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년말은 많이 슬펐던 한해다. 그가 이민결정을 해버렸다. 

그때 소주대학교 3학년을 다니고 있던 그는 졸업 1년을 앞두고 미국이민을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이해할수가 없었다. 우리가 떨어져 있는 걸 떠나서, 12년 공부해서 붙은 대학을, 그것도 소주대학을 이렇게 쉽게 졸업장도 안가지고 포기한다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소주대학에 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영주권을 따서 신청이 가능하니 바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가 원하는 전공은 건강쪽이고 미국에 가서 영양사자격증을 따겠다고 했다. 

난 좀 멘붕이 왔다. 그 정도로 그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정작 미국에 간다니깐 눈물이 났다. 그렇다고 그를 따라 갈 만큼 용감하지도 사랑이 견고한 것도 아니었다. 

이모는 우리 엄마한테 여니를 보내면 학비랑 생활비 다 부담해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알아서 결정하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한텐 대학교 졸업장이 더 중요했고 미국은 어려서부터 꿈만 꿔왔을뿐 나한텐 사치라고 생각한 곳이었다. 나는 무조건 그럴듯한 졸업장이 있어야 했고, 나는 그 하나만 믿고 태평양 넘어 미국에 건너가 모든 모험에 도박을 걸 자신이 없었다. 

그는 나를 강박하지도 않았다. 그는 떠나갔다. 

그동안 모든 꿈같은 추억만 남긴채. 그는 화려한 불꽃 같았다. 찬란하다 못해 눈이 부시게 온 밤하늘을 밝히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연기 같았다.  그 희미해지는 연기를 바라보며 난 축복했다. 그의 미국에서의 모든 새 시작이 순리롭기를. 

나는 설을 쇠고 북경에 다시 왔고, 이 큰 북경엔 좋은 남자가 많을거라 생각했다. 확실히 북경엔 좋은 남자는 참 많다. 그런데 나한테 좋은 남자를 다시 만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릴 줄 그땐 몰랐다. 

그를 잊는덴 티나지 않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동안 해준게 너무 많아서, 해주기만 해서, 너무 잘해줘서, 있는 걸 다해줘서 그런 사람이 또 있을까? 웃어넘기며 나는 한동안 남자를 만날수 가 없었다. 

작은 내 일상 용품부터 옷, 가방, 전자기기, 사진첩 그가 없는 곳을 난 찾을수가 없었다. 그를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됏고 그 세상의 자리엔 언제나 그의 그림자가 남아있었다. 

몇년전 미국에 오면서 난 일부러 소주를 한번 들려서  왔다. 소주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북경에선 다른 사랑을 만나면서 그 빈자리가 많이 채워져 있었는데, 소주의 빈 자리는 갈때마다 그냥 비어있었다. 소주는 지금도, 내가 중국에 다시 들어가면 꼭 들리고 싶은 도시이다.

그 도시에는 젊은 날의 낭만이 있고 그 도시에서 그는 이민 결정을 내렸으며, 나는 지금도 소주만 가면 물고기자리 첫사랑이 떠오른다.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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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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