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 

89호에 정화를 태우고 인민위원회에 갔다. 도중에 은행 앞을 지나는데 관광 버스 한대가 나를 추월하는 것을 얼결에 보았다. 생각 밖에도 연길에 있는 여행사 친구들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정화가 내린 후 버스를 따라 나진항 입구까지 갔다. 

허술한 작업복 차림에 수염도 깎지 않은 장발의 나를 친구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꽃제비들에게 잔 돈을 주느라 여념이 없는 친구들 이름을 세명째 불렀을 때 그제서야 나를 알아 보고 우르르 쓸어 내렸다. 시도 때도 없이 다니는 나진이고 연길에도 가본 지 오래 되었는데 이 친구들을 못본 지도 1년이 넘어 있었다. 백두산 관광 시즌이 끝났고 이제 여름동안 쌓였던 피곤과 스트레스를 풀고 조선 공부를 하려고 여행사에서 조직한 나진 관광인데 오늘은 첫 팀이고 며칠후 두번째 팀이 올거란다. 

깜찍하게 생긴 도요다 봉고차를 둘러 싸고 값이 얼마냐, 나진 아가씨는 몇 명이나 잡아먹었냐, 오늘 저녁에 나진 아가씨 몇명을 불러 달라,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함께 놀아보자 하면서 야단법석한다. 어제 저녁 전기는 있으나 물이 없는 나진 호텔에서 1박하고 오늘 저녁에는 비파도 관광 봉사소에 묵게 된다고 했다. 저녁에 비파도 쪽으로 내가 가서 만나기를 약속하고 인민위원회 주차장에서 정화를 기다려 싣고 왔다. 

점심 밥을 먹으면서 친구들 얘기를 했고 저녁에 비파도에 갈 의향을 비쳤다. 로따는 선뜻이 88호를 내놓겠다고 했고 갈 때 내화 2만을 갖고 가라고 말해 두는 것이었다. 

이제 비파도에 가기 전에 88호에 대해 설명하고 저 한다. 3월에 샀던 88호는 엔진이 4실린더에 오토 미션이었는데 며칠 전에 용철이가 러시아 유조차 마중으로 원정에 갔다 오면서 길 옆의 배수구에 처박아 놓아 큰 고장이 아닐지라도 빠른 시속으로 운전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완전히 부러지지 않고 그냥 휘어진 부품 한 개를 중국에서 구해와야 했는데 뜯어 낸 것을 샘플로 중국에 보내서 차를 세워 두고 있다. 

러시아에서 시멘트 원료인 크링카를 수입한 적이 있는데 두만강 쪽의 러조 두 나라사이의 철교를 이용해 기차로 300톤을 실어다 선봉 시멘트공장에 팔았었다. 또 중국에서 석회석을 실어다 팔았는데 다른 한가지 원료는 조선산이어서 선봉 시멘트는 중-러-조 삼국의 세가지 원료로 수백톤이 생산되고 있었고 장사거래로 선봉 시멘트공장 지배인이 부지런히 우리 회사에 다니고 있다. 

나도 몇번을 쟈쟈와 같이 석회석을 실은 차를 가지고 선봉에 간 적이 있고 지배인과는 농담까지 주고 받는 익숙한 사이로 될수 있었다. 원료를 선봉에만 팔고 나진에 팔지 않아 한때 나진 시멘트 공장에서 항의한 적까지 있다. 그 지배인이 늘 나진에 다녔는데 한달전부터 우리 88호와 겉 모양이 똑같은 찦차를 《새로 받은 차》라고 쓴 종이장만 윈도우 글라스에 붙이고 몰고 다녔다. 

무슨 차든지 새로 산 차들은 번호를 받기 전에 번호판을 다는 위치에 《새로 받은 차》라고 쓴 나무 조각이나 종이따위를 달고 다니기도 했는데 안전부의 도장이 찍혀 있고 유효기일도 적혀 있었다. 지배인의 그 찦차는 6실린더에 수동 미션이었는데 우리 88호보다 더 좋아 보여서 영철이가 욕심내기 시작했고 88호가 고장난 이튿날에 로따가 빼앗게 되었다. 

지배인은 아직 차 값을 물지 않았고 우리가 차 값을 물기로 했으니 결국 그 자리에서 차를 산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화 백만이니 당시 환율로 인민폐 3만 7천 원이었고 그 차종을 새차로 중국에서 산다면 인민폐 37만 원이라도 어림도 없다. 중국에서 수입차를 생산지 가격의 3~4배 되는 가격으로 사는데 비하면 조선에서 일제 중고차를 사는 것이 그래도 수지 맞는 일이었다. 

좋은 중고차는 1만달러 정도였는데 원래 88호는 내화 90만, 89호는 7천 달러에 샀었다. 원래 88호의 번호판을 뜯어 새로 산 차에 달았는데 그 것이 바로 지금의 88호다. 

핸들이 역시 우측에 있고 수동미션이어서 자동미션에 습관된 우리한테 조금은 불편했으나 나진의 비포장 도로에 어울리는 차종이었고 이내 우리 식구들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며칠동안 서로 다투어 운전해 보았고 수동미션에 많이 습관되어 가고 있었다. 

오후에 잠을 푹 자 두었고 머리도 씻고 수염도 깎았다. 나들이 옷을 갈아입고 2만원을 넣고 나서 다섯시가 좀 지나 남산 호텔 옆의 《연길상점》에 갔다.  코카 콜라를 캔으로 된걸 한박스 사서 뒤좌석에 집어넣고 비파도로 향했다. 여름철에 새로 생겨난 나진의 양고기 꼬치구이를 먹으러 다니면서 코카 콜라를 찾았지만 끝내 사지 못했고 외국인 숙소나 남산 호텔의 로비에서도 그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연길 상점이나 그 맞은 켠의 미연 상점 그리고 우리 회사 부근의 삼흥 호텔 같은 중국인 회사에서만 살 수 있었다. 

그 현상을 두고 조선에서 미국 상표의 상품을 판매하는 걸 꺼리지 않나 하고 생각 했었다. 후일 로따가 조선의 상점들에 가능하게 코카 콜라의 판매권이 없기때문에 찾아 볼 수없는 것이라고 해석해서야 조금은 납득되었다. 비파도 관광 봉사소는 조선 국내기업이고 그 식당에서도 지난해 청계싸움을 한 이튿날 로따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코카 콜라를 찾지 못했기에 가이드 친구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코카 콜라를 일부러 나진에서 산거였다. 

중국에서보다 비싼 가격인 내화 100원에 한캔이다. 식당 앞에 주차시켜 놓고 콜라를 들고 들어가니 친구들은 한창 식사중이었다. 접대 한명을 불러 노래시키고 있었다.(조선에서는 식당의 아가씨를 《접대》라고 부른다.) 그 접대가 다 노래하고 나서 박수 갈채를 보내고 나를 반가이 맞았다. 옆에도 손님들이 더러 있었는데 우리 친구들의 소리가 제일 요란했다. 역시 가이드의 본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접대를 불러 코카 콜라를 1인당 하나씩 돌아가게 놓으라고 시켰다. 나머지가 두개였는데 나까지 22명인 셈이다. 나머지 두개를 한 친구가 조선 가이드한테 주면서 가이드는 당신처럼 서툴게 하는게 아니다, 뭐 어쩌고 저쩌고 설명하였고 그 가이드는 이제 금방 세번째로 안내를 나왔기에 많이 서툴고 여러분들이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청들고 있었다. 

홍사장과 박부장 그리고 이과장 하고는 원래부터 친한 사이다. 이과장이 하나 궁금한 것을 물어 왔다. 어제 수산물을 먹었는데 일행 거의 다가 이상한 일을 겪게 되었다. 처음엔 술을 마셔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물건은 계속 두 개가 되어 보이고 속이 메슥메슥하면서도 토하게 되지 않는다. 이건 뭐냐? 이건 내가 소라 중독에 걸렸던 증세와 똑같은 거였다. 

-너희들은 틀림없이 경한 소라 식중독에 걸렸다. 술을 마셨으니 잠을 자는 동안 중독 증세가 사라진 거다. 

그렇게 말해주니 그제야 소라 요리를 많이 시켜 먹었다는 기억을 더듬어 내었다. 오늘 저녁상에도 추가로 요리들이 많이 올라 있었고 그중 소라도 보였다. 나는 섭조개를 생식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소라를 먹을때 어느 부분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설명해주었다. 구운 조개와 삶은 밥 조개, 그 외에도 털 게와 성게, 해어 요리들이 풍성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벌써 2차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조선 가이드가 그냥 식당에서 노래방 맞잡이로 놀 수 있다고 했으나 분위기가 안 좋아서 포기하고 새로 개업한 엠페러 호텔에도 노래방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조선 가이드가 가보지 못해서 자세한 걸 잘 모르겠다고 하니 아까 가이드를 닦아세우던 친구가 

“가이드 하는 사람이 자꾸 모른다고만 하면 무슨 가이드인가? 이 친구가 정말 기분이 나쁘게 노네?”

하면서 벌써 취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엠페러 호텔에 조선 사람이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한다는 규정을 모르고 있었으니 나올만한 말이기도 하다. 엠페러 호텔에 카지노가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고 일단은 가서 결정한다며 우르르 쓸어 나왔다. 

내가 세 번 왕복해서 20여 명을 엠페러 호텔에 실어 갔다. 짐실이 공간을 크게 만든 찦차여서 거기에 많을 때 다섯 명을 태우면 최고 10명까지 탈 수 있는 차다. 봉사소에서 호텔까지는 1키로가 될까 말까한 거리다. 아저씨 멋쟁이다, 차도 좋다, 나한테도 한 대 있었으면 좋겠다 등등 가이드 아가씨들이 재잘거리는 동안 지하에서 노래방을 찾아냈고 거기서 맥주를 시켜 마시고 노래와 춤으로 한 시간 넘어 즐겁게 놀았다. 

그런데 친구들이 하나 둘 빠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전부 다 카지노에 모여들고 말았다. 호텔의 로비에 들어서면서 

“와-, 연변의 제일 좋은 호텔도 따르지 못하겠다야!” 

감탄하던 친구들 중 일부가 자정까지 놀다가 봉사소에 먼저 돌아가고 몇몇은 밤새도록 놀아 주었다. 모두 네 명이 땄는데 딴 돈을 다 합쳐도 2천이 안되었지만 나머지 친구들이 잃은 돈을 따져 보니 총 2만여 원이 되었다. 구경하던 친구 두 명과 함께 로비의 커피숍에서 한 캔에 17원씩 하는 맥주와 같은 가격의 콜라를 시켜 마시면서 돈을 잃고 나오는 마지막 전사들을 기다려 주었다. 

아침 식사를 드네 마네 하던 친구들이 귀국하는 것을 바래주었다. 그들이 남긴 배갈 한 박스를 받고 보니 결국 나는 돈을 쓰지 않은 셈이 되었다. 노래방에서 주머니에 있던 돈을 다 내고 맥주를 사려했지만 홍사장과 박부장이 기어이 말려서 끝내 사지 못했는데 콜라 값만큼의 술이 생겼으니 우리 나진 식구들의 좋은 노릇을 했던 것이다. 

내가 나진에 오지 않고 이태동안 가이드 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싶었다. 나진까지 오는 동안 줄곧 그 생각에 골몰했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돈 없는 신세가 아니겠고 건강도 지금처럼 형편없이 되지는 않겠지. 밤새 자지 못했고 중독 후유증도 가셔지지 않아 오후 늦은 시간까지 푹 잤고 저녁 밥을 먹은 뒤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누워서 책을 보던 맵시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간밤 꿈에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굽어보았고 만리 장성에 올라 고구려 군사들의 천지를 진감하는 환호 소리를 듣다가 새벽녘에 깨난 후 장걸이의 우렁찬 코 골이로 더는 자지 못했다. 

흐리터분한 기분 속에 오전 시간이 지나가고 점심 시간이 다가오는 때 회사 마당에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훈춘 버스역의 맞은 켠에서 사통 부품가게를 하고 있는 조 보스였다. 지난해부터 조(趙) 보스네 부품을 외상으로 나진에 내왔었다. 

처음엔 그냥 가져가고 다음 번부터는 먼저 번 외상 값을 물고 가져가기로 약속했으나 외상이 모이고 모여서 큰 돈이 되었고 부품의 질이 안 좋아서 5월 달부터 거래를 끊었었는데 몇 달 동안 소식이 없으니 직접 나진의 회사까지 찾아 온 걸음이었다. 외상은 조금씩 물어주어 현재 5천 정도가 남았었다. 그 몇 달 사이에 다른 부품 가게를 찾고 외상을 2만 정도 올려놓은 후 또 거래를 끊었었다. 

영철이의 친구인 종수가 외사촌 형님이 하고있는 부품 가게를 소개해준 지 퍼그나 오래 되었는데 그 집이 바로 지금 거래하는 황 보스네 부품가게다. 지난해 연말부터 종수가 보이지 않았는데 그가 실종되기 전에 우리한테 소개해 주었고 지금은 나진의 거의 모든 부품은 황 보스가 보내 준다. 

거래량이 많아 외상은 늘 10만 이상으로 되어 있었다. 황 보스는 초청장을 해 주어 두 번이나 나진에 나온 적이 있지만 조 보스는 아직까지 한 번도 와 보지 못했고 이번에는 여행사에 의뢰하여 2박 3일 관광차로 나온 거였다. 일행이 나진에서 식사하는 시간을 빌어 회사에 찾아 왔다고 했다. 

나진의 관광은 비파도와 추진으로 1박 2일이면 지루하지도 않고 가장 알 맞는 시간이었다. 2박 3일은 시내 관광까지 포함되었는데 나진항 견학과 해양 쪽의 혁명 사적지 그리고 청소년 예술단 공연이 있었고 나진 시장의 쇼핑코스도 있었다. 가이드 친구들한테서 공연이 볼만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코스에 대해서 얻어 들었었다. 몇해 전에 처음 조선을 관광한 사람들에게서 가이드와 기사 외에 보위부 사람 하나가 동행한다는 해괴한 소리를 얻어 들었었다. 관광객들의 전 일정에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면서 언행을 감시한다고 했다. 후일 칠보산 관광때 나도 직접 겪은 것이 있고 거기에 대해서는 뒤에서 쓰기로 한다. 

지난해 러시아 유조차가 처음 나올 때 보위부 지도원이 원정까지 가서 영접해 오고 유조차가 돌아갈 때도 원정까지 전송해 준 일이 있었는데 몇 번을 그렇게 하다가 이상한 점이 발견되지 않았는지 후에는 따라 다니지 않았었다. 친구들 일행에 보위부 사람이 동행하는 걸 보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관광 단체에 따라 다니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까지는 나진 관광이 성수기였고 그 많은 단체에 한 사람씩 붙어 다닌다는 것은 사실 손님들한테 불손스러울 뿐만아니라 다같이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만일 조보스의 단체에 보위부 사람이 동행했다면 단속으로 우리 회사에 찾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저녁 시간에 외출하는 것도 단속하고 특히는 조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엄격히 단속한다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우리 회사와 머지 않은 남산 호텔 길 동쪽의 관광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조보스는 계획대로 찾아왔고 외화가 없었기에 내화로 은행 환율에 따른 돈만큼 받아 갔다. 그 차지로 중국 돈 몇백 원 정도 손해보았지만 오랫동안 밀려왔던 외상 값을 받아가는 일이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어 벙글써 해서 돌아갔었다. 지난해 설에 로따네 집으로 인사하러 갔고 중국사람 특유의 인사치레로 캔 맥주와 캔쥬스를 한 박스씩 보냈었다. 이번에도 술 한박스를 들고 왔다. 

이틀 사이에 우리 식구들에게 괜찮은 병술 두박스나 차례졌는데 식구들 중의 술꾼들은 여간만 좋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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