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다.  이날 219호 운전수가 대형 사고를 치렀다.  

관곡 고개를 넘어 내리막을 거의 다 내려가서 비파도로 가는 갈림길 부근에서 도로 옆에 버스를 번져 놓았다. 당시 219호 앞에 트럭 한 대가 느린 속도로 가고 있었고 그 트럭을 추월하려다가 마주 오는 우리 215호 때문에 트럭 뒤로 다시 돌아 왔고 미처 브레이크를 할 새도 없이 트럭과 접촉하는 사고를 피면 하려고 길옆으로 핸들을 꺾은 거였다.

사고 지점에서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도로가 오른 쪽으로 굽이가 되어 있고 그래서 트럭에 시야가 막혔으므로 215호를 발견했을 때는 사고를 방지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당장에서 1명이 죽고 부상자 몇 명은 나진 인민병원으로 호송했다. 운전수 한영근은 다섯 번째로 단련대 신세를 지게 되었고 문은실은 지난해 조경화와 함께 선봉의 인명 사고 뒤에 두 번째로 인명 사고를 겪게 되었다.  버스는 형편없이 일그러져 더는 복구할 가망이 없어졌고 수리소 마당에 세워 두고 있다가 후에 폐기시켜 버렸다.

부상자들 중 대부분은 며칠만에 다 퇴원했고 마지막으로 할머니 한 명이 열흘 후에 퇴원했는데 병원 문을 나서면서 너무 흥분하는 통에 심장병이 도져 사망했다. 병원에서 종합 진찰을 하지 않은 것 같고 그 할머니도 심장병이 있는 걸 말하지 않은 것 같다. 덕천에서 개인 장사로 나진에 부지런히 다니는 할머니라는 것이 그 즈음에 밝혀졌다. 동명동에 조카 한 명이 있었는데 그 할머니의 후사 처리 때문에 내가 세포 비서를 태우고 그 집에 몇 번 다녀왔다.  

버스 운행이 중지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할머니는 수리소 뒤의 양지바른 언덕에 모셔졌고 장례 비용은 전부 회사에서 안았는데 세포 비서와 최영복이 뒤처리를 했다. 회사의 기사들이 산소를 만들고 비석도 세워 주었다. 할머니의 조카는 마지막 길에 자식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간다면서 서럽게 울었었다.  

덕천의 자식들은 장례식이 끝난 지 20일만에 나진에 왔다. 전화로 알렸는지, 편지로 알렸는지는 모르겠고 여행증 수속과 여로에서 며칠 걸리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았다. 사흘 동안 세포 비서와 싱갱이질 해대더니 할머니의 관을 파 가지고 우리가 준 아연도금 철판으로 관을 싼 후 덕천으로 가져갔고 그것으로 219호 전복 사고는 겨우 마무리되었다.

사고가 생긴 이튿날에 로따가 훈춘에 다녀오게 되었다. 이틀 후에 나의 아들애 생일이어서 새로 지은 일본상품 전문점인 라해 상점에서 일본 과자와 사탕을 내화 3천 원어치 사서 로따 보고 전해 달라고 했다. 이모와 설화도 같이 떠났는데 로따가 나진에 돌아 올 때는 둘 다 따라 오지 않았었다. 

며칠이 지난 뒤의 어느 날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식구들이 주방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국제 전화를 하러(회사의 전화는 그때 고장났었다.) 시내에 갔다 온 로따가 마당에서 황소 울음을 터치면서 자기 방으로 달려들어가는 기척이 들렸다. 영철이가  

“어디서 넘어 졌나?”  

하고 혼자 소리로 말하고 있었고  

“너네 아매(할머니)가 상세 났겠다(돌아 가셨겠다).”  

하고 내가 추측하는 말을 한 마디 했다. 영철인 삼촌을 몇 년 따라다녀 그 누구보다도 로따의 습성을 잘 알고 있다. 그가 말한 데도 일리가 있었으나 얼마 전에 이모 집에 영철이 할머니 병 문안을 갔다 온 적 있는 나는 십중팔구는 할머니가 돌아간 것으로 점찍었다. 그때 영철이 할머니는 사람을 겨우 알아보았으나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었다. 간병을 하던 위홍의 어머니도 얼마나 축갔는지 하마트면 알아보지 못할 번했었다.  

나와 영철이가 바삐 뛰쳐나왔고 영철이는 나 먼저 로따의 방으로 뛰어 갔는데 이미  

“아매 상세 났다 – !”  

하고 절규하는 로따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창문을 뚫고 밖에 흘러 나왔다. 평소에도 목소리가 굵고 우렁찼던 로따는 무슨 말을 하든지 차분히 하는 성질이 아니었고 오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한 옥타아브 더 높아져 있었다.

이어서 꺼이꺼이 곡을 하는 로따의 울음이 조용한 회사 구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로따가 몰고 돌아온 89호는 발동이 꺼졌지만 운전석 도어가 열린 채로였고 헤드라이트도 끄지 않고 있었다.

키를 뽑고 도어를 잠근 뒤 계속 황소 울음을 울고 있는 로따를 가만 내버려두기로 했다. 영철이는 비보를 접한 후 자기 방으로 들어 간 듯 다시 나오지 않았고 나는 다시 주방에 들어가 로따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주방과 벽을 하나 사이 둔 로따의 방에서 기척이 없어진 것은 한참 후였다. 그동안 TV를 끄고 모두들 숨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외삼촌부터 나이 순으로 로따의 방에 들어갔고 나중에 로따가 나를 불러 앉혔다.  

“내일 아침에 나는 위홍이와 영철이를 데리고 장례식에 간다. 그동안 회사의 일은 니가 관리해야 한다. 이전에도 니가 며칠씩 본 적이 있기에 더 말치 않겠다. 사흘 후엔 돌아올 수 있다.”  

나는 상사난 집에 별로 다녀보지 못했다. 집에서 상사를 겪은 것도 할머니 한 분뿐이다. 아내가 임신 8개월 때 증조 할머니가 돌아 가셨는데 집에서는 안정제까지 지내고서야 연길에 있는 나에게 비보를 전했었다.

증조부와 조부의 산소는 이 세상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판에 제사에 대한 모든 절차와 언행에 대해 모르고 있었고 문안조차 할 줄 모른다. 로따에게 문안의 말 한 마디도 하지 못했었다. 로따의 석쉼해진 목소리를 들으면서 고개만 끄덕이고 나왔던 것 같다.  

이튿날 아침, 식사도 하지 않고 세 사람은 88호를 타고 떠났다. 88호는 원정 마당에 세워 두고 사람만 다리를 건넌다고 했다. 내가 삭제 도장을 찍지 않은 상태라는 걸 귀띔했더니  

“이런 일에 통과시켜 주지 않으면 어떤 때 통과시킨다는 거냐?”  

하고 로따가 귀찮은 듯이 내뱉고 충혈 된 눈을 감으면서 시트에 몸을 파묻었었다.  

사흘 후에 돌아온 로따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평소처럼 높은 목소리로 말하고 웃고 식사하고 패 치기도 했다. 평소보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많이 홀가분해진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것이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기 시작하고 난방 문제가 꼬리를 쳐들기 시작한다. 이날 아침, 식사하면서 설화와 장송이가 난방 문제를 심각히 들고 나왔다.

회사 건물 중에 숙소에만 온돌이 있고는 전부 다 난방이 안되어 있다. 바야흐로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때 오후 잠깐 동안만 햇빛이 들어오는 매점 안에서는 벌써부터 두꺼운 겨울 옷 신세를 지고 있고 늄창조는 출입문을 거의 열어 놓고 작업하는 것이어서 노천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설화는 매점 안에 온돌을 놓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해 연말과 금년 초에 수리소 쪽의 침실 안에 방문객을 불러 들여 돈을 받고 영수증 떼 준 후에 물건을 내주던 그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일을 하려는 것 같았는데 면적이 큰 새 매점에 전부 온돌을 놓을 수는 없고 한쪽 귀퉁이에만 온돌을 놓아두면 뼈를 에이는 듯한 추위를 몰아낼 수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큰 작용을 할 수 없어 진정한 난방을 해결할 수 없다.  

매점과 늄창 직장에 난로 하나씩 놓아 불을 지피면 넓은 면적의 난방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돌을 놓는 작업처럼 지저분하고 복잡할 것도 없을 거라고 내가 방안을 내놓았다. 로따가 한 번 검토해 보고 더 추워지기 전에 손을 대야겠다고 말해서 이제 문제는 풀릴 것 같았다. 세포 비서와 정화의 사무실 그리고 부기실에는 경비실과 함께 전기 온돌을 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난로 두 개를 훈춘에서 사서 내왔고 외삼촌이 작업하여 난방 문제가 훌륭히 해결될 수 있었다. 

어느 날 내가 뜨뜻한 매점 안에서 217호의 발전기를 고치고 있었다.  

나진 항운회사는 지난해 부품을 1만원 어치 사간 적이 있었다. 종이돈 1만원에 맞추어 정확히 영수증도 받아 갔지만 며칠 후에 6백 원을 더 지불했다면서 찾아 왔고 국철이는 처음에 돌려주지 않았었다. 부품을 판 날의 장부를 찾지 못해 찾은 후 확인하고 돌려주기로 합의했다. 약 한 달 후에 장부를 끝내 찾지 못한 상황에서 6백 원을 돌려주었다.  

매점이 이사해 내려온 후 우연하게 그 장부를 발견했고 6백 원 차액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항운 회사에서는 그 한 번만 부품을 사갔고 그 전에는 사장이 외화가 현금으로 많으니 아무 때건 외화 현금으로 부품 사러 오겠다면서 희떠운 소리도 여러 번 쳤지만 어쩌다 한 번 샀다는 것이 종이돈을 들고 왔고 그것도 차나지도 않는 6백 원을 도로 받아간 거다.

전화로 6백 원을 돌려 줄 것을 여러 번 재촉했으나 계속 미루기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한 번뿐으로 거래가 끊어지는가 싶었는데 오늘 찾아 왔다. 사장과 트럭 기사 두 명이 왔다.  

“항운에는 물건이 있어도 안 팔겠음다!”  

영철이가 6백 원 이야기와 함께 한 마디 뱉어내고 사장은 1년이 거의 되어 가는 일을 기억하지 못하겠다며 모르쇠를 놓고 있었다. 기사는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듯, 혹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는 듯이 이것도, 저것도 하면서 사장에게 칭얼대고 있었고 사장은 가격을 물어 보는 척하고 또 크게 많이 사겠다는 기세로 물건을 팔지 않겠다는 영철이와 싱갱이질 하고 있었다.  

“이번에 현금을 갖고 왔는데 좀 주오.”  

“안 주겠음다. 그까짓 6백 원 못 받으면 못 받았지 이제부터 거래를 끊겠음다!”  

영철이가 분명히 말해 주어서야 사장은 얼굴을 서리맞은 시래기 꼴로 만들고 영철이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지 말고 빨리 나가쇼!”  

한창 눈싸움을 하던 두 사람 중 영철이가 먼저 말하고 있었다. 사장은 그냥 그 본새대로 한참 더 쏘아보더니

“가자!”  

하면서 기사에게 손짓했다. 뒤따라 나가던 기사가 매점 문을 나서면서  

“국제 꽃제비 주제에 개좆같이 논다.”  

하고 씨벌여 대었다.  

“저 새끼! 저거 그저 죽여 치우고 말아라!”  

영철이는 미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강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무슨 아덜이 와서 지랄이야?”  

바로 옆에서 일에만 신경을 쓰던 내가 영철이에게 물었고 영철이는 항운 사람들이 왔었다는 것을 나에게 말해 주었다. 항운 회사의 6백 원 문제는 나도 알고 있었고 나가면서 하는 더러운 욕설을 분명히 들었던 나는 두말 없이 씽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이미 세찬 북서풍 때문에 매점의 서쪽 문은 봉해져 있었고 방문객들은 마당에 들어선 후 2층 사무실 입구를 통해 부기실을 에돌아 매점을 드나들고 있었다. 매점은 동쪽에 창고 두 개가 있고 출입문 두 개로 마당과 통하고 있다. 내가 동쪽 문을 나서니 그 두 사람은 사무실 입구를 빠져 나오고 있었다. 앞길을 막았다.  

“이재 개소리 친 새끼가 누구야?”  

사장은 50이 되는 듯 했고 기사는 40대 전후로 되어 보였다. 기사는 키가 작달막했고 사장 뒤에서 거들먹거리다가 얼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른 손으로 멱살을 잡고 힘있게 올리 틀었고 왼손으로 어깨를 잡았다.  

“니가 머가 개좆같다는 거야?”  

“내가 머 어쨌다는 거요?”  

기사는 야위어서 형편 없는 몸을 가누느라고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사장이 내 오른 손목을 잡았다.  

“개새끼 죽어라!”  

박치기 한 개 먹였다. 두 눈 사이를 정확히 강타했다. 이마 아래와 코 위가 대번에 시퍼렇게 변색하고 코피도 쏟아져 내 오른 손등에 떨어졌다.  

사장의 손은 조금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스가 묻은 내 손을 떼어 내고  

“동무! 이게 머요? 일이 있으면 말로 해야지.”  

하면서 나를 한쪽으로 밀쳐 내었다. 비틀거리던 기사가 옆에서 장작개비 하나를 들고 달려들 잡도리를 했다. 우리 주방 앞에 사무실 입구까지 장작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니 그걸루 여기를 쳐봐라!”  

내가 고함치면서 머리를 들이밀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기사는 덩지 코피 때문에 제풀에 장작을 내리고 말았다.  

“모야!”  

로따가 달려 나왔다.  

“이 새끼야! 들어가라! 무슨 싸움질이야!”  

나는 욕에 쫓겨 다시 매점 안으로 들어 왔다.  

“이 새끼 이재 우리를 욕했소!”  

문을 닫으면서 로따가 들을 수 있게 소리쳤다. 손등에 묻은 피를 대충 닦고 계속 작업을 했다. 한참 후에 마당을 쩌렁쩌렁 울리는 로따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야! 이 새끼, 니 머라니? 니가 진짜 욕을 하긴 했구나. 그리고 지금 나까지 욕하고 있구나? 내가 업시(업수이) 보이는 게 머니? 응? 말해라! 이 새끼야!”  

출입문을 박차고 다시 나가니 로따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고 그 기사는 바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달려나가던 맵시로 배에 발길을 날렸다. 기사는 벌렁 나자빠졌다.  

“넌 머야! 들어가라!”  

로따가 소리쳤지만 이번에는 문 앞에 장승처럼 서있었다.  

“개새끼! 다시 이 울안에 나타나 봐라! 그땐 죽여 없애겠다!”  

내가 분을 삭이지 못해 다시 발길을 날릴 때 외삼촌이 다가와 막아 주었다. 기사는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 염을 안하고 마당 한가운데 세워진 트럭의 운전석에 힘없이 올라탔다. 로따는 그 사장과 사과의 말을 하고 후진해 나가는 트럭에 아니꼬운 눈길을 한 번 주고 난 뒤 내 쪽도 힐끔 보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싸움은 내가 나진 행에서 마지막으로 한 싸움이었는데 그날따라 숱한 방문객이 구경했었고 그 후부터 모든 방문객들은 거들먹거리던 태도를 바꾸어 부드럽고 공손한 언행으로 드나들면서 눈치 보기를 시작했었다. 혜영이를 보고  

“이 쌍 개 간나야! 말을 안 듣개?”  

하면서 구박하던 현상도 없어지게 되었다. 점심 시간에 로따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조선에서 싸움할 땐 도리만 있으면 절대 지지 않는다. 손찌검이 나도 조선 사람은 어디 가 해 볼 데도 없다.”  

칠보산에 가기 전에 남산 호텔 옆의 중국 단독 기업인 R 상점에서 여러 번 도난 신고를 해서도 해결 받지 못하던 중 어쩌다가 현장에서 구두를 도둑질하는 사람을 붙잡은 적이 있었다. 죽도록 패 주었고 그 도둑은 공짜 매만 얻어맞았다.  

지난해에 나진 시장에서 조선 사람을 경멸하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해대던 한 중국인이 물매를 얻어맞은 것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현상이었다. 공통한 점이 있다면 두 경우에 다 맞아도 싸다는 것이다. 오늘 기사도  

(네깟 놈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머 어쩌겠다구?)

하는 생각을 가지고 까불다가 그 더러운 입까지 놀려 매를 찾은 거였다.  

“니 이따가(앞으로) 계속 쌈해라!”  

로따가 농담으로 나를 골려 주고 있는 것을 웃음으로 받아들이고 밥을 먹었다. 그러던 로따가 식사하면서 화제를 바꾸어 하는 말이 들려 왔다.  

“대기실을 쓸까 한다.”  

그러더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 우리뿐이 아니고 차 사업소와 선봉 운수대의 차들도 순번제로 손님을 태우게 하고 차표는 우리가 대기실에서 팔게 될 거다. 벽쪽에는 매대를 만들어 놓고 가전을 팔아야겠다. 동업자들이 몇명 나타났는데 함께 할것인지 우리 절로 할것인지는 이제 더 고려해 보아야 한다. 동업자들이 물건을 내오고 우리는 수수료만 받아도 괜찮은 것 같은데 우리 절로 하면 그만큼 이익도 많아질 거다. 우리 식구들은 대기실을 쓰기 전에 마음 상 준비가 있어야겠다.  

대기실은 지난해 한달 좀더 되는 시간만에 일떠섰고 원래는 당해 12월 18일에 조업식(개업식)을 하기로 계획했었는데 일년이 다 되어 가도록 늄창 작업장으로, 창고로 사용되었을 뿐 진정한 구실을 해 보지 못했다.

많은 기업소에서 버스 운행에 참여하는 현실이 조업식에 영향 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차 사업소 사이의 모순이 제일 큰 장애 같아 보였다. 말하자면 대기실은 우리 혼자 힘으로 지은 것인데 주요한 경쟁 업소로서의 차 사업소에서 공짜로 쓰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합작 회사 때 모순이 유난히 큰 것 같았는데 단독 기업으로 분리되어 나올 때는 버스 한 대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 버스는 지금도 차 사업소에 괜찮게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는데 합작 회사를 운영하던 중국인들이 철수해 나올 때 적지 않은 투자금이나 투자 물자들을 빼내오지 못하는 현상이 비일비재로 많은 나진에서 아무리 해도 이해되지 않는 문제였다.

투자자가 《지대법》을 몰라서 관리를 잘 못한 탓인지 그렇잖으면 사기를 당하거나 강탈당한 것인지를 분간하기 어렵다. 나의 이해로는 이 두 가지가 다 있는 것 같이 인정되었다. 로따와 영철이는 차 사업소 얘기만 나오면 이를 갈고 치를 떨었었다. 뭔가 내가 모르는 그 어떤 사연이 있었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 일을 모르고 있었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로따가 대기실을 사용하려는 본의만은 이해할 것 같았다. 차 사업소와 그 어떤 모순이 있었든 지간에 대기실을 사용하려는 건 가전 장사를 본때 있게 해 보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업종을 받은 중에서 택시업과 가전만이 그때까지 돈을 벌지 못하고 있었다. 구정이 지난 후 2월 22일에 새로 회사 창설 승인서를 받게 되었는데 원래 있던 식당 업을 취소하고 다른 업종을 보류해 두는 전제 하에서 대기실과 늄창 제조를 새 업종으로 승인 받았었다.

택시 업은 취소하지 않았지만 집어치운 지 오래 되었고 가전은 조금씩 팔고 있었지만 경쟁 상대가 너무 많고 품종과 수량이 적어 종이돈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한테만이 장사가 가능했기에 실적은 달마다 수입품 허가가 승인된 얼마 안 되는 수량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달에는 가전을 한 대도 내오지 못했다. 가을철에 10여 대의 칼라 TV와 10여 대의 카세트 녹음기를 판매한 외에 가정용 양수기를 달마다 몇 대씩 팔고 있는 정도였다.

중국에서 이 몇 년 동안 가전 업이 상당히 발전하여 경쟁이 치열해 지고 가격도 많이 싸졌다. 칼라 TV의 시장은 나진에서도 경쟁이 심해 대당 이윤이 인민폐 50원을 웃돌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려 수량과 품종이 많지 않으면 가격 경쟁에서 떨어지게 되고 이윤도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 매점에서는 주로 자동차 부품을 팔고 있고 건축 자재도 수량과 품종이 증가되어 가는 추세지만 가전은 샘플도 놓을 자리가 별로 없이 냉랭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제 로따는 가전 시장에 도전을 하기 위해 차 사업소와의 옛일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대기실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내가 수개월 동안 절실히 생각해 오던 문제이기도 했다. 차장과 기사들의 도둑질로 수익금이 많이 빠지는 현상이 어느 정도 절제될 거고 기사들은 이미 순번제에 적응하여 돌연감을 느끼지 않을 뿐더러 박동혁이처럼 순번제와 상관없이 매일 《1번을 쟁취》하는 사람들의 나쁜 습관도 자연히 고쳐줄 수 있어 여러 가지로 이로운 점이 많기 때문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버스가 출발하기에 버스와 기사의 상태도 잘 관찰할 수 있다. 술을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를 대뜸 알 수 있고 차의 고장도 생각지 않게 발견하여 사전에 사고를 방지하게 된다. 한 마디로 차대를 더욱 훌륭하게 관리할 수 있어 좋다. 그러기에 나는 이제까지 대기실을 사용하는데 대해 언제나 두손들어 찬성했고 하루 빨리 실현되기를 바랐었다.

로따가 그 후에도 자주 검토하군 했었는데 결국은 내가 나진을 떠날 때까지 끝내 사용하지 않았고 대기실은 자기 구실을 못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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