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장송이와 나만 남고 영철이가 운전하는 85호를 타고 나머지 훈춘 식구들이 다 귀국했다.
이제부터 약 1주일간은 나진에서 구정을 쇠면서 지내야 한다. 원래 지난해처럼 로얼과 내가 남기로 했는데 구정기간에 늄창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장송이 로얼 대신 남게된 것이다.  

지난해에는 비사 때문에 설을 개 보름 쇠 듯 했다. 올해는 아무 걱정도 없다. 버스 기사들과 차장들은 이미 방학을 주었다. 수리소 쪽에는 차영감이 낮시간에 차장들과 같이 보아주어 여간 마음이 놓이는 게 아니었다. 저녁에는 집이 가까운 기사들이 윤번으로 경비를 서 주었다. 경비들은 설날 하루만 휴식 주었는데 기사와 차장들은 경비가 나오던 말던 자각적으로 나와 주었다. 대기실 쪽은 늄창조가 밤낮으로 경비를 서 주었다. 종업원들은 어느덧 회사에 너무도 정이 들었나 부다.

강경순은 대기실 서쪽에 집이 있었는데 춘화와 혜영이와 함께 우리 두 사람의 시걱을 끓여 주었다. 기분이 좋아 설을 잘 쇨 것 같았다.  

선봉의 김할머니가 전화로 설 문안을 해 왔다. 종업원들 중의 대부분이 각 자 맥주 두어병씩 들고 설 인사를 왔다. 내가 코카콜라를 캔으로 된 걸 두 박스 사오고 장마당에서 수산물을 더러 사 들여서 대강 설쇨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음식으로 설 쇤 이야기는 더 말치 않으려고 한다. 먹고 마시는 외에 비디오와 TV를 보는 것으로 설을 쇠는데 이채를 돋굴 수 있었는데 그걸 적어야겠다.  

설 전날 오후에 웅상병원 원장이 다녀갔다. 그의 말을 듣고 조선에서는 구정에 하루밖에 놀지 않으며 어떤 기업소는 아예 휴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장은 사 갔던 위홍의 비디오를 갖고 왔었다. 한창 보다가 고장났는데 테이프는 넣어 놓은 채로였다. 세포비서의 남편이 비디오와 TV 등속을 잘 수리한다. 비서한테 부탁하여 수리하게 하고 테이프는 먼저 빼내 달라고 했다. 나의 비디오가 아직 팔리지 않아 그걸로 볼 수 있었다. 지난해 여름에 나진에서 찍은 영화라고 해서 무척 보고싶어졌다.  

설날 아침에 밥상을 거두지 않은 채 한명 또 한명의 종업원들이 들이 닥쳤는데 술 잘 마시는 장송이 일일이 접대했고 나는 비서가 가져온 테이프를 보기 시작했다. 비서가 말하기를 엊저녁에 보았는데 사람들이 거의 다 죽는 결말이어서 재미없다는 거였다. 지난해 찍을 때 나진과 선봉의 군중배우가 적지 않게 동원되었고 인민위원회에서도 많은 지원을 보내 방대한 제작진이 참가한 영화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궁금증을 이제 풀 수 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개 마음과 같은 것이었다.  

일제가 무조건 투항을 선포하고 투항서에 사인 한 뒤에 일본 땅에 가 있던 수천명의 인부가 조국 땅에 돌아오게 되었다. 해방을 맞은 기쁨을 안고 고향에 돌아오는 그들에게도 죽음의 신이 박두해 오고 있다는 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태평양 전쟁에 참여한 적 있는 일본군의 구축함 《우끼시마 마루》가 수천명을 싣고 부산으로 출발한다. 며칠 동안 항행했지만 일본의 해안선을 멀리 벗어나지 못했고 음료수 보충이라는 구실로 안전을 담보한다는 미명하에 대부분의 사람을 갑판 밑에 가두어 놓은 채 제일 가까운 일본의 마우즈라 항에 들어가지 않고 일본인들만 구조선을 타고 뺑소니쳐 버렸다. 원래부터 치밀한 계획으로 진척된 일이었고 일본인들의 음모를 간파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1945년 8월 22일 오후에 바다에 서 있던 《우끼시마 마루》는 폭침되었고 그에 탔던 수 천명 중 두 명만 살아났고 나머지는 마우즈라 앞바다에 영영 가라앉고 말았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두 쌍의 연인이 나온다. 차명진과 해연의 사랑이야기, 시춘이와 일본소녀 도미에와의 이야기는 허구 같았지만 영화의 줄거리를 엮는데 없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었다. 《우끼시마 마루》를 훼멸하는 것으로 조선 인부들을 살해한 것이 사실적인 것인지는 모르나 이 두쌍의 연인을 등장시켜 간악한 일제의 만행을 온 세상에 고발하려는 영화의 예술성을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 있었다.  

철도 공사장에서 차명진은 인부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차명진은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려고 시춘에게 밥을 사올 것을 부탁한다. 영남의 엄마가 하고 있는 식당에서 시춘이가 밥을 사 가지고 돌아오다가 공습을 당해 생명이 경각에 이른 도미에의 아버지를 구해준다. 공사장에서 공습 후 도망친 자를 조사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가만히 빠져나온 시춘이가 시내 거리에서 잡히게 되었다.

밥이 일본인들의 발에 짓뭉개지고 몽둥이 세례에 더 참을 수 없게 된 시춘이가 자기를 붙잡으러 온 몇 몇 일본인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리고 나중에 결박당한 채 공사장에 끌려온다. 차명진이 일본인들의 핍박에 구데기가 가득 떠 있는 물을 마시게 되고 시춘이는 혀를 잘리운다. 그 광경을 도미에가 다 목격한다.  

인부로 뽑혀간 차명진을 찾아 해연이가 일본땅에 갔는데 일본군관을 만나 폭행을 당하게 된다. 그 때 맘씨 좋은 영남의 엄마가 구해주었는데 《우끼시마 마루》에서 차명진과 극적인 재회를 하고 그 일본군관은 또 이번 폭침 사건의 집행자로 배에 탔는데 차명진을 비롯한 인부들에게 물매를 얻어맞게 된다.  

《우끼시마 마루》에 도미에가 깜쪽같이 승선한다. 폭침 바로 전에 형부인 그 일본 군관의 총에 맞게 되고 시춘에게 배가 폭침될 거라는 소식을 알리고 죽고 만다. 혀가 잘리워 말을 못 하는 시춘에게서 가까스로 폭침의 비밀을 알았을 때는 일본인들이 뺑소니 친 뒤이고 차명진과 시춘이네는 수 천명의 인부들을 살리지 못하게 되었다.

시춘이와 영남이만 살아났는데 영남이는 여라 문살의 소년으로 등장했었다. 차명진이 해연에게 주었던 붉은 댕기가 바다에 둥둥 떠다닐 때 《고향 하늘》이란 제목의 주제가가 흘러나온다.    

푸른 산 저 너머로 멀리 보이는    
새파란 고향 하늘 그리운 하늘    
언제나 고향 집이 그리울 때면    
저 산 너머 하늘만 바라봅니다.
……    
정다운 동무들과 시내 가에서  
버들피리 불며 불며 놀았습니다.  

구슬픈 그 노래는 이역에서 향수에 젖어있던 인부들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냈고 바다깊이 매장된 그네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고있었다. 일제가 침략전쟁의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우끼시마 마루》를 폭침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과 배와 함께 수 천명을 바다에 매장시킬 것도 함께 계획한 죄악을 밝힌 영화였다. 

시춘이의 역은 영화 《홍길동》에서 홍길동 역을 맡았던 준수한 얼굴의 배우가 맡았는데 조선에서는 인기가 있는 배우다. 지대안의 해안과 나진 앞 바다에서 전부의 촬영을 한 것 같았다. 서수라의 바닷가와 해상금의 백사장, 그리고 해양의 광산과 선봉읍의 영화거리 등은 다 내가 가보았던 곳이었다. 찍기 전에 들었던 제목이 《붉은 댕기》였는데 《살아있는 영혼들》로 고쳐져 있었다.

몇년전에 중국에서 힛트친 미국 영화 《타이타닉호》보다 기술적인 촬영 문제에서 차이가 보였지만 아주 훌륭한 역작이라 느껴질 만한 영화였고 그만큼 충격도 컸다. 이 영화를 복제하려다가 끝내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영화 《살아있는 영혼들》로부터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큰지는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대체로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중국이나 조선에 아직도 일제가 남긴 건물들이 수두룩히 있고 그로부터 느낀 소감을 앞에서도 적은 것이 있기 때문에 더 쓰지 않고 이번 구정에 받은 다른 충격적인 일을 적으려 한다.  

다른 영화는 《력도산》, 《푸른 견장》, 《민족과 운명》등도 TV와 비디오로 보고 구소련 영화도 보았지만 조선중앙TV방송국에서 설날 특집으로 방송한 드라마에서 약간의 충격을 받게 되었다.

두 쌍의 연인의 연애 결혼 문제를 반영한 드라마였는데 그믐날과 설날 이틀에 걸쳐 방송되었다. 남자들끼리는 친구사이에 노총각이고 평양에서 살고 있는데 설 임박에 각 자 연인을 만나고 종신대사를 결정하는 줄거리였다.

두 쌍 다 중매로 만나고 있었다. 총각 A는 처녀 C를 만난 적이 있으나 C에게 애가 딸린 것을 안 후에 기편 당했다고 느껴져 헤어졌었다. A가 총각 J에게 처녀 L를 소개 해주는 동안 A와 C는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고 A는 C가 데리고 있는 애가 원래 C와 한 공장에 있던, 병으로 죽은 부부가 남겨 놓은 아이라는 걸 알게 된다. 애에게 사랑이 수요될 때 C가 선뜻이 양모로 되었다. C의 마음씨에 감동된 A는 마침내 C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그럼 J와 L은 어떻게 되었는가? 둘이는 만나기 전에 벌써 우연히 상점에서 상품 대문에 다툰 적이 있다. J는 대홍단에서 일 하는 제대 군인이였고 작업에 필요한 망치를 사려고 상점에 갔는데 역시 망치를 사고 있는 L를 만나게 되고 한바탕 다투었던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망치 잔고가 두 사람이 다 요구하는 수량보다 적은 것으로 나오고 있었다. 

우리 회사 차장 처녀들에게 물어서 대홍단이란 곳이 어떤 곳인 지를 알 수 있었다. 전문 감자농사를 하는 백두산 부근의 치벽한 곳이었다. 모든 여건이 곤난한 조건에서 일 하는 곳으로 고생을 밥먹듯 하고 제대 군인들과 시내 처녀들이 당의 부름 따라 달려가는 곳이라고 한다. J는 제대하자마자 달려갔고 대학을 금방 졸업한 L은 대홍단에 지원할 망치를 사려고 상점에 갔다가 J와 해후하게 된 것이다.  

A의 소개로 둘이 만났을 때 둘 다 깜짝 놀라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둘 다 대홍단을 위한 일이라는 걸 알고 대방에 깊이 매료되고 서로 사랑을 고백한다. 나의 연애 혼인관으로는 A 와 C의 연애는 어느 정도 이해되었으나 J와 L의 연애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선 대졸생 처녀가 제대군인에게 시집갈 것을 하루사이에 결정한 일이다. 선군정치의 제도밑에 가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전도가 창창한 대졸생이 어찌 통하는 말이 없는 제대군인에게 인생을 기탁할 수 있단 말인가? 맹목적이고 억지감이 든다.  

다음으로 처녀가 총각을 따라 대홍단에 가기로 결심한 일이다. 대홍단을 지원하는 마음 하나로 공동한 이상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곧 이해된다. 다만 치벽한 시골에서 썩고 말 대졸생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역시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낮게 보이는 현실을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대홍단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불과 하루사이에 사랑이 맺어질 수 있다는 게 제일 이해되지 않는 거였다.

연애 결혼으로 연애생활 몇 년, 결혼한 지 몇 해 되어서도 헤어지기 십상인 중국사회에서는 도저히 이해 못하는 일이다. 중매로 만났고 첫눈에 반했다 할지라도 데이트가 단 한번도 없는 기상천외한 사랑 고백을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만 보아 왔을 뿐이고 현실적으로 내 주변에서는 한번도 본 적이 없거니와 들은 적도 없다.

낭만적인 하루 밤 풋사랑이면 그래도 이해될듯 했지만 이건 그게 아니었다. 연애나 결혼에 대한 것도 정치를 통해 운운하는 것, 바로 그거였다.  

일전에 평양-남포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걸 TV와 노동신문에서 보았었다. 8차선이긴 했지만 중앙 분리대가 없고 도로 옆에 펜스도 없는 그 도로는 내가 보기엔 고속도로가 아니었다. 

어려운 조건에서 건설된 것만도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서도 솜옷과 신발을 지원했었다. 숱한 열혈 청년들,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본 제대 군인과 대졸생같은 처녀들이 무리 지어 공사장에 달려갔을 거였다. 그네들의 본의가 아니게 인연이 맺어지고 여론 조성의 분위기까지 곁들여지면 꿈에도 생각지 않던 결혼까지 맞는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게 느껴져 올뿐이었다.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라고나 할 가, 나는 나대로 생각이 골몰했지만 같이 보고 난 종업원들은 잘 찍은 거라고, 잘 된 영화라고 연신 찬탄을 금치 못했다.

두 쌍의 연인을 두고 인연을 맺은 것에 대해 한 말인지, 아니면 드라마의 세절속에 나오는 우스깡스러운 장면을 보고 그러는 지는 알 수 없어도 어쨌든 나에게는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늄창작업은 벌써 그믐날 오후 늦은 시간에 거의 다 해냈었다. 설날 오전에 마무리 작업을 해냈기에 장송의 얼굴에는 좀 답답해 하는 기색이 역연하게 내비쳤다. 이튿날에 해안선관광을 할 걸 약속하고 나진에서의 두 번째 설날 밤을 잤었다. 설 이튿날 아침에 매점은 부품 사러 온 사람들로 흥성거렸다. 온 오전 판매원 노릇을 하다보니 해안선 관광은 오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먼저 매점에서 있었던 일부터 적기로 한다.  

한 남루한 차림의 사내가 배낭을 멘 채 매점에 들어섰는데 가격표를 들여다보면서 한참이나 얼뜨름히 서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먼거리 운전을 하는 기사는 자기 돈으로 부품을 사게 되어있다. 청진에서 나진으로 오는 사람(대부분은 장사군)을 실어주고 써비를 받아 낸다, 즉 돈을 받는다. 타는 사람 중에는 조선 국내 방방곡곡, 어디 사람이나 다 있다. 내가 판매원을 잠간 잠간씩 하는 동안 개성, 평양, 사리원, 원산, 청진 등지에서 온 방문객들을 많이 만났었는데 청진사람이 제일 많았고 그들은 다름 아닌 부품 되거리군이었다.

장사 중에서도 중국차 부품장사가 돈을 좀 버는 것 같았고 그런 장사군들은 반드시 청진을 거쳐 나진에 오게 되어있는데 이는 먼 거리 운전을 하는 기사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게 된다. 생억지를 쓰는 사람과 군대들한테서도 용케 받아냈는데 그 재주는 귀신이 왔다가 울고 갈 지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제일 적절할 것 같다. (한번은 나진에서 70여 명을 실은 트럭이 청진으로 가다가 바람이 나서, 즉 브레이크 고장으로 고개 밑에 떨어졌는데 50명 정도가 즉사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렇게 생긴 돈으로 부품을 사는 것이다. 그 사내의 거동을 보고 지대 밖에서 왔다는 걸 대뜸 알 수 있었다.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아닌게 아니라 돈이 부족해 신품을 사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매점은 청진에까지 소문이 나 있다. 이 사내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는데 먼저 수리소 쪽에 갔다가 다시 회사 쪽의 매점을 찾은 거였다.

사내의 말로부터 청진에서도 우리 매점이 꽤나 이름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고장난 차를 나진에 보름동안 세워두었다가 가져온 물건을 판 돈의 일부를 받게 되어 부품사러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기사가 노상에서 번 돈은 큰 부품을 사는 데 미치지 못해 오늘까지 미루어왔고 될수록 중고 부품을 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2년 동안 버스정비와 각종 차량 수리 끝에 나온 중고부품은 얼마든지 있었다. 벌써 지난 가을철에 영철이와 의논하고 수리소 쪽에 있던 중고부품들을 전부 끌어 내려다가 매장의 시멘트 바닥에 널어 놓았었다. 그 기사는 매대에 막혀 있는 중고부품을 아직 못 보았던 것이다. 신품가격의 절반 가격이라는 것과 작은 산처럼 무져놓은 중고부품을 보던 그 기사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야-아. 여기에 보물 창고가 있었고나!”  

2만 원 어치의 중고품을 배낭에 넣으면서 좋아서 싱글벙글했다. 그 돈이면 신품을 절반도 사지 못 한다. 가격을 할인해주어서 그 기사가 몇 개 더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영철이 같으면 절대로 할인해 주지 않는다면서 혜영이가 옆에서 활짝 웃어주니 그 기사는 덩실덩실 춤추는 모양으로 매점을 빠져나가는 거였다.  

나진의 기사들은 이미 요구가 무척 높아져 있다. 원래 그렇게도 잘 팔리던 중고 판 스프링이 지금은 아예 팔리지도 않는다. 지난해 여름에 마지막으로 한차 실어 내온 뒤 팔다 남은 것이 지금도 수리소 쪽에 처박혀있다. 요즘은 전부 다 새 것으로 사간다. 너무 비싸지 않으면 거의 다 새것으로 사갔다. 지대 밖의 기사들처럼 자기 돈을 팔 염려가 없이 다 기업소의 종이돈을 들고 와서 사갔던 것이다.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하면 일도 할 수 없었으므로 기업소에서는 예산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그 부분의 돈을 어쩔 수 없이 퍼내고있는 것이다.

새 차를 몇 대 조립할 수 있을 정도의 부품이 나갔고 잘 팔리는 부품 이를테면 베터리, 뷰다, 발전기, 스타트모터는 얼마나 잘 팔리는지, 그 외에도 작지만 없어서는 안 될 많은 부품들이 너무도 잘 팔려서 내간 수를 이루 헤아릴 수 없고 건축 자재도 잘 팔려 매점의 매상고는 항상 상승선을 긋고 있었다.  

지난해 1억 3천만의 총 판매액 중 자동차와 건축 자재에 관련된 매상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그 외 늄창 수입과 연유 수입도 괜찮았을 뿐더러 여객수송 수익금도 더러 있다.

이것은 훗날 회사설립 2주년 기념일 날에 로따가 자랑스레 선포한 것이고 그 때 나는 고생한 보람을 느꼈었다. 비록 나에게 속하는 것이 하나도 없을 지라도 회사가 나진에 뿌리내린 것이 크나큰 자부와 자호로 남았고 그 어떤 영향이 있을 지라도 계속 호황을 누려갈 것을 마음속 깊이 바라게 되었다.  

나진 여객수송회사 –비록 시련은 있더라도 나에게 인생의 공부를 하게 하고 철들게 했으며 조상들의 역사로 괴롭기히도 했지만 또 다른 조국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한 장본인이었다. 평생을 두고 2년 동안의 일을 잊을 것 같지 않다. 내가 혼자 간직하고 있기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을 더는 주체하지 못했고 기어이 글을 써내고야 말리라고 맹세했다.  

장송이와의 해안선 관광은 오후에 나갈 수 있었다.

드라이브를 즐기는 나에게 있어서 자동차 여행이 몹시 유혹스러웠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며칠 전에 주보스와 함께 서수라에 한번 갔다 온 뒤였으나 당금 나진을 떠날지도 모르는 형편에서 한번 더 가보고 싶어진 것이다.  

겨울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이 맑고 따뜻한 날씨다. 캔 콜라 네 개를 실은 후 휘발유도 만탱크했다.
이 휘발유는 설전에 연유상사에 가서 사온 거였다. 러시아산 76호여서 88호에 넣어 쓰면 안 좋은 데가 많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산호텔 입구의 네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동명동의 태양상이 한눈에 안겨온다. 태양상 곁에서 좌회전을 한번 더 하면 지난해 연말에 새로 닦아놓은 도로에 진입한다. 회사 옆의 구도로는 사적지도로라고 하면서 차단봉을 내려놓고 쓰지 못하게 하고 있다.  관곡 고개를 오르면서 골짜기 왼쪽에 눈을 주면 회사건물과 수리소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를 보면 나진 시가지와 나진만이 다 보인다. 고개를 넘은 후 포장도로가 시작되고 도로 왼쪽은 관곡동 주민구역, 오른 쪽은 석유정제공장이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선봉읍이 있다. 조선 중앙은행 선봉지점과 보험총사 선봉지사의 청사를 가리키면서 장송이 늄창작업을 현지에서 했던 것을 말해주었다.  

선봉읍의 중심가에 선봉회관(극장)이 있고 맞은 켠에 태양상이 있는데 바로 그 앞에서 조경화가 인명사고를 쳤었다. 선봉경기장을 지나면 선봉수산물 사업소가 있다. 여기 늄창작업도 현지에서 했다고 장송이 말하는데 그 때는 차가 이미 올리막을 오르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가없이 넓은 바다가 나타나고 선봉항과 비파도가 똑똑히 잘 안겨들었다.  고개를 내려가면 웅상이고 다시 고개 하나를 넘으니 만포가 시야에 들어왔다. 굴포를 지나면서 미래의 국제공항을 그려보았고 로얼의 외가집과 외삼촌 집들을 일일이 체크했으며 서포항을 지나 다음 고개 정상의 기념비 앞에서 주차시켰다.

정자 하나가 지어진 그 곳에서 나진만을 제외한 지대 안의 해안선이 한눈에 안겨든다. 카메라를 갖고 가지 않은게 후회될 지경이었으나 바다를 배경으로 하면 역광이어서 잘 나오지 않을거라고 자기 위안을 하면서 다시 차에 올랐다. 《살아있는 영혼들》에서 나왔던 서수라 해변까지 가볼 필요가 느껴지지 않아 차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갈 때와 올 때 전부해서 차 두 대밖에 만나지 못했고 비록 눈길이었으나 길이 잘 트여져 있어서 60키로 이상 속도를 보장하면서 선봉읍에 도착했다. 태양상 있는데서 우회전해서 원래 갔던 길을 다시 온 것이 아니고 직선으로 내달아서 발전소 뒤의 고개 길에 올랐다.

비파도와 창진, 추진을 거쳐 동명동에 이르는 해안선을 볼 참이었다. 비파도에 들어가는 입구에 가기 전에 우회전해서 엠페러 호텔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장송이는 오늘 처음 이 호텔 안에 들어가 본다. 1층의 카지노 장을 죽 돌아보고 나서 지난해 비파도 사건 때 차를 몰수당하고 죄수처럼 서 있던 그 초소를 지났고 방대한 규모의 해어 가공단지가 있는 창진도 지났다. 추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 조금 더 가야 볼 수 있는 백사장관광을 포기하고 고개를 타고 동명동에 이르렀다.  

태양상에서 기차역까지의 직선도로를 통과한 후 역전동, 창평동을 지나 유현동에 들어섰다. 닭 공장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조금 더 가면 작은 기차역 하나가 나지는데 바로 바다 옆이다. 실은 나진항으로부터 죽 다 해변이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듣고 바다에 거물처럼 들어 앉아있는 대초도, 소초도를 보면서 담배를 태우고 난 뒤 귀로에 올랐다.  

후창세관까지 갈 것을 포기했다. 미이터에는 이미 백 키로 넘어 달린 것으로 나와 있었다. 차 타기를 좋아하던 장송이도 조금은 피곤한 기색이었는데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덜 깬 모양으로 찦차안에 술내가 풍기여서 창유리를 조금 내려놓은 상태에서 운전했었다. 줄곧 음악을 틀어 놓고 있었는데 장송이는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잠을 잤다. 나도 피곤해져 안주동 끝의 해양에 가는 것을 포기했었다.

장송이는 차에서 내린 다음 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덜 잔 잠을 보충하고 저녁때에야 주방에 나타났다. 그 동안 구소련의 영화를 보았었다. 명절맞이 공연연습을 하는 중이라 내 방에도 기타와 아코디언이 있었는데 기타를 좀씩 타기도 하고 아코디언을 새로 배우게 되었다. 악기 중에서 기타, 하모니카와 피리를 좀 다를 줄 알지만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싶었던 아코디언을 나진에서 처음 가까이 만지게 되었고 지난해보다 올해는 배우려는 욕망이 더 간절해졌다.

지난해 연말에 이모가 보드가 120짜리 아코디언을 갖고 나 온 것을 혜영이가 부러워하면서 늘 내 방에 와서 타 주었고 그 때마다 조금씩 익혀 두어 왔었다. 그녀의 것은 보드가 90짜리 조선 산이었는데 음질도 이모것 보다는 못했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안고 허둥댔으나 손가락이 굳어서 제대로 배워 낼 수가 없었다. 간단한 곡 한 두 곡 정도를 탈 수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만 하고 무건운 물건을 안고 있는 것이 귀찮아서 이내 기타로 바꾸기도 했다.  

《사랑의 러망스》를 연주 할 때마다 남연숙과 차장들이 몰려들어 구경했고 《고향의 봄》을 내가 배워주게 되었다. 남연숙은 딸에게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을 가르치고 있는 음악 미치광이었는데 나의 《사랑의 러망스》를 언제나 칭찬해 주었다. 듣기 좋은 곡이라는 걸 알았을 뿐이고 세계명곡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이모의 큰 아들이 나진에 왔을 때 아코디언으로 세계명곡을 수태 탔는데 종업원들 중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떤 면에서든지 교류에 있어서 언제나 안타까움만 갖다주는 나진사람들이었다.  

악기 외에 열심히 하는 노릇은 판매원이다. 친절하고 상냥한 어조로 손님들과 얘기하고 부품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는 나를 보고 혜영이는 영철이보다 완판 다르다는 거였다.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니  

“영철선새임은 무뚝뚝하고 신경질 나면 더 말하기 싫어 하는데 영도 선새임은 부드러운 말투에다 표준적인 말을 하고 부속품(부품)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줌다.”  

그러는 거였다.  

“봉사업(서비스업체)은 다 그래야 하는 거다. 총경리 선새임이나 영철이나 다 여기서 그래는 건 일없겠지만(괜찮지만) 중국에서 그랬다간 손님이 다 달아나고 만다. 장사라는 게 다 머니, 문을 닫고 말 거다.”  

내가 벌써 여러 번이나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아무튼 영도 선새임과 같이 팔면 맘이 편안함다.”  

혜영이 예쁜 얼굴에 웃음 짓고 말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중졸생으로 이해에 스무살밖에 안 된 처녀였고 중국어를 할 줄 몰랐으나 한자를 많이 알고 있어 부품의 중국어 이름을 어렵지 않게 척척 써내는, 눈치 있고 영리한 재간둥이다. 처음 판매원이 되었을 때 방문객들에게서 별의별 상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용하게 참는 인내력을 보여주었고 나이보다 헴이 무척 든 모습으로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설화가 나에게 임신과 생육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매점 안에서 영철이가 없고 혜영이만 있을 때였는데 묻고 나서 무안한지 설화는 얼굴을 붉혔으나 혜영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의 말을 들었었다.  

생남이냐 생녀이냐는 여자에게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정자와 란자가 수정되는 환경이 산성이면 생녀하고 알칼리성이면 생남한다. 이건 이미 많은 사실로 증명된 거다. 요즘 의사들은 교접 중에 여자가 오르가즘을 느낄 때 남자가 사정하면 많이는 딸을 낳는다고 가르쳐주고 있다. 여자가 오르가즘을 경험할 때 자궁과 수란관속이 많이는 산성을 띠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신시간을 잘 장악해야 총명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두 사람 다 정서가 좋고 건강상태도 좋을 때 음력 보름과 가장 가까운 날에 교접해야 한다. 이런 날을 기다리자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위홍이는 술을 즐겨 마시는데 임신 반년 전부터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걱정 없고 음식도 잘 먹게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중국어를 섞어 가면서 대강 그 정도로 말 해주었는데 설화는 부끄러워 책상에 머리를 틀어 박았지만 혜영이는 설화의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깔깔거렸었다. 내가 아들애를 그렇게 만들어 낸 거라고 얘기하니 설화는 매점 밖으로 달아나 버렸고 혜영이가 큰소리로 웃어댔기에 창 너머 부기실에서 다 이쪽을 건너다 보았었다. 어쨌든 키도 적당히 커있는 혜영이를 어린애로는 볼 수 없었고 언제 보나 어리무던한 그녀는 매점 일을 누구보다도 잘 했었다.  

장마당에도 뻔질나게 다녔다. 감자, 무우, 두부를 사들였고 무우김치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끼마다 곱돌장이 빠지지 않았고 동태를 사다가 국을 끓여 먹기도 하고 낙지를 사다가 풋고추와 섞어 볶음요리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다른 수산물들은 먹고 싶어도 살 수 없었다. 벌써 어선들이 거의 두 달이나 출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전기가 정상인 것만큼 반가운 일이 없다. 밤늦게까지 비디오를 보고 새벽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VCD로 수입영화를 보기도 했다. 이제는 백 번도 넘어 보았을 그 디스크들은 보관을 잘 하지 않은 탓에 긁힌 자리가 많아 잘 나와주지도 않았다. 그 중에서도 《춘향전》과 《홍길동》이 제일 잘 나왔는데 구정 휴가동안 《춘향전》만 해도 열 번을 넘어 본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살아있는 영혼들》도 거의 열 번을 본 것 같다. 보면 볼수록 일제에 대한 원한이 가슴에 맴돌았다.
수십년 전에 총과 대포로 반도를 삼켜버리고 그래도 성차지 않아 중국과 동남아시아에까지 마수 뻗혔던 일제, 지금 일본은 엔이라는 무기로 세계를 주름잡고 있고 다른 나라에 대해서 경제적인 침투를 거리낌없이 하고 있다.

자원이 결핍한 작은 섬나라가 어떻게 경제적으로 많이 발달한 나라로 성장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전쟁후에 그 간고한 역경속에서도 학생들에게 매일 우유 한 컵씩 공급하는 것을 중지하지 않았다는 일본이다. 그만큼 교육에 거대한 중시를 돌렸다는 얘기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일본에게 뒤진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지금 내가 직접 보고있는 목편을 두고 분석해 보면 일본은 자기 나라의 자원을 너무 아끼고 있고 중국의 목재를 헐값으로 사서 이중으로 득을 보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자원을 약탈하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일이고 에누리 없는 경제 침투다. 당분간 중국은 돈을 버는 것 같지만 이는 후손만대에 책임을 지지 않는 국가적인 도둑행위요, 국제범죄다. 일년에 적어도 수만 톤, 많으면 수십만 톤씩 삼림자원을 낭비하는 건 국가 자체내의 손실일뿐더러 세계적인 손실이라고 생각되었다.

어쨌든 일본은 수십 년 동안 우리 겨레뿐만 아니라 중국에 있어서도 많은 상처를 주었고 그 근원을 따져보면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주는 사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고 지어는 붙는 불에 키질하는 꼴이 되고만 것이다. 이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심각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였다.  

부모님과 형제와 아들을 두 번째로 떠나 쇠였던 나진의 구정을 정녕 잊을 수 없다. 내가 북경 진출의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그런 구정을 열 개라도 더 쇠고 싶었다. 나는 나 개인의 전도를 위해 약 장사가 아닌 자동차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라도 북경에 갈 것을 결심하고 있었다. 약 장사의 정보는 우연하게 얻어진 것이어서 하면 좋고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크게 손해 볼 것도 없었기에 그만이었고 중요한 것은 그래도 공부였다.

이제 나이를 한 두 살 더 먹으면 공부하기가 생각처럼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 공부를 위한 필요한 공부를 기본적으로 해놓은 셈이고 머리가 둔해지기 전에 빨리 해두어야 하는 공부였으므로 구정 후의 적당한 시간에 나진을 떠나기로 했다.

전공 살리는 일보다 더 재밌고 미래가 보장 될만한 다른 일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그래도 자동차라고 생각되었고 어서 빨리 나진을 떠나고 싶어졌다. 85호 트럭이고 뭐고 다 집어 치워야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이 글을 공유하기:

동방영도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2
좋아요
오~ 오~
0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