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왔네
이번에 동북에 다녀오면서 왠지 모르게 <각설이타령>이 자꾸만 머리속을 맴돌았습니다. 동북의 흑토에서 태어나 자라고 관내의 일터로, 대학으로 진출한 우리 세대라면, 아마 누구라도 일년에 많아야 한두 번 정도 고향에 다녀갈 수 밖에 없는 초단기 철새같은 삶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매섭게 추운 동북의 날씨이고 거친 동북사람들의 언행이며 얼씨구절씨구 하면서 “고향구걸”을 하다시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지만 그속에서 그 어떤 강인한 생명력 비슷한걸 느끼면서 이 글을 다듬어 봅니다.
그건 아마 언 땅속에 잠든 봄을 기다리는 뿌리의 힘 같은 것이리라.
이번 동북행의 목적지는 길림성 반석시(磐石). 장춘과 길림시와 남쪽으로 인접해 있으며 총인구 53만을 좀 넘기는 중등규모 도시로서 조선족들이 2만 5천명 정도 거주하고 있습니다(2012년 통계). 호적인구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인구는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터넷 이미지, 당일 저녁늦게 도착하여 사진 남기지 못함.
동북에 다녀온지 오래된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한파가 남으로 덮칠 때를 만나서 진짜 간만에 “시리다“는 체험을 듬뿍 했습니다. 손이 시리고 발이 시리고 귀가 시리고 얼굴이 얼어서 세멘트가 되는 것 같고, 숨쉴 때마다 콧털이 얼었다 녹았다 하는 것 같은 그 느낌, 이게 얼마만인가!!
역시 동북의 놘치(暖气)는 사랑입니다. 밖의 추위와 대조되게 뜨끈뜨끈한 방안, “따따산 아랫목”이 진리지요. 동북의 음식점도 마찬가집니다. 새빨갛게 익어가는 연탄의 열기와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정겹더라구요.
음식점 입구에 진열되어 있는 식재료에 따라 메뉴가 결정되는 풍경입니다. 그리고 많이 익숙한, 좋다는 것들 잔뜩 불려놓은 “약술”, 한잔에 5원 좌우씩 하는게 제맛이지요.
참고로 이 집의 냉면도 맛있습니다. 뽑아낸 면은 저온에서 자연 숙성시킨 “干条” 방식으로 만든 면이라 면발에 남다른 식감이 있었습니다.
이번 중요한 일정은 바로 반석 시내의 조선족중학교에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조선족실험소학교도 지나갔습니다. 현재 학생들은 한 학년에 한개 반 정도로 인원이 얼마 안된다고 합니다.
소학교를 지나 시내 북쪽으로 좀 더 가면 조선족중학교인 반석시홍광중학교(紅光中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홍광중학교는 1948년 설립이 되었으며, 장장 68년이란 세월속에서 59기에 걸쳐 6507명의 초중 졸업생과 49기에 걸쳐 5001명의 고중 졸업생을 배양해냈으며 2기에 걸쳐 130명의중등전과 졸업생과 직업고중 졸업생을 키워냈습니다.
홍광중학교는 조선족학교로서 초중과 고중이 포함되어 있으며, 현재 학교이름은 반석에서 활동했던 조선민족의 유명한 반일장군인 리홍광을 기념하여 1987년에 바꾼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 포털 사이트의 내용을 검색해 봤습니다.
바이뚜(百度)
네이버
리홍광 장군의 약력을 살펴보면:
1910년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
1925년 중국 길림 반석현으로 이주,
1930년 중국공산당 가입,
1932년 중공 반석중심현 현위위원 당선, 유격대 대장 담임,
1932년 동북인민혁명군 독립사 참모장 담임, 정위는 양정우(楊靖宇),
1934년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참모장, 제1사 사장 겸임,
1935년 흥경현(興京) 노령(老嶺)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전사.
25세의 젊은 나이로 동북땅에서 활약하면서 수많은 전투승리의 업적을 뒤로 한채 희생하였으며, 이런 인연으로 장기간 중공의 북방 혁명사업을 책임졌고 1945-1946년 사이에는 중공 동북국 서기를 지냈던 원로 팽진(彭眞)도 이를 높이 평가하여 1988년 직접 “红光中学”라고 학교이름을 써주기도 했습니다.
학교와 반석시 조선족들은 홍광정신을 길이 기리기 위하여 자료전람실을 만들고 “홍광정신교육촉진회”를 설립하여 중국조선민족사학회의 산하에 소속시키는 등 여러 작업을 했습니다.
홍광중학 교가
홍광정신교육촉진회 소개
협회 조직인원 구성
이렇듯 훌륭한 전통과 정신이 받침해주고 있는 학교라서 그런지 많은 걸출한 졸업생들을 배출해냈고, 반석 조선족 유명인사들도 함께 정리해서 교육자료로 쓰고 있었습니다.
조선족 주말학교 운영현황에 관한 문장의 저자인 사회과학원 정신철 연구원도 홍광학교 졸업생이란걸 이번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하지만, 문제 역시 있었습니다. 바로 학생 인원수가 현저하게 줄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학교를 돌아보니 초중과 고중 각 3개 학년이 한 학년에 한 개 학급밖에 없었고 매 학급의 인원수도 20명 좌우 밖에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선족 사회에서 동일하게 발견되는, 특히 조선족 산재지역에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교실의 풍경
아무리 뛰어난 역사와 성적을 자랑한다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들이 없으면 그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조선족 인구 기초수 자체가 작은데다가 한족학교로 학생들이 많이 유실되고 있어서 민족학교는 더더욱 어려운 현황입니다.
교수청사 복도 일각
반석 조선족운동회 때는 그네도 뛰었다는 운동장 일각
역대 교장들
역대 명문대학 진학명단
교수시설이나 환경은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지만, 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아이들이 적어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켠에 서운함이 자리를 뜰 줄 몰랐습니다.
동북의 엄동설한과 맞싸워 벼농사를 일궈내고 불의와 싸우면서 민족교육을 억척같이 이어왔던 우리 선인들의 그 정신과 그 저력, 그것들은 여전히 변함없습니다. 땅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도 언젠가는 지나가며 또다시 새 움이 싹틀 날 또한 오리라 기대를 해봤습니다.
우리 “각설이”들도 그 날을 위해 열심히 현재를 살고 전통을 이어가며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고: 2016.12.03
재고: 201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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