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이 떠졌다. 창밖은 어슴푸레하다. 일어나 말어? 내면의 소리들이 싸움판을 벌리기 딱 좋은 시간이다. 오늘 해야 할 일들, 그리고 어제 해야 했었지만 '오늘'로 밀린 일들, 내일 할 수 밖에 없이 될지 모를 일들이 두서없이 엉킨다. 그 타래들이 점점 커지고 어수선해진다. 

바로 그때, 길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몸을 뒤척이는 소리와 함께, 찰싹 하고 나의 옆몸에 달라붙는 소리와 느낌이 동시에 찾아왔다. 

딸애다. 곧이어 네살배기의 말랑말랑한 올챙이배의 감촉과 함께 규칙적으로 커졌다 작아지는 풍선같은 움직임이 오른팔의 삼두박근을 타고 전해진다.  가늘고도 긴 아이의 다리는 내 허벅지 밑의 온기를 파고든다. 그리고 쌕- 쌔액- 하는 숨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기 시작한다. 나의 모든 생각은 끊기고 온몸의 신경은 어느새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다. 

나는 눈을 뜨고 옅어진 어둠 속에서 내 얼굴 가까이 다가온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박힌 눈코입이며 고요하게 잦아든 표정이며를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솟아나는 경이로움을 금할 수 없다. 

이 아이가 내 아이라니. 내 인생에 이런 딸이 있다니. 내 아이임이 분명하나 그렇다고 어느 하나 내가 만든 것은 없다. 그 어떤 확율이나 지식이나 설명이 무색해지는 신비다. 신에 대한 경의란 이렇게 벅차오르는 것이리라. 

그런 신비의 존재가 지금 내 옆에 달라붙어있다. 그리고 아무 의도 없이 나를 필요로 하고, 아무런 계산 없이 내 곁에 있어준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온전히 누구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본 적이 있었던가. 

영화 About Time의 한 대목이 머리에 박혔었다. 시간여행이 가능한 주인공이 처음으로 시간을 돌렸지만 좌절하는 일이 생긴다. 딸아이가 태어난 후에 이 초능력을 써서 과거의 일부를 바꾸고 나서 다시 현재로 돌아왔더니 딸이 아들로 바뀐 것이다. 즉 과거를 바꾸면 미래가 바뀌는 것이 당연하나 그 때문에 아이도 바뀌게 된다는 것. 배우가 표현했던 그 충격이 한 딸의 아빠가 되고나서는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백프로 체감이 가능하다. 

나를 향한 이 아이의 꾸밈없는 부름과 티없는 마음이 나라는 인간의 또 다른 중요한 구석을 채우고 완성해가고 있는 것이리라. 그럼이 틀림없다. 밝아오는 또 하루. 이제 평정심으로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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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돌다가 고전과 씨름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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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벽에 눈이 떠진 그 시간이 아이의 온기를 타고 평강에게 큰 선물로 전달되었네요.
    감성이 터진 그 순간의 느낌을 이렇게 글로 써서 발표해 주신 것은 또다시 독자들에게 선물로 되어 와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 아무 의도 없이 나를 필요로 하고, 아무런 계산 없이 내 곁에 있어준다..참 행복한 일이네요. 어디서 봤던 지 기억이 잘 안나는 데 이런 구절이었어요. 아이가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필요로 하는 건 진정 우리 어른들이라고요…살면서 한 번이라도 온전히 누구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본 적이 있었던가…아빠가 되는 일은, 부모가 되는 일은 아마 그런 존재가 되는 경이로운 순간이군요

  3. 분명 읽은건 글인데, 예쁘게 찍힌 사진 한장을 감상한 것 같습니다. 마치 포근하게 감싼 담요 같아요.아직 부모가 될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고 늘 변명하지만, 이런 글을 보면, 자식이 있어서 부모가 되어가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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