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부터 아이 중학교 입학을 진지하게 고민해왔다. 어느 도시에 살면서 어느 중학교를 다닐지, 국내 대학을 목표로 할지, 국제학교를 걸쳐 외국 대학에 갈지.

어찌 하다보니 지금 사는 도시에는 호적을 두고 있지 않다. 여기에서 중학교를 다녀도 국내 대학에는 진학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아빠와 아이의 호적을 둔 도시는 너무 화려하여 중년이 된 아빠엄마가 다시 발을 붙이려니 주춤하게 된다. 엄마의 호적은 살기 좋고 대학입시 경쟁이 치렬하지 않으나 교육이 후지기로 알려진 도시에 있다.

그러다보니 고민의 궤적은 대개 이러했다. 그래도 국내 대학인지, 외국 대학인지 선택할 기회를 본인에게 줘야 하지 않겠어, 부모는 적어도 대학입시 자격은 마련해줘야지. 아빠 호적지로 가자.   지금이랑 비슷하게 살수 있고 대학입시도 되는 곳으로.

그런데 그곳은 어른도 아이도 경쟁이 너무 심해. 아이는 대학입시 지옥, 어른은 평생 일해도 살 집을 장만하기 힘들어. 우리가 서로를 마주 보면서 얘기 나눌 여유가 있겠나. 엄마호적지로 가서 편안하게 웃으며 살자. 

그런데 그곳은 너무 안일해. 한창 세상을 알아갈 나이에 너무 쉬운 길로 가다가 선택폭이 점점 좁아지지 않을가. 아예 그냥 여기 살면서 외국 대학으로 가자. 

그런데 이곳은…

처음에는 한번 정하면 거의 한달간 유지하다가, 일주일간 버티다가 나중에는 하루에 세번씩 다시 정하기를 반복했다. 어디든 합의가 되면 잠시 환한 얼굴로 있다가 또 번복하면서 찌그리고.

확실하지 않은 미래 앞에서 우리는 단 가마안의 개미들처럼 자신을 들볶고 서로를 들볶았다. 20년이나 산 도시의 호적을 따지 못한 자신이 못나보였고 다른 곳에서 선뜻 새롭게 시작하지 못하는 내가 비겁해보였다. 똑바로 못산것 같은 자괴감도 들었다. 

학교를 두루 알아보면서 학과 성적 기준으로 학생을 뽑는 현실에 직면해 영어라도 과외를 꾸준히 시킬걸 하는 회의감이 들었고 내 아이를 망칠가 두려웠다.

점점 불안해하다 문득 매우 오래동안 음악을 듣지 않았고 책을 읽지 않았으며 남편과의 대화는 진학이 거의 전부였음을 발견했다. 행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서로 의견이 달라 행복하지 않았다 쳐. 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고 합의를 보고 유쾌한 마음으로 같은 선택을 내리기도 했는데 그 유쾌함은 잠시일뿐 또다시 선택을 번복하고 오리무중에 빠지는건 왜서일가.

오뚜기처럼 중심이 잡혀야 하는데 그게 안돼있었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오락가락 하는건 이 도시의 무언가가 두려워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저 도시로 갈아탔을뿐 저 도시가 좋아서가 아니였던것이다. 호적이확실한 도시로, 여유가 확실한 도시로, 교육자원이 확실한 도시로, 다시 호적이 확실한 도시로. 이런식이였다. 눈앞의 두려움 쪼각을 확실하게 해소해주는 도시를 '유쾌'하게 정하고 잠시 발편잠을 자려 했지.

문제는 도시나 학교에 있는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게 뭔지 들여다보지 않은 내게 있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정녕 필요한 것이 뭔지 살피지 않은 내게 있었다.

***

안되겠다 싶어서 오소희 작가님(의 책)을 찾았다. <엄마의 20년>. 

책에서는 성적분리불안을 극복하자고 한다. 아이의 성적을 내 성취로 착각하는 병을 말이다. 나는 나이고 아이는 아이이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나랑 상관 없다. 아이가 대학에 안가더라도 내 가치가 사라지는게 아니다. 어떻게 극복할가?

첫째, 4차 산업혁명을 믿을 것. 월급쟁이가 줄어들고 프리랜서, 자영업, 해외취업가가 늘어나는 시대에 중요한 능력은 체험, 창의력과 추진력. 다양한 체험을 하고 '한번 이렇게 해볼가' 아이디어를 얻고 끝까지 추진해서 현실로 구현해내는 능력, 이것이 4차 산업혁명시대에 꼭 필요한 3종 능력세트라고 한다.이 3종 세트는 우리 사회가 우등생에게 요구하지 않는 능력이라 입시교육에 적응하는 동안 퇴화한다는 무시무시한 현실. 체험 대신 교실에 앉혀 두고 창의력 대신 주입식 암기를 강요하며 스스로 추진하게 하는 대신 목표를 정해주고 따라오게 하니.

둘째, 내 아이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것. 입시육아와 맞는지, 본인만의 능력은 무엇인지, 남들과의 비교속에서 아닌 체험 속에서 찾아내고 사는 맛을 느끼면서 살기. '사는 맛'을 느껴본 아이만이 스스로 '사는 맛'을 느끼며 살 궁리를 하니, 입시교육은 억지로 밀어넣을판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뚜렷한 목표가 있을때 자진해서 진입해야 하는 판이므로 그냥 믿고 지지하기. 

셋째, 수시로 식탁을 빠져나와 전체를 조망할 것. 식탁만 보고 있으면 내 접시와 주변 접시만 보이고 내 접시에 더 많은걸 담으려 하니 잠시 빠져나오라고 한다. 내가 잘 살고 있음을 믿고 내 아이가 잘 자라고 있음을 믿으며 내가 해왔던 어떤 것도 급하게 버리지 말고 남이 하는 어떤 것도 갑자기 따라하지 말며, 이렇게 또 한번 믿음을 주라고 한다: 아이는 괜찮아, 밝고 건강해, 아무 문제가 없어. 나도 괜찮아, 내 삶을 잘 주도하고 있어.

넷째, 불안한 티파티, 학부모모임에 자주 가지 말것. 아이들을 비교하면서 안도하거나 시기하거나 담합하지 말고 정보를 놓칠가 전전긍긍 말고. 우리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건 한학기 뒤면 필요 없어지는 정보가 아니라 평생에 걸쳐 추구하는 가치, 그 가치에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지속적인 활동, 그리고 그것을 함께 해주는 친구들이다. 

책에서는 수험생 엄마에게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한다. 내 활동을 찾아 꾸준히 하면서 아이에게는 이렇게 하란다.

– 아이가 밥을 거르지 않도록 챙겨주기

– 아이가 알람을 듣지 못할땐 깨워주기

– 아이가 보내달라는 학원에 보내주기

– 현재의 성적과 스펙으로 갈 대학을 추천받기

– 가족회의를 하되 최종적으로 아이가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게 하기

– 준비 과정은 아이가 주도하게 하기

학교에 아이를 끼워 맞추는게 아니다. 특정한 학교가 인생의 목표가 되여 목표 대학에 맞는 성적과 스펙을 하나씩 모으는데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몽땅 써버리는 고리적방식이 아니라 행복한 가족의 시간 속에서 아이가 능력껏,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개성 있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대학의 필요성을 느끼면 그동안 자신의 세계에 모아둔 것들에 걸맞는 대학을 찾아 지원하는 방식이다. 학교는 어디까지나 아이 인생의 목표가 아닌 '수단'이다. 수단으로 대학을 선택한 아이는 어떤 대학에 가든 아주 잘할 것이다. 뚜렷한 목표 없이 오직 대학을 목표로 온 아이들 사이에서는 더우기.

그리고 또 조언한다. 더 없이 실용적이면서 필요한 것. 운동. 다른것을 다 잊어도 이것만은 꼭 하라고 작가님이 당부하신다. 엄마의 20년은 체력이라는 것!

***

책을 읽고나니 후련하다. 

아이는 괜찮아, 밝고 건강해, 아무 문제가 없어. 

나도 괜찮아, 내 삶을 잘 주도하고 있어.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살겠어.

내 아이가 나를 엄마로 만난만큼 좋은 것을 누리는 한편 부족한 점도 감수해야 한다. 엄마는 온화하면서 파격적이지 않은 본인을 받아들이고 아이는 그런 엄마 손에 자란 본인을 받아들여야지뭐.

그리고 아이 학교 고민에서 마음을 이렇게 정했다 

– 대학은 가도 되고 안가도 된다

– 본인이 대학을 수단으로 삼아 가야겠다고 하면 지지한다

– 대학에 아이를 깎아맞추지 않는다. 물론 중학교에도

–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살고 그렇게 자란 아이에게 맞는 학교를 찾는다

– 내 일을 꾸준히 한다

– 매일 운동한다

그럼 곧 정해야 하는 중학교는? 지금 상태에 걸맞는데로 가지뭐. 아이가 구김없이 지낼 수 있는데로.

정작 선택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며 코로나 动态清零하듯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을 감내할 것이다.  지금 당장 선택이 어렵다면 让子弹飞一会儿 시간을 좀 더 가지고 살피는 것도 방법이다. 어떨때 우리가 더 우리다운지, 화목하고 행복한지 위주로 살핀다.

오소희 <엄마의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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