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장막에 돌아와 멍해 앉아있던 서은은 누군가가 가볍게 내는 인기척에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넉살좋게 웃는 얼굴을 들이미는 한 사람을 발견하자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에게는 조용한 공간이 필요했다.

“무슨 일입니까.”
“오랜만에 정든 낭군님을 만나셨을텐데 어찌 그리 의기소침해 하십니까.”
“잠시 혼자 있고 싶습니다.”

부드럽기는 하지만 단호한 그녀의 말에 우사는 잠깐 목을 움츠렸다.

“청정을 깨뜨려 죄송합니다. 다만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을 듯 하여…”
“없습니다.”

그녀는 장막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사는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여전히 넉살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잠시 나가서 저들의 동정을 살피게 해주십시오. 이곳에 박혀있자니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그녀가 아무 말 없자 우사는 그것을 무언의 허락으로 받아들인 듯 몸을 돌려 장막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마음속 깊은 답답함을 달래느라 잠시 일어서서 장막안을 거닐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려고 긴 숨을 내뱉었지만 입안은 바싹 말라 갈증이 일었다. 그녀는 지난밤 이여백의 초연한 표정과, 마치 잠언인 듯한 그의 그 한마디를 떠올렸다.

“난 당신처럼 순진하지 않아.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당신도 다 알고 시작한 게 아니었나.”

그녀는 잠깐 심호흡을 하고 장막밖을 나섰다.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도저히 그의 말뜻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대체 이여백은 그녀가 모르는 사이 염라대왕과 어떤 타협을 하고있기에 이렇듯 소극적으로 변해있을까.

“숲속에서 나오지 말거라.”

영채쪽에서 뭔가 소란이 인 듯 하였고, 이여백이 이 한마디를 던지고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았던들, 그녀가 지금처럼 노심초사하는 일은 없었을것이다. 그녀가 둔덕에 서있는 동안 멀리 은은한 옥적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만리절역에 부모를 떠나 천애에서 처자를 꿈꾸는 군사들의 구곡간장을 위로하는 소리였고, 그 옥적소리가 잦아들무렵 영채쪽의 소란도 언제 있었냐 싶게 잠잠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여백은 그녀가 온밤을 지새우다싶이 서있었어도 다시는 그 언덕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찌 조금도 쉬지 않으시고, 또 바람받이에 서계시는겁니까.”

그녀의 등뒤에서 주원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시름겨운 얼굴로 멀리 둔덕쪽을 응시했다.

“걱정이 되어 견딜수가 없습니다.”
“도련님에 대한 걱정이라면 그럴 필요가…”

그녀는 잠자코 시선을 돌려 주원외를 보았다. 후자의 눈빛에 어린 그 믿음에 그녀는 웬지 숙연해졌다.

“원외님은 그렇게도 믿으십니까.”
“…”
“서방님에 대해…제가 알고 있는 것과 원외님이 알고 계시는 것이 다를수도 있습니다. 저는 원외님의 그 믿음이 부럽습니다.”

깊은 탄식이 섞인 그녀의 말에 주원외는 빙그레 웃었다.

“도련님은…유족한 가문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충직하게, 깨끗하게 세상을 살려 하셨습니다. 천성이 총명하고 의지 또한 굳건하여 교주께서 여러해 친히 무예도 전수하셨기에, 교주님을 빼고 도련님의 건곤대나이는 그 누구도 따를수 없을것입니다. 호교법왕은 물론 우사님까지도…”

주원외는 아까 우사가 사라진 쪽을 힐끗 바라보다가 다시 뒷말을 이었다.

“지어는 우사님까지도 보법은 도련님을 따르지 못하지요. 검술은 두분이 비슷하시겠지만.”

주원외는 그래도 자신의 말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짓자, 곧 서둘러 그 뒤를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제 말은, 아주 위급한 상황이 올 때에도 도련님의 보법이 도련님을 구할수 있다는 말입니다.”
“원외님의 믿음은 결국은 건곤대나이었군요.”

서은은 담담하게 웃으며 옷깃을 여미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서북풍…”

주원외도 미간을 찌푸렸다. 그 역시 걱정어린 시선으로 둔덕을 가로질러 영채가 자리잡은 쪽을 보았다.

“겨우 잦아들었다 싶었더니 어찌 또 서북풍이 부는지요.”
“이대로 불면 밤이면 위험할 것 같은데요.”

서은은 머리를 들어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젯밤의 영채 소동이 결코 우연은 아닌 듯 했다. 분명 헤투알라성 세작이 군심을 소란케 한 것이고, 이대로 서북풍이 지속되면 오늘밤 겁채가 있을것이 분명했다.

“겁채를 역이용할수도 있겠군요.”

그녀의 말에 주원외도 머리를 끄덕였다.

“바람엔 화공을 주의해야 한다는걸 누군들 모르리까. 오늘밤 영채에선 필시 준비가 있을 것입니다.”
“준비만 있어서는 조금 부족하지요. 원외께서 영채쪽으로 한번 더 걸음을 해주셔야겠습니다.”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서은은 장막안으로 들어가 한참 있더니 한통의 서신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원외에게 당부했다.

“잘만 하면 이번 싸움을 끝낼수도 있을겁니다. 꼭 한쪽 길을 틔워놓으라 하십시오.”

주원외가 서신을 받고 길을 떠나자, 그녀는 장막안에 돌아가 가벼운 갑옷을 껴입었다. 머리를 올백으로 묶어 올리고 장속을 마치자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우사가 남기고 간 검을 품에 안은 채 조용히 날이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별들이 하나 둘 밤하늘에 나타날 무렵, 멀리서부터 구슬픈 옥적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장자방(중국 한고조를 도와 항우를 멸한 모사)이 계명산에 올라 초병을 흩었다는 곡조였다. 헤투알라성안팍의 군사들이 이 곡조를 들으면 필시 군심이 해이해질것이 분명하고, 오랜 시간동안 초조해있던 누르하치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성을 나와 영채를 들이칠 것이었다.

그녀는 말에 올라 천천히 둔덕으로 향했다. 잠시후 둔덕에 올라 영채를 내려다보니 영채마다 등촉을 환히 밝혀놓고 있었다. 머리를 들어보니 멀리 헤투알라성에도 수상한 움직임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성문위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언뜰하더니, 갑자기 성문이 열리고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성밖으로 나온 헤투알라성의 군사들은 저마다 횃불 하나씩 들고있었다. 순식간에 말을 달려 영채로 접근한 그들은 영채 곳곳마다 횃불을 던졌다. 영채 이곳저곳에서 삽시에 불길이 일었고, 그들은 말을 달려 그대로 영채복판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녀는 머리를 숙여 웃었다. 텅 빈 영채를 발견한 헤투알라성 군사들이 말머리를 돌렸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순식간에 북소리 함성소리가 밤하늘을 진동하고 있었고, 불길이 형형한 가운데 무수한 장군기가 수풀처럼 일어섰다.

“누르하치는 머리를 두고 가거라.”

관군들이 외치는 소리에 서은은 놀라 눈을 들었다. 누르하치가 직접 겁채하러 나오다니 그녀로서는 전혀 예상밖의 일이었다. 문득 몸안에서 뜨거운 피가 끓어넘쳤다. 그녀는 급히 채찍을 들어 말을 앞으로 내몰았다.

영채를 습격하는 군사를 무찔러 누르하치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한 계책이 범을 산에서 끌어낸셈이었다. 누르하치…만일 이참에 누르하치를 사로잡아 그 항복을 받아낼수만 있다면…초봄부터 끌어온 이번 무의미한 싸움은 이대로 한단락 결속지을수 있는 것이 아닌가.

“염라대왕…이 모든것을 대왕의 의도대로 흘러가게 할순 없지.”

그녀는 나는듯이 말을 달려, 영채를 빠져나와 허둥지둥 숲속으로 달려가는 헤투알라성의 잔여군을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천을 에돌아 말을 달리더니 눈깜짝 할 사이에 숲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어디로 갔을까…”

그녀는 잠시 고삐를 당기며 말을 늦추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음산한 수림이었다. 뭔가 의아한 기분이 들었으나 그게 구경 무엇인지 그녀는 알수 없었다. 그녀가 말을 몰아 몇걸음 앞으로 다가갔을 때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말이 앞다리를 꿇었다. 다행이 그녀가 재빨리 몸을 솟구쳤기 때문에, 말잔등에서 굴러떨어지는 봉변을 피할수 있었다. 하지만 몸을 가누기 바쁘게 더 큰 봉변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추장님, 추적해오는자를 잡았습니다.”
“포박하라.”

그녀는 검을 가로들고 한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앞에 버티고 서있는 군사들이 코웃음을 치는 듯 보였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들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왠지 헤투알라성의 군사들이 아닌 듯 했다.

“어디 군사들인가.”

그녀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군사들은 잠깐 서로 바라보다가 한 군사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니탕개추장님의 수하다.”

그녀는 허한 웃음을 지었다. 회령부 소속 번호 니탕개…1583년 여러차례 난을 일으켰다가 조선에게 패배를 당한 후 다시는 세력을 회복하지 못해 여진부락을 전전하다가 이번에 예허를 따라 헤투알라성의 싸움에 참전한 모양이었다. 군사들뒤에 거만하게 서있던 니탕개는 그녀의 웃음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왜 웃느냐.”
“한낱 패장이 아직 추장으로 자처하니 우스울뿐이요.”
“뭣이?”

니탕개는 눈섭을 푸뜰했다. 그는 군사들을 제치고 나서서 서은을 자세히 보다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분명 남자는 아닌 듯 하니 수상하도다. 이런 숲속에 필마단기로 쫓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그쪽을 쫓아온것이 아니요. 겁채를 한 누르하치를 쫓아 이리 왔을뿐이요.”

그녀는 쌀쌀하게 말한후 말을 일으켜 세웠다.

“그쪽도 기다리는 사람이 내가 아닐터, 서로 사람을 빗본것이니 이만 물러가리다.”
“누구 마음대로 물러가는거냐.”

니탕개는 여전히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로부터 그녀의 갑옷차림에 머물렀다.

“여인이 제발로 찾아왔은즉, 내 어찌 순순히 돌려보낼수 있다더냐.”

서은이 뭐라 말하려는데 군사들중 하나가 니탕개의 귀에 대고 뭐라 수근거렸다. 니탕개는 군사의 말을 듣더니 다시 서은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의 눈빛이 한결 더 음침해졌다.

“듣자니 총병부의 부인이 무순에서 보였다 하니, 여기 이런 차림의 여인인즉 바로 이여백의 처자가 아니겠느냐. 내 오늘 의병(疑兵)을 풀어 기다린것이 이여백인데, 지금 그 처자가 걸려들었으니 이 역시 하늘이 이 니탕개를 도운것이라.”
“경하드리옵니다. 추장님. 이로서 이여백을 협박하면 헤투알라성의 포위는 자연 풀릴 것이고, 이참에 누르하치와 예허의 힘을 합치면 어찌 어젯날의 세력을 회복할 날이 멀다 하오리까!”

수하 군졸의 말에 니탕개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서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범을 잡으려다 함정에 걸려든 셈이었다. 하필이면 우사와 주원외가 다 곁을 비운 틈에 혼자 움직인 자신이 무모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난 총병부의 가솔이 아니니 헛된 힘을 빼지 말고 빨리 보내주시오. 이제 내 사람들이 오면 분명 후회할터이니.”

니탕개는 조롱섞인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느낄수 있었다. 그의 웃음뒤에 감춰진 살기를.

“이여백은 우리 여진의 원수다. 그놈 부자만 아니었다면 여진 부락들은 진작에 통합을 이룰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네가 여진인이 아니라면 필경 관군과 관련이 있을터. 우리가 관군을 그리 쉽게 놓아줄상 싶으냐.”

그녀는 체념의 한숨을 내쉰 후 스르륵 검을 뽑았다. 달빛아래 그녀의 차분한 얼굴은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듯 보였다. 이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면…

문득 그녀의 뒤쪽에서 말의 포효소리가 한밤중의 정적을 깨뜨렸다. 말발굽소리에 놀란 이름 모를 새들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높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고, 그녀와 니탕개의 사이로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멈추시오.”

……

“누르하치.”

서은은 천천히 검을 내렸다. 니탕개의 얼굴에 맹랑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런 니탕개를 향해 굳은 표정의 누르하치가 말했다.

“이분은 내가 아는 분이요. 그러니 이대로 갈길을 가시는게 어떻겠소.”
“누르하치, 자네가 관군과 내통을 하고있다는 게 사실이었나?”

니탕개는 쉽게 물러가려 하지 않았다. 그는 서은과 누르하치를 번갈아 보다가 문득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면 자네가 이여백과 한 여인을 다투었다는 소문도 사실…”

문득 서리발치는 칼날이 니탕개의 목을 겨누었다. 니탕개는 하던 말을 삼키고 급히 뒤로 멀찍히 물러섰다.

“이 사람아…말로…말로 하게나. 내가 멀리 가버릴테니.”

니탕개가 군사를 끌고 수림속으로 사라지기를 기다려, 누르하치는 칼을 내리고 서은에게 머리를 숙였다.

“공주님…”
“호칭이 바뀌었습니다. 그때는 부인으로 불러주시더니.”

서은의 쌀쌀한 말에 누르하치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 내비친 초조함이 그녀의 표정을 풀리게 했다.

“여기는 웬 일로…”
“공주님께선 아까 저를 쫓아오신 겁니까.”

서은은 아무 말 없이 누르하치를 보았다. 정작 이제 와서 누르하치의 얼굴을 보니 묘한 위화감이 일었다. 청태조 누르하치…역사를 지키기 위해서 그를 이대로 방치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과 명부와의 싸움을 위해서 그의 앞길을 막아야 하는 것일까. 그녀는 정답을 알수 없었다.

“난 당신을 잡으러 온 것입니다.”

누르하치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꼭 마치 그녀가 일상의 말을 한것처럼 태연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오히려 그녀쪽에서 무안해져서 손에 든 검을 거두어 들였다.

“물론…내 힘으론 역부족이지만 말입니다.”
“제가…하루라도 빨리 항복을 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그녀는 얼굴을 들어 누르하치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는 스스로도 혼란스럽다는 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빨리 항복을 하셔야만 합니다. 지금 꺽이면 힘을 기르지 못하고 또 그렇게 되면…”

그녀는 뒷말을 삼켰다. 명부에 대항해 운명을 만들어가겠다 결심은 하였으나 기존 역사를 지켜야 하는지 바꿔야 하는지 정답을 찾지 못한 그녀였다. 만력, 누르하치, 이여백…다들 대체 누구를 위해 지금까지 동분서주 하는 것일까. 또 자신은 누구의 땅과 역사를 지키기 위해 이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제가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누르하치가 서글프게 웃었다. 뒤이어 머리를 들어 멀리 계명성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석연하게 빛났다.

“부인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
“날이 밝으면 항복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항복을 해야만 하고, 관군과 타협하여 헤투알라성의 힘을 보존해야 합니다. 이제야 알았지만, 요동의 여진인을 단합하여 조정에 반기를 들기엔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누르하치…”
“그리 해야 하는 것이지요. 제 젊음과 혈기를 믿고 무모하였습니다. 추잉을 찾고 동가를 눈감게 할수만 있다면…이보다 더한 수모인들 참지 못하오리까. 언젠가는…언젠가는 꼭 이 모든 것을 되돌려 드리지요.”

말을 끝내자 훌쩍 말에 오른 누르하치는, 고개를 돌려 서은을 일별한 뒤 등자를 굴렀다. 그의 뒷모습이 하도 결연하여 서은은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새로운 조대를 여는 제후가 될 사람은, 바로 시기를 보아 몸을 굽힐줄도 알아야 하는 것임을…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은,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요. 어쩌면 당신은, 충분히 그 그릇을 갖추고 있습니다.”

애초에 자신이 누르하치를 구한것이 역사의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며 말에 오르던 그녀는, 눈앞에 다시 나타난 비릿한 얼굴에 그만 주춤하고 말았다. 멀리 가버린다더니 어쩜 이리도 빨리 되돌아 왔을까.

“누르하치는 항복을 하더라도 난 이대로 물러설수 없지.”

그녀를 향해 잔인하게 웃던 니탕개가 뒤를 향해 손을 한번 저었다. 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녀를 포위한 순간, 문득 어디선가 휙 날아오는 화살에 앞장선 누군가가 윽 소리를 내며 꺼꾸러졌다. 니탕개는 화뜰 놀라 손을 움츠러뜨렸다.

“웬놈이냐!”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또 한대의 화살이 니탕개의 얼굴을 스쳤다. 서은을 둘러싼 군사들이 일제히 칼날을 화살이 나온 나무쪽으로 향했다. 뒤이어 나무뒤에서 혜성처럼 나타나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소박한 베옷 차림이었지만 분명 여진의것도, 명의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화살을 날린 사람이 머리를 돌려 누군가에게 말하자, 그들이 주고받는 말소리에 서은은 천천히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니탕개가 맞습니다, 참군님.”

……

“니탕개가 여기서 출몰한다는 소리를 거짓인줄 알았더니…”

서은은 고개를 들었다. 니탕개는 눈앞에 나타난 사람들이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주고받자 망연한 표정을 짓고있다가, 문득 장정들의 뒤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한 사람을 발견하자 그만 경악을 금치 못한 듯 몸을 흠칫했다.

“이…이순신…”

그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수림을 헤치며 묘한 바람이 일었다. 바람에 베옷자락을 가볍게 날리며, 중후하고 위엄있는 목소리가 수림의 모든 적막을 깨버리는 듯 힘있게 울렸다.

“네놈이 이곳으로 도망온줄을 알고있었으나, 아직도 이토록 창궐할줄은 알지 못한터. 정녕 변방의 눈과 귀가 어두웠구나.”
“철퇴!”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니탕개가 호령했다. 장정들이 분분히 화살을 꺼내들었지만 니탕개의 수하들도 만만치 않았다. 한차례 치열한 접전이 있은후 뽀얀 먼지를 날리며 그들이 사라졌다.

“참군님, 어떡하오리까.”

장정 한사람이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이순신은 깊히 미간을 구긴 채 묵묵히 수림속을 보았다.

“궁한 도적은 쫓지 말렸다.”
“하오나 저놈을 놓치면 앞으로 더 큰 후환이 있을까 염려되옵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겠느냐.”

이순신의 눈길이 서은에게로 향했다. 그제야 언뜻 정신을 차린 듯 서은이 느리게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체념한듯 다소곳한 모습으로 그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미천한 목숨을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소녀 감히 은인의 함자를 우러러 듣고자 합니다.”

장정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미 여인이 갑옷차림을 한 것이 기이하기 그지없는  광경인데다가, 유창한 조선말까지 하니 더욱 예상밖의 일이라는 듯 그들은 서로 의문어린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들과는 달리 덤덤한 기색으로 이순신이 그녀의 모습을 잠깐 훑어보았다.

“철령에 조선인의 후예가 있다 들었더니 과연 명불허전이요. 처자가 무탈하니 다행이요. 어느  댁의 처자이신데 어찌 이같은 밤길을 여인 혼자 걷는단 말이요.”
“저의 신분은 중요치 않으려니와 방금 니탕개가 은인의 함자를 입에 올렸는데…”

그녀가 잠시 머리를 들었다. 살짝 고개를 기웃하고 이순신을 보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충남 아산에 계실 참군님이 어찌 이곳에 왕림하셨는지…소녀 그것이 궁금하옵니다.”
“처자가 그걸 어찌…”

낯빛을 흐리던 이순신이 잠시 말을 중단했다. 그의 눈빛이 서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실은…상중에 있는 몸이지만 이곳으로 도망친 니탕개의 소문이 들려와서, 그 후환을 제거하고자 가신들과 함께 남몰래 걸음한 것이요. 처자는 여기서 나를 본 것을 반드시 비밀로 해주셔야 하오.”
“알겠습니다. 소녀 그만한 경중은 아오니 염려치 마시옵소서.”

이순신은 머리를 끄덕이고 자리를 뜨려고 하다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서은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밤길을 혼자 갈수 있겠소. 댁이 어딘지 알려준다면 가신들을 일러 모셔다드리게 하리다.”
“아닙니다. 소녀 숲속 저쪽에 장막이 있으니 바로 되돌아갈수 있습니다.”

이순신이 다시 머리를 끄덕였다. 뒤이어 니탕개가 사라진 방향을 향한 그의 뒷모습에 어딘가 비장한 느낌이 어렸다. 서은은 고개를 숙이고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충무공 이순신…만력, 이성량, 이여백의 뒤를 이어 신충일과 이마두신부까지는 그런대로 받아들일만 했다. 하지만 여기서 이순신을 만나게 되다니…첫 관직에서 함경도의 수군만호를 거쳐 1583년에 울지내를 사로잡고 훈련원참군으로 지내다가, 부친상이 끝난후 복직되었지만 몇번의 백의종군끝에 1591년 유성룡의 천거로 장군과 군수의 직책에 부임한 이순신, 임진왜란때 일본수군을 크게 격파하고 23전 23승으로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신화를 세상에  남긴, 이때의 조선뿐만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용병에 능한 탁월한 해전군사가 랭킹 10순위에 꼽히는 최고의 영웅인물을 지척에서 보게 되다니…그녀는 차라리 이 모든것이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분명 꿈이 아니다. 지금쯤이면 충청도에 있어야 할 이순신이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은, 니탕개와 그 잔여세력을 소멸하여 후환을 제거하기 위한 우국우민의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왜 하필 그녀를 만나서 구하게 되었을까…여기에 그 어떤 필연적인 연관이 있는 것일까…

“참군님.”

그녀의 시야에서 멀어져가던 이순신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가 이순신을 향해 안타까이 말끝을 흐렸다.

“소녀 참군님께 긴히 드리고싶은 말씀이 있어서…”
“무엇이요. 귀 기울여 가르침을 청하겠소.”

이순신이 곧바로 몸을 돌려 그녀에게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그런 이순신을 한참 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참군님께선…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들을 믿으실수 있겠사옵니까.”
“같은 말을 하고,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요. 어찌 믿지 못하겠소.”

서은은 숨을 들이켰다. 천기를 누설하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두려운것은…이토록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버려, 그녀가 이 땅을, 그리고 이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해줄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는 것이다.

다시 시선을 든 그녀의 눈이 달빛아래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입가에 가볍게 호선을 그어 그토록 담담하게, 그리고 석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

“참으로 기이한 일이요. 이건 고금의 그 어떤 서책에도 있을수 없는 기이한 이야기구려…”

수림속의 큰 고목아래 자리를 잡고 앉은 이순신이 말했다. 그가 데려온 장정들은 멀리 주위에서 망을 보고있었고, 긴 이야기를 마친 서은은 고개를 들어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았다. 나뭇가지에 가리워져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인 듯 쉬임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참군님께서 여기로 오신 것을 제가 비밀을 지켜드리리다. 그러니 저의 이 이야기 또한 참군님께서 혼자만 아시고 반드시 비밀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알겠소. 하지만 참으로 기이한 일이어서 탄복하지 않을래야 않을수 없소. 명황실의 공주가 요동의 장군과 인연을 맺다니…또한 그 인연은 400여년후의 미래에서 온 인연이라니…참으로 놀랍고 경이로울뿐이요.”

그토록 의연하던 이순신이 경탄을 금치 못하는 것을 보다가, 그녀는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또한 저에게 있어서 믿기지도, 믿고싶지도 않은 놀랍고 경이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은즉, 저 또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용해야만, 앞으로 제가 갈 길을 모색할수 있습니다.”
“옳소. 과거에 연연해하지 말고 미래에 용기를 가져보도록 하시오. 운명은 자신이 만들어가야 하는 법이요.”
“참군님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서은은 다시 시선을 들어 아득한 수림 한끝을 바라보았다. 먼동이 훤히 터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제 신분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건 믿기 어렵다 해도, 부디 이것만은 믿어주십시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입니다. 지금의 조선과 명의 인국 관계는 저희 매 사람들의 운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며, 절대 이를 허술히 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
“지금까지는 조선이 여진을 토벌하고 명과의 친선을 강화해 왔습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조선은 왜란과 호란을 겪고 부득이하게 여진에게 머리를 숙여야 할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하여 참군님께서 준비하실 일들은…”
“왜란이라고 했소?”

문득 서은의 말을 자르며 이순신이 말했다. 서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돌아가신 율곡 이이께서도 왜란을 예견하시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셨소.”

이순신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서은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다가 무겁게 말을 이었다.

“많은 분들이 왜란을 예견하셨지요. 하지만 지금의 조선 조정은 그것을 막을만한 힘이 없습니다. 다만 곧 닥쳐올 피해를 최저한도로 줄이기 위해서라도…지금이라도 조선은 국력을 강화하고 군사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내 일개 종7품 참군이 무엇을 할수 있단 말이요.”

이순신의 말이 무기력하게 들려왔다. 서은은 그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라의 흥망에는 필부도 책임이 있다 하였습니다.”
“그 책임을 지게 나라에서 기회를 주지 않는구려.”
“그 기회가 곧 올 것입니다.”
“…”

이순신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그녀는 고목나무 사이로 멀리 밝아오는 동녘하늘을 보았다.

“참군님께선, 지금은 제사를 지내어 휴관중이시나 내년에 사복시 주부로 임명되었다가 여진족 침략이 잦아지면 함경도 조산보 만호로 천거되고 연후에 역시 여진족 침략이 잦은 녹둔도 둔전관으로 있다가 무고로 파직되어 첫번째 백의종군을 하게 됩니다. 연후에 낙향하셨다가 전라도 감사 이광 휘하의 조방장이 되며 후에 전라도 정읍현감, 진도 군수로 계시다가 임진왜란이 시작되는 전야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승진하시게 됩니다.”
“…”
“1592년부터 1597년까지 적은 군사로 수많은 적들을 상대해 연전연승하시다가 왜적의 밀서 충동을 간파해 군사를 동하지 않은 죄로 투옥되셔서 권율장군 수하에 또 한번 백의종군을 하시게 됩니다.”
“거 참 내 출세길에 기복이 심하구려.”
“제가 미래의 세상에서 역사를 공부하면서 유난히 익히 기억해두었던 참군님의 일생입니다.”

서은은 잠깐 고개를 돌려 이순신을 보았다. 후자는 고개를 떨군 채 무언가 사색하는 듯 보였다.

“1597년에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셔서 명량해전을 거친후 통제영을 옮깁니다. 그리고 1598년에 명의 수군도독 진린의 수군과 합세한후 노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지만…”

그녀가 갑자기 말을 중단했다. 그동안 생각을 정리한 듯 이순신이 얼굴을 들고 그녀를 향해 미미하게 웃었다. 그의 얼굴에 그 어떤 숙연한 광채가 빛나고 있어 서은은 잠깐 고개를 숙였다.

“인생 자고로 뉘 죽지 않겠소. 처자가 갑자기 말을 끊으니 그때 내 목숨이 다하는가 보오.”
“참군님…”
“장수로 태여나서 전쟁판에서 죽는 것이 바로 죽을 장소를 제대로 만난 것이요. 그리 생각하면 두려울 게 무에 있겠소.”

이신순이 다시 담담하게 웃었다. 서은은 머리를 숙이고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제가 알고있는 역사일뿐입니다. 어쩌면 이런 역사대로 가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평행우주가 있으니까요.”
“평행우주?”
“네, 이미 향후를 알고 운명을 알았으니, 그대로 행하지 않게 되면 운명에 변화가 올지도 모릅니다. 잘만 준비하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을수도 있고, 참군님은 그렇게 전사하시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참군님도 아까 말씀하셨잖아요…운명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요행을 바라지 않소.”

이순신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순간 서은은 머리속으로 찬바람이 훅 불어들어오는것 같은 느낌에, 처음으로 망연한 눈길로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요행이라니요…”
“지금까지의 조선의 일들을 본다면, 멀지 않아 처자가 말하는 왜란은 꼭 일어날 것이요. 나는 왜란에 맞서 싸울 것이며, 처자가 말한대로 끝까지 싸우다 죽는 것은 지금껏 내가 꿈꿔왔던 소망이요. 어쩌면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세상에 태여나서…꼭 완성해야 할 내 사명일지도 모르겠소.”
“사명…”

익숙한 그 단어에 서은은 그만 머리가 어지러워 졌다. 그녀의 고민을,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그녀의 오랜 고민을 이순신은 이토록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있었다.

“그렇소. 사명…나는 나의 사명을, 처자는 처자의 사명을 안고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요. 내 사명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라면, 처자의 사명은 그렇게 몸을 바치도록 내게 일러주는 것이 아니겠소.”
“…”
“나는 바꾸지 않겠소…아니, 내겐 세상을 바꿀 자격이 없소. 세상은 우리 한사람이 바꿀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또 우리가 바꾼다 하여, 그 세상이 꼭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누가 장담할수 있겠소.”

머리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그녀는 몸이 해나른해졌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걷잡을수 없이…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어쩌면 세상을 바꾼다는 허황한 꿈보다는, 이런 내 사명에 충실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보람있는 일이 되지 않겠소. 나는 세상을, 운명을 바꾸겠다는 큰 꿈을 가지지 않겠소. 하지만 그렇다고 내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진 않겠소.”
“…”
“난 그저, 죽을 때까지 온힘을 다해 노력하겠소. 나의 흔적을, 나의 충심을 이 세상에 남길수 있다면.”

역시…

그녀가 웃었다. 허하고도 슬픈, 그리고 오랜 시간 고민을 해온 자신이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동쪽에서 비쳐 들어오는 붉은 햇살을 바라보며 그녀가 넋을 놓고 허구프게 웃었다.

허나…

그녀는 다시 울었다. 기억은 그녀에게 그녀가 저지른 일의 무게를 알려주었고, 시간은 그녀에게 그녀와 그 사이의 채울수 없는 공간을 알려주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였지만, 하늘은 그런 그녀를 외면하는게 분명했다. 아니면 떠오르는 아침해가 저토록 슬플수가 없으니까.

"꼭 돌아가야 한다면 네 소신대로 하거라. 네 소신이 천기를 누설하지 않고 네게 소중한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으며, 이 세상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도 네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켜낼수 있다면 말이다."
"저의 소신이…틀렸다는 말씀이십니까."
"틀리지 않았다. 다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느니. 세상을 다 가지려고 하니 어찌 어렵지 않겠느냐."

철령 무당 할머니와의 대화를 그녀는 떠올렸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그녀는 하염없이 울었다. 세상을, 운명을 쉬이 바꿀수는 없었다. 그저 자신의 욕심을 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이 너무 어려워 그녀은 한없이 슬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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