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3월에 들어서면서 운행을 재개했다. 가끔 눈이 내려 아침에 관곡동에까지 나가서 도로 상태를 알아보고 2-3일씩 운행을 중지하기도 했다. 

자질구레한 일들은 눈을 떠서부터 다시 잠자리에 누울 때가지 끊임없이 덮쳐 왔다.  

태국에서 투자한 S회사에 중국 사원 몇명이 있었는데 늘 자동차 부품을 사갔고 요즘은 북경 찦차의 전기배선을 전부 교체하는 수리를 의뢰해 왔다. 반나절 품을 먹여 작업을 끝냈을 때는 고장난 발전기와 스타트모터의 릴레이도 교체한 후였다. 물론 차주인의 허락을 받은 상태에서 해준 거였다.

다음날 다시 나타난 기사가 배터리를 스피어로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면서 못내 기뻐했다.
고용량 배터리를 조수석 쪽에 싣고 다닌지 며칠 된다고 했고 시동이 잘 걸리지 않던 고장도 철저히 제거 되었다고 했다. 날씨가 추워 오전 열시가 좀 지난 후부터 시작하여 중간에 점심 밥을 먹고 다시 오후 세시까지 했으니 네시간 만에 끝난 작업이었는데 나진에서 만들어 낸 나의 걸작 중의 하나라고 자랑할만한 것이다. 부품 값과 수리비용으로 내화 만여원은 회사 수입으로 들어갔다.  

대외수리는 그 외에도 많이 들어왔다. 조산리에서 사갔던 반짐차가 시동이 안 걸리는 고장이 생긴 것을 진단하고 부품이 나온 후 수리해 주었다. 하여평리의 반 짐차의 발전기 수리와 선봉 자재공급소의 차수리도 이즈음에 해 주었었다.

금컵 여행사에서 사간 배터리 두개 중의 하나가 오작인 것을 바꾸어 주고 청진에서 온 차도 두대 수리해냈다. 작업장이라는 것이 따로 없이 회사마당에서 돌아쳤고 수리소 쪽에는 좀체로 갈 여유가 없다.

88호가 경적이 울리지 않는 고장이 생긴 것도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3원초에 해냈다.  며칠에 한번씩 종합검사장에 나들고 판매한 발전기가 이상이 있으면 현지에 가서 고쳐 주는 작업을 했다. 은행의 발전기를 이즈음에 수리했었다. 

 1년이 거의 되도록 나진행을 하지 않던 최영감이 나진을 다녀간 것도 이때 있은 일이었다. 며칠 동안 유조차를 수리하던 중 갑자기 사겠다는 사람이 나져서 일단 귀국하고 계속 중고차 수리와 엔진 수리를 맡아 보기로 했다.  

숙소에 잠자리가 많은 것 같았지만 식구들이 거의 다 나가 있고 화물 운수로 기사가 세명 정도 더 가면 약간 부족한 느낌을 주었다. 이날 비파도에 일보러 갔다가 늦게 돌아온 유기사가 잠자리를 부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잡고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이모의 아코디언을 온돌 중에 제일 뜨거운 자기 자리 옆에 놓았었다. 그 때문에 아코디언이 고장나고 말았다.

바람이 들낙날낙하면서 진동 편을 움직여주어 소리내는 것이 아코디언인데 뜨거운 열기로 진동편을 붙인 초가 녹아내리면서 페물로 만들어 놓은 거였다. 돈이 모여지면 기어이 사려고 했던 혜영이는 고장난 아코디언을 보면서 당금이라도 눈물을 쏟아내려는 듯 울상을 지었었다.  

아직까지 매점의 서쪽 문을 열어놓지 않아 방문객들은 전부 다 마당안으로 매점을 드나들었고 차들도 너무 많이 들어와 있어서 매일 복새판을 이루었다. 내가 이모와 의논하고 장마당 옆의 상점에서 사슬 자물쇠를 사다가 정문에 잠구어 놓았는데 며칠 동안은 구내 안이 조용해져 있었고 낮경비인 문은실이더러 계속 들어오는 차량을 단속하라고 했다.  

봄빛이 무르녹는 어느날 오전, 웬 승용차 한대가 당당히 구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은실이 따라 달려오는 모습도 보였다.

그때 나는 차영감과 함께 고장난 용접기를 발전기실로부터 마당에 끌어내고 있었다.  

“마당에 차가 못 들어오게 함다. 다시 나가 주쇼.”  

승용차에서 내리는 기사에게 은실이가 말한다. 그녀가 살기등등한 내 얼굴을 보더니  

“이 운전수가 자기 절로 열고 들어왔음다.”  

하는 거였다.  

나는 아무말 없이 정문 쪽에 가보았다. 길이가 7미터 정도 되는 길다란 철문은 땅에 고정된 레일 위로 미끌어지게 만든 것인데 그 기사가 힘껏 밀어 부치는 통에 사슬 자물쇠가 끊어져 있었다.

중국의 저질 상품이 나진바닥에서 판을 치고있다는 생생한 증거였다. 승용차 조수석 쪽에서 몸집이 비대하고 국방색천으로 만든 점퍼를 입은 사내가 내리고 있었다.

끊어진 자물쇠를 보여주면서 그 기사를 향해 내가 배상하라고 말해 주었다.   이전에는 마음대로 드나들었는데 오늘은 자물쇠가 걸려있는 줄 모르고 이전과 같이 들어왔다면서 당당한 기세를 보여주었다. 아무런 구애 없이 남의 집에 침입하고서도 제쪽에서 오히려 코대를 세우는 거다.  

“문이 닫겨져 있으면 경비하고 말한 다음 들어오든지 하는 게 옳지 않음까?”  

“차들이 들어오라고 마당이 만들어진 건데 그 마당에 내가 들어온 것이 머가 잘못인가?”  

“구내에 들어온 차들이 물건을 자꾸 실어 내가서 잃어지는 경우가 많고 마당이 복잡해서 구내 작업에 영향이 많씀다. 며칠 전부터 대외 차를 들여놓지 말라고 총경리 선생이 말한 적 있음다.”  

“그램 내가 도적(도둑)이란 말인가? 개좆 같이 더럽게 논다.”  

내가 기사와 싱갱이질하고 있을 때 로따가 문밖에 나왔다. 뚱뚱한 사내와 악수를 하고 인사를 주고 받았다.  

“아무튼 자물쇠를 배상해야 합니다.”  

“여, 동무! 아까부터 보자보자하니까 정말 재수 없게 노는데, 신분을 보아서 들여 놓든지 말든지 할거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뚱뚱한 사내가 로따 손을 잡은 채로 나를 표독스럽게 쏘아보고 있었다.  

“댔소! 댔소! 들어가기오!”  

로따가 끌어 당겨서야 그 사내는 열려진 승용차 도어를 힘껏 닫아 버리고 로따 방에 따라 들어가는 거였다.  

승용차는 도요다 크라운, 그것도 왼쪽에 핸들이 있는 신품이었다. 오늘 어느 대단한 령도를 내가 잘못 건드렸다는 심상찮은 느낌이 갑자기 온 몸을 엄습해왔다. 아니나 다를가, 그들이 거들먹 거리며 떠나간 뒤 로따가 나를 조용히 불러들였다.

세관분국 분국장인데 나 때문에 몹시 노여워하다가 갔단다. 2분기 중고차 열대의 수입 문건을 해주지 않아 요즘 내가 경순이를 태우고 여러번 세관분국에 다녀왔으나 아직 결말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분국장이 직접 행차한 것은 보나마나 조용한 장소에서 조건부를 달아 허락하겠다는 뜻을 전달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말하자면 문건을 내주는 조건으로 필요한 물건을 공짜로 얻어가지려는 것이었다.  

지난해에 배터리 세개를 보내 주었고 요즘은 가스레인지도 한세트 보내 주었는데 조선에는 LPG가스가 없어 이전에 우리가 국경을 넘나들며 공짜로 다른 사람들에게 실어다준 것만 해도 수십통이나 되었었다. 앞으로 세관 분국장의 가스도 책임적으로 실어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입안이 텁텁해지고 쓰거워나는 것이었다.

로따는 사람을 몰라보고 저지른 일이지만 원칙상에서 그렇게 일하는 것도 옳은 거라고 긍정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성질은 고쳐야겠다는 말은 덧붙여 하는 것이었다.

중고차 열대면 상당한 수입을 얻게 된다. 지대안의 외국인 회사와 국내기업을 통털어 유일하게 중고차 수입을 허락받은 우리 회사가 이윤이 많은 이 장사를 놓칠리 만무하다. 내가 세관 분국장을 노엽혀 벌집을 터뜨려 놓은거나 다름없게 되었는데 장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직감할만 했다. 나는 미안한 생각에다가 꼴보기 싫은 분국장의 행실에 진절머리가 나 착잡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나의 언행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로따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빠져나왔다. 이 일은 나와 로따사이에 크나큰 오해가 생기게 하는 도화선으로 되고 말았는데 사실은 이번 일로 로따가 나를 빙자하여 만들어낸 구실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그 오해를 어떻게 풀었는지 보기로 하자.  

바로 다음날 오전, 유기사가 페인트 한차를 실어 내왔는데 틈새에 수십가지나 되는 부품을 실었었다. 자리가 모자라 운전실과 공구박스에도 더러 실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신고하지 않은 부품을 먼저 부리우고 종합검사장에 갔다. 이 날 우리한테 중고차를 판매한 사람이 직접 나진까지 몰아다 주었는데 그차도 함께 검사 받아야 했다.

유기사가 85호를, 내가 중고차를 몰고 갔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겼다.

유기사가 원정통검의 도장이 찍힌 검사 문건을 분실했고 나진 세관과 대외상품검사소에 보내는 두 신고서의 수입품명세가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대외상품검사소에 보내는 명세서에는 세관의 명세서보다 뷰다 다섯개가 더 적혀져 있었는데 세관의 명세만 보고 우리가 뷰다를 다 부리웠었다. 규정대로 한다면 원정에 가서 통검의 검사문건을 다시 받아와야 했고 부리운 뷰다도 다시 실어놓아야 눈가림이라도 할수 있었다.  

앞에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우리 차가 제일 뒤에 서있었으므로 빼기 쉬웠다. 내가 85호를 몰고 회사에 돌아와서 영철이와 함께 뷰다를 찾아 싣고 다시 검사장에 갔다. 무사통과된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로따가 검사장에 가서 잃어버린 통검검사문건에 대해 설명을 했고 오후에 원정에서 우리 차를 통과시킬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평소에 쓰는 돈은 대부분 매점에서 받아서 쓴다. 내가 검사장 이용비와 짐 값을 계산한 영수증을 영철이한테 넘겨주고 몸을 돌려 나오려 할 때 창너머 부기실에서 로따의 굵직한 욕설이 들려왔다.  

“니 어미 씨팔, 개좆같은 새끼! 차를 제 마음대로 끌고 다니면서, 더러운 버릇을 한다.”  

부기실안에는 남연숙과 차춘화가 있었는데 이모와 중국어로 주고 받으면서 하는 세상 제일 듣기 싫은 욕이었다. 내가 바로 옆의 매점에 있다는 걸 모르고,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듯 높은 음성으로 욕을 질러대고 있었고 영철이와 설화는 긴장한 눈길로 나의 거동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지릅뜨고 창너머를 쏘아 보았다. 가까스로 불끈 쥔 주먹을 풀면서 아무 말없이 조용히 부품 창고쪽으로 몸을 숨겼다. 먼저 부리워 놓은 부품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는데 갑자기 현훈증이 일어 물앉고 말았다.  

멀리서 사이렌소리가 들려왔다. 조국시간으로 아침 7시와 점심 12시에 정확히 울리는 사이렌소리, 전기공급이 정상일 때에만 들려오는 저 사이렌소리를 지금은 왜서 듣고 있어야만 하는가?

마치도 나더러 나진을 당장 떠나라고 경고하듯이 들렸다. 마음이 산란해지고 눈앞에 불찌가 튕겼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었다. 눈앞에 놓여 있는 레바를 들고 시렁에 얹혀져 있는 부품들을 모조리 박살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손을 내밀었지만 쥐어지지 않았다. 허탈상태에 빠진듯한 감각으로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소르르 졸음이 몰려오고 무릎 속에 머리를 틀어박은 채 요지부동으로 되어 버렸다.  

“오빠!”  

비몽사몽간에 원매가 나타났다.  

“힘 내세요!”  

세련된 한국어로 나를 불러준다. 그녀가 가장 적절한 때에 나를 찾아왔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눈앞의 모든 것이 박살나고 쏜살같이 달려나가 로따의 얼굴을 박치기해 버렸는 지도 모른다. 원매는 언제부터인가 마냥 한국어로 나를 불러주었다.  

몸을 가까스로 가누면서 일어섰다. 문을 나서서 내 방으로 휘청대며 걸어갔다. 페인트를 부리느라 법석 대는 늄창조 종업원들에게 곁눈 하나 팔지 않으면서 방에 들어왔고 이불을 푹 뒤집어 쓴채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외숙모가 깨웠다. 잠을 덜 깨었을 때 짜증이 심하게 난다. 배고픈 것도 잊은 채로였는데 괜히 신경질을 부렸다. 외숙모가 달래 주어서야 겨우 신경질을 눅잦히고 문을 힘껏 차면서 방을 나왔다.  

문에 달려 있던 유리가 박살났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떨어지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질 때 정신이 버쩍 들었다. 기지개를 죽죽 켜고 더부룩한 머리를 손 빗질 하고나서 주방에 갔다. 벽의 시계는 오후 세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한쪽 구석에 밥상이 갖추어져 있었는데 이모가 눈을 데꾼하게 뜨고 나를 보더니 그냥 나가버렸다.

온돌에 올라가지 않고 한참 서있던 내가 갑자기 문을 차서 열었다. 외삼촌이 나의 어깨를 잡고 옆에 서있던 외숙모도 내 등을 떠밀어 온돌에 앉게 해주었다.  

“씨, 개뿔같이! 더럽고 치사해서!”  

일어나려고 악을 쓰는 나를 외삼촌내외가 굳이 만류했다.  

“야, 야! 참아라!”  

다시 원매를 떠올렸다. 내가 로따에게 손 대는 말도 안되는 일을 저지른다면 항상 나를 위안해주는 그녀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겨우 밸을 누르고 늦은 점심밥을 배터지게 먹어댔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정전이 아니다. 《춘향전》을 틀어 놓았지만 이제는 긁힌 자리가 너무 많은 디스크여서 잘 나와주지 않았다.  수명이 다된 저 디스크처럼 나의 나진행도 인제는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가 들어오더니 더듬거리며 로따가 부른다고 말해 놓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부르든 말든 나는 도보로 시내로 가서 돌아다니기로 마음 먹고 주방을 나와버렸다.  

주머니를 헤집어보니 오전까지 절반도 피우지 않은 담배가 어디 갔는지 만져지지 않았다. 대신 구겨진 조선원 백여원만 손끝에 묻어나왔다. 담배는 이모가 방에다 쌓아두고 주지 않았는데 다들 시장에 나가 데꼬(담배 넘기는 장사군)들한테서 사서 피우고 있다. 백원이면 독한 수입담배 《검은 고양이》를 살수 있었다. 작업복차림 그대로 시내를 돌아다녀도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다. 나의 작업복은 그래도 나진사람들이 입고다니는 나들이 옷보다도 훨씬 새것같이 보이고 자연스러웠다.

바지주머니에 두손을 찔러 넣고 마당 중간쯤에까지 갔을 때 로따가 창을 열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번째로 부를 때 땅바닥에 침을 힘껏 뱉고 나서 되돌아섰다. 로따가 다시 중국어로 오라고 불러서야 발길을 침실 쪽으로 옮겼다.  

“니 오늘 기분이 좋지않은 것 같은데 그럴 것 없다.”  

내가 앉기도 전에 로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남의 뒤에서 흉보던 것이 앞에서 하는 욕이나 다름없게 된 것임에도 로따는 기고만장하게 나오고 있었다.  

“내 오늘 기분이 영 안 좋소!”  

“그건 나도 안다. 차를 운전수와 영철이외에 누구도 만지지 말라고 내가 말 했잖니?”  

“언제 말 했소? 난 듣지도 못했단 말이요!”

“그랬니? 그랬구나…그건 그렇구, 통검검사증은 내가 해 보내면 되는 걸 가지고 니가 나서서 삐칠 건 머니?”  

“누가 원정에 가서 다시 해와야 될 게 아니요? 갔다 오느라면 오후시간이 다 되겠는데…”  

“그거 바라(봐라). 시키지도 않은 일 가지고 꾸물거리고 있었으니 오늘 돌아가지 못할 번 했잖니?”  

사실은 로따가 먼저 검사장에 가서 우리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가 갈 때 로따는 우리를 부르러 오다가 길이 어긋났던 것이다. 그런줄 모르고 우리는 회사에서 기다렸고 로따가 원정에 다시 검사증 받으러 간 줄로 알고 있다가 한번 부딪혀 볼 예정으로 검사장에 갔던 것이다.

검사장에는 아직까지 전화가 들어가지 않았고 일이 생기더라도 로따가 나서서 해결하게 되므로 걱정 없었고 유기사와 경순이를 가지 못하게 눌러 두었던 것이었다.  

“내게 똑똑히 말해주고 갈 것이지 말도 하지 않구 먼저 가면 누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요?”  

“그렇구나, 너한테 말을 하지 않았구나……”  

“그리구 운전수도 모르던데……”  

“내 정신이 없어서 그랬겠지. 그러나 후에는 차를 만지지 말어라. 검사장에 가는 일도 하지말고.”  

“담배나 주오. 오늘 일은 둘 사이에 오해가 생겼던 것으로 알겠소!”  

“오해는 오해더라도 이제부턴 니가 자기 주장대로 하는 일이 없었으믄 좋겠다.”  

“알겠소. 시켜도 안할거요!”  

담배를 물고 쓰거운 입을 다시며 나와버렸다.  

후일 안 일이지만 로따가 떠나면서 이모한테 우리더러 금방 따라오라고 이르라고 한 것을 이모가 우리한테 전달하지 못한 사고였다.

이모는 이전에 로따에게 의견이 있을 때마다 뻑뻑 대들고 지어는 울고 불며 행악질까지 했지만 얼마전부터 로따의 말 한마디에 찍소리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로 그렇게 되었는 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로따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는 꼭두각시에다가 인심도 혹독하게 박해지는 걸로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느낌만이 남아있을뿐이다.  

말치 않아도 로따는 내가 매점에서 욕을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혹은 내가 바로 옆에 있는 걸 번연히 알고 있으면서 욕을 해댔는지도 모른다. 나를 부른 것은 표면상에서 사과하는 것이었지만 이미 뱉어버린 욕을 합리화하려는 데 있었다.

종래로 말대꾸하지 않던 내가 오늘 대들면서 피대까지 세울 번했는데 로따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누구도 이겼다거나 졌다는 표현을 하기도 곤난한 멋적은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번 일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나진에 회사를 차려 놓은지 2년이 되었다. 돈을 적잖게 벌었고 식구들은 그 덕을 어느 정도 입고 있다. 그런데 로따네가 돈을 물같이 쓰고 갖은 사치를 다 부리는 아들을 둔 것으로 나는 언제나 못마땅해 했다.  

아직까지 학생신분으로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거의 없다. 겨울방학에 나진에까지 나간 로따의 큰 아들은 학기말 시험도 보지 않은 채로였고 방학동안 북경에서 산 핸드폰을 들고 다니더니 개학 때는 6천이라는 거금을 들고 학교에 갔다.

이미 재작년의 퇴학과 일본 유학수속, 그리고 그동안의 소비로 수십 만을 탕진한 상황이다. 못사는 집 애들은 한달에 3백원을 가지고 버텨내는데 이 애는 달마다 적어도 수천원을 소비한다. 남들이 조건이 열악한 나진바닥에서 아글타글 벌어 모은 돈을 죽을둥 살둥 모르고 퍼내고있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로따 내외도 팍팍 축 나는 돈 때문에 냉가슴을 앓고 있었다. 2월말에 자금난이 다소 풀리긴 했지만 중고차 문제와 같은 일과 발전소의 파이프 일도 잘 풀리지 않았다.

수리소쪽에 들어 있던 강성회사도 집 값을 미루어 오던 중 끝내 버티지 못하고 며칠전에 이사갔다. 땔나무를 훔쳐 싣는가 하면 들어있던 방마다 엉망진창을 만들어놓고 몇달동안의 임대비도 물지 않은 채로였다. 마당에 세워져 있던 봉고차 한대를 로따가 차압해 놓았는 데도 강성회사 문제는 질질 끌기만 한다.

그러던차 내가 걸려든 거였다.  모든 저주와 욕이 나한테 퍼부어진 거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또 한번 그 상처를 감내해야 했다.  내가 속앓이를 하는 줄도 모르고 설화가 88호 키를 들고 와서 함께 닭 공장에 갔다 오자며 졸라댔다. 이미 전화를 걸어 기다리게 했다면서 위임장을 흔들어 보였다.

며칠전부터 위임장으로 계란을 사오려고 계획하고 있었고 같이 갔다 오기를 약속한 터이다.  차라리 잘 됐다, 시원히 바람이나 쏘이고 와야지.  

유현동 끝머리 쪽에 처박혀 있는 닭공장은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구내에서 한참이나 돌아서야 한쪽 구석에 드러 누워 코를 골고 있는 지배인을 만날 수 있었다. 늘 보아오던 얼굴이다.  

종이돈을 넘겨주고 직장으로 가서 계란을 받게 되었다. 일솜씨가 느린 처녀가 느적느적 일하는 모습을 보고 지배인이 꽥 소리질렀다.  

“야, 야! 이 개 간나야! 좀 빨리 못해?”  

우리 회사에 찾아 왔을 때 보여주던 친절한 모습을 팽개치고 완연한 주정군의 모습을 드러냈다.
옆에 서있던 나는 역한 술 냄새에 약간은 현훈증을 일으키기도 했다.  

항구로부터 유현동까지는 비포장도로였지만 도로정비를 잘해 놓았기에 얼마든지 오버 스피이드로 운전할수 있다. 길에 다니는 차도 몇대 안되니 말이다. 갈 때는 잡생각을 몰아내느라 정신없이 악셀을 밟아 댔지만 돌아올 때는 이전 습관대로 평균 시속 45키로로 몰았다. 계란이 깨지는것을 방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설화는 마냥 그랬듯이 천진한 모습을 하고 입가에 웃음을 담고 있다.

오일사건 후 오래동안 나랑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그후 언제부터인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가까워졌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얼마전에는 비파도에 친구방문도 함께 갔다 왔었다. 승용차를 운전할만한 사람으로 구애없이 청들만한 사람을 나 외에는 찾을 길 없었던 것이다.  

“이제 헤어지면 그리워서 어쩌지?”  

내가 틀어놓은 음악을 들으면서 넌지시 한마디 했다.  

“뭐이람까?”  

그녀가 발끈했다. 주방과 매점에서 늘 농담을 주고 받았는데 그때마다 설화는 두 눈을 밉지 않게 치켜뜨고 달려 들었다.  

“며칠 후면 떠날 사람이오. 섭섭해 마오.”  

한 수 더 떴다.  

“정마 감까? 다시 안온다는 검까?”  

“그렇소. 설화가 보고 싶어도 못올 것 같소.”  

“영도 선새임이 가면 나는 아무데도 놀러 다니지 못하게 되겠는데……”  

“섭섭해 할건 없소. 살아있으믄 다시 만나게 될거요.”  

“그래도 그렇지. 가지 마쇼! 여기서 얼마나 재밌음까?”  

“내 재미는 다 끝났소. 설화나 재밌게 보내오. 아들두 만들구……”  

“머람까? 아무 말이나 막 하면서……”  

수줍은듯 얼굴을 붉히고나서 먼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유현동도 마지막 길이 되어버린다. 이제 나한테 남겨진 시간은 분초뿐, 나진을 굳이 떠나야만 했다.  

로따는 이제가지 쌓은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나한테 쏟아 붓고 시원해 할테지? 습관적으로 되어버린 그 스트레스 해소에 신물이 날대로 났고 나의 심신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왜 나만 괴롭히는 걸까?  가끔은 내 머리를 쓸어 주었고 머리로 내 볼을 비벼 주기도 했다. 어린 아이를 이르는 식으로. 

이모도 내가 심상찮은 거동을 보여줄 때마다 로따는 너는 제일 고와한다, 요즘은 많이 점잖아졌다, 기분이 좋아보인다 등의 말로 극력 내 비위를 맞춰주느라 허둥댔다. 로따가 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고 뒤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시켜주려고 무진애를 썼다.  

처음 몇달동안은 참아주었다. 또 이해해주었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다. 결국 습관화 되었고 점점 이해해주게 되지 않았다. 욕이 점점 노골화되고 상스러워지는 데는 어느 누가 참고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친척과 사돈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회사, 이제는 친척이라는 정과도 멀리 떨어지는 느낌이다. 경영주와 고용인과의 철두철미한 교역관계가 여지없이 드러난 판에 유독 나만 밀어 붙이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이제가지 용철이와 위홍이를 시한폭탄으로 보아왔던 나다.

로따의 눈에는 내가 시한폭탄으로 보였는 지도 모른다. 자기 앞에 차례진 일만 수걱수걱 하는 타입이 아닌 나를 두고 로따는 속을 썩였겠고 지어는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몇달 동안 잠재우던 살기 띤 욕을 오늘 서슴없이 한꺼 번에 쏟아낸 것은 결코 오해가 아니라 나에게 해고 선언을  한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면서 회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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