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냄새, 외할머니 언어
1927년생이신 외할머니는 학교라는 데를 다녀보지 못하셨다 한다. 해방이 나고 마을마다 생긴 '야학'이라는 데서 우리글을 대충 배운 게 전부라 받침 없는 철자를 조금 익히셨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책이라는 것을 읽은 적도 없었을 텐데 할머니는 퍽 풍부한 어휘를 구사하셨던 것 같다. 어린 내가 듣기에 못 알아들을 단어도 많았는데 앞뒤말을 들어보고 대충 그 뜻을 짐작하군 했다. 그때 바로 그 뜻을 물어보고 깨치지 못한 것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나니 좀 후회가 남는다.
나는 자주 엄마와 외할머니의 대화를 엿듣군 했다. 작은 할머니네 몇째 아들네 아들 녀석은 제 어미를 닮아 '느실느실' 생기지 못하고 '바틈바틈' 생겼더라; 누구네 몇째 딸은 시집을 간 뒤에도 '으세으세' 뭘 가져다 공부하는 '오래비'를 섬겼다더라. 그 '오래비'가 대학을 나와 그래도 잘 쓰이고 있으니 보람이 있다; "먼저 난 뿔은 못 써도 후에 난 뿔은 쓴다더라"고 아들은 저렇게 속을 끓이는데 손자녀석은 꽤 어물쩍한가 보더라 등등의 이야기를 엿들은 적이 있다.
'느실느실'이나 '바틈바틈' 같은 부사는 그런 대로 이해했으나 '으세으세'나 먼저 난 뿔은 못 써도 후에 난 뿔은 쓴다더라." 같은 속담은 물어보지도 깨치지도 못했는데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외할머니는 집에 다녀가는 사람을 배웅할 때면 "줴이줴이 갑소."라고 하셨다. 그 '줴이줴이'도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 "살펴가세요." 정도로 리해했다.
"큰 소 없으면 쇄지(송아지)가 영각한다.", "노지리(종달새) 깨그루(?)에 올라서니 통천하가 다 보인다 하더라.", “일할 줄 모르는 년 단오날에 빨래질을 한다.”와 같은 책에는 없는 속담도 많이 들었다.
얼마 전에 엄마에게 '으세으세'가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내 짐작으로는 '야금야금', '조금조금'의 뜻 같았지만 더 정확히 알기 위해 엄마에게 물었더니 엄마가 '몰래몰래'라는 뜻이라고 하는 것이였다. "야금야금이란 뜻 아닌가요?" 되물었더니 엄마가 "몰래몰래 하니까 아무래도 한꺼번에 많이는 가져오지 못하고 '야금야금' 날랐겠지." 하고 우문현답을 해주시는 것이였다.
사투리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것이다. 사전적 어휘 한 두개로 설명할 수 없는 풍부한 내포, 대체 불가능한 그 감칠맛…
아버지의 말! 말! 말!
아버지가 쓰는 어휘는 지금 생각해도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은 아니였던 것 같다. "참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겠소.", "인간식이 우환식이요." 등등을 말고도 많은 어휘와 속담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터밭에서 감자를 파다가 그 맵시로 자전거에 올라타 진 중심 시장으로 가려는 아버지를 불러세워 엄마가 '나들이 옷'으로 갈아입고 가라고 하시면 아버지는 "가난이 매찰이 있소?"라고 하셨다.
썩 후에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매찰'은 '멥쌀', "찹쌀' 할 때의 그 '멥찰'이고 가난하니 단벌신사라 일할 때 입는 옷과 나들이할 때 옷의 구분이 있겠냐는 반어라고 하셨다.
그러니 근검소박한 '로동인민'이 무슨 '나들이옷'이 따로 있겠냐는, 번거로우니 기어이 옷을 안 갈아입겠다는 아버지의 결연한 의지의 해학적인 표현이였다.
아버지는 목청만 컸지 겉과 속내가 똑같은, 융통성 없는 엄마를 빈정거리고 싶으실 때면 "두만강이 녹두죽이라도 곰방술을 찾지 못해 굶어죽을" 사람이라고 하셨다. 교조주의적이고 융통성 없고 사고가 경직된 사람을 이를 때 두루 사용해도 될 듯하다.
또 나를 자주 골려주시기를 “옛말에 딸과 찹쌀은 없어도 된다고 했느니라.”라고 하셨다. 화난 내가 씩씩대며 “아버지는 찹쌀로 만든 찰떡을 잘도 드시면서.” 하고 대들면 허허 웃으시며 “잘 먹긴 하지만, 입쌀처럼 없으면 안되는 건 아니지.”라며 이기죽거리셨다.
아버지는 자주 내가 하는, 이른바의 류행을 탄 시체말들을 수정해주군 하셨다.
"이번 시험에 잘 맞은 날에는 뭐 사주겠슴까?" 따위의 말에 꼭 익살스레 내가 한 말을 한번 따라하시고는 "이번 시험에 잘 맞게 되면, 또는 잘 맞으면 이렇게 말해야지." 하고 일러주셨다. 그러나 다른 애들도 쓰는 말인데 하면서 나는 그 정체 불명의 '-는 날에는'이라는 접속사를 꽤 오래 썼다. 대체 저 어법은 어디서 어떻게 성행하게 되였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많이들 쓰고 있다.
"와, 오늘 박물관 가본 게 써거 크겠구나." 따위에 말도 아버지는 꼭 한번 익살스레 따라하시고는 "그래 좋았겠구나." 라시면서 일깨워주셨다. '-구나'는 그렇게 쓰는 종결어미는 아니였던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진 자리에
언어는 늘 새롭게 변화 발전한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사람들사이의 대화가 문자로 많이 이뤄지면서는 '준말'이 많이 생겨났다.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는 '갑분싸'로, '버스 카드'는 '버카'로,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는 '솔까말'이라고 한단다. 주로 십대들 사이에서 많이 쓰인다고 한다. 자꾸 이런 말이 쓰이게 되'는 날에는' 우리 언어의 오염이 심각해질 거라는 성급한 판단은 보류하련다.

언어는 늘 변화발전해 가고 시기마다 시체말처럼, 작은 군체내에서만 통용되는 은어나 준말 같은 것들이 생겨나는 하지만 그런 어휘들은 일반적으로 생명력이 그리 길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 외할머니들이, 우리 아버지들이 쓰시던 저 풍부한 어휘들이 사라진 자리에 은어나 줄임말들, 그리고 정체 불명의 이상한 말들만 판을 친다면 그것은 락관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언어는 정보뿐만 아니라 정감과 생각을 담아내는 문학적 기호이다. 인식은 언어에 의해 촉발되고 구성되기도 하는 것이다.*(대가숲을이룰때, <우리말, 굳이 배워야 하나-도시화와 민족어 교육>, 지행자 2019년 8월 26일)
학교 문앞도 가본 적이 없는 외할머니가 그 풍부한 정감과, 공감능력 그리고 세상에 대한 통찰력, 분명한 사리분별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늘 입에 올려 쓰셨던 저 풍부한 어휘들과도 영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언어가 다양성을 잃고 새로 생긴 신조어나, 류행어들만 판을 친다면 풍부한 정감과 다채로운 느낌은 많이 소실될 것이다. 또 그만큼 사유의 폭도 줄어들 것이라 본다.
다시 못올 것에 대하여
최근의 연변 소품들을 보며 안타까웠던 것은 바로 그 지점이였다. 지역 언어를 살린답시고 연변에서 통용되는 '함경도 방언'을 많이 썼지만 구수하고 풍부한 우리 방언의 묘미는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지역 방언이 그렇게 앙칼지고 억양이 강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나 우리 지역 방언의 부사는 매우 맛갈지고 다채롭다.
얼마 전에 윤동주의 시집을 다시 펼쳐보다가 어릴 적 쓴 동시에서 '허양’이라는 부사를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다. 시집에서는 '거침없이 그냥'이라는 뜻의 함경도 방언이라고 주석을 달고 있었다.
……
다섯개에 세개…
그만하면 되었다.
래일 시험
다섯 문제에, 세 문제만 하면
손꼽아 구구를 하여봐도
허양 륙십점이다.
볼 거 있나 공 차러 가자
그 이튿날 만돌이는 꼼짝 못하고 선생님한테
흰종이를 바쳤을가요
그렇잖으면 정말
륙십점을 맞았을가요?
—윤동주, <만돌이>에서 발췌, 1937년 3월
거의 잊어버릴 번했던 단어를 시에서,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윤동주의 시에서 발견하자 새삼 반가웠다. 시에 적지 않았더라면 이 단어는 잊혀가다 그렇게 사라졌을 것이다.
몇년 전에 한국에 갔다가 과일난전에서 '왜지'를 파는 걸 보았다. 대뜸 반가워서 다가가 표준어를 구사한답시고 "오얏 주세요."라고 했더니 가게 사장님이 못 알아들으시는 것이였다. 손가락으로 가리켜서야 사장님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아, 자두요?" 하면서 주머니에 그것을 담아 주셨다.
'오얏'을 모르나? 잘 안 쓰는 단어인가? 머리를 긁적이며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았더니 "자두의 옛말"로서 이제는 '사어(死语)'라는 것이였다. 문자 그대로를 해석하자면 이제 '죽은 언어'인 것이다.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도 고쳐매지 말라."라는 속담에도 오른 단어의 운명이 이렇게 '사어'로 되였으니 '으세으세', '줴이줴이' 같은 단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이런 단어는 죽었다는 '생몰'도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흔적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 단어를 쓰던 우리 '외할머니들'이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그 변화의 내용을 담는 그릇 격인 언어도 빠른 발전을 이뤄가고 있다. 그 발전 속에서 많은 어휘들은 소리 없이 사라져갈 것이다. 그 언어들을 소환해내고 연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우리말은 지켜’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잘’ 지켜나가야 한다. 어떠한 감정적인 호소에 의해 우리말이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님을 안다. 그리고 이런 글이 우리말을 잘 지키는 데 어떤 적극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못할 것임도 안다. 그저 주인 없는 무덤에 비석을 세워주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했던 윤동주의 시구를 떠올리며 이미 사라진, 이제 사라져갈 어휘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으로, 꼬리표라도 달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적는다.


이 글은 두번 봐도 또 좋네요. 글구 궁금한거: 일할 줄 모르는 년 단오날에 빨래질을 한다/ 단오에 빨래 함 어떻길래요? 웃다가 궁금해서요.
단오는 즐겨야 할 날인데 일 할 줄(계획성 등)모르니까 단오에 한다는 말일 까 싶어요. 정답은 어떨지?
아 그래요? 웬지 저 구절에 뜨끔해서요 ㅎㅎ
자매품 속담으로 일할 줄 모르는 놈 설날에 나무 하러 간다가 있대요. ㅎㅎㅎㅎㅎ
감사함다. 깨달음이 확 오네요.
신 걸 좋아해서 왜지를 정말 많이 먹었던 기억이 남다 ㅋㅋㅋㅋㅋㅋ 왜지 그렇게 먹으면 언친다 하던 충고도 함께.
왜지 머지 노리 . 표준어로는 뭐라 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두번째로 읽는데 또 새롭습니다. 역시 어릴 때부터 밑에서 수련과 도야을 받을 몽부가 계셨던게로군요.
두만강이 녹두죽이라도 곰방술을 찾지 못해 굶어죽을 사람, 이란 표현은 진짜 두만강 류역에서 생긴건지 확 궁금해지네요, 너무 형상적입니다. 아니면 같은 말의 한강 버전, 대동강 버전, 낙동강 버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강은 잘 모르겠고 그저 두만강이 젤 입에 착 감기는군요 ㅎㅎㅎ
실은 저도 한국에서 연변말을 방언? 또는 사투리 라고 해석하지만 실제로 저한테는 방언과 사투리가 아니라 표준어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우리말 표현법이 한국에서나 연변에서나 ‘사투리’ 로 취급되거나 또는 ‘죽은 언어’로 버려지는 것 보다 이렇게 기록도 되고 다시 사용도 하고 이런 다양성을 수용하는 그런 환경이 주어졌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하하 왜지~ 저도 첨에 한국 왔을때 왜지 달라고 하니 알아들었던것 같슴다. 녹두나물 어디있냐고 하니까 아 숙주 하면서 바로 알아듣고 ㅋㅋㅋ 전에 라는 영화 보면서 감동 많이 먹었슴다.우리말을 못하게 했던 시대에 전국에 같은 단어의 여러 버전을 모으는 말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