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청계 싸움을 치른 후로 집에서 수리하던 여섯 대의 중고차 중에서 덤프 트럭 한 대가 남은 것을 내가 돈을 많이 먹여 깔끔히 수리해 냈고 그걸 직접 몰아 온 뒤 오래 동안 수리소 마당에 세워 두고 있었다. 

크레인 차는 쓸모가 있어서 잠시 팔지 않기로 했지만 당장 팔릴 것 같던 덤프 트럭이 이상하게 팔리지 않는다. 나진에서는 자동화차라고 불렀는데 중고차지만 성능이 좋은 그 차를 두고 구경하는 사람마다 욕심냈지만 정작 사가는 자가 나지지 않았다. 원인이라면 차종이 구가다(구식)여서 중고차라 하더라도 새 차종을 선호하는 나진 사람들에게는 보기 흉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윈도우 글라스가 새 차종처럼 통 유리가 아닌 유리 두 장을 각각 넣은 거였는데 겉치레를 유난히 좋아하는 나진 사람들이 보기 흉한 구가다를 전혀 눈에 차하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돈이 딸려 새차를 거의 사지 못하는 형편에서도 중고차라 해도 새 차종이어야 하는 것이 나진의 자동차 시장이다. 그런 대로 몇달간 세워 두다가 로따의 먼 친척 한 사람이 사겠다는 친구 한 사람을 소개해 왔는데 선봉군 쪽의 웅상병원 원장이었다. 

기관, 기업소에서 부업을 하는 일이 더러 있었고 그것인 즉 배를 띄워 수산물을 걷어들이거나 자동차로 운수업을 하는 것이다. 외국인 기업은 세금 때문에 배를 바다에 내 보내는 것이 오히려 거꾸로 하는 장사였지만 조선 국내 기업을 놓고 말할 때 좋은 부업일 수밖에 없었고 자동차 보유량이 적은 현상태때문에 빌려 쓰는 일이 비일비재로 많아 운수 부업은 배보다도 더 좋은 부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장은 바로 그 부업을 엿보고 차를 사려 드는 것이다. 무료봉사를 하는 병원에서 어디 돈 나올 데라고는 배 하나 밖에 없었는 데 그걸로 돈을 벌어 병원을 잘 꾸려보려는 그의 소원은 절대 이룩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부터 태국에서 투자한 통신센터의 빌딩을 짓기 시작했는데 건축재료가 대량 수요되었고 많은 차량이 동원되어야 했다. 자기 차로 모래나 자갈 등을 실어 나르는 일을 맡게 되면 엄청난 부업 돈을 벌 수 있었다. 이미 부업 거리를 맡아 놓고 온 것임이 분명 했었다. 로따는 이왕의 경험을 떠나 차를 외상으로 주었다. 

장사를 해도 언제나 돈을 먼저 받고 시일이 한참 걸려서야 물건을 내주군 하던 작법을 버리고 이상하게 웅상병원과 계약을 쓰고 그 차를 내준 것이다. 로따의 친척은 조카벌이 되었고 원장은 그 친척과 같이 로따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조카의 낯을 봐서 내민 일이긴 했지만 나는 마음 한구석이 께름직한 것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차 외에도 슬레이트와 휘발유도 전부 외상이었고 부품 값과 수리비도 역시 외상이었다. 후에는 타일과 시멘트도 가져갔고 나진에 왔다가 시간이 늦어지면 우리 승용차로 웅상까지 실어다 주는 일도 가끔 있었다. 선봉에서 해안선 따라 동쪽으로 고개 하나만 넘으면 웅상이었는데 백사장이 무연이 펼쳐진 웅상만(전에는 웅기만이라 했다.)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같은 그 곳으로 나도 여러 번 다녀왔었다. 

가끔 수산물을 우리한테 보내 주었고 병원을 도와주는 우리 쪽의 외상값은 늘어만 갔다. 지난 여름 자갈을 실었던 덤프트럭이 쥬브가 파손 되어 더 쓸수 없게 되었을 때 내가 쓸만한 것으로 두개를 직접 갖다 준적이 있었고 엔진이 고장났을 때도 모든 일을 제쳐놓고 그 차부터 손질해 주었다. 외상 값은 늘어만 갔지만 계약해 놓은 것이 있다면서 로따는 대수로와 하지 않았고 오히려 병원을 잘 꾸리려고 침식을 잊어 가면서 사업하는 원장을 더 적극적으로 발 벗고 도와 주는 거였다. 

하루는 바다에 나갔던 배가 깜쪽같이 잃어졌다면서 나진에 와서 신고해야겠는데 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로따는 두말없이 나한테 89호를 내 주었고 그 차로 해사사업국과 창진에 갔었다. 우선 해사사업국에 도난 신고를 했고 창진의 물고기 가공단지안에 있는 부두에서 배가 발견되었기에 거기에도 가본 것이다. 

병원의 사공이 배를 사사로이 팔아버린 나라 물건을 훔친 사건이었는데 배와 사공이 어찌 되었는 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하루 동안 원장과 동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이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좀 적으려 할뿐이다. 

사공이 함부로 나라 재산을 팔아 버린 것쯤은 너무나도 졸렬하고 어리석은 일임을 누구나 다 짐작할 수 있겠다. 해사사업국의 영감 하나를 태우고 창진에 갔고 일을 다 보고난 후에 웅상에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왔었다. 원장을 실어다 주고 그냥 오려던 참이었는데 원장이 기어이 저녁을 지어서 그 영감과 나를 대접하려는 성의를 무시할수 없었던 것이다. 

술을 먹지 않고 구수한 민물고기 국에 밥만 먹고 나서 그들이 나누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정전이어서 다들 촛불을 밝혀 놓고 마른 낙지를 찢어 술안주를 하고 있었고 나도 마른 낙지를 찢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해사사업국의 영감은 지대안의 해원증을 발급하고 관리하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해원증이 없는 사람은 어선에 타지 못하고 바다에 나가지 못한다. 특히 어선인 경우는 단속이 심하고 관리가 엄한 것 같았다. 시험에 합격한 자에게만 해원증이 발급되었고 어부 노릇을 하느냐 못 하느냐는 영감의 한마디 말에 달렸다. 

해안선을 끼고 있는 지대안에서 어부의 직업은 곧바로 부(富)를 의미한다. 식량이 모자랄 때에도 굶지 않는 것이 어부집이다. 어부로 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이상이었다. 그런데 몇년동안 애써 공부해도 해원증이 발급되지 않아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바로 덤프트럭 기사의 동생과 같은 사람이었다. 해마다 시험에서 미끌어져 3년째 바다에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술자리에서 기사는 그 이야기를 영감한테 했고 약간 거나해진 영감이 무릎을 탁 치면서 

“그건 내게 맡기게!” 

했다. 

지난 여름 어느 때인가 우리 숙소에 와서 웅상병원 종업원 몇이 술을 마신 적이 있고 기사는 취해서 춤을 추다가 넘어졌는데 묘하게도 인중이 긁히어 피멍이 든 적이 있었다. 주량이 많지 않은 기사가 기쁜 김에 그 영감과 겨끔 내기로 한잔 두잔 기울이더니 끝내 바닥에 거꾸로 엎어지고 말았다. 술 마시지 못하는 원장이 기사 시중을 들었고 나는 축 늘어진 영감을 차에 실어 나진의 집에까지 태워다 주었다. 

덤프 트럭으로 모래와 자갈을 실어 나르는데 원장도 늘 동행했다고 한다. 하루는 너무도 지치고 피곤하여 자갈 싣는 현장에서 대충 저녁 밥을 에때우고 잠이 들었다고 한다. 이튿날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서야 차의 부품이 적지 않게 도난당했다는 걸 발견했다. 

발전기와 뷰다를 훔쳐갔고 스피어 타이어도 가져갔다. 목격자의 말로는 군대 서너 명이 한 짓이라고 한다. 너무나도 큰 손실이었다. 그 날로 우리 회사에 찾아와서 필요한 것들을 외상으로 가져갔고 다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이였다. 

배와 차의 부업이 괜찮게 되어가고 있는 모양인지 며칠 전에 20만 원을 입금했고 병원 건설을 잘했다는 걸로 원장은 시인민위원회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비가 새는 지붕에 슬레이트를 얹었고 자그마한 시골 병원에 주사실, 약국, 접산실, 구급실, 입원실, 원장 사무실까지 없는 것이 없고 지어는 차고까지도 깨끗하고 아담하게 꾸며 놓았다. 마당의 화단에 꽃을 심어놓고 흙을 실어다가 반듯하게 펴놓았다. 나진인민병원이나 선봉인민병원처럼 규모나 설비면에서 비교될 수도 없었지만 구급차(앰블렌스) 한대까지 마련해 놓을 아름찬 계획까지도 세워놓고 있었다. 정말로 개인의 이익은 조그만치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나라만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업하는 진정한 도덕적인 인간으로 볼수 있는 원장이었다. 

그런데 그 병원에서 차를 한대 또 샀다는 소문이 전해왔다. 중고차라면 중국에서 쓰던 차, 혹은 폐차시킬 정도로 된 걸 잘 수리해서 아무 번호판이나 달아가지고 나진에 굴려온 것인데 중국세관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고 우리 회사처럼 수입신고가 되어 있으면 정상적인 수입으로 치부하고 그렇지 않으면 밀수차로 인정한다. 

지대안에서 그 당시 중고차 수입 신고문건을 우리 회사에서밖에 만들지 못했으므로 우리 회사의 중고차는 전부 정상적인 수입 범주에 속했으나 다른 사람의 손에서 중고차를 넘겨 사면 곧 밀수차를 구매한 것이다. 웅상병원에서는 바로 그런 밀수차를 산 것이었다. 

밀수차를 사면 값이 싼 반면에 번호 받기가 힘들다. 우선 관세지불확인서와 판매확인서가 없기 때문에 안전부에서 승인해주지 않으며 차감독소에서 승인 받지 못한 차에 번호판을 내줄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그런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버스 검차때문에 차 감독소를 다니면서 번호 받는 수속을 하는 중이었던 웅상병원 원장을 만났는데 원장은 병원에서 새로 산 중고차라는 것은 말하지 않고 밀수차 수속이 엄청 어렵다고 혀를 끌끌 차는 것이었다. 괜한 짓을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이젠 거의 되어 간다고 하면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회사에 돌아온 후 내가 얘기했더니 영철이는 아직 외상 값을 채 물지 않고 다른 차를 돈주고 샀다면서 좋지 않은 기색을 지었다. 외상 값을 정 물지 않으면 덤프 트럭을 계약대로 돌려 받든지 해야겠다고 하면서 외상을 적게 주던지 아니면 아예 주지 않든지 방법이 있어야겠다는 말을 이모와 주고 받기도 했다. 

그런데 로따의 태도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애매하기만 했다. 어떤 때는 덤프트럭을 당장 몰아올 소리를 하다가도 원장이 나타나 삼촌, 삼촌하고 부르고 언제 언제까지면 빚을 다 청산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어주면서 지나쳐 버리기도 했다. 

유독 웅상병원 하나만 외상놀이를 하는 일은 후에도 계속 되었는데 어떻게 해결 보았는 지는 모르고 있다. 로따는 웅상병원 문제에서 한가지만 걱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선은 전부 다 국가 기업소였으므로 지배인자리는 나라에서 해주기에 달려 있다. 

원장이 파직 되지 않고 있으면 외상놀이는 언제까지라도 괜찮다는 여유를 로따가 보여 주었으므로 이모와 영철이는 후에 더는 들고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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