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래미가 재미나는 련애소설을 발견했다고 자랑했다

– 내가 100년을 싱글로 보내는 걸로 두 사람의 좋은 결과를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럴거야

– 미친년. 공주와 왕자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거기까지겠지. 난 그 이후의 화면이 다 보이는데? 

– 현실과 다를수 있지만, 소설을 읽으면 막 빠져들지 않아요?

– 아니, 현실이 생생하게 보여서 몰입 안됨

– 소설이 허구라 해도,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기쁨은 진실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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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뭐길래

오소희 작가는 결혼을 하기 전에 사랑은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련애, 절로 벌어지는 사건, 전뇌의 변연계에서 도파민을 마구 밀어내주며 사랑의 행위가 절로 일어나도록 협조해주는 짧은 시간. 작가님은 절로 벌어지는 사랑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신의 령역이라 했다

결혼 후 사랑은 행하는 것이란다. 일상, 지속적인 노력. 그 어떤 신경전달물질의 협조도 없이 의식적으로 행해야 한다. 도파민이 남발되던 시기의 희미한 기억을 안고. 혹은 희미한 기억조차 소실된 나날, 지겹거나 가쁜 숨을 한 모금씩 토해내면서

사랑이 신의 령역과 인간의 령역으로 나뉨을 모르는 아이는 소설에도 쉽게 빠져 기뻐하고 동경한다. 인간의 령역에서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사랑을 유지하는 어른은 찬물을 끼얹으며 꿈을 깨라고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누가 응원한다고 하여 이루어지고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하여 거저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또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지 않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선택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 없는 말이다.

갓난 아이를 돌보면서 천천히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생기는 것처럼, 두 사람도 서로 의지하고 돌보면서 살다보니 사랑이 익어간다는 말이다. 사랑은 ‘경작’되는 것이라 했다. ‘당신을 사랑하오니 결혼해주세요’라고 말한다면 거짓이라고 한다. 함께 경작해야 할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함께할 상대를 정하기 전에 생기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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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경작, 아낌

아이가 울면 먹이를 주고 기저기를 바꿔주고 재워준다. 아이가 울면 왜 우는지 살펴보고, 즉 아이의 고통을 헤아려보고, 그 고통을 덜어주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사랑은 그 사람의 고통을 사무치게 느끼고 그 고통을 완화하려는 즉각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강신주 작가가 말했다. 사랑은 아끼는 거란다  

그 사람이 배가 고프면 그에게 밥을 해준다. 그가 배고프면 나도 배고프기 때문이다. 그가 외로워하면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외로우면 나도 외롭기 때문이다

사랑은 일상속에서 경작된다. 배고픔의 고통은 밥을 먹은 후 몇시간만 지나면 느낀다. 졸림의 고통은 깨여난지 열몇시간이 지나면 느낀다. 심심하기도 하고 불만을 털어놓고 싶기도 하다. 이렇게 끊임없이 느끼는 고통을 지속적으로 완화시켜 주려는 노력이 사랑으로 경작된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는게 세상사라 고통을 덜어주고 싶어도 속수무책인 경우가 있다. 강신주 작가님은 그럴 땐 “힘 내” 대신 “내가 힘 낼게”라고 하는게 사랑이라고 한다    

불행히도 잠시나마 고통을 완화시키려 해도 그렇게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딸 대신 시험을 봐줄 수 없고 아내 대신 아플 수 없고 남편 대신 일찍 출근해 일할 수도 없다. 상대방의 고통을 느꼈지만 완화시켜줄 수 없다면 노심초사하게 될 뿐이고, 그래서 그 고통을 침묵으로 더 아프게 받아들이게 된다. 

“파이팅!”이라고 상대방에게 외치는 사람은 마음이 홀가분할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상대방의 고통과 무거움은 더 가중될 것이다. “파이팅!”이라는 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상대방의 고통과 무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어쩌면 당사자보다 더 고통스럽고 더 무거울 것이다. 

바로 여기서 사랑의 놀라운 기적이 탄생한다. 아빠가 딸보다 더 속상해하면 그 런 아빠 덕분에 딸은 가벼움을 얻는다. 아내보다 더 아파하는 남편 덕분에 아내는 편안함을 얻는다. 남편보다 더 힘들어하는 아내가 있기에 남편은 활기를 얻는다.

아빠의, 남편의, 아내의 고통을 잠시라도 완화하기 위해 딸이, 아내가, 그리고 남편이 외치는 것이다 “내가 더 힘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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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균형, 자중자애와 애지중지

아이 울음 소리만 들어도 배가 고픈지, 오줌을 쌌는지, 열이 나는지 바로 알아채는가 하면, 젖을 먹여도 기저기를 바꿔도 울음이 그치지 않아 당황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이 어떤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차리는건 쉽지 않다 

사랑에는 다섯가지 언어가 있다고 한다. 어떤이는 긍정적인 말에, 어떤이는 정성들여 준비한 순간에, 어떤 이는 의미 있는 선물에, 어떤 이는 자발적인 행동에, 어떤 이는 스킨십에 감동을 받고 사랑을 느낀다고 한다. 본인이 선물을 좋아한다고 하여 상대에게도 선물만 하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상대는 긍정적인 말을 듣고 고통을 완화하는 타입일 수도 있다

관심을 가지고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상대가 어떤 고통을 느끼는지, 어떤 완화방식을 원하는지 포착하기 어려울 것이다.처음에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그 사람을 보고 있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무뎌진다. 정신을 차리고 노력해야만 한다, 지속적으로

하지만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그 사람은 행복할거라는 오만에 빠지면 위험하다. 아끼는 대상이 기쁨과 유쾌함을 유지하는 데에는 수많은 조건이 어우러져야 한다. 우리는 그 수많은 조건 들 중 하나일 뿐이다

농부가 벼를 기르는 일을 비유로 들어보자. 농부는 모내기를 한 뒤 비가 오면 물꼬를 터죽는 일을 해야 한다. 농부가 할 일은 오직 이것 뿐이다. 나머지 조건들은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해가 과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게 벼에게 빛을 쬐어주어야 하고 비가 내려 과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게 벼를 촉촉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아무리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논에 나간다 해도 농부는 해, 비, 바람, 땅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다른 연들이 내가 아끼는 사람을 아껴줄 때 푹 쉴 일이다

누군가를 애지중지하기 위해서 우선 자중자애하라는 말이다. 자신의 고통을 알아차리고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 고통을  완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때에 나타나 적절하게 상대를 아끼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아랭 바디우는 <조건들>에서 “사랑은 융합적이라는 생각”이나 “”사랑은 희생적이라는 생각”을 철저하게 비판했다. 처음 만났을 때 두 사람이 두 명의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관계가 지속되는 한 두 사람은 두 명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어느 한 사람도 자신의 자유를 포기해서는 안 되고, 어느 한 사람도 상대방의 자유를 무력화시켜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스스로 주인공이어야 하고, 동시에 상대방도 주인공으로 대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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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아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신의 령역인지 인간의 령역인지, 상대가 느끼는 고통이 무엇인지, 내가 덜어줄 수 있는 고통인지,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완화하려 하는지, 다른 연이 아껴주고 있는건 아닌지, 나의 아낌이 상대의 자유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경작할 일이다

어려운만큼 늘 아쉽다

어리고 젊을 때에는 환상에 빠지게 냅둘걸, 공주와 왕자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결말에 만족하게 할걸, 깨질 땐 깨지더라도 동경하고 꿈 꾸게 할걸, 괜히 꼰대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현실이랍시고 찬물을 끼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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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신영복의 엽서>

강신주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

오소희   네이버 블로그  태평양의 끝

Dr. Gary Chapman   The 5 love langu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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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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