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철도에 주는 중고 화물차를 한 대 몰아내온 후 이번에는 러시아의 중고차와 타이어를 나진까지 호송하는 임무가 차례졌다.

계약에 의하면 러시아에서는 이달 내로 중고 트럭 한 대와 중고 타이어 50짝을 보내 주어야 했다. 물론 연유도 포함이다. 이미 거의 두달 동안 연유가 나오지 않아 나진과 선봉에서 사들였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내가 유조차를 몰아 휘발유를 실어 들였다.

디젤은 주로 나진항과 지대 밖의 장사군들이 직접 회사에까지 싣고 왔는데 거기에 대해서 약간 적어야겠다. 러시아에서는 거의 2년 동안의 거래 기간에 딱 한번 디젤유를 실어 왔었다. 86호가 고장 난 뒤로 회사에서 디젤이 필요한 것은 발전기 엔진뿐이었다.

러시아에서 디젤을 보내주지 않아 연유 값이 치달아오르는 때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었다. 그러다가 어느 한번은 나진항에서 디젤 한 차가 왔다. 유조차가 아니고 전부 드럼 통이었는데 세관 사람들이 아래 동네에서 온 거라고 알려 주었다. 그 디젤은 내가 머리에 털 나고나서 본 것 중에 제일 질 좋은 거였다. 중국 기사가 한번 사갔는데 후일 나보고 더 사갔던 걸 그랬다면서 후회했었다. 악셀을 살짝 밟아주는 데도 저술령을 씽씽 날아 넘었다면서 그런 디젤이 있으면 언제라도 계속 사겠다고 했었다. 그 디젤은 그 한번뿐이고 다시 못 보았다.  

지대 밖에서, 그 중에서도 청진의 거간군들한테서 디젤을 많이 받아 들였다. 용철이가 디젤의 질을 확인했는데 합격되면 키로당 65원 정도에 샀고 약간씩 팔기도 하고 건축 비용의 대용품으로 몇 톤씩 내 주기도 했다. 돈을 직접 주기보다 이중으로 돈을 버는 그 일을 로따는 아주 재치있게 해 제꼈다.  어느 한번은 합격되지 않은 청진의 디젤 한 차가 마당에서 밤을 묵은 적이 있다. 이튿날 아침에 엔진 밑에 장작불을 지폈는데 적재함 밑에 구겨 넣었던 솜옷에 불이 달려 하마트면 큰 사고를 칠 번했다.

디젤 중에서도 지대 밖의 방진 군부대에서 받아들인 것이 제일 많았는데 그것은 휘발유와 바꾸는 거였다. 하여튼 러시아의 연유를 믿는 것은 장사하기에 다 글러먹은 노릇이었다. 언제나 조선에서 먼저 송금하고 썩 후에 실어 내오곤 했었는데 현물을 보아야 믿어지는 노릇이어서 소식이 있다 해도 크게 기대되지도 않았다. 유조차가 내일, 모레 하면서 시간을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진의 모든 구매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시큰둥해 져 있었다.

그런데 중고 트럭과 타이어는 확실한 소식이어서 내가 그 일을 맡게된 것이다.  중고 트럭이란 러시아산 《마즈》였고 생산한 역사는 30년도 넘는다. 러시아에서는 단종이 된지 오래고 볼 모양이 없는 차종이었지만 조선의 도로 사정에 맞고 웬간해서는 고장이 나지 않았을 뿐더러 적재량이 대단한 차여서 조선에서는 어디서나 대 환영이다. 이미 석 대를 내다 팔았었는데 번마다 위쨔가 몰아 내왔었다. 타이어도 러시아산이었는데 역시 조선에서 알아주는 거였고 마즈와 마찬가지로 마진이 많이 남는 장사거리었다.

오후 두시가 거의 될 무렵에 트럭 두 대가 장령자 통상구에 나타났다. 타이어를 실은 컨테이너는 보세창고에 들어갔고 위쨔가 나와 함께 마즈를 몰고 권하 교두에 가기로 했다. 세관 규정대로 세관 사람이 마즈 뒤꽁무니를 따라 권하까지 호송하게 되는데 세관에 차가 없어 내가 택시를 한대 세내었다. 유라는 내일 컨테이너 차에 앉아 나진에 가기로 했다. 오후 네시가 조금 지났을 때 권하에서의 수속을 다 마치고 나서 위쨔에게서 마즈 미션의 기어위치를 알아낸 후 세관 사람들이 탄 택시로 훈춘에 보내주었다. 

컨테이너 차는 아무래도 위쨔가 몰아 내 갈 거였고 나는 오늘 체대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 마즈를 몰고 나진에 가야 되는 거다. 두만강 다리 중간에서 퇴근 시간까지 기다렸으나 끝내 원정 마당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이 날 따라 차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할수 없이 후진했고 교두마당에 세워두기로 했다.

그런데 시동을 끄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식당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내일 아침에 물을 보충하기가 말째단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세관에 사정해서 겨우 허락받고 교두 마당을 빠져 나와 식당 가까운 곳의 내리막에 세워 두었다. 스타트 모터가 없어 내리뛰기(내리막을 주행하다가 클러치 조절로 시동을 거는 일)를 할 예정이고 라디에이터 밑에서 물 코크를 찾아 물을 다 빼버렸다. 밤 늦더라도 오늘 나진에 나가면  고생이 덜 하겠지만 마음대로 되어주지 않는 게 일이고 그 고생이 있는 곳에 반드시 내가 있게 되는 것이 어쩐지 운명 같아 보였다.

남들은 따뜻한 온돌에서 패치기를 하고 있으련만 팔자가 안좋은 나는 외롭고도 고독하게 권하의 식당에서 하루 밤을 보내야 한다. 이제부터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중고차에 다시 손을 대지 않으리라 작정하고는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아침밥을 먹고 나와보니 기대에도 어긋나지 않게 푸근한 날씨였다. 식당주변에서 마른 풀과 쑥대를 걷어 가지고 엔진 밑에 불을 지폈다. 오일 팬이 뜨끈뜨끈하게 되었을 때 식당에서 더운물을 길어다가 라디에이터에 넣었다. 바퀴에 고였던 돌을 발로 차고 다른 돌로 두드려 대면서 겨우 빼낸 뒤 후진에 넣었던 기어를 풀어냈지만 이상하게도 차가 움직여 주지 않았다.

사이드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은 이미 어제 확인한 상태다. 도로상에 약간 걸택이 있나 싶어 적재함 뒤에서 힘껏 밀어 보았는데도 마즈는 끄떡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지켜보던 식당주인이 다가와서 얘기해 주어서야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식당 주인은 오랜 기사였고 몇 년 전에 똑 같은 러시아 차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부레이크 에어압이 떨어지면 라이닝이 바퀴를 물고있는 시스템이여서 나는 혼자서는 도저히 시동을 걸지 못할 상황이 되어 있었다. 적어도 20년이 넘었을 마즈가 그 당시 이 시스템을 장착하지 않았을 거라고 내가 넘겨 짚고 한 노릇이니 당연히 시동 거는데 성공할 수 없었던 거다.

어차피 유라와 위쨔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다른 수는 없다. 점심시간에 퇴근하던 세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왜 아직도 나가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서 오후에는 무조건 나가겠다고 담보했다. 내가지 못하면 세관규정에 의해 차압한다는 말을 던지고 그들이 가버렸다.  

오후에 유라네가 당도했고 컨데이너 차로 마즈를 억지로 끌어 가까스로 시동을 걸고 나서 다리를 무난히 건늘 수 있었다. 원정 마당에서 연유탱크에 디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위쨔에게 확인시키고 컨테이너 차에서 두 바게쯔를 받아 넣어 두었다. 원정 마당은 올리막 올라가기 전에는 평탄해서 내리뛰기를 할 수 없었는데 발동이 걸린 채 거의 한시간을 세워두고 있다가 수속을 다 마치고 출발하게 되었다.  

창주가 88호를 몰고 마중 나와 있었다. 유라한테 마즈의 운전을 맡기기도 안된 일이라 창주가 몰고 먼저 떠나게 하고 나는 88호를 몰고 컨테이너를 따라 가기로 했다. 장송이는 나진에 있기 답답해서 창주와 원정에 동행했는데 내가 운전하는 88호에 앉아 돌아왔다.  

세 나라 사람들 다섯 명이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다. 식구들 중에서 러시아어를 제일 잘 하는 로따가 빠져버려서 몸짓과 손짓으로 의사소통이 되는 그 자리가 참으로 재미있다. 창주와 유라는 거나해 질 때까지 마셨고 서로 알아듣지 못하면서 주고받는 그들의 대화로 주방에 웃음이 그칠 새 없더니 어느새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매캐한 디젤 매연이 운전석으로 스며드는 마즈, 그 형편 없이 낡은 러시아 트럭은 내가 나진행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몰아 본 판매용 중고차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쟈쟈가 85호를 몰고 나왔다. 로따는 아니꼬운 눈길을 주었고 같이 나온 로얼을 한바탕 닦아 세웠다. 기사가 아무리 없기로서 이미 쓰지 않기로 한 쟈쟈가 운전하는 게 영 못 마땅한가 부다.

이내 부부가 의논에 들어갔고 저녁엔 나를 침실에 불러갔다. 나를 85호 기사로 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라 처음엔 약간 당황했으나 이내 평온을 찾고 열성을 보여주느라 애쓰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중국 면허였는데 돈을 내면 금방 얻을 수 있는 것이어서 그 쪽으로 많이 생각하고 쟁취해 보라는 것이었다. 85호를 운전하는 건 별 문제지만 몸이 억수로 피곤해져 있고 아직 중독 후유증도 채 가셔지지 않은 게 걱정이라고 여쭈었더니 그저 덤덤히 보기만 했다. 이미 약 문제를 얘기한 터이고 동의를 얻어놓은 상태다. 그런데 떠나게 될 사람에게 왜서 85호의 운전을 맡기려는 것인지 의혹이 생기게 되고 이내 약간씩 짐작이 가는 데가 있었다.  

85호가 내 차로 된다. 즉 내가 운전하게 된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나진의 모든 일을 손에서 놓아야 하고 인수원과 트럭기사의 이중 역할만 하게 될 것이다. 거의 2년 동안 훈춘과 나진의 여러 구간에서 무면허라도 여러 가지 차종에다가 성능이 각이한 차들을 수태 운전해 보아서 운전과 정비에 거의 막히는 데 없다. 두만강 다리 양켠의 수출과 수입 수속절차에도 막힘이 없으므로 나에게 차를 주면 시름과 걱정을 어느 정도는 덜 수 있다. 물론 국제 운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면허가 문제고 내 건강상태도 문제된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약 40일간의 교육과 시험을 받고 합격되어야 만이 면허증을 발급 받을 수 있다. 아직도 내 손이 필요한 회사에서 거의 두 달간을 빠져나가 있을 수는 없는 일이고 빠른 시일 내에 면허를 받고 시름놓고 운전하려면 오직 돈을 내고 사는 방법 하나밖에는 없다. 정상적인 경우보다 돈이 좀 더 들긴 하지만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기에 그 쪽으로 신경쓰는 사람이 많고 면허가 나 올 가능성도 있게 파는 사람도 있었으므로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어이 중국 면허를 받아서 트럭을 운전하라는 데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낌새가 보였다. 이미 중고차 수입 문건을 만들었는데 거기에는 85호도 들어 있었다. 말하자면 85호를 중고차로 조선에 수입하고 조선의 번호판을 받아 회사의 재산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기사는 반드시 조선의 2급 면허증 소지자여야 한다. 오히려 내가 조선 면허를 2급으로 신청해서 발급 받고 조선의 번호판을 받은 다음에 운전하게 만든다면 시간적으로나 돈 문제에서나 다 편한 일이다. 그런데 로따네는 거기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내 비치지 않는다. 중고차 수입문건은 3개월 동안의 유효기일이 있었기에 3월 말까지의 아무 시간에나 수속을 할 수 있었고 번호판이 나오는 동안의 시간에 나의 2급 면허를 충분히 발급 받게 시간적 여유가 많다.

내가 차 주인으로 될 수 있는 가장 좋고 시간적으로도 빠른 방법이  나진 쪽에 있는데 훈춘 쪽을 자꾸 설명하고 그 쪽으로 유도하는 건 표면상에서 어려운 숙제 같이 보였으나 결코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로따가 나를 해고할 결심을 내렸고 그걸 행동에 옮긴 거다!  

나는 이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약을 구하느라고 이제가지의 거래 상대들과 전화 통화를 부지런히 하고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약을 넘겨받으면 어차피 떠나야 할 몸인데 차를 운전하라고 하고 그것도 시간적으로 받기 힘든 면허를 훈춘 쪽에서 해결하라고 하는 건 눈감고 야옹 하는 격이다. 다른 사람들을 해고 할 때는 직접적인 언행으로 의사를 표달했지만 유독 나한테만은 간접적인 에돌림으로 전하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 시각이 머지 않았다. 나진을 떠나는 그 시각이 현실적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추측이 맞는 지가 확인되면 그 즉시로 나진을 떠날 수 있게 단단히 준비하고 있으리라 벼르게 되었다.  

나의 건강상태를 걱정해 주는 언행을 살펴본다. 내가 이 회사에 진정 필요한 사람인지를 체크해 본다. 85호를 언제 수입해 들이는 지를 확인한다. 나를 기사로 쓰려는 진정한 용의가 무엇인 지 알아보도록 한다. 이 정도면 로따가 나를 해고할 것을 완전히 결심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85호에 로따 부부는 집에 돌아갔고 나는 나의 일과대로 매일 매일을 보냈다. 누가 뭐라 하든, 시킨 거든 시키지 않은 거든 상관하지 않고 손이 갈 만하다고 여겨지면 무조건 착수했다.

아침에는 외숙모 다음 두 번째로 일어난다. 끓여 놓은 더운물을 들고 발전기 실에 간다. 늄창 작업장 제일 북쪽, 침실의 제일 동쪽 켠의 방에 발전기가 놓여있다.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 늄창 작업장의 자물쇠 키도 내가 하나 가지고 있었다.  

라디에이터에 물을 부어 넣고 담배 한가치를 다 태우고 난 뒤 시동을 건다. 부동액을 넣지 않고 전 날에 물을 빼버린 디젤 엔진은 밤새 차거워져 더운 물로 조금 예열한 후에 시동이 잘 걸렸다.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배터리 두 개를 키스시켜 걸고 그래도 안 되면 시동 가스를 뿜어 준다. 저속으로 5분쯤 돌리다가 발전기 실에 훈훈한 기운이 느껴질 때 회전 속도를 점차 빨리 해 놓고 나중에는 발전기의 미이터가 220V를 가리킬 때를 맞추어 놓는다. 그 다음에 개페기를 넣으면 회사의 모든 전기 시설에 전기가 공급된다.  

낮에는 제일 중요한 게 수리작업이다.   회사 내의 차는 우선적으로 수리해 내고 대외 수리도 적지 않게 해 내였다. 대외 수리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것을 하나 적어야겠다.  

어느 한 트럭이 마당에 들어 왔었는데 도어를 열자마자 매캐한 가스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배터리가 기사 시트 밑에 있었는데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비중계로 측정해 보니 배터리액 비중이 1.4가 넘었다. 겨울철의 정상 비중은 1.28이다. 기사와 물어보니 배터리를 살 때 넣고 남은 배터리 액을 계속 보충해 넣었다는 것이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배터리 액이 부족한 상태면 증류수를 넣던지 그렇지 않으면 특제한 보충 액을 넣어야 한다. 뚜껑이 잘 닫겨진 상태에서도 배터리 액이 부족해지는 건 늘 볼 수 있는 현상이고 그 원인은 배터리 액 중의 물이 전기 분해 되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때 비중이 1.28인 표준 배터리 액을 보충해 주는 것은 이미 비중이 커진 배터리 액을 조금 희석시키긴 하지만 그 대신 유산이 더 많아지므로 다시 액이 부족한 현상이 생기면 비중이 더 커지기에 배터리를 고장내는 거나 다름없다.

발전기 자체와 그 릴레이의 성능이 썩 좋지 못한 차들에 일반 배터리를 사용하게 되면 늘 액 보충을 해야 하는 시끄러움이 곁따르는데 조선에서는 소수의 고급승용차 외에 거의 모든 차들이 다 그 세례를 받고 있었고 어떻게 해야만이 배터리를 이상 없이 계속 쓸 수 있는 지를 아는 사람이 극히 적었다.

더군다나 배터리 액 비중에 대한 개념이 엉망인 그네들은 표준 배터리 액을 보충 액으로 사용할 때 배터리에 대한 위해성을 하나 같이 모르고 있었다. 배터리 액이 유산액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극히 적었고 강물을 보충해 넣어 수명이 짧아지게 만들어 놓고 마당이 떠들썩하게 교환을 요구하는 기사들도 더러 있었다.  

재작년의 여름에 날씨가 무더울 때 나는 86호에 증류수를 싣고 다니면서 우리 버스들의 배터리에 액 보충을 해 주었었다. 새벽 운동 때문에 낮 시간동안 회사구내에서 버스 구경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부터는 기사들이 노선에 나가기 전에 3검 외에 배터리 액 점검도 하게 했고 부족할 때 증류수를 보충할 수 있게 잘 습관 시켜 놓았었다. 배터리에 대한 지식이 그처럼 결여해져 있는 데에 대해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 하고 말았다.  

다 오침하는 점심시간이 날씨가 제일 따뜻했기에 내가 실외에서 전기 수리작업을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시간이다. 겨울철의 전기수리는 다 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해 냈었다. 요즘은 89호의 도어 손잡이가 끊어진 것을 이틀 동안의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잘 수리 해 놓았다.  

수리의 여가에 새 신고원인 강경순을 앉히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매점에 앉아 있기도 했는데 비파도 엠페러 호텔에 근무하는 조선 청년이 설화에게서 중국어를 배우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이모의 청으로 아코디언을 타는 혜영이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가끔 수리소 쪽에 가서 차영감과 한담하거나 경비실 안에서 음담패설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낮 시간에는 창주가 발전기를 보았었는데 저녁에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보아야 했다. 조경화가 밤 경비로 나오면서부터 드문히 돌려주고 꺼주기도 했는데 시름이 놓이지 않아 밤늦게 패치기가 끝난 다음에 내가 끄고 물도 빼냈다.일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패치기를 제외한 시간은 크게 앉아 있을 새가 없이 맴돌아 쳤다.  

로따 내외가 이틀만에 돌아왔는데 로따가 직접 85호를 운전하고 왔다. 왜서 마중 나오지 않았느냐며 큰 소리로 말하면서 주방에 들어섰다. 누구도 마중나와 달라는 전갈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다들 어리둥절해 있는데 구들(온돌)에 올라가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쟈쟈 그 자식, 참 미련한 새끼야. 씨팔 놈 같으니. 이제는 몇 번째야? 국경을 넘어 다니는 사람 같잖다. 통행증을 집에 두고 와서 교두부터 내가 몰고 왔잖아?! 집에 돌아가라고 소리지르니 메케새서(멍청히) 서 있더라. 원, 더러워서!”  

중국어에다 연변사투리가 섞인 거였다. 욕에 있어서는 우리말보다 더 풍부한 게 중국어다. 이전의 경험으로 볼진대 쟈쟈는 이제 영영 85호와 이별하게 될 거였다. 나보다 조금 먼저일 뿐이다. 부모들의 이혼으로 정신없이 갈팡질팡 허둥대던 쟈쟈는 요즘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고 한다. 나진에 왔던 그녀와 비파도에도 함께 다녀왔던 쟈쟈다. 180이 넘는 키에 안경을 낀 준수한 얼굴의 쟈쟈, 이제 나도 너와 같이 나진을 떠나게 된다. 조금만 더 참고 난 뒤 너와 같은 자유의 몸이 되어 보리라.  

때는 1월 중순이 다 가는 날이었다. 구정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늄창 주문이 또 들어왔다. 필요한 재료에 대한 명세가 바로 나왔다. 장송이는 설계도를 보고 어떤 재료가 얼마나 필요한 지를 잘 파악하고 난뒤 리스트를 만들어서 귀국하는 사람에게 주었고 이모와 영철이도 같은 방법으로 건축 자재와 자동차 부품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다 로얼한테 전해진다.

로얼은 각 가게에 아니면서 주문 리스트를 널어놓고 또 중국 국내 각지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기도 했다. 리스트를 전해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우리 훈춘 식구들이였고 이즈음에는 내가 출입국이 잦았기에 기본상 내가 갖고 다녔고 로얼이 나왔던 걸음에 직접 가져가기도 했으며 위홍이네 부부를 내놓고는 다 정확히 전달되었다.

위홍이네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게 리스트 전달을 잘 하지 않아서 몇 번 장사를 흐지부지하게 만들어 놓은 적도 있었으므로 이미 전달자 명단에서 빠진지 오래 되었다. 인수원을 할 때부터 리스트 외에도 로따가 말로 하는 걸 다 기억 할 수 없어 수첩에 하나 하나 적어 가지고 다녔었다. 지금은 로얼도 나처럼 이 방법을 쓰고 있었다. 외숙모가 주는 야채와 양념 리스트도 함께 적어 가지고 다녔다.  

중국에서는 신정부터 구정까지, 다시 구정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그 다음은 3월 달의 《3. 8》 국제 노동부녀절까지 노는 데만 정신을 매달고 있기에 3월 중순까지는 주문한 것을 아무리 재촉해도 거의 모든 경우에 물건을 받지 못한다. 중국의 오랜 습관때문에 2년 동안의 겨울 장사는 극히 적었고 연말이 되었을 때 모여진 외상 빚을 잘 물어주지 않아 각 가게마다 물건 주기를 거부했기에 새해의 첫 한 두달은 어쨌든 곤난과 시련이 많았다. 게다가 조선의 두 은행에서 연말부터 2월까지 출금이라는 걸 전혀 해주지 않는다. 앞뒤로 협공을 받는 중에도 용하게 버텨 내였는데 그것은 로따의 경영 재주와 모든 종업원들의 알찬 노력과 갈라놓을 수 없는 거였다.

장송의 리스트와 영철의 리스트를 받아 가지고 85호를 몰고 설기간에 먼저 귀국하는 식구(시트 뒤에 침대까지 있었으므로 많이는 여섯명도 실을수 있다)들을 실은 채 훈춘에 돌아왔다. . 사흘동안 기다려서야 재료가 다 준비되었고 그걸 실으니 약 7t가량 되었다. 늄창 재료는 적재함을 많이 넘어 설 정도로 부피가 컸기에 부품을 실을 자리가 없다. 차 부품을 설 후에 내가기로 하고 어제 훈춘에 왔던 로따를 싣고 나진으로 출발했다.

밤새 내린 눈이 원래의 눈길을 조금 덮어버려 조금 걱정이 되었으나 마음을 다잡아먹고 천천히 운전했다. 원정에는 용철이가 88호를 몰고 도착해 있었다. 용철이와 장걸이, 위홍이네가 귀국하는 것이고 그 차는 로따가 몰고 내 뒤에서 따라주면 되는 거다.

대반령은 새 도로가 통했기 때문에 아스팔트와 터널로 무난히 지나왔었다. 그런데 원정 올리막부터가 마음을 조이게 만들었다. 이 날은 1월 22일, 구정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나의 긴장을 엿보기라도 한듯이 로따가  

“이건 니 차다. 니 차를 니가 잘 몰 수 있겠지?”  

하고 운전석에 오르는 나에게 한마디 해 주었다.  

먼저 여권을 확인하는 검열병한테로 갔다. 검열병이 선 위치부터가 올리막인데 거기에 세웠다가 다시 출발하려면 애 먹을 수 있었기에 여권을 먼저 보이고 다시 차에까지 돌아와서 발진시키고 검열병 있는 곳을 그냥 지나치는 이 방법을 겨울철에 많이 쓴다. 나만 쓰는 것이 아니고 다른 기사들도 많이 썼었다. 저번 타이어를 실었던 러시아의 컨테이너 차도 이 방법을 썼고 겨울철에 유조차는 이 방법으로 원정고개를 탈 수 밖에 없다.  

길이 너무 미끄러워서 천천히 몰았다.  저술령을 넘을 때는 약수터부터 영넘어 선봉수금소까지의 9키로 거리를 3단으로만 운전했다. 괜히 그닥지도 않은 운전솜씨를 가지고 과대평가하면서 오기까지 부려 급하게 몰다가 사고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파로운 올리막에서 속도가 자연히  늦어지고 있을 때 백미러로 색깔이 짙은 매연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악셀을 적당히 조절해주면서 변속을 하지 않았다. 쟈쟈에게서 배운 거다. 내리막에서는 기어를 3단에 넣은 채로 오른 발을 브레이크 페달 위에 올려놓고 적당히 밟아주는 외 배기 브레이크 시스템도 더러 사용했다. 배기 브레이크 시스템은 웬간한 트럭과 버스에 다 있는 것인데 내리막길에서 스위치를 넣으면 배기 파이프를 차단시켜 엔진 회전속도가 늦어지게 하고 출력이 떨어지게 하여 자연적으로 제동을 실현하는 시스템이다. 내리막길에서 급하지 않은 제동을 실현함으로써 속도를 적당히 떨어뜨리게 할 수 있는, 사고방지에 효과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오토밋션 차를 운전할 때 고속에 있던 기어를 저속에 넣으면 엔진이 기승을 부리면서 처음에 회전수가 급격히 올라갔다가 점차 떨어지면서 차의 속도도 떨어지는데 위에서 서술한 경우와 같이 운전자와 승객이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나는 88호나 89호를 이제까지 이 방법으로 운전을 많이 해 보았었다. 특히 내리막 눈길에서 처음에는 절대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었다. 기어를 저속으로 넣으면 80키로의 시속이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50키로 이하로 떨어지는데 브레이크를 사용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트럭을 운전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매끄러운 영길을 무사히 지나고 회사까지도 안전히 도착하게 되었다. 원정에서 출발하여 두시간 반이 걸렸다. 저녁밥을 먹으면서 로따가 칭찬해 주었다.  

“니가 차를 잘 몰더구나.”  

길에서의 긴장이 풀린 뒤라서 잇달아 허기증이 일어 밥만 열심히 입에 퍼 넣느라고 대꾸도 못했다. 허나 85호가 과연 내 차가 되나 부다, 기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즐겁게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약장사가 안 되면 85호를 운전해 보리라. 약을 구할 수가 있다면 더 좋다. 북경에 가서 내가 배우고 싶던 고급 승용차 전기 수리도 배워야지…이 생각 저 생각으로 갈팡질팡 하면서도 밥은 잘 먹어주었다.  

혹시 당장 나진을 안 떠날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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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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