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설휴가로 주위는 SNS 요리경연이 한창이었다. 

설날에 남쪽에서는 떡국을 먹는다. 중국의 한족들은 '饺子'(죠우즈[물만두])를 먹는다. 백년이 넘는 중국 이민사를 가지고 있는 조선족들도 요즘은 설에 중국식으로 물만두를 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생활양식도 섞이고 바뀌고 새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똑같은 물만두라도 글쓴이는 어려서부터 '물밴새'라고 불러왔다. 그리고 아직도 그러하듯, 한족들이 즐겨먹는 '물밴새'보다도 설에는 '입쌀밴새'가 더욱 생각이 난다. 입쌀밴새는 밀가루가 아니라 멥쌀가루 반죽에 고기나 야채로 된 소를 넣어 빚어셔 쪄 먹는 음식으로, 물에 삶아 먹는 '물밴새'(물만두)와는 다르다. 일단 크기가 더 큼직하다 보니 투박한 멋도 있지만, 소의 양이 많고 쌀가루이다 보니 쪽득하니 입에 찰져오는 식감이 남다르다. 라멘과 베트남 쌀국수 식감의 차이를 떠올려 보면 느낌이 올 수도 있겠다. 

밴새(입쌀밴새)

'만두'를 '밴새'라 부르는 것, 그리고 '밴새'라 하면 디폴트(默认)가 찐 입쌀밴새이고 삶은 밀가루 밴새는 앞에 '물' 자가 붙어 2차적으로 파생된 개념인 것. 이는 글쓴이가 북쪽의 함경도에서 연변으로 이주한 4세로서 북녘 식습관의 기억이 이어져 오기 때문일 것이다. 

근데 '밴새'라는 말은 참 희한하다. 어감상 한자어는  아닌 듯 하고, 그렇다고 고유어라면 어떤 구조로 어떻게 만들어진 말인지도 풀어내기가 쉽지 않다. '아이를 배다'의 '배다[妊, 懷]'와 만두 '소'가 합쳐져서 '배인 소'가 아닐까 하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어떤 이들은 일본어라 하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 하여튼 대응하는 한자어인 '만두(饅頭)' 보다는 훨 더 정겹게 다가와서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우리말이지만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로 써왔다. 

02.

일단 사전에는 뭐라고 되어 있을까? '밴새'라는 낱말은 올라와 있지 않다. 조금 바꾸어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북의 <조선말대사전>(인터넷판)

남의 인터넷 사전 <우리말샘>

북과 남의 사전에는 '밴'라는 올림말로 되어있으며 함경북도 방언으로 서술하고 있는 점이 같다. 어원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이 없다. 궁금하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그러던 중 실마리는 엉뚱한 데서 나왔다. 몽골어에 비슷한 낱말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토호쿠대학 데이터베이스
데이터 출처(Lessing <몽영사전>, 1973년 증보판)

위의 사전에 따르면, 몽골어에서는 '잘게 다진 고기에 야채를 섞어 밀가루 반죽으로 빚은 것으로, 삶아내거나 튀겨' 먹는 만두를 'Biyangsi'(뱡시)라고 부르는 듯하다. 주목할 것은 몽골어의 이 낱말이 중국어 '扁食'(편식)에서 차용되었음을 덧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확실한 답을 위해 몽골족 지인과 확인해 봤다. 현대 몽골어에서도 쓰이는 단어이고 뜻은  '饺子'(물만두)가 맞았다. 다만 철자법이 조금 달라져서 지금은 'y' 사잇소리를 표기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제 소리로는 몽골어 여러 방언 사이에 차이가 있어, 내-외 몽골 표준어나 내몽골 시링골(錫林郭勒) 지역 방언에서는 모두 '방시'[bangsh]라고 발음하지만, 호르친(科爾沁) 지역 방언은 '밴시'[baensh]이라 발음한다는 것(실제 'sh'의 소리는 有氣音이라 공기반 소리반이므로 '밴세'로도 들린다)을 알 수 있다. 

몽골족 지인과의 채팅내용 일부

여기서 주의할 점은, 호르친 지역의 발음이 연변말 '밴새'와 소리가 제일 비슷하다는 것, 그리고 지리적으로도 이 중에서 호르친이 조선반도와 제일 가깝다는 사실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얘기하면, 몽골어의 '뱡시'든 연변말의 '밴새'든 그 말의 뿌리는 중국어의  '扁食'에서 왔지만, 어형으로 놓고 볼 때 연변말 '밴새'는 '扁食'의 조선식 한자음 '편식'보다 몽골어의 한자 차용어인 '뱡시'를 2차 차용했을 가능성이 더 높음을 시사한다. 

03.

그러면 중국어에서 '扁食'과 지금 흔히 쓰이는 '饺子'는 같은 말일까? 일단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포털 사이트를 찾아 보았다. 

바이두 백과 '扁食' 조항

그 결과에 따르면 일단 '편식'을 중국식 물만두의 옛 이름으로 보아 큰 무리가 없는 듯하다(물론 바이두 백과는 출처를 잘 밝히지 않는 결점을 갖고 있지만). 옛 이름이지만 현재에도 어떤 지역에서는 '편식'이란 이름이 쓰여지고 있는 것도 알 수 있다. 특히 본 조항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을 보면 본문에 실린 하남, 산서, 강소, 복건 등 지역들 외에도 실제로 훨씬 더 많은 지역들에서 아직도 물만두를 '편식'이라 부르고 있음을 발견한다. 밑에 다른 댓글들을 보면 호북이나 감숙을 제외하고도 절강, 섬서, 안휘 등 지역에서도 이러한 실례들이 확인된다. 

해당 조항 댓글 일부

말처럼 옛 이름이었다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사용되어 왔을까? 문헌기록 상의 확인을 위해 중국고전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을 해봤으나 근대의 소설 몇 군데에서 용례가 보일 뿐이다. 그 정도로 옛말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아마도 '편식'이란 낱말은 중국어에서도 민간의 입말에서 더 많이 쓰였고 문장어에서는 별로 대접을 못 받았을 확률이 높은가 보다. 

中国基本古籍库(爱如生)

물론 데이터베이스라 하여도 모든 중국의 모든 문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망라하는 건 아니니 빠뜨린 것도 많을 것이나 중요한 기본전적들은 다 들어있으니, '편식'이란 낱말의 위상을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04. 

그래도 성이 차지 않으니 이번에는 한국 측의 자원을 좀 더 뒤져 보기로 했다. 조선 최대의 생활백과서로 불리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도 '밴새/밴세'에 가닿을만한 기록은 없었다. 그러다가 한국고전종합DB에서 연행록의 일종인 <계산기정(薊山紀程)> 권5에 청나라 무령현(撫寧縣, 지금의 진황도시에 속함)을 지나면서 기록한 음식 중에 '편식'이 등장함을 찾았다. 

검색 화면과 원문 영인본 해당 부분

연행록은 고려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외교 루트를 통해 중국에 다녀온 후 견문을 기록한 문헌들의 총칭이며 대표적으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같은 부류의 책이다.<계산기정>의 구체적인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내용상 같이 간 일행의 이름들(민태혁, 권진 등)이 나오므로 조선후기 18세기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조선인이 육로로 중국 진황도를 지나면서 '편식'이란 음식을 먹어 봤는데 그 맛집후기를 한 줄로 적은 것이다. 

匾食。形如馒头。味颇佳。此是抚宁县所买卖。高丽饼。即松饼…(이하 생략)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이고 어떤 맛인지를 적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록한 이는 '扁食'이란 두 한자를 적으면서 바로 오늘날 말하는 중국의 '물만두'와 연결시키지도, 우리말의 '밴새/밴세' 라는 방언적 개념을 떠올리지도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만약에 이 글의 저자가 조선의 북부 지역의 밴새(扁食)를 알고 있을 뿐더러 그것이 중국의 '扁食"(편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아래와 같은 두 가지의 서술 패턴이 가능하다(중국 진황도 지역에서는 벼재배가 존재하지 않기에 <계산기정> 본문의 '扁食'이 쌀가루가 아닌 밀가루 음식 즉 지금의 '饺子'에 가까운 음식이라고 묵인함을 전제로 함).

1. 밴새가 중국의 '扁食'에서 유래됐음을 알고 진황도에서 '扁食'을 맛보았을 경우: 

 扁食 = 밴새(방언)의 명칭= 만두(饅頭, 표준어)의 형식[가능한 서술 → 匾食。名同我朝,实则似馒头…]

2. 밴새가 중국의 '扁食'에서 유래됐음을 몰랐을 경우: 

 扁食 = 만두(饅頭, 표준어)의 형식 [가능한 서술 → 匾食。同/似我朝馒头]

실제로 본문에서는 '편식'에 대해서 '形如馒头' 라고 했으니 2번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지만, 진황도에서 먹은 '편식'이 조선에서 말하는 '만두'랑 똑같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똑같은 음식이었다면 바로 뒤에서 나오는 '高丽饼, 即松饼' 와 같은 서술처럼 'AB' 라는 패턴으로 기록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계산기정>의 저자는 ①조선의 '밴새/밴세'라는 말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으며, ②그가 중국 진황도에서 먹은 '편식'은 조선에서 '만두'라고 불리는(찐 밀가루 음식) 개념과는 다른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행(燕行) 즉 중국에 사신 일행으로 파견된다는 것은 한양(서울)에서 떠나는, 그러한 출신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뜻하니 조선의 북쪽 변방에서 쓰이는 '밴새'라는 말에 대해 모를 가능성도 다분하다. 

다시 말하면, 위의 자료를 통하여 조선후기까지도 중앙에서는 '扁食/편식/밴새'의 관계와 존재를 모르고 있었을 확률이 굉장히 높음을 짐작할 수 있다. 

05.

여기까지 말하다 보면, 연변말에서 쌀만두를 의미하는 '밴새/밴세'는 몽골어에 수입된 중국어 '扁食'이 우리말에 2차 수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생뚱같은 몽골어의 영향을 받았다는게 될 말인가? 

여기서 제일 처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13세기 고려가 몽골과의 항쟁 끝에 굴복하고 몽골제국(원나라)의 부마국으로 되고 나서부터 몽골문화의 영향을 대대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원사>나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몽골이 전쟁 뒤에 고려 서경(西京)인 평양에는 물론 서북 변방의 14개의 지역에 72명의 몽골인 관리인 즉 다루가치(达鲁花赤)를 설치하였었다. 여기서 '밴새'가 북쪽의 량강도나 함경북도 방언으로 사전에 나타나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변방 지역의 몽골인 주둔 뿐만 아니라 고려 왕들이 원나라 공주을 왕후로 맞이하다 보니 궁정문화에서도 몽골적 요소가 짙었음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조선초기의 중요한 대신들까지도 몽골어를 할 줄 아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훈민정음의 창제 역시 몽골(원나라)을 통한 음운학 성과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연구도 발표되고 있다(정광 <몽고자운 연구>, 박문사, 2009). 그만큼 정치 외교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중요한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말의 표준어에 남아있는 몽골어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임금님 수라상 할 때의 '수라' 라든가, 색상 '紫'를 뜻하는 '보라' 라든가, '장사치', '벼슬아치'의 접미사로 쓰이는 '-치'나 '그 치', '젊은 치'에서 대명사 비슷하게 쓰이는 '치' 모두 몽골어의 직업이나 신분을 나타내는 접미사 '-치'(위에서 나온 '다루가치'처럼)에서 온 말이다. 

그러니 몽골인을 비롯한 유목민 지역 국경과 맞닿아 있던 반도의 북쪽 지역에서 이러한 말들이 더 두드러지게 남아있는 것 또한 그리 유별난 일은 아니라 하겠다. 적어도 외부에서 차용하였을 개연성은 충분히 존재하는 것이다. 

더우기 '扁食'의 조선식 한자음 '편식'이 아닌 '밴새/밴세'란 발음으로 남아있는 것이 이러한 추측에 더 힘을 실어준다. 전통적인 규범의 제약을 받는 것보다 일상생활의 접촉에서 생겨난 말의 소리임을 쉽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연변말에서 티비를 뜻하는 중국어 '电视'를 '전시'라 차용하지 않고 현대 중국어 발음에 가까운 '땐스'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국에서 당대의 중국인 이름을 발음 그대로 즉 '모택동'을 '마우쩌둥'이라도 바꾸어 쓰려는 움직임과 같은 원리라 할 수 있다. 

06. 

이상으로, 고유어인 줄로 착각했던 연변말 '밴새'는 몽골어 'biyansi'의 차용어이고 한 걸음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몽골어가 한자어 '扁食'을 수입한 데 뿌리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살펴 보았다. 현재로서는 여기까지만 얘기할 수 있고 단정지을 수 있는 데까지는 와있지 않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자어 '扁食' 이든 몽골어  'biyansi' 든 현대 중국의 밀가루 음식인 물만두 '饺子' 와 맞먹는 개념이지만 연변말 '밴새'는 그와 모양은 비슷하나 멥쌀가루로 만든 찐 음식이라는데 있다. 새로운 사물을 그대로 수용함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바꾸어 가고 소화하여 정착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는 것, 즉 요즘 말로는 '창의력'의 산물이다. 

그래서일까. 글쓴이는 요즘에도 설이 오면 '톡톡 터지는 물밴새' 보다도 '입안에서 쫀득거리는 입쌀밴새'가 더더욱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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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면서: 말은 누구나 말할 수 있고 어렵잖게 얘기가 오고갈 수 있는 화제로 되기 쉽다. 연변말이 연변사람에게 역시 그럴 것이다. 연변말을 파서 헤쳐보고픈 뜻을 “고고학”이라는 짧은 단어로 쓰긴 했다만, 어딘가 거창하고 딱딱하고 고리타분해질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GoGo學”이라는 표기로 가벼움을 더해보려고 했다. 가며가며 배워보자 라는 뜻도 살짝 곁들여졌을지도. 

[연변말GoGo學] (1) '도투'와 '돼지'

[연변말GoGo學] (2) 코로나 때문에 ‘매재기 캐고있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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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연변, 북경을 거쳐 교토에서 고전과 씨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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