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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 그럼요. 회사 좋다니까요. 네네 면접 보러 오세요. 몇시쯤 올수 있으세요? 아. 네네. 일단 면접을 보고, 다른 회사도 있으니까요. 나이가? 아 네네. 좋군요. 너무 어리면 오래 버텨주질 않고 또 나이 드신 분은 회사에서 잘 안받으려구 하죠. 네네. 그럼요. 기숙사도 있고, 다 있습니다. 합격되면 짐만 간단히 챙겨가지고 오시면 됩니다. 비자가? 네네. 탑아웃소싱이라고 바로 간판이 보이거든요. 잘 찾지 못하면 다시 전화주시구요. 네. 네 그럼. 기다릴게요."

누군가가 또 일자리를 찾아 전화를 한 모양이다. 영훈대리는 능숙하게 전화를 받는다. 아마 천만번쯤 했을만한 멘트를 얼음판에 공 굴리듯 한다. 

"자. 정철산씨."

수화기를 내려놓고 영훈대리가 그를 똑바로 본다. 이제 영훈대리는 그가 귀찮은거다. 아니, 처음부터 귀찮은거였는데 발톱을 감춘 맹수처럼 다만 감추고 있다가 이제 감추기가 지겨워 드러내는거다. 

"돌아가세요. 가서 기다리시고, 때가 되면 연락을 드릴거예요. 보시다싶이 저 바쁩니다. 상대하고있는 회사만 해도 열군데가 넘고 관리해야 할 인원이 몇천명이예요. 언제 제가 한가하게 정철산씨와 마주앉아 입씨름이나 할 시간이 없어요."

음식에 앉은 파리를 쫓듯 이제 영훈대리는 대놓고 그를 내쫓고 있다.

큭.

그가 웃는다.

영훈대리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본다.

졸음이 쏟아진다.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졸음이 밀려오기로 했나보다. 그는 썰물처럼 밀려오는 졸음을 막느라 잠간 숨을 고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영훈을 바라본다.

"아웃소싱에서 비자가 안되는 사람을 쓰는건 위법행위 아닙니까?"

그의 목소리가 단단해진다. 

"뭐라구요? 비자가 안되는 사람? 불법? 이 사람이 이거 큰일날 소리를 하고 있네. 이봐요. 정철산씨. 여기는 당신네 나라 아니예요. 법치 국가 대한민국이란 말이예요. 아무 말이나 하다간 당신 잡혀가요. 사정이 안됐다고 오냐오냐하고 봐줬더니. 허참."

영훈대리의 얼굴이 붉게 이그러진다. 마치 그날 순식간에 사색이 되던 큰누나의 얼굴을 닮은듯한 얼굴이다.

"허용택씨 여행비자로 와서 회사 야간고정으로 일한거 아닙니까? 저 허용택씨랑 한 기숙사를 쓰고 있다는거 대리님 기억하실텐데요."

"하하. 이 량반."

애써 평정을 유지하는 듯 하지만 영훈대리의 손은 가늘게 떨고 있다. 언젠가 술을 먹고 거하게 취했을 때였다. 용택이가 형님, 하면서 주절거렸었다.

"난 회사에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라우. 왜 그런지 아오? 비자. 그 망할넘의 미자도 아니고 비자라는 것땜에 회사에서도 아웃소싱에서도 기여야 하는 신세가 댔소. 김영훈이. 참 재간두 있구 담두 큰 넘이요. 다른데서누 겁이 나서 못 쓴다는거 그 넘이 어떻게 회사하구 해놨는지 아무 소리 없이 일마 잘하라재오? 내 그래서 지금 형님네보다 더 힘들게 야간 하지만두 형님네보다 돈은 더 적게 받소. 최저시급 아래로 뚝 떨궈 주는 조건으 내가 받아들였으니까나 머 어찌갰소. 그렇게라도 돈을 벌어야지. 고마운건지 아닌건지 하하. 그래두 형님, 난 그 간사한 여우같은 영훈이 새끼땜에 집두 사구 돈두 모았소. 이제 쪼곰만 더 하구 나두 돌아가야지. 불법으루 있자이 돈벌기두 힘들구 맨날 죄인처럼 숨어살아야 되구 어디 이게 사람이 살갰소. 전철두 못타겠구, 경찰옷만 보면 기분이 더럽구. 하다못해 법인택시를 봐두 피하게 된다니까. 하하."

그때, 그냥 그렇구나. 참 너도 안된 넘이구나 하면서 그 이후로 그는 용택이와 좀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 며칠, 밤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그는 이 모든걸 자신의 비수로 갈아 하나씩 품에 챙겼다. 절박한 사람에게는 어떤것도 자기를 위해 타인을 찌를 칼이 된다는걸 이 며칠동안의 시간동안 그는 느꼈다.

"당신말이야, 같은 동포끼리, 것두 용택씨는 당신하구 한 숙소에서 같이 밥먹구 같이 자는 형제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그 사람 뒤통수를 치는거요? 용택씨가 지금 이걸 안다면 과연 당신을 가만두려 할가? 그렇게 안봤는데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구만."

누나가 서랍에서 정통편을 꺼내 먹고 있다. 누나의 얼굴은 어떤것도 비워버린 듯 무덤덤하다.

"그리구 그걸 신고하면 나야 벌금정도겠지만 용택씨는 아마 당장 강제출국당할걸? 그래두 좋소? 당신 원하는게 뭐요?"

원하는게 뭐냐고 했다. 

마치 그는 지금 내가 원하는걸 다 줄것처럼 말한다.

핸드폰이 부르르 몸을 떤다.

"여보, 주성이 과외 어떻게 할가요? 당신 힘든건 알겠는데 아무리 줄인다 해도 영어하고 수학은 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다른 애들처럼 태권도나 악기는 못시킨다해도 이건 정말 기본에 기본인데."

안해의 문자다.

"이따가 전화할게."

그가 문자를 보낸다. 

"어머니 요양원비도 내야 돼요. 당신 힘든건 알겠는데…누님은 어떻대요? 나도 요새 바쁘다보니 안가봐서. 당신 힘들죠? 밥 잘 챙겨잡숫구."

안해는 문자 서너마디에 한번씩 당신 힘든건 알겠는데를 보내온다. 그래, 안해도 힘들 것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의 고통과 힘든 삶의 무게를 리해하는건 어쨌든 안해일 것이다. 숨통을 옥죄여 가는듯한 고통속에서 발버둥질치는건 그만은 아닐 것이다. 그와 연결된 모든 사람이 다 그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게 같이 이 힘든 세상살이를 헤쳐나가야 하는 전우 같은 안해라면 더할 것이다.

"지금 쫓겨갈수는 없소. 지금 가면 개털인데. 그럴수는 없소."

어제 아침, 용택은 그렇게 말하며 집을 쌌다. 불법 단속이 덜한 시골에 가서 풀을 베는 일을 하기로 했다면서 그에게 손을 흔들고 떠났었다.

가슴 한구석이 아리다.

그는 용택을 불법체류로 신고할수 있을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렇게까지는 할수 없겠지만 그보다도 그건 그의 량심의 문제가 아니라 김영훈이가 그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불법인 용택이는 차치하더라도 불법을 취업시킨게 탄로나면 아웃소싱은 벌금을 피하지 못할것이고 잘못하면 아웃소싱자체가 한동안 문을 닫는 사태가 올 것이다. 김영훈은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의 입을 막는 돈보다 몇십배는 더 큰 손실이 날 일을 그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걸 알고 그도 이 칼날을 꺼낸 것이다. 서로 상대방의 패를 보고 있기는 그나 영훈대리나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는 힐끗 영훈을 삼초동안 바라보았다. 영훈의 얼굴은 일그러져있기는 하나 단단하다.

이 정도로는 약하다.

아, 끝내 마지막 칼을 빼야 하는것인가. 

상대와 싸울때는 반드시 상대가 반격할수 없는 한방, 결정적인 한방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을 끌지 않고 단번에 쓰러뜨려 항복을 받아낼수 있는 한방.

그는 침을 삼킨다.

이것만은, 정녕 이것만은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으로 오면서 그는 저도 모르게 이 마지막 결정타같은 비수를 가슴에 기어이 가슴 안쪽 어디엔가 단단히 질러넣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인간은 어디까지, 얼마나 더 야비해져야 하는건가.

얼마나 더 바닥으로 내려가고, 얼마나 더 잔인해져야 비로소 밥먹고 잠을 자기에 부족함없이 살아갈수 있는건가. 

그는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지글지글 한여름의 태양이 높이 솟아 있다. 그 뜨거운 열기 아래, 나무들은 잎사귀마저 생기를 잃고 축 처져있다. 이제 얼마나 더 저 뜨거움을 견뎌야 비로소 여름은 물러갈것인가.

                                                                      6

"선미 다시 한국에 온건 아십니까?"

그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그렇게 툭 던진다.

"지난 봄에 선미하고 주말나들이로 아마 동해로 갔었죠? 거기서 게를 드시고."

그는 칼날을 들어 영훈의 앞가슴을 겨눈다. 

순간적으로 영훈이 당황한다.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기차여행이였다죠? 그리고 한달후에 선미한테 큰 돈을 입금해주셨더군요. 선미는 바로 중국으로 들어가고."

"아니,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와. 세상 순진한줄 알았더니 순 협박범에 사기군이네. 당신 내 뒤를 캐고 다닌거야 뭐야? 뭐가 더 있는데?"

영훈대리가 소리를 지른다. 이제 그는 이성을 잃고 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득 하고 불을 붙인다. 애써 평정을 찾으려 하지만 담배를 쥔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을 그는 놓치지 않고 있다.

정선미. 

현실의 모든 것을 잊고 싶어서였을가. 한때, 그는 회사동료였던 한고향 여자이며 그보다 일곱 살 아래인 꼭 마치 석류처럼 가슴에 무언가를 앙당그려 품고 있는듯한 선미와 서로의 어깨를 기댄적 있다. 허물어질 것 같이 위태위태한 여자 정선미, 그러나 정작 기댄건 그녀가 아니라 그였다. 어떻게 술자리가 만들어졌고, 그와 그녀는 서로의 상처를 꾹꾹 가슴에 눌러 튀여나오지 않도록 압축시켜가며 술을 마셨고, 서로의 피곤한 몸을 싸구려 모텔방에서 거슬러 오른적 있었다. 그도, 그녀도 지쳐있었고, 온기가 필요했던 탓이리라. 술이 거나하게 되고 그가 앞장서서 모텔로 향했을 때, 그녀는 다만 묵묵히 따라왔다. 얼마든지 그녀는 그를 외면할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를 체념한 듯 따라왔고, 모텔에 들어와서는 또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안되면 씻고 나란히 누워 아라비안나이트처럼 들리겠지만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이나 자려 했는데, 한꺼풀 벗기자, 이번에는 그녀가 서둘렀다. 행사를 치르듯 일을 치르고 그녀는 쿡쿡 웃었다.

"사는게 너무 재밌지 않나요? 쿡쿡."

그녀가 히들히들하며 웃는다.

"너무 재밌어서 미칠 것 같아요. 너무 재밌어요."

마구마구 웃어대는 그녀의 눈에서 미처 주체하지 못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가 그와 만나기로 한 주말, 말도 없이 사라졌었다. 얼마후, 그가 그녀에게 기댈 필요가 없을만큼 스스로 단단해 졌을때쯤, 그녀는 그를 찾아왔고 술이 한잔 들어가자 허구프게 웃었다.

"오빠, 나 실은 저번 주말 영훈대리랑 동해 보러 갔었거든?"

하고 말했다.

"오빠, 나 미친년이지? 근데 오빠, 너무 갑갑해서 죽을 것 같았어. 가정있는 여자가 무슨 짓이냐고 하겠지만, 나 없이는 한걸음도 굴러가지 않는 집안 사정이라는게 너무 숨막혀서, 그래서 영훈대리가 선미씨 바다 보러 가실래요? 하는데 웬지 거절할 수가 없었어. 그전부터 그넘 날 보는 눈빛이 야리꾸리 했거든. 알면서 따라간거야. 예상대로지머. 후회는 안해. 근데, 아 난 아무래도 재수는 더럽게 없나봐. 그게 구멍이 났나. 하필 글세. 아무튼 그렇게 됐는데. 나 중국 간다? 그렇게 가고 싶었는데 맨날 티켓값 고민하면서 못갔잖아. 근데 이렇게 가게 됐다? 영훈대리가 천만원을 입금해주더라구. 천만원. 아아. 몇 달을 벌어야 되는 돈이야? 이렇게 말하면 쓰레기처럼 들리겠지만 난 그 돈이 내 통장에 입금 되는걸 확인하고 동그라미를 세여보는 순간에 웬지 행복하더라구. 난 미쳤나봐. 오빠. 집에 애도 있고 우울증에 걸려 스스로를 창살없는 감옥에 가두고 사는 남편도 있는데. ㅋㅋ 오빠 내가 어떻게 홱 돌았나봐. 근데 말이야. 그거 알아 오빠? 나절로도 나를 어쩔수가 없어. 내가 처한 현실을 내가 어찌할수 없는것처럼 나 자신을 내가 어쩔수 없어. 유식한 말로 뭐라 그러더라? 자기 컨트롤? 난 그게 전혀 안돼. 나 없으면 금방 죽어갈 것 같은 남편도 버릴수 없고, 그럴만큼 독하지도 못하고, 그럴거면 능력이라도 있어서 돈이라도 팡팡 벌어야는데 가진것도 없고 할줄 아는것도 없거던? 애가 조금만 더 커서 자립하면 훅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어차피 세상에 대한 미련같은건 없어. 하지만 지금은 죽을수도 없잖아. 다른 사람이야 뭐 그럭저럭 살아갈테지만 내 속으로 낳은 내 새끼는 내가 책임져야 잖아. 이런. 죽을수도 없는 신세라니. 아아. 더럽다. 세상."

그날, 선미는 끝없이 술을 마셧고, 횡설수설하다가 끝내 술상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그는 그날 선미를 데리고 모텔에 가서 팔베개를 하고 재워줬다. 웬지 그날은 선미의 머리카락 하나도 건드릴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그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깨여 눈을 떴을 때, 선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얼마전, 같은 회사에 다니는 선미의 친구한테서 선미가 다시 돌아왔고 서울에서 파출부일을 한다는걸 듣게 되었다. 

"당신 원하는게 고작 한달 좀 더 되는 월급 그거 아니야? 그거만 주면 이런 더러운 협박질 안하고 당신 바로 내 눈앞에서 사라질거지?"

영훈대리가 그를 노려본다.

고작 한달 좀 더 되는 월급이라고 했다. 

고작 돈. 고작 얼마 안되는 그깟 돈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게 때론 사람의 숨통을 조이기도 하고, 자존심이나 량심따위는 회오리바람처럼 쓸어올려 구중천에 팽개쳐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영훈은 알가.

"당신. 이 자리서 맹세하소. 내가 당신 한달 반 월급 넉넉히 쳐서 줄테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소. 그리구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아니 적어도 이 근처에서는 알짱거릴 생각을 마소. 그땐 내가 당신을 밟아버릴테니까."

영훈은 입술을 깨문다.

아마, 그는 지금 숟가락을 깨무는 심정이리라.

영훈이 그에게 종이와 펜을 내민다.

자존심, 존엄, 그런건 이미 구중천에 날려보낸지 오래다.

먹고 사는것에 그런건 하등의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런걸 지킬만큼 그는 여유롭지 못하다. 이 문에 들어설 때, 그는 이미 모든 껍질을 벗고 알몸으로 세상에 맞설만큼 뻔뻔해진 터이다. 

그는 자신의 계좌번호를 적어 영훈대리한테 내민다.

"자. 그거면 퇴직금까지는 몰라도 두달치 월급은 될테니 당신은 하나도 손해본게 없어요. 세상에. 나 재수 옴 붙었나봐. 얼른 챙겨가지고 꺼지세요."

띠리링 문자가 날라온다.

7백만원, 두달치가 넘는 월급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그는 자신이 한 마리의 독사처럼 느껴진다. 만져보면 차갑고 물었다하면 독을 뿜고 슥 한번쯤 흐린 눈으로 상대를 흘겨보고 스르륵 사라지는 아무 감정없는 독사 말이다. 아아. 언제 내가 이렇게 되었나. 아니, 뱀에게도 감정이 있을지 모른다. 뱀도 한때 자기가 기대고 품었던 여자를 방패처럼 내세워 자신의 먹이를 챙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파렴치한 물건이 있다면 그라는 인간이지 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감정따위는 버려야만 한다. 벼랑 끝에 서있는 사람에게는 버리지 못할것이라는건 없다. 기숙사에 들어가서 푹 자고 싶지만, 그는 안다. 어제밤, 이미 다 싸놓은 짐을 들고 이제 길을 떠나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여기를 떠나야 한다. 상대를 밟았다면 언제든 다시 밟힐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김영훈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다.

"돼지대가리 사서 고사라도 지내야 될가부다. 에이 퉤. 퉤. 재수가 더럽게 없더라니. 쓰레기같은."

그의 등뒤에서 침뱉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조용히 문을 닫고 스적스적 밖으로 나온다.

밖은, 햇볕이 길게 뻗어있다. 그는 바뀌지 않는 신호등을 기다리며 이마살을 찌프린다. 피곤하다. 몸이 이대로 휘청하고 쓰러지면 다시 일어날수 없을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국제전화다. 

"여보, 누님이 돌아갔대요. 금방전에 돌아갔나봐요. 자세한건 모르겠고, 혈압이 갑자기 올라서 구급을 했는데 늦었나봐요. 당신 올수 있죠? 여보. 여보. 너무 속상해 하지는 마세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말바른대로 당신만한 동생이 어디 있어요. 다들 그렇게 말해요. 여보, 여보 내 말 듣고 있어요?"

안해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휘청, 그가 허물어지는 몸을 단단하게 잡느라 정신을 가다듬는다. 

                                                              7

거리에는 차들이 분주히 오간다. 여자 두명이 맞은편에서 양산 하나를 나눠쓰고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참새처럼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한다. 한명은 민트빛 민소매를 입었고, 다른 한명은 청량한 흰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다. 그는 넋을 잃고 두 여자를 바라보다가 자신이 지나치게 그녀들을 눈주어 보고있음을 자각하고 얼른 눈길을 돌린다. 하늘은 파랗게 개여있고, 자글자글 태양이 뿜어내는 열기에 땅위의 모든 것이 끓고 있는듯하다. 그는 이것이 과연 현실일가. 나는 지금 꿈을 꾸는건 아닐가 잠시 허둥거린다. 

무슨 영화포스터인가 맞은켠 건물벽에 걸려있는 프랑카드가 자꾸만 환각처럼 느껴진다. 그는 애써 눈을 쪼프리며 그것을 읽어본다.

신호가 바뀐다. 그는 길을 건넌다. 해살이 눈부시고 온갖 아름다운 색채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여자들이 그의 곁을 련이어 지나간다. 지나가는 여인들의 살결에서 싱그러운 향기가 난다. 조잘조잘 한무리의 아이들이 뜨거운 햇볕속을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신나게 질주한다. 

세상은 그토록 아름답다.

눈물겹도록 눈부신 세상.

누구도 그 안을 헤집고 들어가 바닥을 들여다 보기전에는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이라니. 

그는, 그 밝은 세상아래, 현기증 나도록 아름다운 세상아래, 눈부신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우뚝 서있다. 세상은 이토록 눈부신데, 그는 지금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 이 아름다운 빛들이 존재하지 않는, 침묵만큼 어두운 동굴속으로 깊이깊이 숨어들어 거기서 꺼이꺼이 소리지르며 세상만큼이나 차갑고 단단한 바위를 손바닥으로 두드려가며 실컷 울어보고 싶다.     ( 끝 )

                                                                                                                                                    

작자의 인사말:

'우리들의 천국 ' 을 게재할수 있도록 공간을 내여 준 ' 우리나무 '사이트와, 지금까지 애독하여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날씨가 추워지는 군요.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하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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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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