을 지불했다.) 원정 검사장에서 어지간한 물건을 다 보내주어서 나와도 어느 정도 친해지고 있었는데 소문에 미래의 원정 세관장감이라고 했다. 

그런데 11월 1일 술을 녹초 되게 마시고나서 승용차를 몰다가 도로를 이탈하는 사고를 치면서 즉사했다. 금방 배운 운전으로 술김에 운전하겠다는 고집을 부렸었다. 이상하게도 같이 탔던 네명은 아무 일도 없었고 아까운 사람만 죽었다. 나진에 다니면서 말을 나누던 사람 중에 제일 대화가 통하는 중의 한사람이어서 인상이 깊었다. 

어제 귀국 길에서 그의 쌍둥이 형을 만났고 제사에 쓸 상감을 부탁 받았었다. 바나나와 사과, 귤, 사탕, 과자 등속을 사면서 인생을 삼십여 년밖에 살지 못한 준박사가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차장들이 부탁한 가죽 장갑도 다 샀고 운전수들이 부탁한 충전 후래시도 여러 개 샀다. 멋을 부리려는 처녀들, 충전할 수 있는 후래시는 자식들이 공부할 때 쓰는 거라며 얘기하는 운전수들이었다. 

나는 늘 부탁을 들어주고 사다주었는데 로따는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듯했고 그래서 그가 보지 않는 데서 사간 걸 나누어 주었었다. 생활비가 나오는 날엔 돈을 꼭꼭 받아냈고 그 외에도 볼펜, 가방, 주산, 옷 등 다른 심부름도 가끔 해주었던 것이다.  

이튿날, 원정 세관을 통과한 뒤 이번의 장사 거리를 잡음으로서 이제부터 우리 회사가 새로운 도전에도 능히 뛰어들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인정하면서 운전수 손씨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발전소의 파이프는 보수 작업에 필요한 자재로서 그 보수 작업은 몇년에 한번씩 파이프가 수백톤이 필요한 어마어마한 공사였다. 우리 회사에서는 관세와 거래세 그리고 모든 비용을 빼고나서 10∼15% 이윤 목적을 원칙으로 해왔기 때문에 가격을 합리하게 만들어 놓았고 그래서 지대 안의 많은 장사를 끌어올 수 있었다. 

이런 장사가 일년에 한번만 이루어져도 꽤나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예약 후 우리 계좌에 돈이 먼저 들어오고 그 돈이 환전되는 족족 물자가 나갔으므로 나진에서는 시간만 좀 기다려주면 되었고 그런 방식으로 하는 우리의 장사는 현금 장사를 하는 다른 회사들보다 경쟁력이 우세한 점도 확보하고 있어서 거래 상대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만 하면 회사는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성숙되어 있는거였다.  

그러나 우리 둘의 대화는 이 정도에서만 회사 평판을 했고 내가 굳이 여기까지 쓰는 건 그 뒤의 대화를 공개하기 위해서다. 회사의 미래와는 상관없는 엉뚱한 얘기같지만 나는 꼭 쓰고 싶다.  

먼저 손씨의 얘기를 적어본다. 중국어로 말한 걸 옮겨놓을 뿐이다.  

-너네 회사에서 러시아 연유를 조선에 내가는 일은 아주 잘된 일이다. 내가 러시아에 다니면서 러시아 디젤을 써봤는데 냄새가 이상할 뿐이지 중국 것보다 못지 않았다. 이제 나진에 가면 너희 회사에서 주유해야겠다. 중국건 비싸서 안되겠다.  

넌 중국의 연유가 왜 값이 올라가는 지를 알고 있니?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연유 값이 올라가면 나라적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되지. 중국은 석유가 나는 나라지만 20%를 수입한다고 한다. 나라에서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기에 가격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대. 

그런데 말이야, 중국의 군대들이 돈 벌게 됐잖아. 비상으로 저장해둔 걸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바꾸어 넣는다. 원래 두었던 것을 파는데 좀만 머리 쓰고 손 놀리면 차지가 생기는 걸 챙긴다나. 내가 그런 기름을 나르는 차를 몰아보아 조금은 알고 있는데 요즘같은 세월엔 더 큰 돈을 버는 것 같더라. 

그러니 중국에는 이런 기회주의자들에게 돈벌이 구멍수를 마련해주는 정책 아닌 뭐가 있는 것 같다. 그 기횔 잡는 놈이 할아버지다. 지금 세월은 뭐니뭐니해도 돈이 있어야 사람 값을 하고 돈이 있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된다.  

너 중국의 관리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 알기나 하니? 관리들이 한달 월급 천원으로 어떻게 한벌에 몇만 원씩 하는 양복을 입고 다니는 지, 차고 있는 손목 시계와 신고 다니는 가죽 구두는 우리가 평생 그저 구경이나 할 수 있는 물건들인데 벼슬하는 사람들에겐 그런 비싼 물건을 구하는 길이 따로 있단다.  

그 길을 찾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해 벼슬 자리를 얻으려 하지. 바로 손에 쥔 도장을 한번 휘두르는데 남 모르는 돈 몇만 원을 뇌물로 받고 한번 사인으로도 얼마만큼의 돈을 챙기는 데는 귀신도 모른다. 

이론적으로 순결해야만 하는 권력이 그렇게 더렵혀지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 일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는 이미 그렇게 돼 먹었다. 내 보건대 니가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도 그 불량한 사회 현상을 회피하려고 그러는 것 같구나, 어때? 내말 틀리지 않지?  

그리고 너나 나나 조선에 많이 다니지만 중국과 똑같애, 중국에서 부패한 현상이 조선에서도 범람하고 있거든. 너도 많이 보아 왔을 거다. 왜 우리 같이 깨끗한 돈을 벌면서 살아가는 관리들을 볼 수 없는지? 

강을 사이둔 두 나라가 다 썩고있어, 이러다간 나라 망하겠다. 나라 돈이 다 개인의 손에 들어가니 말이다. 도둑 무리만 만드는 나라는 없었으면 좋겠다.

다음은 나의 말이다. 이제 금방 만난 사이지만 어느새 많이 친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오랜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 같다.  

-당신이 나라에 대해 말했으니 나는 민족에 대해 말하겠다. 중국의 한(漢)족에 대해서가 아니고 우리 민족에 대해 말하겠다.  

당신도 알다시피 조선 민족은 자그마한 땅을 놓고 가운 데에 장벽을 막아놓은 채 두가지 정치를 하면서 사는 것이 대부분이고 우리 같이 해외에 사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널려져 사는 자체가 무언가 설명해 주고 있는것 같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통일이 안된 나라가 몇개 있는가? 다름 아닌 중국과 조선이다. 

독일은 어떠했는가? 민족의 미래를 위해 통일을 이룩했다. 일제와 함께 세계 인민들에게 막대한 재난을 가져다 주었지만 자기의 침략 역사를 승인하지 않는 일본인들과는 달리 침략한 나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침략 역사를 뼈저리게 뉘우칠뿐만아니라 위대한 통일을 이룩했다. 한개 민족을 놓고 말할 때 이 것은 자기 민족의 미래에 대해 책임지는 위대한 행동이다. 

그러나 중국이나 조선은 어떤가?  

중국의 통일문제는 서서히 풀리고 있다. 홍콩이 반환되었고 오래지 않아 마카오도 반환되는데 대만만 남았다. 그저 시간문제일따름이라고 본다. 

헌데 조선은 어떤가? 

손바닥만한 땅을 두고 동족 상잔을 꺼리낌없이 해왔으며 지금은 천만의 가족을 이산시켜 놓고 산다. 위대한 독일 민족에 비하면 정말 치사한 민족이다. 나는 내가 이런 민족의 한사람이라는데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가진지 오래다. 독일 민족에 비교해 볼 때 조선 민족은 정말 하찮은 민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 말이 맞는가?  

-넌 민족의 반역자로구나?  

-나를 아무렇게나 말해도 좋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열근성이라는걸 감출 수 없는것이다. 바로 일본인들이 침략 죄장을 덮어 감추려는 것과 본질상에서 같은 것이다. 

서로 욕하고 비꼬고 자기만의 정치를 고집하는 것은 민족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통일을 부르짖기만 하는 것은 자기 양심을 속이는 노릇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의 민족이 똑같이 잘 살고 강대하게 되는 올바른 길을 찾고 걷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데 서로 다른 길만 고집하게 되면 결국 분단이라는 것이 영원한 역사일 수밖에 없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통일 문제를 해결 못하는 민족이야말로 이 세상 제일 미욱하고 가소로운 민족이다.  

-넌 돌아도 완전히 돌았구나?  

그런 말들을 주고 받으며 농담했던 것처럼 한바탕 웃어댔고 그러는 동안 발전소에 도착했었다. 손씨는 후에도 나와 같이 다니기를 즐겼고 나진에 도착하면 기어이 나를 찾아 한바탕씩 역설한 후에야 돌아가군 했었다.  

정치를 모르는 인간이 일을 한답시고 뛰어 다니지만 돈도 없고 의지할 데마저 없는 방랑자의 신세로 전락되고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하는 대화를 나눈 후부터 내 인생도 이제는 새 도전에 직면했다고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걸 걷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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