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윤지는 그날을 잘 기억한다. 그 선선했던 공기의 온도와 태영의 말소리의 촘촘한 밀도, 그리고 실체없이 둥둥 떠다니던 그의 계획, 기묘한 순간을 경험한 것 마냥 윤지의 한달을 내내 괴롭혔다. 그러니까, 태영이 안 보인지도 한달이 다 되였다는 것이다. “해변의카프카”를 읽을까 고민했지만 사실 태영의 예언처럼 그의 소식이 더 궁금했다. 그가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동시에 여전히 엄마가 너무 밉다는 생각을 하며 슈퍼에 들어섰다. 가게 주인인 할아버지는 턱이 떨어질 듯이 입을 벌린채 자고 있었다. 낡은 라디오에서는 혼잡한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서리 낀 유리문 너머로 골라들 음료수들을 유심히 봤다. 지폐의 개수를 한번 확인하고 커피와 우유를 여럿 골라들어 계산대로 향했다. 길게 뽑은 라디오의 안테나만큼이나 할아버지의 수면이 절정에 이른듯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윤지는 거스를 것 없이 딱 맞춘 지폐를 탁자 위에 올려 놓고 나왔다. 아까의 내리막이 이젠 오르막이 되어 까마득히 눈앞에 펼쳐졌다. 윤지는 숨 한번 뱉고 근처 벤치에 앉았다. 허공을 바라보는 시야 끝에서는 슈퍼 간판의 문구가 색이 바래져 세월을 드러냈다. 해빛이 눈부셔 잠시 눈을 감았다. 힘이 풀리는 몸에 잠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네가 윤지구나!

돌연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 조금 놀란 기색의 윤지가 자신 앞의 여인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봤다. 무릎까지 오는 트렌치코트에 남색으로 맞춰 두른 스카프가 작은 바람에도 펄럭였다.

누구지?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여인이 급히 말을 붙였다.

-네 엄마한텐 방금 얘기해뒀어. 배 안 고프니?

그녀가 시원하게 웃어보이자, 눈가에 접히는 주름이 엄마랑 꼭 빼닮아 소개를 듣지 않고도 윤지는 직감했다. 이모겠구나.

-그저 좋고 귀한 음식 사주고 싶었어. 먹을만 하니?

-몰라요, 초밥 처음이니까.

그녀가 처음 마주하는 조카에게 애틋한 마음으로 제일 좋아 보이는 음식을 사주었을거라는 건 윤지도 잘 알고 있었다. 며칠을 고민한 것까지는 모를테지만 어른의 성의를 눈치챌 만큼은 성장한 아이었다. 하지만 말이 제멋대로 퉁명스럽게 나가는 걸 윤지 스스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원체 낯을 가리는데다 외가집 사람들을, 특히 머지않아 함께 살지도 모를 집의 안주인을 보려니 심보가 뒤틀렸다. 솔직하게 따지고 싶기도 했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나 힘들었던 사이, 왜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냐고, 왜 애초에 그 집을 나오게 순순히 허락했냐고. 그때문에 나조차 평탄치 않은 매일을 보내게 만들었냐고. 윤지는 세상의 모든 불행과 상처를 다 떠앉고 있다고 느끼는, 그래서 비극의 원흉이 절실히 필요한 치기어린 아이일 뿐이었다. 숨기지 못한 비뚤어진 감정은 공기를 기어이 가르고 뾰족한 날을 드러냈다. 이모라는 여인은 자연스럽게 그 날카로운 기류를 읽어낼 수가 있었다. 한편으로 어떻게 윤지에게 지난 시간의 서사를 설명해줘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네 아버지 장례식도 못 갔어.

-…

-그 정도로 너희 엄마가 우리와는 소식도 안 전하고 살았으니까. 처음에는야 그래, 결혼을 반대했던 미움때문이었겠지… 근데 세월이 지나면서 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생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면서 미안해서라도 연락을 못했을 거다. 너를 보니까 더 알겠어. 너만큼이나마 너희 엄마도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얼마전에야 알았어, 너희 엄마가 이십년만에 먼저 전화를 했거든. 자식만큼은 책임을 다해야 하니까.

여자의 음성은 낮고 차분했다. 그 속에 빠져들어 덜컥 이해라도 해버릴까봐 윤지는 귀를 닫기로 했다. 더욱 무심히 대했고 그곳에 혼자 있는양 굴었다. 눈물 어린 서사는 일찍이 아빠를 여읜 내 이야기가 더 슬펐음 슬펐지, 무슨 장황한 얘기를 늘어 놓으려는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일부러 다른 소리를 해댔다.

-이건 어종이 뭔데요?

– 그건.. 연어란다.

– 가만 보면 인간들 참 잔인해요. 살생하고 먹는 것에 죄책감이 없죠. 이 연어도 생전엔 꿈 같은게 있었을 것 아니예요. 그런데 이렇게 잔인한 폭력을 당할 줄 알기나 했겠어요? 제가 재미난 얘기 해줄까요? 이 구질구질한 동네에 저같은 애가 한명 또 있었는데 걔도 폭력의 피해자예요. 맞고 살았아요, 아버지한테 매일매일-

-윤지야.

끝없이 나열되던 말들이 중지당했다. 예의 없는 본인의 태도를 이모라는 사람은 어떻게 볼까? 윤지는 가슴 한쪽이 뜨끔거렸지만 개의치 않은 척 하고 싶었다. 어른의 단호함 따위에 주눅들지 않는다고 증명하고 싶었다. 다시 말을 시작하려는데,

-윤지야, 너희 엄마는 그러니까… 연어랑 닮았을 뿐이야, 아니 사실 모든 인간들이 닮기도 했지.

반응을 하지 않으려던 타산은 두서없는 한마디에 물거품됐다. 어이없어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무슨 말씀 하시는거예요?

-연어는 말이다,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온단다. 태어나자마자 미련없다는 듯 멀리 떠나버리고 지구 반바퀴를 돈 뒤 다시 물살을 거슬러서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거야. 너희 엄마도 돌아오기까지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어. 물살을 거스르는데,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겠니… 그러니까 엄마를 너무 미워하지 마렴, 아직도 돌아올 길이 멀었지만 너라도 먼저 엄마의 회귀를 도와줄 순 없겠니?

여자의 말에는 오랫동안 앓아온 그리움 같은게 배어있었다. 슬픔을 감내해온 자의 언어는 슬픈 자를 울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윤지의 콧등이 시려웠던걸까. 윤지는 울컥 솟은 눈물에 스스로조차 당황하였다.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이 저항없이 떨렸다. 그 손을 맞잡아 오며 윤지의 이모가 설핏 웃었다. 손의 온기, 정갈하게 접힌 눈가의 주름이 또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오진 않는다. 그러나 회귀하는 자는 모두 집이 있다.

—————————————————————————————

-이모는?

-이따가 차 갖고 온댔어요.

-음료수 별로 안 차겠다.

-그러게, 왜 하필 이때냐고.

-말 좀 예쁘게 해. 싸가지 하고는…

음료수가 담긴 봉지를 받아가며 윤지 엄마가 핀잔을 줬다. 그러면서도 윤지가 좋아하는 초콜렛 우유를 먼저 꺼내서 냉장고에 넣어뒀다.

– 근데 너 친구가 있었니?

– 갑자기 뭔 소리예요.

– 너한테 소포를 보내줄만한 친구가 있냐고.

– 뭐가 왔어요?

윤지 엄마가 말없이 노란 봉투의 소포를 윤지 앞에 내밀었다.  

– 네 앞으로 이런게 왔더라. 근데 너 누구랑 같이 다니는 걸 내가 본 적이 없는데 무슨 소ㅍ …야 이윤지!

윤지는 잠시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에 넋을 놓고 있다가 이내 번뜩 정신을 차리고 소포를 낚아챘다. 그리고 황급히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윤지 엄마는 그런 딸아이의 모습을 보며 작은 탄식을 뱉았다.

이삿짐을 옮기는 소음 속에서 윤지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떨리는 손길로 조심히 소포를 살펴보았다. 받는 이의 이름에는 윤지의 이름이, 보낸 이의 이름에는 단정한 세 글자, 카프카가 씌어져 있었다. 조심스레 봉투를 뜯었다. 곱게 접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조금 주저하다 천천히 편지를 펼쳐보았다. 윤지의 눈시울이 붉게 차오르더니 이내 눈물이 떨어졌다.

“윤지에게,


안녕 윤지야, 소포를 뜯으면서도 예상했겠지만 그래 나야. 대책없이 멍청했던 너의 친구… 네가 궁금해 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나름 자유롭게 잘 지내고 있어. 힘든 것을 받아들이고 달갑게 애를 쓰는 것도 자유의 하나라면, 넌 나의 자유를 확신해도 좋아. 한가지 이변을 고백하자면, 나는 내가 떠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돌아가는 길위였다는 걸 이제 알게 됐다는 거야. 왜냐하면 지금의 난 예전에 할머니와 같이 살던 동네에 와있거든. 할머니가 여직 계셨다면 더 기쁜 자유였겠지만. 그냥 발길 닿는대로 오다보니 이렇게 되더라. 대책없이 돌아다녀도 결국 가장 편안했던 시초로 돌아오더라고….그러니 윤지야, 네 엄마의 시초로 돌아가. 너한텐 엄마가 집이랬지? 맞아. 너라는 숨이 잉태되던 순간부터 그 배속은 이미 너의 귀속이었어. 그러니 네 엄마의 시초에서 엄마를 기다려봐, 먼 나중에 엄마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것 역시 너의 회귀와 다를바 없을테니까.”  

– 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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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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