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작별하고 훈춘으로 돌아오는 차를 탄 내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친구들은 변해가는 산천과 같이 의식 면에서도 몇년 전과 전혀 다른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3년 좀 넘어 되는 세월을 두고 북경과 나진이라는 수십년 차이의 두 도시를 오갔고 내 의식마저도 70년대의 동년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극심한 변화를 거쳤다. 앞으로 달려도 다 못 달리겠는데 뒷걸음질만 쳤던 것이다. 나진에 더 있게 되면 나의 의식이 더 낙후해져 시대의 발걸음에 뒤지는 낙오자로 될 수밖에 없다.

경쟁시대에서 이것은 가장 치명적인 것이다. 엄중하면 경쟁능력을 상실한 사실상의 꽃제비로 될수 있다. 그걸 감안하고 보니 나진이 더없이 싫어지는 것이었다. 이제 정리가 다 되면 가볍고 기꺼운 심정으로 돌아오고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리라. 나진에서의 2년간은 좋든 굳든 추억 속에 넣어두기만 하고 나의 인생에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느끼기만 하면 될것 같았다.  

나진에서 철수한다!  

나는 마침내 결심을 내릴수 있게 되었다. 나진은 이제 내 인생에 장애물로밖에 남지 않았다.많은 돈을 주고 많은 시간을 낸들 나진에서 얻은 인생 공부의 수확만큼 벌고 얻어낸 것이 없다. 그것 만이 재부로 남았을 뿐이다. 더 지체하면 그동안 얻은 이 재부도 놓칠 수 있다.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기어이 나진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새 세기 첫해 봄의 첫날에 했던 것이다.

나는 자유인이 된다. 아내와 헤어지면서 자유인이 된다고 홀가분히 생각했을 때보다 더 흥분되었다. 밤을 새고 여로에서 거의 두시간을 부대낀 몸이었지만 차에서 내리고 나니 둥둥 뜨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옛말에 팔자는 도망치지 못한다고 했다. 헌데 나는 이것을 전혀 믿지 않는다. 내 운명은 내 손에 쥐여 있을뿐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 가는 내 의지에 달렸고 그렇기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이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나는 내 갈 길을 결연히 걸어갈 것이고 거기서 만족을 얻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곧바로 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의 전도에 대해서는 언제나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회사의 앞날이 몹시 걱정되었다. 상상도 하지 못하던 간난 신고를 겪으면서 2년동안 지탱해왔지만 위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정책적인 면과 모든 불리한 환경조건에서 겪는 곤난보다도 자금문제가 제일 큰 골칫거리였다. 점심식사 때 로빠이와 로얼을 만났었는데 훈춘의 거래 파트너들한테 이미 수십 만원의 외상을 걸어놓고 있다는 걸 알았고 로빠이는 초창기 때 꾸어주었던 돈을 여러 번에 걸쳐 받아가기는 했으나 다시 꾸어주는 데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진의 은행 계좌에는 거의 2천만원이 남아있어 외상 빚을 물고나면 남는 게 없다. 아직까지 건물부지 임대 비용을 청산하지 않았기에 결국은 아직도 외채가 있는 셈이다. 이제까지 회사를 경영해온 데서 돈을 벌긴 했지만 전부 다 건설에 재투자했고 앞으로의 새 주유소 건설에 관해 투자 의향을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로빠이가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짓는 것이 이해되기도 했다.

나진의 정황을 손금 보듯 알고있는 로빠이로서는 자금문제를 신중히 고려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건설문제에서 로빠이는 로따와 의견상이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은행 계좌의 돈은 불어나기만 하고 지금까지 거의 넉달 동안이나 일전 한푼 출금하지 못했다.

연말에 주변 농장들에 분배할 돈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얼마간 미루어온 기업소들의 생활비도 생각해주어야 했기때문에 얼마 되지 않는 현금 잔고로 은행 지배인이 속태우고 있었는데 외국인 기업의 현금출금은 일률로 금지해왔었다.

요즘에는 《2.16》행사 때문에 출금을 미루고있다고 들었었다. 《2.16》행사때문에 출금이 곤난하다는것은 아무리해도 이해되지 않았으나 2월말쯤부터는 출금 문제가 풀릴 수도 있다고 했기에 지금은 매점과 늄창조의 잔고품으로 자그마한 장사가 유지될 뿐이고 정상적인 것은 수리소의 대외수리 업무뿐이다.  

내가 나진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는것을 들은 로빠이는 대뜸 심각한 기색을 명랑한 기색으로 바꾸었다. 내가 북경 진출의 계획을 말하니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진에서 썩고말 것 같더니 이제야 자기가 갈 길을 찾았다면서 대견해 했고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공부에 필요한 것과 곤난한 점이 있을 때 사양하지 말고 얘기해 달라고 했다.

얼마든지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부지런하고 헌신적인 너같은 사람이면 내가 남겨두고 써도 좋겠지만 지금 공부를 더 하겠다는 것이 내 생각과도 맞는 일이라면서 돌아오면 자기네 자동차정비소에서 일 해달라는 말도 곁들여 했다. 정말 고마운 분이었고 나는 깊이 사례했었다.  

오후에는 가게들을 돌아 다녔다.  건축자재상점,  전기재료상점과 자동차부품가게 등에 수십만원의 외상이 걸려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황보스네는 전문 중국산 차들의 부품을 우리한테 공급해주고 있는데 나진 매점의 부품수익금은 전부 다 이집 부품으로 발생하고있다. 시내에서 나진으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한 황보스네 가게를 우리는 사무실 맞잡이로 사용했었다.

아무런 구애없이 전화를 썼고 일이 없을 때는 좁은 온돌방에서 패치기도 했다. 가게 앞마당이 꽤 넓었는데 중고차를 수리하는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요즘은 최영감이 당금 나진에 내보내게 될 중고차 한 대를 손질하면서 매일 가게에 다니고 있었다.

최영감은 나이때문에 지난해 드문히 몰고 다니던 중고차를 팔아버린 뒤로 나진에서 들어온 엔진과 중고차를 수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중국의 연유를 나진에 실어가는 문제가 새롭게 나타나 나진에 나가는 유조차를 인계받을 수도 있었다. 로따가 계획한 일이었는데 최영감이 안되면 다른 기사를 구할 예정이었고 그래도 안되면 중국연유 장사를 포기하고 유조차도 팔아버리려는 것이다.  

내가 나진을 떠난다고 하니 다들 혀를 끌끌 찼다. 특히 최영감은 못내 아쉬워하고 걱정해주었다.
지난해 늄재료를 실은 중고차가 단속되었을 때 최영감이 운전했었는데 그때 풀려난 얘기를 하면서 아무 번호판이나 걸어맨 중고차를 큰 사고없이 몰고 다니던 나를 항상 칭찬해 주던 최영감이다.

자동차 부품을 실수 없이 정확히 구하고 사들이던 내가 없으면 회사에도 더러 곤난한 점이 있겠다고 걱정해주는 거다. 내가 회사를 나오는 게 나에게는 아쉽고 회사에는 손해라는 뜻으로 거듭 말하고 있었는데 황보스는 그냥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황보스는 동생이 해고된 뒤로 나한테 이불짐을 갖고 와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고 나는 구정전의 마지막 귀국 때 약속 대로 짐을 갖다 주었었다. 로따는 기사로 5회 밖에 쓰지 않은 황보스의 동생을 내 예견대로 새해부터는 쓰지 않았고 지금은 새 기사를 쓴다.

황보스는 만날 때마다 그쪽 화제를 피하는 눈치였는데 외상에 눌리어 있는 것만으로도 기를 못펴고 있었고 고혈압 증세로 자꾸 앓기도 했다. 맘이 후더운 그들 부부는 외상때문에 옴니암니 따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부품을 잘 모아주었다. 황보스의 아내가 말없는 남편을 대신해 나의 북경행이 순조로울 것을 축복해주었을 뿐이었다. 황보스는 벌써 여러번을 나진에 갔다 왔었다.

평생 자동차와 인연을 맺고 살아 온 그와 나 사이에는 화제가 많았고 처음 나진에 다녀온 후부터는 회사에 신심을 가졌는데 통이 크게 부품을 사들였고 마진을 조금 남긴 도매가격으로 우리한테 넘겨줬었다. 외상이 많이 깔려 있으니 결국은 돈을 벌지 못하는거나 다름없었지만 병든 몸을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 때문에 우리 매점의 실적은 작년부터 엄청나게 높아져 있다. 이는 이용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할 줄 아는 로따의 장사 수완과도 관계가 있었지만 황보스와 같은 가게주인들의 노력과도 갈라 놓을수 없는 것이었다.  

로얼이 들이닥쳤다. 최영감외에도 아직 나진에 나가지 않은 식구가 더러 있었는데 다 모여서 보름을 쇠자면서 우리를 끌고 식당에 갔다. 중국 사람들처럼 설보다도 정월 대보름을 더 굉장히 쇨 잡도리를 하는 모양이다. 보름 날에는 가족마다 식구들이 다 모여서 윷놀이 하는 것과 귀밝이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풍속이 아직도 남아있다.

두만강을 뻔질나게 넘어다니는 우리한테 풍속대로 보름을 쇨만한 여가가 없었고 딱 그 날이 아니더라도 오늘 저녁술로 귀밝이술을 대체 하자는 데는 다들 이의가 없었다.

이날 저녁 나는 포도주를 엄청 많이 마셨다. 친구들과 만났을 때 맥주 한컵 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2리터짜리 플라스틱 용기로 포장을 한 4% 알콜 함량의 포도주를 혼자서 거의 다 마셨다. 평소에는 하루에 1.5리터짜리 코카콜라 두 병을 마시고도 모자라는 체질이다. 콜라와 포도주는 알콜이라는 점으로부터 근본적인 구별이 있었지만 이날 나한테는 두가지 다가 사이다로 생각되었고 콜라 대신 권하는 포도주를 사양하지 않고 다 받아마셨던 것이다.  

취기가 돌아 밥도 먹지 않고 식당 한쪽의 온돌방에 누워 버렸는데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다른 식구들이 언제 갔는지도 모르고 식당주인이 깨워서야 일어났는데 머리가 빠개질듯이 아파났다. 보신탕에다 밥을 말아 먹고 식당주인과 정통편(값이 싼 진통제) 한 알을 달라 해서 먹었다. 자주 다니는 집이라 사양할 것도 없다. 캔 콜라 한개를 달라고 해서 마시면서 거리에 나왔다.  

시원한 바람을 들이켜고 나니 정신이 좀 들었다. 가까운 다방에 찾아갔다. 주인은 내가 잘 아는 여자다.  중고차들마다 운전석 밑바닥에 새로 바닥을 펴고 시트에는 새로 카바를 만들어 씌운다. 천정과 시트위는 새 재료로 깔끔하게 도배하는데 그것은 전부 다 이 다방주인 여자가 하고 있는 전문점에 맡겨서 해내고 있다.

역시 몇천원이란 외상이 걸려 있다. 나와 동갑인 주인 여자는 번 돈으로 이 다방을 차린지 몇달 되였다. 오늘 처음 이집에 찾아온 거다.  

커피 한잔을 시키고 나서 주인 여자와 한담을 시작했다. 역시 여자문제였다. 너 같이 훌륭하게 보이는 남자한테 여자가 없다는 게 참 이해가 안된다, 조선에서 색시 하나 얻어 올 것이지, 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 대체로 그러루한 말들이다. 우리 말로 하면 너무도 길어져야 할 말을 중국어로 간단히 주고받으니 화제가 궁해진다.

이 한족 여자는 대졸생 남편을 얻어 그리 걱정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의 남편과 마주 않으면 시간 가는줄 모르겠는데 고졸생인 그녀와는 업무상의 말과 여자 문제밖에 거론되지 않는다.  

먼저 먹은 약이 작용하는지 머리가 맑아졌고 커피도 다 마셨다. 주인 여자는 내가 돈을 내놓는 걸 기어이 다시 찔러 넣어주고 나를 문밖으로 떠밀어냈다. 이미 열시가 넘은 시간이 되어 있었다.   술을 깬 상태로 되돌아 왔으나 걸음이 잘 되어주지 않았다. 아직도 과민증세가 조금 남아 있는듯하다. 시원히 샤워하고 싶어졌다.몸을 거뜬하고도 개운하게, 머리를 더 맑게 하고 싶다.

목욕탕을 떠올리니 값싼 여자들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내 의지와는 달리 몸은 목욕탕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들이 몸을 씻어주는 목욕탕이다. 몸을 씻어줄 뿐만 아니라 남자가 원하면 욕실에서 자기 몸을 주기도 하는 곳이다. 남자가 반응을 보여주지 않으면 갖은 유혹을 해대고 기다렸다는듯이 옷을 벗어낸다. 때를 벗기기 위해 마련해 놓은듯한 작고 불편한 침대에 초연히 누워버린다.그런 욕실을 독방으로 여러개를 둔 목욕탕이 시내안에 여러집 있었다.

시설이 괜찮은 사우나보다는 값이 싸고 목욕탕과 곁들여 하는 여관방에서 밤새도록 연애할수도 있다. 드문히 다녔던 그 몇집 중의 한집에 들어섰다. 샤워를 가까스로 끝내고는 여관방에 올라갔다. 방금 샤워 전에 있었던 정사를 음미해 볼새도 없이 깊은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불을 들추고 들어오는 기척에 잠을 깨었다. 이 집은 밤 열두시에 문을 전부 잠궈버리고 여자들을 방에 들여보낸다. 여자가 방에 들어왔기에 밤 12시가 지난 거였고 이제부터는 여자가 빠져나가는 아침 6시까지 몸을 태우다가 식히는 작업을 시름놓고 할수 있었다. 잠도 적당히 자 두었기에 체력이 회복되어 있어 알몸을 내 알몸에 밀착시키는 여자를 힘껏 껴안아줄 수 있었다.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하지만 담배를 즐겨 피웠다. 나진의 수리소에서 최고로 하루에 세갑씩 피워댔다. 나진에서 수입 담배로 《검은 고양이》와 《단힐》 그리고 나진산 《나진》과 《신흥》도 적지않게 사피웠다. 아침에는 이불속에서 적어도 두대를 태워야만 일어나는 애연가다.

담배를 찾느라 몸을 뒤척였더니 온몸이 시큰시큰해 났다. 담배를 세대째 피우면서 작은 방의 출입문을 적당히 열어 놓았다. 방에 몰려있던 연기가 문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모든 잡념이 머리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느낌이 좋았다. 짧은 시간이나마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몸이 구름 위에 둥둥 뜨는 것 같은 그 때 기분이 정말 좋다. 그 때문에 내가 여자를 찾아다니는 지도 모른다.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다. 단 일초간이라도 그 방에 더 있고싶은 게 내 진솔한 마음이었다. 그 방만 나서면 집보다도 나진이 더 걱정스러워지고 괜히 우울하고 슬퍼질 것 같다. 낮에는 담배를 태우고 실컷 자고나서 밤에 또다시 사람을 도취시키는 그 무아경에 깊이 빠져들고 싶다. 아직도 여자의 체취가 남아 있는 그 방을 떠나기 정말 싫다.

그렇게도 떠나고 싶던 연길의 집을 떠올리면서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어설프게 웃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떠나야만 했다. 봄은 오지만 나는 가야 했다. 이 방을 떠나가야 하고 나진에 가야 한다. 그리고 봄이 와있을 나진을 떠나야 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나의 인생 궤적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이제부터는 회사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관심하고싶지 않아졌다.  

갈 데까지 가겠지, 뭐? 그럼, 그렇구 말구! 가노라면 대일 데 있을 거야. 마치도 봄이 왔다가 가는 것처럼 자연스레 이루어질테지. 생각할 것도 하나 없는 거야.  

나진에서 피곤하지 않는 날 저녁이면 자위를 많이 했었다. 아무리 해도 굶주린 성애를 풀지 못하고 오히려 붙는 불에 키질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니 나진에 있던 나날은 나에게 심신으로 피곤한 나날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같이 황홀한 날을 2년 동안에 몇번이나 가져보았는 지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그래, 가자! 북경으로 가자! 여자가 없더라도 최소한 수면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겠고 힘든 일을 하지 않게 되니 몸의 피곤이 서서히 풀리게 될거야. 억수로 피곤해진 몸이 나진에서 더 지탱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기어이 나진을 떠나고 기어이 북경에 가고 말리라!  

몸을 샤워기의 물줄기에 맡기고 나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나진을 떠나는 일을 두고 누군가와 더 얘기하고 싶어졌다. 서둘러 목욕탕을 빠져나오고 그리 머지 않은 예란이의 산적점으로 발길을 주었다.  

산적점은 아침과 오전 시간에 필요한 것을 사들이고 열한시부터는 점심 손님을 맞이한다.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예란이는 이미 나와 있었고 자전거 바퀴살로 된 꼬챙이에다 쇠고기와 양고기를 꿰고 있었다. 꼬치는 그것뿐이 아니고 가축의 심장, 췌장, 콩팥, 힘줄, 혈관 등에다가 우변(牛鞭)과 고환도 있다. 이건 산적점마다 다 하는 것이고 이 집의 특점이라면 수산물꼬치를 하는 거다. 조개와 소라를 구워 먹을 수 있고 새우와 게에다가 섭조개도 와사비에 찍어먹을 수 있어 손님이 많이 찾아 든다. 수산물이 갖추어져 있는 산적점이 몇집 안되었는데 예란이가 꼬치를 정성들여 하고 옥수수 국수도 맛있게 만들었기에 매일 초만원을 이루어 몇번 찾아 갔던 우리가 밀려 나오기도 했었다.  

나진의 R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있던 성이 최씨인 아줌마가 산적점에서 일한다. R식당에서는 공짜로 먹고 입을 쓱 문지르고 가는 나진의 관리들에게 혐오를 느끼던 나머지 식당을 포기했고 그 자리에 R상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가전과 구두 전문점으로 탈바꿈했다.

아줌마는 냉면을 만들어 놓고 R식당에 우리 식구들을 초대한적 있고 서로 다니면서 가까이 지냈다. 식당이 상점으로 바뀐 지 두달 만인 지난해 연초에 집에 돌아온 후로 계속 예란의 산적점에서 일하고 있다. 둘 다 입이 걸죽한 여자들이다. 나보다 한발 늦게 온 아줌마가 밥을 찾아 먹고 있는 나에게 한마디 던져왔다.  

“총각이, 오래 간만이다. 요즘 장가 간다며?”  

언제나 그랬듯이 신통하게 엮어댄다.  

“장가야 매일 가지요. 머 어디에 신통한 자리라두 있음둥? 마다매(큰어머니의 사투리) 나에게 제발 여자 빚을 지지 맙소!”  

예란이 기름 묻은 손으로 일손을 재우치면서 낄낄 웃었다.  

“가 낯을 좀 봅소. 엊저녁에 어디 가서 색깔(오입질)하고 온게 알리지 않씀둥?”  

“음, 이재 보니 얼굴에 일곱판 했다고 씌여져 있구나. 십년 전에는 열판도 넘어 했을 상이다!”  

“네 판밖에 못했다! 이제 밥 먹고 가서 다시 두 판 할 참이다!”  

두 여자가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야, 이 색깔아(바람둥이야)! 이제 그만 색깔하고 장가가야지!?”  

예란이 짐짓 진지한 표정을 하고 능청스레 물어왔다.  

“그렇게 색깔 눈을  해가지고 보니까 색깔 같아 보이지? 그렇잖아도 굶어 죽을 지경인데 자꾸 바람 불어 넣으면 어떡해? 자꾸 그러면 돈을 뺏어 낼거야! 그 돈으로 아가씨 찾겠다!”  

“이구 이구, 여자가 니 앞에서 쫄딱(홀랑) 벗어도 달려들지 못할 걸, 너를 누가 모른다던?”  

“알기는 잘 안다, 빨리 빚이나 내 놔라!”  

올 때마다 빚을 내 놓으라고 성화 들이대고 그때마다 두 여자는 허리 끊어지게 웃어댔다.

두 여자는 언제나 나를 순진한 남자로 보아왔다. 그녀들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를 몰라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이 든 그녀들과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게 좋았고 가끔 그들의 입에서 생각지도 않게 들을 만한 말도 끄집어 낼수 있어 훈춘에 오기만 하면 거의 다 들렸었다.  

“마다매, 우리 야를 장가 보내줄가?”  

예란이 아줌마를 보면서 실실 웃는다.  

“장가 가선 머해? 젋었을 때 콱 놀아나야지. 색깔이나 실컷 하고 다녀라!”  

행주 치마를 앞에 걸치면서 아줌마가 입을 삐죽한다.  

“내 보건대는 농촌여자가 니한테 맞는 것(어울릴것) 같다. 아새끼(아들애)를 거두는 니집 노친(어머니)도 해방시켜야재?”  

예란인 이제부터 진지해져 있다. 나에게 지난해 만났던 농촌여자와 살림을 차리라고 무던히 권고해 주고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이다. 살림을 잘 하고 부모공대에 애를 잘 거두어줄 만한 순박한 농촌여자가 내게 제일 어울릴 지 모른다고 나도 그녀와 똑같은 생각을 해보지 않은건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권고는 그저 참고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그런 말 집어 치우기오. 장가가기 전에 할 일이 있단 말이오. 이제 북경에 갈가 하오.”  

“엉? 음-, 생각 잘했다. 나진에 다니기보다 돈을 더 벌겠다는 걸로 들려 오는데?”  

예란인 생각이 짧았다. 내가 가이드했던 일도 알고 있고 2년동안 내가 무척 많이 고생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신통치 않은 나의 처지를 두고 팔자 사납다거나 운이 안좋다는 등의 표현으로 위안을 해주었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격려의 말도 더러 해주군 했었다. 회사에 대해서도 늘 걱정하고 돕고 있었는데 나는 그녀에게서 경험과 요령을 많이 얻어 듣고 배워 두었었다.  

“돈을 버는 게 문제가 아니오. 공부를 해 놓을려구.”  

“아무려면 어때? 나진에서 개고생 하기보단 낫지.”  

내가 어떤 공부를 하려는 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내가 나진에서 배척당하고 있는 눈치를 언녕 알고 있으면서 짐짓 모르쇠를 놓고 있었다. 그녀가 그러고있는 걸 나도 알고 있었고 서로 말하지 않으면서 오늘까지 지내 왔는데 처음 공개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거다.  

“음? 북경 간다? 우리 딸두 데리고 가라!”  

아줌마가 말참견 했다. 단과 대학을 7월에 졸업하게 되는 열 아홉의 딸을 두고 있는데 취직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중이다. 아직 졸업하지도 않은 딸을 보내겠다고 하는 건 농담이고 나를 신임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노친이? 미쳤구나? 승냥이한테 딸을 맡겨서 망치자구 그럼둥?”  

예란이 새된 소리를 질러댄다. 두 여자는 또 한바탕 히스테릭하게 웃어댔다. 두 여자 다 가만있지 않고 웃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미다.  

“따님을 내가 잘 책임져 주겠음다. 맡기겠음둥?”  

“그래, 콱 가져가라. 아무게든지 주어갈 때 주어가겠지. 니가 가져가면 시름놓게 될 게 아니야?”  

“오늘 저레(아예) 약혼식 해버립시다. 장모님!”  

“으흐흐흐!……” 

“어하하하!……”  

셋이 한창 웃고 있을 때 손님이 들이닥쳤다. 아줌마가 영접 나갔고  

“니가 언제든지 나진을 떠난다고 생각했다. 결심을 내렸다니 내속이 다 시원해진다. 넌 어쨌든 좀 답답한 데가 있는 애다.”  

예란이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의미심장한 말을 듣고나니 나도 속이 후련해졌다. 답답하고 갑갑해서 안주동의 바다가로 쩍하면 나가던 나였는데, 이제 나진을 떠나면 정말로 답답함과 갑갑함을 멀리 떨쳐버릴 수 있을는 지는 자신이 없다.

허나 때는 되었다. 어차피 떠나게 될 일인데 이제 떠나는 그 시각만 합당하게 만드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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