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에서의 나날들은 짧지만 잠시 피고 흩어지는 벚꽃처럼 매 순간이 눈부시게 봄 같았다. 내일이면 북경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시간이 그냥 이대로 멈췄으면 하는 생각을 수십번이고 했던 기억이 난다. 가기 그토록 아쉬웠나보다, 올 때의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이튿날 저녁 기차표는 가방에 무겁게 내 어깨를 짖누르는 책들 같았다. 버릴수도 없는 중요한 그런 물건, 마치 환상의 디즈니 랜드에서 현실세계로 향하는 통행증 같았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마지막 남은 하루를 더 보람차게 보낼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어쩌면 오늘날까지도 내가 그한테 참 고마운 하루가 될줄은 그땐 몰랐다. 

나는 원래 그날 둘이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백화점 같은데서 좀 돌면서 숙소 친구들한테 줄 작은 선물같은걸 챙기려고 생각했다. 이게 내 계획이었다. 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회를 사주면서 오후엔 자기랑 함께 어디 갈데가 있다고 했다. 가보니 노트북 파는 곳이었다. 나는 좀 놀라기도 하고 속으로 <뭐지 ? 진짜 노트북을 사준다고… 에잇 말도 안돼> 하면서 나름 경악하기도 조금은 염치없이 기대하기도 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 세가지는 꼭 있어야 해. 노트북, 카메라, USB >

<아, 맞아요. 윗 학년 선배들은 보통 대부분 2학년 하학기에 노트북 샀다고 하던데, 우리부턴 뭔가 1학년 여름방학 뒤 학교 오면서 다 산다드라구요. >

나는 이 말이 좀 역겨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숙소 친구들이 하나둘씩 어떤 브랜드를 살까 고민할때마다 나름 속상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노트북이 별거 아니지만 대학입학을 금방 하면서 집에는 거의 만원돈이 깨졌는데, 또 바로 오천원은 깨져야 하는 노트북이 필요하다고 부모랑 입 벌리기가 좀 무리인건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북경의 생활비마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던 상황에 말이다. 

<그치~ 그럼, 오후엔 이 세가지를 골라바. >

<어… 그건… 너무 미안한데요 ㅠㅠ >

이미 받은 선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에, 받는 것 마다 늘 싼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좀 망설여졌다. 욕망은 있고 허영심은 가득찼는데 그걸 내색안하려 하는 내 의지와의 싸움에서 결과는 이미 나있는 게임이었으니 나는 영낙없이 패배했다. 자괴감도 들었고 희열에 차 넘치기도 했다. 혼란스런 감정을 오가는 사이 우리 둘의 손엔 한가득 뭐가 엄청 많이 들려져 있었다. 

내맘처럼 무거웠다, 그리고 진짜 너무 고마웠다. 

결국, 나의 소주행은 수확으로 가득찼다. 상상보다 많이 황홀했던 소주행이었다. 지금은 나이 서른이 되어가서 사회 생활도 많이 했고 받아본 선물도 부지기수지만, 적어서 대학교 1학년 …10몇년전엔 최신형 노트북, 일본 카메라, 정교한 다이아 USB는 큰 선물이었다. 그 외에도 친구들의 선물이며 명품옷들이며 먹고 놀고 자고 … 도대체 그가 돈을 얼마 썻을까 한참을 생각해야 가늠이 갈 정도였다, 고맙고 미안하고 사실은 좀 어안이 벙벙했다. 그냥 짧은 며칠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난 어쩌면 사랑에 빠지기보다, 난 어쩌면 사랑을 하고 있어 소주가 아름다워 보이기보다 그냥 그가 잘해주는 씀씀이에 반한거 같기도 하다. 나이를 먹고 생각해보면 당연히 돈을 쓰는것보다 더 실질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적지만 말이다.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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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사는 여니

별거아닌 생각, 소소히 적기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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