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땅에서는 설도 설 기분이 안 난다. 여기서는 쇠지 않으니 말이다. 다행히 올해는 설이 일요일이라서 휴일인 셈이다. 하여 똑같이 유학 온 친구 몇을 집에 불러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집 안에 따뜻한 김이 어린다. 사람이 모이니 북적이는 느낌이 있다. 아이도 좋아한다. 이제 좀 설인 것 같다. 

주메뉴는 물밴새. 조선사람이 쌀밴새를 먹어야 되지, 라고 집에 온 친구 아버지는 모임 얘기를 전해듣고 말씀하셨단다. 물론 나도 입쌀밴새가 더 좋다. 밴새라 하고 부연설명이 없으면 디폴트로 입쌀밴새다(글에도 썼다만). 다만 모여서 만들고 또 남은 것을 싸서 보내기에는 물밴새 즉 밀가루밴새가 낫다. 몇 번 만들면서 발견한건데, 입쌀밴새는 많이 싸서 얼려두어도 다음 끼에서는 맛의 품이 대폭 떨어진다. 좋기는 두 가지 밴새를 모두 만들면 좋은데, 그러기에는 고단하다. 

모양이 제각각인 초짜 물밴새

그러니 한 가지만 하되 정성을 쏟자. 혼자 반죽을 만들고 숙성시키고 밴새껍질(만두피)를 밀고 소를 만들어 한땀한땀 싸는 것. 

만들다 보니, 일년에 한 번뿐인 설인데, 약간의 재미도 더 하는게 좋겠다 싶어,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 복밴새를 두 개 만들었다. 별건 아니고 만두 소에 쵸콜렛 조각을 넣어 빚은 것이다. 어릴 때는 동전을 넣었었는데 그건 위생적이지 못한 기분과 함께 이가 부러질 우려도 있으니, 달콤한 행운만두로 둔갑시킨다. 

결국 복밴새 둘 중 하나는, 연구회 발표 때문에 늦게 도착한 친구가 첫 젓가락으로 집어든 밴새가 당첨되었고(꽤 드라마틱하여 기분 좋아했다), 다른 하나는 복밴새 싸는 걸 지켜봤던 우리 집 아이가 기어코 지가 먹겠다고 떼를 써서, 하나하나 살펴 찾아내어 콕 집어 아이 손으로 직행. 사실 만두피에 쵸콜렛의 맛 조합은 이상할텐데 맛있다고 우기며 다 먹었다. 

여기서 잠깐.

음식에 돈을 넣어 행운을 비는 이런 방식은 퍽이나 세속적이어 보이는데, 과연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전에 우연히 책을 읽다가 '재채기를 하면 누가 내 생각을 하는 것'이란 별거 아닌 민간 설법이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얘기를 읽었던게 떠올라서이다. 게다가 연변말 '밴새'의 어원을 찾느라 꽤나 공을 들였던 기억도 있고. 그래서 일단 포털에 검색해 봤다. 

기원전까지 거스르지는 못하지만(밴새[물만두] 자체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으니), 일단 400년 정도는 쫓아가 볼 수 있는 듯하다. 적어도 명나라 황실의 내시(宦官) 劉若愚가 17세기 초에 쓴 책 《酌中志》에 나오는 건 확실하다. 이 책의 권 20 '飲食好尚紀略' 부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飲椒柏酒,吃水點心,即"扁食"也。或暗包銀錢一二於內,得之者以卜一年之吉。
(초백주[분디(花椒)와 측백나무 잎을 넣어 만든 술]를 마시고 수점심을 먹는데, 수점심이란 곧 '편식'(밴새)이다. 혹은 은전 한두닢을 편식 속에 넣어 싸는데, 이를 얻은 사람은 한해 동안의 길한 운수를 받은 것으로 여긴다.)

오른쪽 2번째 줄부터

'扁食/匾食'이란 음식 자체는 적어도 원나라 때에는 있었던 음식이니 자료를 더 찾아보면 밴새에 동전을 넣는 풍습도 더 일찍부터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일단 근대에 나타난 현상은 아니란 것이 밝혀졌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중국의 이런 풍습이 조선에는 전해졌는지 모른다. 비슷한 발상은 있을 법한데. 조선족들은 동북지역에서 한족들 영향으로 이런 설풍속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 명나라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당시의 통보 동전들을 넣었을까. 어금니가 날라가지는 않았을까. 

홍무통보

글쓴이의 어린 시절에는 1전, 2전 혹은 5전짜리 동전들을 넣었던 기억이 있다. 얇다만하고 크기도 알맞아서 씹어도 치아에 무리까지는 가지 않았던 듯한데. 조금 더 커서는 경제가 좋아진건지, 통화팽창인건지는 모르지만 10전짜리(현재 통용되는 동전 이전의 화폐)를 넣기 시작했던 것 같다. 배 이상은 늘어난 금액이지만, 그 보다도 역시 1원 짜리 동전보다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알루미니움과 아연의 합금이라서 선택받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스테인리스로 재질이 바뀌었지만. 

5전 짜리 동전

옛날 10전 짜리 동전

이제 이런 풍습도 꽤나 잊혀져 가는 것 같다. 글을 읽는 분들은 올해 복밴새 한입 물었는지? 

밴새를 만들랬더니…

이 글을 공유하기:

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돌다가 고전과 씨름하게 된.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8
좋아요
오~ 오~
0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1. 오~ 저의 추억속의, 기억속의 동전넣기를 소환해냈슴다. 잊고 살았던. “그땐 그럴일이 있었었지…”라는 생각이 막. ㅋㅋ 어른들은 겉만 봐도 어느것이 동전이 들어있는지를 알고 아이들한테 양보하던 기억도 함께. (좀 커서 느낀거지만 ㅋㅋ)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