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북돌이의 시작은 2014년부터인거 같다.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으로 나는 이미 대학교 졸업시즌 즉 4학년때부턴 열심히 인턴을 찾아하기 시작했던거 같다. 

그건 또 하나의 갈림길이었다.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 연구생을 준비하는 사람, 고향건설에 투여할 준비하는 사람… 확연히 나는 이 중 어느길도 아니었다. 입학때부터 연구생공부를 더 할 생각은 아예 없었고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큰 도시에는 돈 벌 기회가 많다고 생각했다. 

교수님들도 너는 공부를 좀 더 하는게 어떠냐는 제안을 많이 해주셨지만 나는 내 길을 갔다. 시시로 엄습하는 불안감때문에 나는 신문사, 작가협회 가능한 내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두루 어줍잖은 인턴을 시작했다. 거의 졸업할때에는 한국대사관에 취직했다. 뭔가 어디에 소속되는게 그때의 나로는 최고의 안전감이 아닐수 없었다. 

일자리가 안정되고 정직원으로도 발탁이 되고나서는 남친에 대한 수요가 생겼다. 사실, 그 전에는 북경에 발을 붙이기 못할가 아닌척 했지만 살짝 많이 긴장된 건 사실이다. 출근하면서 발견한 건 대학생활보다 남친 찾는 일이 영 쉽지 않았다. 아마, 가치관도 많이 따지고 눈 높이도 적잖게 올라간 이유일수도 있었지만 젤 중요한 건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의미부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영사관 카운터에서 일하면서 전화번호 따인적도 몇번 있고 지인들 모임에서 소개 받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만남은 다 길게 가지 못했고, 자꾸 빗나갔다. 오히려 단순하게 좋아하면 사귀기만 했던  대학교때 남친들보다도 별루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남자들도 현실적이었다. 

대학교때 그와 헤어지고 캠퍼스커플의 행복을 한동안 누린적이 있다. 2살 연하였는데 매력이 넘쳤다. 연애는 언제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는 법칙은 잘 작용을 발휘 했다. 다른 도시에 있는 것도 아니고 외국에 있는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 있으니 보고 싶으면 바로 만날수 있고 사소한 것도 다 함께 할수 있었으니 그냥 평범한 이런 나날들이 젊은날 의 가장 좋은 순간이 아니었을까.

근데 그는 별로 자상하지가 않았다. 우린 싸움도 자주 했고 매력이 넘치는 만큼 나를 골때리게 했다. 매번 쌈할때마다 난, 그가 생각났다. 사귀면서 한번도 싸움 안하기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결국 내가 먼저 졸업을 하면서 우린 헤어졌다. 졸업시즌인즉 대부분의 커플이 깨지는 시즌이 맞는 말이다. 

근데, 일하면서 만난 관계들은 갬퍼스의 순수함도 없고 어른의 성숙함도 없는 그 중간의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하고 어중간한 관계가 더 다수였다. 서로 계산하고 저울질하고. 그나마, 좀 이상적인 조건의 사람을 만나긴 했는데 결과는 의미없게 끝났었다. 

사실 대학교때던, 사회 생활을 할 때던, 난 그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난적이 없다. 자기도 모르게 그와 비교하게 되고 비교하면 더 짜증나고. 다들 첫사랑은 이뤄 안져서 아름답다는데, 나는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그보다 날 더 아끼고 좋아해준 사람은 없었다. 

당연히 이 관계들과 보낸 모든 시간이 아니란 말은 아니다. 다 좋았고 행복했으니 사궜고 함께 미래를 꿈꿧겠지만, 세월이 흐르고 생각해보니 사랑은 말로 하는것도,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는것도 아니었다. 그의 착한 마음이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그의 경제력, 시야, 집안배경, 타고난 매너 이런것도 무시할수가 없었다. 

북경의 출근생활은 평범했고, 난 사업에서 큰 성취를 이뤄내지 못했다. 대학에 붙기까지 난 우리 부모가 평범함을 받아들였고 사회에 나와 일하면서 나의 평범함도 서서히 인정했다. 평범한 일상이 가장 행복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와 같은 사람이 내 인생에 다시 나타나기를 기도했다. 나를 이끌어줄 사람, 아무 편견없이 나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해줄 사람을 말이다. 

-연재중 

이 글을 공유하기:

여니

글로 내 생각과 내 마음을 표현할수 있는건 굉장히 행복한 일입니다.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5
응원합니다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