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콜록. 

잠든 딸아이의 기침소리가 들린다. 열은 없지만 감기다. 이 한여름에 감기라니. 에효. 아미는 걱정 반 졸림 반의 상태로 눈을 감았다. 아이에게 잠들기 전에 틀어주는 피아노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온다. 꺼야 하는데…눈꺼풀이 의지와 상관없이 내려온다. 음악소리가 점점 미약하게 들리다가 사라진다. 적막이다. 깜깜하다. 시각도 청각도 차단되는 이 공간. 여기는 어딜까. 

아미는 어렴풋하게 교실처럼 보이는 공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책상과 의자들이 줄 서있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인다. 여기는 어디지? 묵직한 느낌에 손을 내려다 보니 왼손에는 꽤 두터운 책 서너 권이 들려있다. 검은색으로 보이는 책뚜껑의 질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왠지 제목은 보이지 않는다.

집에 가야 하는데. 

문득 이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집에 가야지. 창문으로 보이는 시간은 황혼인듯 어둑어둑하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 아미는 자신에게 미션이라도 주듯이 중얼거렸다. 교실을 나오니 끝이 안 보이는 기다란 복도이다. 손에 밀려오는 무게감이 신경 쓰인다.  책은 둘까. 어차피 학교에 다시 가져와야 하는 거면. 아미는 잠깐 멈칫한다.  불빛이 없는 복도에서 방향이 구분이 안된다. 건너편에 다른 교실이 보인다. 문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광경은 또 다른 어둑어둑한 공간이다. 널브러져 있는 책상들과 의자들. 누가 보든 말든 전혀 상관없이 하던 얘기를 지껄이는 몇몇 학생들. 빛이 없는 탓인지 그들의 모습은 그림자 느낌이다. 

아미는 순간적으로 교실문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문을 여는 순간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그림자들의 타겟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거운 대로 책 들고 아미는 출구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방향이 구분 안되는 공간에선 본능적인 감각을 믿을 수밖에. 누구도 없는 공간에 아미의 가쁜 숨소리만 들려온다. 얼마나 뛰었을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앞에 보이는 문을 힘껏 밀어젖히니 드디어 밖이다. 교차로로 꼬인 거리들과 그 위에 분주하게 오가는 차들이 보인다. 

집으로 가야 하는데. 주차공간에는 그녀의 차가 보이지 않는다. 주차공간에 빼곡이 들어선 차들을 하나씩 빠르게 훑어보지만 눈에 익은 하얀 색 그녀의 차는 결코 안 보인다. 아. 차 키! 어차피 차 키도 없다! 차 키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할 시간도 없이 아미는 거리에 오가는 버스와 스쳐가는 차들을 보면서  택시를 찾는다. 거리에 오가는 차들 못지않게 분주한 머릿속에서 아미는 집 주소를 검색하려고 애를 쓴다. 아. 집이 어디였지? 매일 자차로 가는 익숙한 거리들이 눈앞에 분명 안뜰 거리며 스치는데 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거지?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뭐라고 얘기해야 하는거지?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택시도 안 잡힌다. 목적지가 떠오르지 않는 와중에 택시가 안 잡히는 게 어쩌면 다행인 건가? 아미는 점점 마음이 조급해진다. 불안해진 마음과 뇌는 CPU 성능이 떨어진 컴퓨터처럼 기능을 잃어버린다. 멈춰버릴 듯이 브레이크를 밟는 택시가 보인다. 아미 앞을 스쳐 3미터 정도에 멈춘다. 아미는 본능적으로 택시를 향해 뛰어가보지만 택시는 또 앞으로 이동해서 저만치 멀어져 버린 버스정거장에 멈춰섰다. 아미는 불평할 것도 없이 정거장까지 힘껏 뛰어보지만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이 느닷없이 택시 손잡이를 잡아버렸다. 

아! 안돼! 집에 가야 하는데! 

마음속의 절규와는 상관없이 택시는 저만치 멀어져버린다. 누군가 어깨를 잡는 것 같아서 뒤를 돌아보니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험상궂은 얼굴로 서있었다. 아미는 기겁을 하며 도망가려고 했지만 다른 교복을 입은 학생이 보인다. 아미는 죽을 힘을 다해서 그들을 뿌리쳐본다. 

언제 쫓아나온걸까? 왜 나를  쫓는걸까. 어딘지 모를 이 시공간에 갇혀버린 이 느낌은 뭘까. 

헉!

아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뜬다. 암막 커튼으로 빛이 새어들어 올수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 머리를 돌려보니 어렴풋이 잠든 딸아이가 보인다. 꿈이었나. 아미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깨어난 거 맞을까. 

지금 눈에 보이는 이 공간도 어쩌면 깨어 못나는 긴 꿈은 아닐까.

잠이 들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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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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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금 눈에 보이는 이 공간도 어쩌면 깨어 못나는 긴 꿈은 아닐까.잠이 들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깨여있는 모든 공간이 진실처럼 느껴지는건, 우리 모두가 가상의 공간에서 동시에 온몸으로 연기하기 때문은 아닐까, 잠이 들면 가는 공간이야말로 우리 본연의 안식처가 아닌지… 우리의 꿈이 진실이고 우리의 삶이 거짓이 아닌지.. 그 거짓을 위해 우린 하루하루를 자신까지 기만해가며 발버둥치는 건 아닌지… 의식의 흐름대로 못하고 우왕좌왕 방황하는 건 어쩌면 더 가짜같은 세상인데, 왜 태연하게 살아가는 척 하는지.. 난, 가끔 영원히 꿈을 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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