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나는 점심 식사가 끝나자 바람으로 유조차를 출발시켰다. 

저술령을 넘어 내리막길을 내려가다가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었고 이어 뒤에서 다른 차량이 끌어당기는 듯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기어를 넣은 상태였지만 액셀을 밟아도 차는 속도가 나지 않고 제동 에어 압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큰일 났다! 

순간적으로 큰 고장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차가 계속 내리막을 가고 있고 세웠다가는 오불꼬불한 영 길에서 차머리 돌리기도 힘들다는 것을 판단하고 약수터까지 억지로라도 가려 했다. 액셀을 느긋이 밟아 에어 압력이 계속 떨어지지 않게 하면서 겨우 약수터까지 몰고 갔고 제동이 잘 안되었기에 약수터에서 백 미터 정도 더 나가서 파킹 브레이크까지 사용해서야 겨우 세울 수 있었다. 

그나마 파킹 브레이크가 작동할 수 있는 게 다행이다. 얼굴은 땀 벌창이 되었고 큰 사고를 피면했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긴 한숨이 나왔다. 3키로 정도를 위험 속에서 지나 왔다. 큰 돌을 주어다가 바퀴를 고였다. 

차 밑을 들여다보니 추진 축이 떨어져 나갔고 제동 파이프에 충격 주어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작은 구멍이 생겨 고압 에어가 새 나가게 만들었다. 쟈쟈가 차 정비를 알뜰히 하지 않고 운전하는 걸 두고 조마조마하게 생각했지만 내가 운전할 때 고장이 생기리라고는 정말 뜻밖이었다. 

40분쯤 앉아 있으니 관광버스가 내 옆에 와 멈춰 서는 거였다. 기사와 가이드는 조선 사람이었고 관광객은 중국 사람들이었는데 아까 사고 난 장소에서 주은 거라며 추진 축을 주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공구가 없고 볼트와 너트가 다 떨어져 나간 판에 구원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 기다리고 있느니 꽤나 안면 있는 중국 기사가 옆에 와 서는 거였다. 나진까지 가서 구원을 오게 회사에 알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날이 어둑어둑 해져서야 창주가 기중기(크레인) 차를 몰고 왔고 수남이도 데리고 왔다. 작업하는 동안 수남이는 벗어 놓은 나들이 옷가지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잃어버렸고 작업이 끝나니 날이 다 어두워졌다. 내가 기중기차로 앞에서 끌고 창주가 고장 난 유조차를 뒤에서 몰면서 깊은 밤에 겨우 나진에 도착했다. 너무 피곤했고 밥을 먹자마자 쓰러져 잠에 빠져 버렸다. 창주와 수남이도 같이 먹었는데 그들이 술을 마시다가 언제 갔는지도 모른다. 

유조차는 이틀간 품을 먹여서야 잘 수리되었다. 구멍 난 파이프를 내가 용접했고 추진 축은 중국에서 새 걸 사내다가 맞추었다. 

6월 4일 날 또 귀국하는 영철이가 차를 운전했고 나도 귀국 길에 올랐다. 국경을 지나서 대반령을 넘었고 이제는 내리막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새로 만든 시멘트 도로에서 최고 시속인 100키로로 달렸다.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보닛 뚜껑 틈으로 짙은 연기가 빠져나와 앞을 가려 보기조차 힘들었다. 엔진은 시동이 꺼져 있었고 차는 길 옆에 세워졌다. 이번에는 피스톤이 블록 벽을 뚫고 나온 고장이다. 

나흘 사이에 저술령과 대반령 두 곳에서 차에 있어서는 꽤나 큰 고장을 두 번 겪었다. 이번 걸음은 나진시 인민위원회에서 직접 회사에 찾아와서 준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었는데 중순에 있게 되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일정 때문에 6월 한 달간 일반인들의 초청장을 전부 해주지 않아 우리 같이 거주증이 있는 사람들만 다니고 물자도 건축 자재밖에 통과시켜주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회사 옆의 동명 주유소의 종업원들은 거의 다 중국 사람들이었고 초청장으로 다니는 사람들이었기에 우리 식구들은 나진에 고갈된 디젤을 실어 내갈 수 있는 유일한 일군들로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조차가 말썽을 부리는 거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쑈찌가 나타났다. 그는 특별 비준으로 초청장을 받아 나진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아까 원정에서 수속할 때 보았는데 먼저 수속을 끝낸 우리가 앞섰던 것이다. 쑈찌 차에 끌려 파킹 브레이크를 사용하면서 겨우 시내에 도착했다. 

유조차는 5일 만에 다시 수리되었고 금방 수리한 엔진이 힘이 딸렸으므로 디젤을 5t밖에 싣지 못했는데 특별 비준으로 초청장을 받은 쟈쟈가 대반령과 저술령을 1단으로 겨우 넘었다. 후에도 그 고질병이 떨어지지 않아 내가 선봉에서 연유 실이를 할 때 오버히트까지 해서 보닛 뚜껑을 연 채로 관곡 고개를 넘어 다니기도 했었다. 중고차 몰기를 싫어하는 영철이를 그때 좀 알 것 같았다. 

유조차 수리를 맡긴 후에 나진에 나갔고 디젤이 나진에 나갈 때까지의 며칠 동안에 내가 겪은 것이 바로 오일 사건인데 이제 그 사건을 보기로 한다. 

요즘은 비가 덜 내리고 아침마다 안개가 푹 끼여 가시거리가 50m도 안 된다. 오일 사건을 겪던 며칠 동안은 계속 그랬다. 

조선에서는 오일을 쓰는 기본을 휘발유 소모량의 5%로 보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1%도 많은 것이라고 들어왔지만 차영감이 말하는 5%도 어떤 차에는 적은 수량일 정도로 조선 차들은 오일을 많이 먹고 다녔다. 

우리 버스들은 한 번 정비에 들어간 후 엔진을 무조건 대보수 했다. 보수가 끝나고 더수쇠까지 잘 들이대면 엔진은 출력이 점차 커지고 오일은 소모가 거의 없다. 대보수 후의 처음 몇 달간이 제일 중요한데 이때 오일을 자주 갈아 주면 일반적으로 엔진 수명이 4년 정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70~80명을 태우고 다니는 나진의 버스는 수명이 길어야 1년 반이었다. 일년 동안의 실천을 거쳐 대보수 한 후 약 반년이 되었을 때 출력이 가장 높은 일반 규율을 떠나 3개월 내에 오히려 출력이 떨어지고 오일 소모가 점차 많아진다는 것을 발견했었다. 

과부하로 허덕이는 버스 엔진이 최고 출력이라 해도 99㎾밖에 안 되었기에 우리는 대보수 기간을 1년으로 잡았고 지난해 6월에 전부 가동한 뒤에 이어 금년 겨울 전에 버스 열 대의 엔진을 전부 대보수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요즘 열대의 버스 중 넉 대를 검차까지 받아 이미 쓰고 있었고 나머지 여섯 대는 이제 육속 대 보수에 들어가야 했는데 버스 운전수들은 매일 오일 타령만 하고 다녔다. 

그중 반장인 박동혁의 차는 지난해 두 번째로 보수한 차였는데 사흘에 한 번씩 오일을 5키로 정도로 넣고 있었다. 요즘 운행은 하루에 많아서 2회였고 사흘이면 5회에 휘발유는 60키로 정도 쓰고 있어서 오일 소모는 8%도 넘는 거였다. 6회라 해도 거의 7%가 된다. 괜히 이상한 데가 있어서 오일을 주지 말라고 위홍이에게 부탁했었다. 내가 이틀 동안 오일 게이지를 점검해 보고 나서 소모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내고 가능하게 기사들이 넣고 나간 후 다시 빼 내여 파는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회사에서는 모든 부품과 연유 및 오일 등속을 쓰면 다 상품의 원가만 한 돈을 수익금에서 빼내기로 했는데 시장 가격으로 팔 수 있었음은 물론 더 높은 가격으로도 팔 수 있었다. 왜냐하면 오일은 조선에서 비싼 물건이었고 또한 그만큼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 식사가 금방 끝나서였다. 위홍이가 새벽에 오일을 허락 없이 꺼내 가는 박동혁을 보았다고 했다. 새로 온 경비도 연속 사흘간 보았다고 자기한테 말하더라고 했다. 외삼촌이 유리를 베는 장소이고 슬레이트를 쌓아둔 곳이기에 잘 보지 않으면 무얼 하는지도 모른다. 

“너 그래 가만있었니?” 

내가 부르튼 소리를 했다. 

“이미 빼낸 걸 어쩌겠소? 가져가게 놔뒀소.” 

이게 어디 제집 일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란 말인가? 가끔 짙은 농담에다가 반대어를 잘 하는 위홍이의 성질을 알고는 있어도 남의 일을 억지로 하고 있는 듯한 그의 언행을 두고 이제까지 불쾌하게 생각해 오던 나였다. 

며칠 전에 14t을 실을 수 있는 새 러시아 유조차가 연속 두 번 왔는데 지하 탱크에 28t이 들어간다는 차영감의 말을 듣고 부리었다가 몇 백 키로가 넘쳐흘러 시내에 흘러 버린 안타까운 일도 저질렀었다. 어느 한번 내가 탱크의 용적을 계산할 수 있게 지하에 내려가 길이, 너비, 높이를 재어 보라고 하는 걸 귓등으로 듣더니 22t밖에 안 되는 용적을 28t으로 계속 믿고 있었기에 저지른 사고였다. 

그때까지는 참았으나 오늘은 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일 부족으로 버스가 실동하지 못하면 나의 책임도 있었던 것이다. 제일 적은 투입으로 여객 수송을 보장해 주면 된다는 기본을 위홍이한테도 심어 줘야 했다. 따끔한 말 한마디로 위동일 정신 차리게 해야 했다. 

“야! 너 지금 정신 있구 하는 소리니? 이제 버스가 모빌유(오일) 때문에 뛰지 못하면 다 니 책임인 줄 알아라!” 

옆에는 세 여자가 있었다. 외숙모는 사무적인 일을 관계하지 않았지만 이모와 설화는 대번에 긴장한 기색이 역연해지고 있었다. 

다들 식사를 끝냈지만 설화는 머리를 대충 뒤로 묶어 놓고 얼굴도 씻지 않은 채 독상을 받고 있었는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숟가락을 밥상에 탕! 둘러메쳤고 이모는 나와 위홍이 부부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에씨, 더러버서(더러워서). 제가 바로 로따인 것처럼 말하네. 설화야! 가자!” 

아내와 《야, 자》하는 건 나진에서 많이 보고 들어와서 인제는 습관이 되었고 위홍이가 자기 아내와 《야, 자》하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고쳐져 있었으나 아직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나에게 함부로 설쳐대는 데는 뭔가 조짐이 좋지 않았다. 일이 내가 바라던 쪽으로 생각지 않게 다가왔고 나는 이제 로따와 이모의 반응을 잘 살펴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므로 둘이 나가는 걸 내버려 두었다. 

“야, 정말 우습다야! 니 무어니? 응? 이 회사에서 너는 무어냐 말이다. 하라는 일이나 잘 할 게지. 저 신경이 안 좋은 아를 어쩌자구 자꾸 건드려 놓으면서 야단이니? 정말 니가 이 회사의 로따니? 니가 무스게니?”

이모의 말은 정말 가관이었다. 이모는 급해나면 속에 들어 있는 말을 그대로 내뿜는 직발배기였다. 

“모빌유가 떨어지면 버스가 나가지 못하고 그 책임은 나한테도 있소.” 

“그건 니가 상관할 게 아니다. 글쎄 위홍이한테 관리 문제가 있기는 하겠지. 그러나 그건 니가 말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오늘 일은 니가 잘못했으니 가서 빌어라!” 

당치 않은 말씀! 내가 뭘 빌어야 한단 말인가? 오일이 긴장한 때에 도둑놈을 가만 놔둔 것을 한 마디 말로 깨우쳐 주려고 한 것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내가 빌어? 

그나저나 나는 그때 위홍이가 무슨 일에서나 민감하다는 것을 보아냈고 이제까지 약간 정신적 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일들을 저질러 온 것이라고 짐작했다. 나이도 적지 않은 사람이 로따가 그렇게 수차 타이르는 데도 불구하고 계속 좋지 않은 일들만 저지르고 다니는 게 좀 이해될 듯싶었다. 바로 그 때문에 이모는 위홍이한테 빌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모는 계속 나를 두고 푸념하고 있었고 나는 생각에 골몰하면서 침묵을 지켰다. 

오늘 일이 일 같지 않은 일을 가지고 크게 벌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내가 바라마지 않던 사태에까지 이른 것이 나에게는 좋은 일일 수밖에 없었다. 

위홍이 부부는 반나절 넘어 실종되었다. 휘발유 가지러 온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는데 주유기 가까이로부터 차들이 20여 대가 줄지어 시가지 대통로에까지 세워져 있었다. 우리 승용차가 다니는데 더없이 불편했다. 길목을 전부 막고 있었으니 말이다. 

매점에도 오늘따라 손님이 그칠 새 없었는데 영철이마저 없어 혜영이 혼자 눈코 뜰 새 없이 보내는 걸 내가 거들어 주었다. 이모가 매점 쪽으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더니 끝내 나를 불러 내갔다. 로따가 자기 방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니가 그렇게 말한 건 잘한 거다. 방식이 틀렸을 뿐이지. 내가 잘 말해 둘 테니 위홍이에게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모가 옆에서 몇 마디 하려는지 입 귀를 실룩거리는데 로따의 눈치를 보고는 억지로 참는 것 같았다. 

아무튼 점심 식사 때까지도 위홍이 부부는 나타나지 않았고 점심 식사시간이 지난 지 이슥해서야 경비실 쪽에서 들어오는 그들을 발견했다. 문은실이 무슨 전화인지 오랫동안 수화기를 든 채 말하고 있었는데 수리소 쪽에 전화를 하려던 내가 갑갑해서 기다리기 바쁜 지경이 됐다. 

“무슨 전화를 이리 오래 하니? 빨리 놔라!”

“씨, 별 걱정 다 하면서. 저를 보고 그런 걱정 하랬나?” 

설화가 자기 방에 들어가면서 나를 등진 채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하고 있었고 위홍이는 설화 옆에 장승처럼 서 있었다. 가까이에 있으면 무슨 욕이 더 나올지 몰라 피해서 매점에 왔다. 

후에야 알았지만 위홍이는 나가는 길로 자기 어머니에게 국제 전화를 했고 돌아가겠다는 의향을 여쭈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한바탕 달래서 겨우 마음을 눅잦히고 둘이 시내를 돌다가 돌아온 거였다. 나의 한 마디 말이 그한테는 그 정도로 심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오늘 이때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날부터 이모는 오일도 휘발유와 마찬가지로 전표 놀음을 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용철이와 나의 사인이 있는 전표를 받은 후에야 지급할 수 있게 만드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는데 위홍이는 그 후 주유기 사건을 더 겪은 후에야 나한테 조금은 굽어 드는 태도를 보여 주었고 내가 나진을 떠날 때까지 조금은 좋아진 것 같았으나 로따를 속 태우는 일은 계속 저질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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