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이 되었다. 대기실 옆에 2층 사무실을 지어야 했고 숙소도 새로 지어야 하고 늄창 작업장과 주유소도 만들어야 했다.  

지난해부터 자체로 차를 사서 썼었다. 쟈쟈와 최영감이 한대씩 몰고 다녔는데 최영감은 몸이 말째서 드문히 다니고 쟈쟈만 차 한대로 뻔질나게 다녔다. 그러다가 구매자가 나지면 차를 팔고 또 다른 차를 사군 해서 쟈쟈도 차를 몇 대나 운전해 보았는지 물어 보면 얼떨떨해 할 지경이었다.

시멘트와 지어는 벽돌까지도 중국에서 실어 내갔는데 쟈쟈 차 한대로는 도저히 다 나르지 못했고 그래서 전 기사의 차도 썼고 쑈찌의 차도 썼다. 우리의 건설 일로 다른 기사들도 돈을 잘 벌고 있었다.  

저술령 고개를 지날 때면 도로 정비에 나온 사람들이 차 한대 통과할만한 길만 내놓고 속도를 늦추게 만든다. 비포장이어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 먼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방법은 큰돌 몇 개로 길 절반을 막아 놓는 것이다. 차가 지나 갈려면 큰돌을 피해서 틔어놓은 부분으로 움직여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자연히 차는 늦어진다.  

도로 정비는 곰보딱지처럼 된 웅덩이들을 메우는 외에도 길옆의 배수구를 잘 정리해야 하고 낙석을 막기 위해 길옆에 담장식의 벽도 쌓아야 한다. 그 벽을 쌓는데 필요한 시멘트는 자체로 해결해야 했는데 우리 차들은 이 구간을 지날 때마다 시멘트를 도둑 맞혔다. 쟈쟈가 최고로 한번에 19마대(950㎏)를 도둑 맞혔고 번마다 대여섯 마대씩 도둑 맞혀 후일 누계로 10t 이상을 잃어버리게까지 되었다.

게다가 원정 종합 검사장의 새 청사를 건설하면서 여러 부문에서 번마다 몇 마대씩 부리다 보니 손실이 대단했다. 도둑질 당하는 것과 잃어버리는데 다들 습관이 되었고 원정이나 나진에서 관리들이나 업무원들이 욕심내어 한두 가지 물건을 달라는 일-낚시질에도 너무도 습관 되어 있어서 계획이 있을 때마다 그 부분의 손실까지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투자자들의 흉금이고 아량이다.  

어느덧 청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러시아의 유라 사장이 나진을 방문했다. 연유뿐만 아니라 나진과 선봉의 시멘트 공장 생산에 필요한 원료와 러시아 타이어의 무역 문제도 논의했다. 로따가 일부러 지난 겨울에 블라디보스톡까지 가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가 이제 다 풀리게 되었다.  

청명은 조상들의 산소를 보러 가는 날이다. 다들 중국에 돌아간다고 야단이다. 청명 전날에 용철이와 나만 남기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귀국했다. 새로 산 사업용 중고차들은 이미 번호판을 옮겨 달아서 운행할 수 있게 되었다. 용철이와 내가 유라와 식구들을 그 차 두대로 원정까지 실어다 주고 나진에 돌아 왔었다. 전통적인 명절 때마다 나는 내 특수한 처지로 하여 항상 나진에 남게 되는 《영광》을 지닐 수 있었고 며칠 동안의 《로따》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다.  

청명 후에는 사무실과 숙소의 집짓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머지 않은 곳에 시내가 흘렀으나 그 것으로 필요한 전부의 물을 공급할 수 없었고 다 지은 후에는 어차피 음료수 문제도 해결해야 했으므로 이미 전에 우물도 파 놓았었다.

숙소는 벌써 벽체가 올라가고 있었는데 우리가 지금 쓰는 바로 침실 뒤의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남향으로 짓고 있었고 대기실과 숙소 사이에 2층 사무실을 지어 이 세 건물이 《ㄱ》자로 되게 하였다. 숙소 동쪽에는 늄창 작업장을 만들고 그 끝 쪽에 주유소 건물을 지어야 했는데 숙소와 직각을 이루었으므로 대기실 주변의 건물도 역시 《ㄷ》자로 되었다. 트인 쪽이 남쪽이고 그 오른 쪽이 주유소, 왼쪽이 대기실로 되어 거대한 건물체에 둘러싸인 큰 마당까지도 생기게 된다. 회사가 건설이 끝난 후에 수리반을 제외하고 전부 이사하게 되고 원래의 안화동 청사는 임자가 나지면 팔려야 했다.

나는 차대 대장이란 감투를 썼을 뿐이었고 아침에 버스를 내보낸 후에는 대기실 건설 때문에 한시도 한가할 새가 없었으므로 노가다판에 나가는 처지나 다름없었다. 아침엔 첫 사람으로 일어나야 한다. 침실에서 나와서 먼저 차에 시동을 걸어 놓고는 화장실에 갔다 온다.

차의 엔진이 더워 난 다음엔 안화동으로 간다. 장송의 아내가 식사를 맡고 있는데 부엌에 불을 지필 때 불길이 들지 않아 인풍기를 써야만 불도 땔 수 있고 식사도 보장이 되었다. 인풍기를 돌리려면 전기가 있어야 한다. 발전기를 돌려주러 아침마다 가야 하는 것이다.  

수동으로 시동 거는 작은 디젤 엔진은 추운 아침에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단 한번에 걸릴 때도 있었지만 드문 일이고 안간힘을 써서 여러 번 시도해서야 겨우 걸어 진다. 시동을 걸고 나면 온몸의 힘이 다 빠져 버려 그 자리에 물 앉고 만다. 틀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 냉각수가 튀어 나왔기에 10분에 한번씩 물 보충을 해 준다. 물 보충은 경비인 석건 영감과 자리를 옮긴 수남이가 하게 했고 시동이 걸려서 한참 후에야 회전 속도를 높이고 정상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엔진과 발전기 사이는 벨트로 연결되어 있고 일정한 회전수가 보장되면 220V의 전기가 나온다.
5㎾ 짜리로 안화동 건물의 조명과 가전에 필요한 전기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터이다.  

숨을 돌릴 새도 없이 검차를 시작한다. 운행증을 내 주고 다 내 보내면 그때 식구들이 아침 식사하러 올라온다. 나의 하루 일은 밥 먹을 때 로따가 배치한다.  승용차로 신고서와 초청장 수속에 필요한 문건을 만드느라고 각 부문에 다니기도 하지만 이 시기만은 주로 영철이가 이 일을 했다.

휘발유가 떨어져 연유 상사에 며칠에 한번씩 갔다 와야 한다. 유조차는 자체로 산 것이 있어서 이런 경우에 한 몫 맡았고 그 시기에 나는 주로 나진과 선봉에서 휘발유를 사들였었다. 유조차가 고장났을 때는 판매용 중고차에다 휘발유통을 여러 개 싣고 다녔다. 휘발유를 180㎏ 정도 담을 수 있는 통은 철판으로 된 거였고 대부분은 중국에서 오일을 내다 쓰고 남은 빈 드럼통이었고 더러는 일본에서 온 것도 있었으나 조선의 통은 작고 견디지 않아 거의 쓰지 않았다. 나의 《전용차》인 86호는 어느 하루 오일 부족으로 다시 한번 엔진이 고장난 후로 더는 뛰지 못했고 내 운전 수준과는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 유조차가 나의 《전용차》로 된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유조차를 중국에 수리하러 들여보낸 뒤에는 이루다 헤아릴 수 없는 반 짐차와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대기실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 시멘트, 벽돌, 슬레이트, 막돌, 목재 등을 실어 날랐고 전기 작업도 적지 않게 했다. 또한 늄창 작업량도 엄청 많아져서 대기실 안에다 임시로 작업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저녁에 추가 작업이라는 것도 엄청 많이 해 보았다.  

중국에서 물자가 도착하면 수속하러 정화를 싣고 다녔고 영철이와 설화가 없을 때 매점에서 판매원도 해 보았으며 위홍이가 없으면 휘발유 지급도 내가 맡아보아야 했다.

아바이가 필요한 물자를 요구할 때에는 언제나 나한테 심부름을 시켰었다. 전기 선, 못, 파이프, 슬레이트, 시멘트 심부름은 물론 대외 심부름도 전부 다 내가 도맡아 하는 지경으로 되었다.  

수리소의 일은 더 등한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용철이가 아랫집 발전기 관리를 맡고 있어 모든 수리는 내가 관리했고 낮도둑을 잡아서 하마터면 큰 싸움을 벌릴 번한 일도 그때 있었다.

남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은 내가 차 전기 수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어서 이 시간을 누구보다도 아껴 썼었고 종래로 낮잠이라는 것을 자는 일이 없었다.

승용차로 세관 문건 수속을 나갈 때 주차장에서 쪽 잠을 자두었고 저녁 식사 후에도 모든 심부름은 내가 대부분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팽이처럼 돌아 쳤고 해도 해도 끝없는 일이 매일 많아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오래 동안 시도했으나 시동을 끝내 걸지 못했고 도리어 맥 빠진 팔이 관성으로 뿌리어 나가면서 발전기 틀에 손을 다쳤다. 손톱이 한 개 빠져 버리고 두 손가락에서 피가 줄줄 많이도 흘렀다. 반나절 동안 통증으로 아무 일도 못했고 처음으로 한가한 시간을 가지게 되어 그 시기에 피곤해질 대로 피곤해진 내 심신을 쉬울 수 있었다. 오전에 침실에서 또 한번 《춘향전》을 보면서 나보다 한가한 시간이 많은 다른 식구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임씨 형제는 맡겨진 일을 잘 해냈고 질과 시간도 잘 보장해 줬기에 말치 않겠다. 여기서는 용철이와 위홍이 부부, 영철이에 대해서 내가 그 날 생각해 본 것대로 적는다.  

용철이는 차 수리에 있어서 전기 작업을 제외하고 다른 것은 다 능했다. 기능이 돌출해서 누구보다도 월급을 많이 받고 있었고 수리반을 이끌고 힘든 작업을 잘 해냈다. 저녁 시간은 대체로 한가하게 보냈고 골절된 팔이 다 나아질 때까지는 얌전히 지냈다.  

지난해에 숙모와 거의 매일 술 놀이하고 어느 하루 내가 망신을 주어서야 약간 즘즉해 졌지만 그 일로 항상 나한테 앙앙불락이었으나 맑은 정신에는 감히 말못하고 가끔 술 취한 후에 걸고들까 하는 경향이 있었다.

회사 종업원들 가운데서 정화가 차를 수요할 때만 태워 주고 다른 종업원들에게는 아무리 급한 사정이 있어도 끝내 태워 주지 않는 나와 반대로 비서의 일로 늘 시내 운전을 하길 좋아했고 일을 함에 있어서 나의 건의는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해 내었다. 정화 외의 다른 종업원들은 차 쓸 일이 있으면 거의 다 그를 찾았고 주변의 주민들과 종업원들이 공구를 쓰는 일과 물자들을 쓰고 낭비하는데 대해서는 눈감아 주는 일이 비일비재로 많았다.

이건 우리 집 재산이다, 우리 집 재산을 손해 보게 하는 일은 제지시켜야 한다는 식의 개념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게다가 연상인 자기가 차대 대장을 못하고 있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가끔 나한테도 성을 냈고 내가 조그마한 실수라도 저지르면 말은 하지 않으나 얼굴에는 조소를 머금었고 비꼬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었다.

저녁에 한가하기에 습관 된 그는 늄창 작업을 포함한 모든 일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고 일하고 자는 외에는 음주와 운전을 무척 즐겼고 음주 운전 때문에 한 번은 닛산을 몰수당한 적도 있었다.

회사의 작업 관리 그리고 자기 자신의 관리도 엉망이었지만 기능이 높고 로따의 조카 사위라는 유리한 조건 때문에 로얼처럼 크게 존경받는 인물은 아니었으나 남을 안타깝게 하는데는 유난히 유명해져 있었다.  

위홍이는 로따의 외 조카이고 이제까지 죽 무직업으로 지내온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할 줄 몰랐고 사실은 회사에 하등 필요 없는 인물이었다. 술은 취할 때까지 마셨고 수산물은 3~4인분 정도로 기막히게 많이 먹었으나 식사는 잘 하지 않는 병이 많은 애였다. 병이 여러 가지로 겹쳐 허우대만 클 뿐 힘 꼴은 없어서 패 치기를 유난히 좋아하고 입씨름을 잘하는 어린애 없는 남편이기도 했다.

영철이와 동갑이었으나 생일이 좀 빨라 형님 행세를 하느라고 했지만 언제나 둘의 다툼은 치열했고 연유와 오일 관리를 잘 하지 않아 로따를 속태웠다. 특히 쩍하면 금지되어 있는 조선 사람들과의 동석 식사를 나갔고 아무 일도 없는 낮 시간에 경비로 있는 문은실이와 잡담하기에만 열중했다. 가끔은 늄창조에 가서 음담 패설을 늘여 놓는 일도 있었으나 바쁜 일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도와 일할 기미마저 보여주지 않아 임씨 형제한테 쫓겨 나오군 했다.

그리고 버르장머리 없는 예의도 잘 모셔두고 있었다. 언제 한번 아무리 사돈이라도 연상인 나를 《형님》이라 시원히 불러준 적이 없었고 중국의 통행증 수속과 국경 통과 수속까지도 다 거들어줘야 하는 철부지이다.

숙모와 아무렇지도 않은 일 가지고 건방지게 대했고 외숙모에게는 더욱 건방졌었다. 한번은 숙모와 다툰 후에(지난해 연말) 나한테 와서 자초지종 설명을 한 적이 있는데 사무적인 일이라서 그대로 지나쳐 버렸지만 외숙모와 건방지게 노는 건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어느 한번 그가 술 마신 뒤에 마작을 논 적이 있는데 외숙모, 장송이와 나는 다 그의 연상으로서 처음엔 술 취한 줄로 알고 가만 두었었다. 한참 놀면서 점점 건방진 본새를 드러내는데 두 번이나 경고했었다. 세 번째로 외숙모를 빗대고 빈정거리는 꼴을 보고 참지 못한 채 마작 상을 뒤 번져 버렸다. 처음엔 깜짝 놀라는 것 같더니 이내 평온을 찾고 나한테 자기의 도리를 따지려 들었다.  

“너의 입심을 내가 당하지 못하겠다. 니가 소원이라면 우리 밖에 나가자!”  

술 먹은 자와 싸움하지 않는 나의 원칙을 벗어나서 한번 톡톡히 패주고 싶었다. 나의 기세에 눌려 마침내 조용해 졌고 제 방에 가서 잠을 청해 주는 것 같아 겨우 근질거리는 주먹을 말렸었다.  

외삼촌인 로따의 보호로 아무 걱정도 하지 말아야 할 위홍이었으나 이상하게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침실마다 들낙거리면서 잠에 취한 사람들을 깨웠고 수면이 부족한 나는 잠결에 된 욕도 퍼부었으나 막무가내였다.

후에 로따가 경고해서야 새벽 닭 신세를 고쳤고 윗집과 아랫집 사이의 천 미터를 오고 가면서 날을 밝히기도 하는 이상한 습관을 종내 고치지 못했으며 오히려 남들이 죽을둥 살둥 모르고 일하는 낮 시간에 따뜻한 온돌에 누워 잠을 청했으므로 정말로 기분 나쁜 사람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 유조차가 도착한 후 기름 부리는 작업과 연유와 오일 지급하는 작업 외에는 할 일 없이 빈둥거렸고 대기실 주변의 건설로 다들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위인이었다.  

위홍의 아내 설화는 생김생김이 수수했고 몸매도 뛰어나지 않은 여인이었다. 잠꾸러기였고 이제는 부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건축 자재 판매도 잘 할 수 있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으나 현금 관리는 뒤죽박죽이었다. 돈 건사를 제대로 못해 부부 중에서 위홍이가 돈 관리를 하는 터였다. 매일 잠을 채 자지 못한 모양 머리를 삼검불처럼 흐트러뜨리고 얼굴에 피곤이 잔뜩 실린 모습으로 아침 식사가 끝날 무렵에 나타났고 집 식구들 누구에게나 응석에다 어리광 부리는 일도 있어 약간은 깜찍하다는 느낌을 주는 여자이다.

결혼한 지 수년이 되었지만 애낳이는 해보지 못했고 그래서 자기가 사놓은 비비에게 무척 관심을 쏟고 있었고 언제나  

“우리 아들 비비가 정말 곱다.”  

는 말로 옆 사람들을 웃겼고 매일 밥 먹기 전에 언제나 먼저 비비에게 먹이를 갖다 주군 했다.

매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불친절한 태도로 대하는 예의 없는 언행으로 쫓아 버리는 일도 가끔 있었다. 하긴 조선이라는 국토에서 서비스 업체라 해도 예의 없이 배짱장사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효과가 있었으므로 비난할 바가 아니었고 로따로부터 밑의 사람들까지 쭉 다 그렇게 일하는 데 습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만 나한테만은 더없이 꼴불견으로 보일 뿐이었다.  

위홍이가 늘 놀음판에서 빠지지 않았기에 놀기를 좋아하는 그녀가 끼워 놀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어 항상 불만이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누구한테 기시당하는 것 같으면 일어나서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대들었다. 그 방면에서는 나와의 모순이 제일 많았다.  

나는 일에 매달려 있을 때 전혀 손가락을 놀리지 않는 위홍이가 보이기만 하면 도와 달라고 소리질렀고 지어는 악의 없는 욕지거리로 그의 일 욕심을 불러 주려고도 했었지만 위홍인 언제나 요지부동이었고 설화는 욕먹는 남편이 안쓰러워 나와 언제나 대들 군 했다.  

차 운전을 배우려고 담대하게 운전석에 앉기도 했으나 하마터면 길옆의 바위와 충돌할 번했고 로따가 허락하지 않아 끝내 면허증을 발급 받지 못했다. 중국에 일 같지 않은 일이 있어도 만사를 제쳐놓고 귀국했고 국경 통과 수속도 거들어 줘야 하는 아직 어린 여자이다.  

위홍의 부부는 용철이처럼 기능이 있어서 나진에 나간 것이 아니고 로따가 누나네와 아이들을 바꾸어 봐주는 입장에서 데리고 나간 거였다. 로따네 로모와 아들 둘은 위홍의 부모가 보고 있었고 로따네 부부는 위홍이네를 관리해 주게 된 것이었다. 관리하는 방식이 나진에 데려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있으련만 우리 식구들뿐만 아니라 조선 종업원들의 눈에도 돋보여 지지 않는 인물을 기어이 안화동에 나타나게 한 일을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영철이로 말하면 로따 형님의 유일한 아들이고 수년간 로따를 따라 다니면서 조수 역할을 해온 사람이다. 로얼이 중국 쪽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면서부터 엄연히 로따와 이모 다음으로 파워가 있는 로싼(老三-셋 째 보스)으로 일을 보고 있었다.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고 내가 자기 나름대로 짚은 거다.  

매점과 창고를 관리했고 주문을 받고 거래하는 기업소 사이를 다니면서 일감을 걷어 들였으며 드문히 세관 수속도 다녔지만 대체로 한가한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신염으로 앓고 있다고 들었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회사의 다른 일은 하지 않았고 말문이 무겁고 술을 잘 마시는 남자다운 인간이다.

위홍이 부부가 아직 나가지 않았을 때 일이 많았고 그가 고생을 한다고 생각되었는지 로따가 식구들이 다 있는데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중국에 영 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재간이 있어 살기에 걱정 없겠지만 이 영철이만은 야단이다. 정말 걱정된다.”  

그때는 조카를 지극히 사랑하는 숙부의 마음을 다른 생각 없이 읽었지만 지금 그 말을 돌이켜 볼 때 참말 내 마음이 괴롭기만 하다. 매일 하고 또 해도 일이 끝이 없는 나지만 로따는 언제나 영철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빼돌리고 나에게 시켰고 공개적으로 개인적인 돈을 벌 수 있게 만들어 주어 내 기분을 여지없이 망가지게 해 주었다.

그 동안 내가 조금이라도 벌어보려는 생각을 여러 번 로따에게 비쳐 보았으나 언제나 거절당하였고 궂은 일, 힘든 일을 가리지 않고 시키는 것으로 나에게 시간적인 여유도 주지 않았었다.

게다가 차 사고를 저질렀을 때의 야박한 태도는 나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상하게 만들어 놓았기에 이제부터는 나진을 떠날 기회만 노리고 있는 터였고 다른 일은 다 시키면서도 돈을 만지지 못하게 하는 로따의 태도를 그 시기에 다 알아 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청진을 지나서 남으로 가면 경성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로따의 조상이 살던 고장이라 했었다. 사업차로 나진에 온 경성 사람들과 만난 적이 있었고 로따는 나만 데리고 그들과 같이 식사했었다.

로따는 손님들에게 경성에 투자할 의향을 내비쳤고 손님들은 로따를 조국을 잊지 않는 애국자라고 극구 찬양하였다. 손님들은 도와 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로따는 기분이 둥둥 떠 있었으나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다른 생각으로 골똘했었다.  

왜서 이 자리에 내가 있어야 하는가? 그거였다.  

로따가 경성이나 청진 쪽으로 사업을 밀고 나간다면 그때는 여태까지 죽 따라 온 영철이가 그 자리에 나타나야 할 일이지 여태까지 공식적인 장소에 한번도 보내 주지 않던 내가 있을 곳이 못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불현듯 뇌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경성 쪽의 투자는 지금의 형편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국적으로 개방된 곳이란 나진밖에 없었고 청진 쪽이 언제 개방될는 지는 누구도 모른다. 개방된 나진에서도 투자를 조심조심 받아들이고 있었고 개방 안된 곳에서 투자를 받아들인 전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러니 투자란 먼 앞날의 일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경성의 장사를 끌어들이는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술 심부름이나 하는 꼭두각시였고 앞으로의 장사 거래는 역시 영철이가 나서서 하게 되므로 결국은 첫 인상을 좋게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나는 영철이처럼 술을 못 마셨지만 인상이나 화술이 영철이보다는 나았고 로따는 그걸 이용했던 것이다.

내가 로따에게 있어서 결론적으로 도구의 하나로밖에 안 된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던 때가 바로 그 때였고 이 회사가 나에게 생존의 무대를 제공하지 않는 이상 그 현실에서 해탈되자면 떠나는 방법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떠날 바에는 내 인격도 내세워 보고 자존심도 수립한 후에 떠나려고 작심했었다.  

아내한테서도 자존심을 잃고는 그렇게 생각했었고 내가 헌신적으로 일해 준 로따한테서까지 자존심 상하는 일을 당하게 되니 모든 것이 귀찮아졌으나 그래도 꾹 참고 있었고 바보같이 일에만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춘향전》은 춘향과 몽룡의 재회를 크라이막스로 끌어올린 뒤 아름다운 주제가의 선율 속에서 끝나고 말았다. 나의 나진의 생활도 언젠가는 영화처럼 끝나게 되는 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 끝이 좋던 궂던 나에게 인생 공부를 많이 시켜준 나진에 감사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또 아랫집에 왔다. 한가히 있을려니 저도 모르게 피곤이 몰려들었다. 따뜻한 온돌에서 어쩌다가 낮잠이라는 걸 청해 보게 되었다.  

갑자기 밖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났다. 방금 전에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비몽사몽간에 들었고 웬 일 때문에 오침 시간에 돌리는지 궁금해서 나가보려 했으나 피곤에 지친 몸이 말을 들어 주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은 잠에 빠져 버린 거였다. 그러나 떠드는 소리는 끝내 나의 잠을 깨웠고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후닥닥 뛰어 나갔다.  

발전기 실엔 연기가 자오록했다.

지난해에 지은 대기실 제일 북쪽은 매점을 차릴 예정으로 방을 따로 만들었는데 그 방에 임시로 발전기를 넣어 두고 있었고 항상 디젤 매연 냄새로 꽉 차 있었다. 또 옆의 약간 큰방에 전기 톱과 전기 대패를 놓고 집 짓기에 필요한 목재들을 가공하고 있었는데 발전기실의 오늘 냄새는 디젤 매연의 냄새가 아니었다.

다시 발전기 쪽을 눈여겨보니 그때까지도 연기가 몰몰 솟아나고 있었다. 발전기실 안에 차영감과 용철, 그리고 23건설의 목재 가공공 몇이 퀭하니 서 있었다. 내가 물어 보니 차영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용철이는 입 귀만 실룩거릴 뿐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다가 그만…”  

23건설의 목재 가공공 하나가 다리를 후둘 후둘 떨면서 뒷말을 잇지 못한다.  

“누가 당신보고 쓰라고 했소?”  

“일이 급해서…”  

“뭐가 급하다는 거요?”  

“같이 일하는 사람이 팔 끊어 졌는데 병원에서 판자 하나 구해오라고 해서 그럴 만들려다가…”  

“뭐야! 이 개새끼!”  

나는 아침에 오른 팔을 상했다. 내 왼손이 그의 뺨을 올려치고 있었다.  

“이 도적놈아! 오늘 죽어 봐라!”  

발길이 복부 쪽을 강타하니 뒤로 벌렁 자빠진다. 쇠몽둥이를 찾아 들었다.  

“야, 좀 참아라!”  

용철이가 성한 오른 팔로 나를 잡고 있었고 차영감도 눈을 슴벅이면서 머리를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야, 이 새끼야!”

나보다 연상이라도 상관없었다.  

“너 이 발전기 쓸 줄 알기나 하고 돌렸냐? 니가 절로 돌린 거야?”  

벗겨진 헝겊 신을 찾아 신더니  

“예…”  

하고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회전 속도를 얼마로 하고?”  

“모르겠음다.”  

“몰랐으면 물어 보기나 할 것이지. 당신을 팔아도 이 발전기를 못 사. 그 판자도 여기서 얻은 거겠지?”

“예…”  

“당신은 오늘 숱한 걸 도적 질 했구만. 첫째로 판자, 둘째로 전기, 셋째로 발전기, 어떻게 할거요?”  

“…”  

“죽어라, 이 개새끼야!”  

왼손이 또 올라갔다. 이 놈은 준비가 있어서 피하고 있었다. 불편한 왼손이고 용철이가 나를 잡고 있어서 왼손 엄지가 그자의 이발에 맞혀 껍질이 벗겨지면서 피가 났다. 오늘은 정말 미칠 것만 같은 하루였다. 용철이에게 뺏긴 쇠몽둥이를 또 찾아 들었다.

“뭐야!”  

로따가 들어섰다. 동시에 내 머리가 그자의 얼굴을 들이박았고 발로 허리를 한대 차주었다. 쇠몽둥이는 차영감이 잡고 있어 끝내 쓰지 못했다. 그자는 벌써 코피를 펑펑 쏟고 있었다. 차영감이 로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듣기만 하던 로따는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말없이 나가 버리었다.  

그로부터 근 열흘 간 아랫집에서는 엔진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육만 정전에 시달리는 일이 지속되어 사람이 사는 굴 같잖았다. 용철이가 팔을 상하고 나서 전문 발전기 관리를 맡은 후 두 번째로 사고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로따는 그 많은 욕을 잘 아끼기도 했다.

먼저 내왔던 발전기는 용철이가 시동을 걸어 놓고 발전을 하는 상태로 내버려두고 89호에 비서를 태운 채 시내 어디로 갔다 오는 동안 냉각수 부족으로 엔진 블록이 빨갛게 달고 있다가 박살났었다. 이제 엔진을 바꾼 지 불과 며칠밖에 안되었는데 이번엔 발전기 자체가 완전히 타버리고 책임은 전적으로 용철이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는 욕을 먹어둘 만한 사람이 못되었으므로 로따는 그 유명한 욕을 아껴두는 것이다.  이 욕이 언젠가는 나에게로 올 것이라고 생각하니 두 손의 통증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에라, 며칠이라도 쉬어 보자는 배짱이 생겨나는 거였다.  

며칠 동안 손을 씻지 못했다. 매일 단조로운 것 같으면서도 지겨운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아침에 세수를 하는 일도 잊은 지 오래된 것 같았다.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녀서 먼지가 묻지 않으면 머리를 씻지 않았고 얼굴엔 눈곱이 떨어질 줄 몰라서 허술한 작업복 차림으로 다니는 내 꼴은 그야말로 꽃제비 격이다.  

조선 사람들이 《중국 꽃제비》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차 수리를 하고 나면 오일과 그리스가 손에 게 발려졌으므로 손을 거의 매일마다 씻었으나 지금은 씻을 필요가 없다. 며칠 전부터 밥상에 앉을 때마다 로따는 내 몸에서 냄새가 난다면서 그 큼직한 코를 싸쥐고 엉덩이를 돌려 댔었다.

진짜 꽃제비가 된 것이다. 이게 웬 거지꼴이란 말인가? 다 내가 할 탓에 달린 것이다.

고이 놀고 고이 자고 고이 먹는 사람도 다 팔자 탓이렷다. 부지런한 것도 잘못이요, 인정에 매여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일한 것도 잘못이다. 아무리 친척 사이라고 해도 인정을 못 느끼겠고 나는 고용주한테 고용되어 피땀을 바치는 한낱 바보 같은 존재였다. 샐러리맨이면 좋기나 하겠다. 내 기술도 다 배운 것과 같으니 이제는 적당한 시기에 떠날 수 있게 준비나 잘 해 두는 게 남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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