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한 맨해튼의 야경은 활홀하다는 단어하나로 묘사하긴 역부족이었다. 그냥 솔직한 감정은 첨에 와아~ 하다가 한참뒤엔 그냥 내가 영화속에 있는구나 싶다.

결국 , 나는 7년을 걸쳐 그가 있는 뉴욕에 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파속에서 난 멍하니 타임스퀘어를 바라보았다. 그 세계의 십자가라는 미드타운 정중앙에서. 

뉴욕에 오게 된 건 우연이다. 그를 찾으러 온 것도 아니고 이민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그냥 여행 올겸 미국 생활은 어떤지 보러 온것이었다.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랑 같이. 때마침 고민중이던 뉴욕 디저트가게 오픈도 하나 있었고 말이다. 

미국행을 준비하면서 난 조금은 북경에 대한 아쉬움이 있긴 했다. 필경 대학교부터 사회 초년생으로 일한 앞 몇년까지, 훈춘이란 고향을 제외하면 북경은 나의 두번째 고향인 셈이다. 그동안 만났던 인연들, 칭구들, 지인들, 그리고 많고많은 추억들은 고스란이 내 20대를 기록하고 있었다. 

섣불리 결정하는게 아닌가 하는 사람도 많았고, 미국에 아예 이민을 가냐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심지어 미국가서 뭐 하냐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만나던 남친은 만난지 반년정도 되는 사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난 주위에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다. 당연히 남친이 나한테 주는 안전감과 그의 책임감에 대한 믿음이 있기도 했지만, 어찌됐건 오직 미국은 가봐야 겠단 내 굳건한 생각과 가서도 잘 살수 있다는 신념 같은게 있었다. 

왜냐면 그때 만낫던 남친한테서 그와 같은 느낌을 받았기때문이다. 나보다 2살 연하인 남친은 그보다 나이도 5살 적고, 학교도 명문대를 나온게 아니었지만 생각방식이라든지 타고난 품성 나에 대한 사랑 같은게 너무 닮아있었다. 한동안의 교제를 통해는 나는 그가 사랑을 줄줄 아는 사람이었고 더우기 대가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단걸 알았다. 그렇게 나는 남친과의 새로운 시작을 7년전 어쩔수 없이 놓친 그사람이 있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뉴욕은 생각보다 적응하기 쉬웠고 우리는 온지 3개월만에 디저트 가게를 오픈하게 되었다. 가게는 대박이 났고 큰 도시가 살기 복잡하다면서 기피하던 남친도 서서히 뉴욕을 받아 들이게 되었다. 나는 뉴욕에서의 첫 일자리로 약국에 출근하게 되었으며 우린 그렇게 미국에 남기로 결정했다. 

수많은 외국손님들로 붐비는 우리 가게와 하나씩 배워가며 다른 시도를 해보는 나의 직장생활, 생각보다 많았던 나의 고중동창들 (고향 동창들이 미국에서 석사를 한 애들이 많았는데, 마침 다 졸업시즌이 금방 지나고 일자리를 찾게 되면서 뉴욕으로 거의 이주함),그리고 거의 80%가 미국에 있었던 남친가족들, 난 생각보다 덜 외로웠고 나름 새로운 세상이 사뭇 반가웠다. 

그리고 하나씩 뉴욕을 알아가면서 7년전 그가 나한테 해줬던 미국이야기랑(그와 연애할 때 그는 가끔  일본에 계시는 아빠이야기와 미국에 계시는 엄마이야기를 해줬었다.) 퍼즐처럼 맞춰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한아름이라는 마트에 가면 그가 옛날에 말했던 <엄마가 일하는 곳은 한국사람이 사장이여서 영어를 못해도 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 곳에 가면 그가 나한테 해줬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고 또 다른 한곳에 가면 왜 그때 그가 그런 표정으로 말했는데 이해하게 되었다. 신비한 과정이었다. 

나는 그의 7년의 종적을 뒤 쫓아 가는 느낌이었다. 

뉴욕의 매력은 다양했고 난 그 세계에서 빠져나올수가 없었다. 묘한 세상이었다. 여긴 모든게 다 있었다. 연변보다 더 연변스러운 플라싱, 홍콩보다 더 중국스러운 차이나타운, 한국보다 더 맛있는 게 많은 펠팍, 일본에서 본 거의 모든 걸 맛볼수 있는 미쭈와… 그리고, 어느날 우연히 만난 그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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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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