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팔린다던 어느 한 중고차가 오래도록 세워져 있었다. 다른 차들을 빌려 쓰는 것은 비용이 나가는 것이고 하루라도 세워두고 있을 바에는 자기 차를 쓰는 게 오히려 더 절약이다. 마침내 로따는 나보고 그 차로 슬레이트 한차 실어 오라고 지시해 왔다. 

이날 아홉 시 경에 출발해 약 30분 후 선봉 수금소에 도착했다. 아는 얼굴들은 그냥 통과시켜 주었는데 원정에 사는 한 여인을 실어다 주라면서 조수석에 안내해주는 거였다. 

수금소를 지나면서부터 바로 저술령 올리막길이 시작된다. 여름철의 도로 정비가 괜찮게 되어 배수로가 잘 빠져 있었고 비포장에 2차선이라지만 노면이 평탄하여 지난해보다는 많이 좋아진 느낌을 준다. 

게다가 새롭게 이정표도 만들어 세웠다. 나는 첫 출국 때 로따한테서 《저슬령》이라고 잘못 들어서 여태까지 계속 《저슬령》이라고 불러 왔었다. 약수터와 가까운 다리에 한자로 《檜嶺橋》라고 씌여진 것을 보아온 뒤로 대반령 영길과 같이 저술령 영길도 일제 시기에 닦아 놓은 길이라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진짜 이름이 《저술령(猪瑟岺)》이라는것을 이날 새 이정표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올리막 5㎞》라고 표식이 잘 되어 있었는데 그 이정표를 지나고 난 뒤에 원정리 여자와 한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담배 피워도 되겠습니까?” 

일부러 성근한 어조로 말을 걸어보았다. 

중국에서나 조선에서는 여자들 앞에서 실례되게 담배 피우는 일이 많은데 나의 의도는 조선의 시골 여자가 어떤 표정과 행동을 보여줄는 지 그걸 보려는 거였다. 수건으로 얼굴까지 가렸던 여자가 수건을 풀면서 엷게 미소를 지었다. 배낭 하나를 지고 있었고 옷은 남루하지 않았지만 더없이 낡아 있었고 그나마 깨끗이 빨아 입고있었다. 아주 수수한 얼굴의 그녀는 입귀만 실룩거릴뿐 묵묵부답이었다.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구요!” 

귀찮은 엔진 소리에 듣지 못해 대답 못하는 줄 알고 내가 높은 소리로 다시 물어서야 

“예.” 

하고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한다. 

“원정 어디에 삽니까?” 

“…신(新) 원정임다.” 

우리가 늘 통과하는 국경 종합 검사장은 구(舊) 원정에 있었고 거기서 북쪽으로 2키로 떨어진 두만강변에 새 마을을 건설했는데 그 마을이 신원정이고 원정리 소재지라고 한다. 

“나진에 자주 다닙니까?” 

“예…, 몇 달에 한 번씩 다님다.” 

“그럼 장사하는 사람은 아니겠음다?” 

원정이나 하여평 쪽의 여자들이 더러 장사한다. 지나 다니는 중국차를 잡아타고 며칠에 한번씩 나진에 다니면서 꽤 많은 돈을 벌고 있었는데 늘 다니는 기사 파트너가 있어서 내가 걱정해주지 않아도 되었고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올라와 절대로 그런 여자들을 실어주지 않았었다. 

“며칠후 아버지 생일이어서…” 

“오-, 상감 사러 갔다 오는 길이라…” 

나는 혼자 중얼대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물었다. 

“남자들을 보낼 거지 왜 여자가 다니는 거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은덕이나 새별군 쪽에서 나진장을 보러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자들이라는 걸 길에서 많이 보아왔고 차잡이를 못한 사람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는 사람 중에도 여자가 많다는 것을 심심찮게 보아왔던 나였는데 장사하거나 쇼핑에서는 그래도 여자가 많아 보이는 조선의 현상을 더 캐어볼 호기심도 없지 않았다. 

“동생 둘은 다 군대가고 나만 아버지와 같이 있음다.” 

“그램 아직 시집은 안 갔네?” 

여자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침묵하는 사이 저술령 정상을 넘었고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시집을 안 간 거요? 못 간 거요?”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보다는 연하인 것 같아 보여서 말투도 고쳐지고 있다. 기어를 3단에 넣고 브레이크 페달 위에 오른 발을 올려놓은 채 차가 그냥 미끌어져 내려가게 내버려 두었다. 

“시집을 못 간 거로구나.” 

내가 한마디 뱉어내자 그제야 여자가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빈정대는 투로 말합니까?” 

“뭐요? 내가 빈정거려요?” 

그러면서 힐끗 곁눈질해 보았더니 수심에 찬 얼굴에 노기까지 서려있는 게 아닌가? 

“내가 잘못한 거라도 있소?” 

끝까지 캐고 싶어 졌다. 

“우리 나그내(남편)는 정말 좋은 분이었는데…” 

“그런 데는 어떻다는 거요?” 

“재작년에 사망 했음다.” 

“어? 어, 어…, 내가 잘못해서 실수했구만. 미안하오.” 

여자는 다시 조용해졌고 나는 브레이크 페달을 적당히 밟으면서 180도 되는 커브를 몇 개 돌았다. 저 아래에 약수터가 보인다. 檜嶺橋를 지나고 약수터에서 차 타려고 손 젓는 사람들을 지나치고 나서 여자에게 말했다. 

“저 앞에 초소를 지날 때 허리 굽혀 숨어야 하오.” 

“알고 있음다. 중국 차를 탈 때마다 그냥 그랬음다.” 

초소 쪽에는 오늘도 지대 밖의 사람들(주로는 은덕이나 새별, 온성 등지에서 나진 장을 보려고 지대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서있었고 차가 한대 지나 갈만한 길을 틔어놓고 검열원도 길 옆에 서있었다. 

경적을 울리면서 조심스럽게 초소를 통과한 후 철도 교차목을 지났다. 청학 기차역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지는데 오른쪽은 두만강리로, 왼쪽은 은덕과 새별 쪽으로 가는 길이고 차를 곧은 길로 계속 몰아주면 원정 쪽으로 갈 수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삼거리 북쪽 켠의 산등성이에 

“쌀은 곧 공산주의이다!” 

라고 쓴 커다란 나무 간판이 박혀져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길옆에 삼거리 도로 표식이 새롭게 페인트 칠을 하고 서있었다. 이 삼거리만 지나면 청학고개다. 

“애가 있소?” 

“아저씨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머…” 

“내게 여덟 살 되는 아들이 있소. 요즘 학교에 붙게 되지.” 

“어마! 아저씨가 어려 보이는데…” 

나이가 어려 보이는 사람이 반말까지 하게 되니 꾸중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생기를 되찾은 그녀와 얘기를 더 나누고 싶어 졌다. 

“우리 그 분은 참 좋은 분이었는데, 애를 못 본 게 유감임다.” 

기대에도 어긋나지 않게 먼저 화제를 꺼내는 그녀. 

“그게 잘 됐지 머요? 다시 시집가면 거치장스러운 게 없잖고 머요.” 

“아저씨두 참, 그것도 말이라고 함까?” 

“그램 재가하지 않는다는 거요?” 

“…우리 그 분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 지 모름다.” 

“뭐요? 죽은 사람의 정은 점점 멀어져 가는…” 

“아닙니다! 몸은 갔지만 내 마음에 계속 살아있는 거랍니다. 평생 그 한분만 마음에 두고 있으면 다른 사람은 받아들일 것 같지 못합니다.” 

하루 낮시간 동안 힘든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어린애를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날마다 옛이야기 하나씩 들려 주어 잠들게 했다고 한다. 집일에는 아내가 손가락 하나 까딱 대지 못하게 하고 죄다 혼자 해냈는데 자기는 집에 앉아 고이 놀기만 했다고 한다. 

우물에 물긷기, 장작패기, 빨래하고 밥짓기, 설거지에다 집청소, 집짐승 기르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다 맡아하던 남편이 무슨 병인지 모르게 앓다가 갑자기 사망하고 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친정 아버지와 같이 지내온 동안 견강해졌고 살 용기를 가졌지만 그 좋은 남편을 몰리고 재가하는 것이 천하에 용서못할 죄처럼 느껴져 온단다.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겠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그 말을 목구멍까지 나오는 걸 삼켜 버리고 묵묵히 차만 운전했다. 여자들의 지위가 하찮은 조선 사회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들어 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나진 거리에서 다정히 말을 주고받고 손에 손잡고 다니는 연인들을 가물에 콩 나듯 몇번 본 적이 있지만 참된 사랑을 하는 조선 사람의 경우를 보지 못할 것이라며 의심해마지 않던 나였다. 그 상상도 못하던 의심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나는 사랑이란 인간이 사는 곳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도 결백한 사랑관을 가지고 있는 원정리 여자에게 존경심이 가는 것도 그랬다. 

중국의 조선족 사회에서 여자들이 돈만 돈이라고 남자들을 사랑해 주지 않는 현실과는 반대로 조선의 사랑은 아직도 그 순박함과 순결성을 잃지 않고 있는 데에 대해서 그 어떤 느낌이 깊어만 갔다. 

하여평 고개를 넘어 하여평리를 지날 때 나의 이혼 이야기를 들려 줬더니 그 여자는 경악을 금치 못하는 거였다. 

“나는 애를 주지 못하겠음다. 제 피덩이를 어떻게 뿌리칠 수 있음까?” 

역시 깨끗하고 순수한 애정관을 보여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조선족 여자들도 깨끗하고 순박했던 사랑관을 소유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시대가 변하니 여자들 마음도 변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조선 여자들 마음도 변해서 이 세상 아름다운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 날을 맞아오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원정 고개 갈림길에서 그 여자와 작별했다. 

멀어져가는 여자의 뒤 모습을 보면서 저 여자가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여자뿐이 아닌 모든 여자들, 세상 모든 여자들도 다 사랑스럽게 생각되고 더불어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다 사랑스러운 일면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사랑을 알아야 한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하거니와 남을 사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할 줄 모르게 되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결국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럴진대 사람이란 누구나 사랑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올바른 마음 가짐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사랑에 대해 수업을 받아보기는 나진 행에서 처음 있어 본 일이었다. 

원정리 그 여자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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