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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앞이다. 

숨소리까지 죽이고 방범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다 말고 그는 옆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간다. 참았던 오줌이 길게 뻗어 나간다. 오줌을 누는 동안, 깜빡 졸음이 온다. 지금 이대로 어디든지 누워버린다면 깊은 잠의 나락속으로 빠져들것만 같다. 피로가 머리카락부터 발톱까지 몰려와 그물처럼 그를 친친 감싸고 있다. 그는 머리를 흔든다. 정신이 흐릿해지려 한다. 안될 것이다. 그는 지금 한겨울에 밖에서 펼쳐든 면도날의 단면보다 더 단단하고 더 서늘하고 더 날카로워져야만 한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푸걱푸걱 세수를 한다. 종이타월로 얼굴의 물기를 투덕투덕 찍어내며 그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얼굴이 온통 푸르스름하고 눈 흰자위에는 벌겋게 선명한 피줄이 서려있다. 잠을 제대로 자본지가 까마득하니 그럴 수밖에. 그는 바지를 추스르고 돌아선다. 한결 몸이 가볍다. 화장실에서 나와 문을 등진채 창가쪽으로 향해 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배를 잡았다가 그는 도로 손을 빼낸다. 

무엇에도 기대면 안될 것이다.

기댄 것은 허물어지기 쉬우므로.

그는 결연히 돌아선다.

다시 문앞에 이르러 그는 문손잡이를 잡고 단호하게 돌린다. 문을 당기자 책상에 앉아있던 김영훈 대리가 문소리에 힐끗 머리를 든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영훈대리는 애매한 웃음을 날린다. 억지로 얼굴에 웃음을 바르고 그를 바라보는 얼굴, 그 웃음 띤 얼굴에는 귀찮음과 경멸이 묻어있다. 

“앉으시죠. 잠간 하던 일이 있어서.”

영훈대리가 다시 모니터에 눈길을 돌리며 허공을 향해 그런 말을 날린다. 그의 예상대로 영훈대리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하루에 한번 정도 얼굴이나 비치는 강대표는 이 시간에 왔을 리가 없고, 사무를 보는 미스 박은 토요일이라 휴무일터이다. 영훈대리 혼자 사무실을 지키는 시간, 누군가 회사면접을 보러 아웃소싱 사무실을 방문하기엔 이른 시간, 그는 일부러 이 시간을 택해 온 것이다. 그는 영훈대리와 단 둘이 마주 앉아야 한다. 전쟁은 곧 시작이다. 물론 영훈대리는 그가 준비한 서슬푸른 것 들을 전혀 알지 못할것이다. 그는 커피자판기에 다가가 꾹 버튼을 누른다. 툭 종이컵 하나가 떨어지고 삑 소리가 나며 커피가 종이컵에 힘없는 늙은이의 오줌발처럼 내려온다. 그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창가에 놓인 쏘파에 다가가 앉는다. 커피향이 훅 코로 들어온다. 그는 그 커피향이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컵에서 나는게 아니라는걸 안다. 천천히 그는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신다. 커피가루가 얼마나 들어갔는가 싶게 달기만 한 자판기 커피이다. 사무실 책상 한켠에는 앙증맞은 원두커피머신이 놓여있다. 지금 영훈대리의 앞에 놓인 밤색의 커피잔, 아마 그 속에 들어있는건 갓 내린 원두커피 일 것이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향만으로도 그는 그것을 알수 있다. 영훈대리는 그에게 자기와 같은 원두커피를 마실 것을 권하지 않는다. 그도 마찬가지이다. 입구쪽에 이렇게 비치한 자판기는 그를 비롯한 아웃소싱을 찾는 근로자들이 마시라고 있는것인줄 말을 안해도 알고 있다. 거래처 회사나 세무사에서 방문했으면 아마 영훈대리는 얼른 일어나 친절하게 원두커피를 내려 사무실에 비치한 간이 수납함에서 이쁜 커피잔을 꺼내 정성껏 따라서 비굴한 웃음을 게바르고 두손으로 공손히 받쳐 올렸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이다. 커피 한잔에도 계급이 나눠지고 차별화되는게 세상이다. 하지만 뭐 새삼스러울 것 까지는 없다. 갓 세상에 나온 아무것도 눈에 담아본적 없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는 세상의 때가 묻을만큼 묻은 마흔중반이 아닌가. 

뜨거운 것이 속으로 들어오자 비로소 경직돼 있던 몸의 근육과 세포들이 하나씩 생기를 되찾는 듯 술렁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커피가루가 얼마나 들어있는지가 뭐가 중요한가. 이렇게 무언가 들어와서 내 속이 뜨끈해지고 그로 인해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든다는게 중요한거지. 그건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것이 그가 살아있음을 깨워주는 무엇이 되였다면,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그에게는 필요한것이고 필요한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필요한 무엇이 되여야 살아남을수 있는 것이다. 필요해 지려고 이렇게 다들 아등바등 애쓰는게 아닌가. 그도 영훈대리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사무실 안을 둘러본다. 간소하지만 깔끔하게 꾸며져 있다. 2년전, 면접을 보러 왔을때도 그는 이 자리에 이렇게 앉아서 기다렸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가불을 하러 세 번 왔었다.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명절때면 어줍잖은 선물을 들고 왔었고, 새롭게 세간이 바뀔때면 휴일도 마다하고 와서 도와주곤 했었다. 그는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심정으로 이 몇 년간, 스스로도 지나치다 싶을만큼 힘을 가진 자들에게 비굴했었다. 덕분에 영훈대리는 매번 아웃소싱소속에 있는 근로자들을 줄일때도 그만은 남겨두었다. 그 뿐인가. 영훈대리가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갈때에도 그는 충견처럼 달려가 이사짐을 풀어주고 정리를 도와주었다. 그만큼 그는 영훈대리와 각별한 사이이다. 각별한만큼 영훈대리에 대해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가장 긴급한 순간에 상대를 물어버리는건 늘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긴 하지만 그 순간이 오기전까지 우리는 왕왕 가까이 있는 사람을 방심한다. 그는 침을 삼킨다. 늘 긴장한 마음으로 이 문으로 들어섰다가 얼굴에 비굴한 웃음을 띄우고 고마움의 표시로 허리를 굽혀보이며 문으로 나갔었지.

허나, 오늘은 아니다.

나는 오늘 너와 담판을 지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야비하고 비루할지라도.

몸에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발가벗겨지더라도 끝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이기는 사람은 나여야 한다. 

                                                                                                            다음에 계속.   글쓴이 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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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며 웃음이 헤픈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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