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무더위가 가신 뒤 하늘에는 말캉한 뭉게구름이 떠있다.
아무 생각 없이 거리를 걷다보면 기분 좋은 커피향이 새어나오는 가계를 만나게 된다.
나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면 그 중 하나는 무조건 커피와 커피 파는 공간이다.
때론 커피 한 잔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안전 고리 같은 역할을 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생면부지 상대와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을 때 커피의 온기와 향으로 감도는 그 낯설지 않은 분위기 덕에 나는 조금이라도 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던 시간들이 꽤 된다.
바로 이런 시간들이 나에게 소중한 인연들을 선물해 주었다.
오늘은 추억 속의 그 시간을 더듬어 올라 나의 스타벅스 첫 경험을 주저리주저리 해보련다.
스타벅스를 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커피 체인점이라 해도 격하게 반기를 드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지난 2022년 범띠 해를 맞아 스벅에서 출시한 쿠폰카드와 카드지갑 세트다. 마지막으로 구매한 쿠폰 카드였다. 상해에 커피숍이 워낙 커피 맛이 훌륭하고 분위기와 컨셉도 다양한 커피숍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요즘은 왠지 스벅에 좀처럼 가지 않게 된다. (미팅할 경우를 제외하고)
그렇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 2005년 9월, 첨으로 북경에 입성한 그 시절 나는?
2005년 나는 북경의 한 대학교에 진학했고 처음으로 고향 땅을 떠나 수도의 땅을 밟았다. 한동안은 천안문 광장의 웅장함과 마천루라고 불리는 빌딩 숲에 압도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봤던 곳들을 더 많이 구경하고 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욕구도 덩달아 부풀었다.
그렇지만 그 시절 대학생들의 현실이란 기숙사에서 6~8명이 함께 부대끼면서 독립 생활을 조금씩 배우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매 학기마다 실용가치의 유무를 떠나 필요한 학점을 위한 과제와 시험에 시달렸고, 거기에 소비돈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겠다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돌아치는 모습들이 상당히 보편적이었다.
특히 그때 신입생이던 나에게 있어 스타벅스란 홍콩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멋진 슈트, 원피스 차림의 엘리트들이 노트북을 테이블에 둔 채 비지니스 미팅을 하는 곳, CCTV-6 채널에서 봤던 미국 영화에서 나오는 명품 차림의 “도시 멋쟁이”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입력된 특별한 장소 중 하나였다.
그 특별함에는 대학가 카페나 맥도널드에 비해 훨씬 비싼 가격 때문이기도 했다. 대부분 30원 이상의 가격이 매겨진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은 그 시절 신입생이던 나에게 꽤나 부담스러웠다. 얼추 계산해봐도 학교 식당에서 삼일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집에서 받은 생활비가 부족한건 아니었지만 한국 아이의 중국어 과외를 해주면서 그리고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 벌기 쉽지 않다는 현실을 체감한 후부터 나는 소비에 좀더 신중해진 편이었다. 특히 "필요성" 여부를 생각했을 때 스스로 납득할 정도가 되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하루 나는 “사치”스런 스타벅스 체험을 통해 생각의 변화를 느꼈다. 그 날 나는 선배 소개로 통역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스스로에게 해주는 보상이란 명의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예상과는 달리 그 곳은 그리 “콧대” 높은 공간이 아니었고,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을 배경으로 각자 커피를 주문한 후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고개를 들고 올려다본 메뉴판에 적힌 다양한 이름의 커피와 샌드위치, 케익의 가격대를 본 후 나는 속으로 흠칫했다. 그럼에도 지갑을 열고 태연한 척 라떼 한 잔에 치킨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모든 과정이 순조로왔고 나는 이 공간에 아주 익숙한 사람인마냥 자리를 잡고 앉았다.
통역하러 갈때 들고 나간 그 시절 나의 최고가 재산이자 생산도구였던 Sony 노트북을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놨다. 본건 또 있어서 봤던 대로 다 해보고 싶었던 나는 그 시공간을 한껏 체험하기로 했다.
처음엔 나에게 그저 비싼 음료일 뿐이었지만 손에 들고 마시면서 그 공간 속 일부가 되어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같다. 대학 신입생으로서 이런 소비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 왜 여기에서 파는 커피는 비싸건가? 이것도 나의 경험을 쌓기 위한 투자인 셈이 아닌가? 등등 다양한 궁리들이 잠깐 떠올랐던 것 같다. 그러고는 그냥 샌드위치를 먹고 라떼를 마시면서 한 끼를 해결했다.
대학 4년 간의 나에게 스타벅스는 여전히 특별한 시간을 갖는 공간이 되었었다. 나 자신에게 뭔가 보상해 주고 싶을 때, 데이트 할 때, 중요한 사람들을 만날 때 다녔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5년이 지난 2010년, 내가 새로운 시작을 할 때 즈음, 경제적인 여유가 조금더 생긴 후부터, COSTA와 같은 여러 커피숍들을 다녀와본 후부터, 스타벅스는 나에게 익숙하고 안전한 공간이 필요할 때 찾아가는 곳으로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풋풋했던 신입생인 내가 “사치”스런 선택을 체험하기로 한 것을 두고 지금의 나는 "참 잘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나만의 소비와 가치관이 조금씩 자리잡아 가고 있던 그 시기에 그것은 가치있는 체험이자 추억으로 남았다.
스타벅스는 단순한 커피숍 이상으로 나에게 가치에 대한 선택 기준,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 신분에 대한 생각을 많이 던져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야 나는 스타벅스가 “제3의 공간”을 창조해냄으로써 미국에서 시작한커피숍이 전 세계 대부분 나라에 직영점을 오픈한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스타벅스 멤버십을 갖고 있고 가끔 가더라도 포인트를 적립하고, 텀블러를 갖고가 할인을 받기도 한다. 지인을 만날 때는 함께 새로운 커피숍 탐방을 하지만 업무의 필요로 미팅 장소를 커피숍으로 정해야 할 경우에는 여전히 찾아오기 편하고 다수 분들께 익숙한 스타벅스를 제1 순위로 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